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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신약해석의 역사에 대한 고찰(4)

김순정

김순정 | 기사입력 2022/11/26 [17:10]

[논문] 신약해석의 역사에 대한 고찰(4)

김순정

김순정 | 입력 : 2022/11/26 [17:10]

 

▲     ©리폼드뉴스

 

4. 프린스톤의 주석

 

19세기 중반에 뉴저지의 프린스톤 신학교가 개혁주의적 전통에 따라 문법적 역사적 주석을 다시 일으켰다. 찰스 핫지는 바울의 4개 서신을 주석했다.

 

5. 튀빙겐 학파

 

바우르는 바울 서신을 연구하여 사도적 기독교가 일치를 보지 못하고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이방 선교 사이에 깊은 균열을 경험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베드로와 예수님의 다른 사도들의 지도를 받는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주의적 기독교를 유지했고, 바울은 복음이 유대 율법주의와 배타주의를 폐지시켰다고 주장했다.

 

바우르는 이렇게 초대교회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사도행전과 복음서들도 2세기의 문서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생애와 교훈, 이에 대한 역사적 자료의 가치들은 다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1831년 이후 바우르는 헤겔의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패턴으로 발전하는 역사과정을 주장하게 된다. 초기 기독교 역사는 통해 그것이 증명된다고 보았다.

 

예루살렘 교회의 계율주의와 율법에서 자유를 주장하는 바울의 선포는 2세기 합의 명제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한 바우르의 해석에 준 영향은 헤겔이 아니라 그의 신약주석에서 온 것이다.

 

6. 케임브릿지 학파

 

웨스트코트는 이 학파의 세 명의 지도급 인사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두 사람은 호르트와 라이트푸트이다. 웨스트코스와 호르트는 비평적 신약 헬라어 본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세명 모두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연구에 대한 탁월한 공헌을 했다.

 

세 학자들은 신약 전체를 주석하려 시도했다. 라이트푸트는 바울 서신 전체를 호르트는 공관복음서와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서를, 웨스트코트는 요한의 저술과 히브리서를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라이트푸트는 갈리디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 대한 주석들을 완성했고, 호르트는 단편들만 남겨 놓았다. 그가 죽은 후 베드로전서, 계시록, 야고보서에 대한 완성하지 못한 주석들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웨스트코트의 요한복음 주석은 1880년 스피커 주석 시리즈의 한권의 책으로 나타나게 된다(F.F. Bruc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47-48).

 

V. 20세기 역사

 

1. 철저 종말론

 

윌리엄 브레데는 예수님이 메시야로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될 때 침묵을 명하신 사실을 역사적 진리가 아니고 복음서 전승이 예수님이 처음부터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하는 교회의 신앙과 사실이 부활 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사실 메시야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설명을 붙였으나 마가는 그것을 비밀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세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아버지의 독생자로 외쳤는데 그는 경계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브레데의 설명에 따르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변화산 사건이 본래 부활 사건으로 이야기된 것이었는데 인위적으로 갈릴리 사역의 문맥에 잘못 넣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브레데의 주장으로 복음서의 편집비평의 시조로 알려지게 된다.

 

브레데의 연구는 알버트 슈바이처가 19세기 예수전 학파의 연구에 대한 마지막 인물이 되게 만들었다. 100년 동안 예수전 학파의 이론들과 모든 시도들이 실패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2. 실현된 종말론

 

루돌프 오토는 예수님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사역의 전망에서 볼 때 전적으로 미래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그것이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udolf Otto, The Kingdom of God and the Son of Man, 59). 4장의 예수님의 교훈에서 현재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강조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이러한 통찰력은 다드에 의해 공유되었다. 다드는 이 문제에 대해 실현된 종말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그의 책 Parables of the Kingdom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공적 사역의 시작과 더불어 도래했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 국면을 나타내는 지침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는 관점 즉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하게 된다. 이런 종말론은 십자가의 결정적 중요성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후에 다드는 입장을 바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 사건들 속에서 도래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이들 사건들을 선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F.F. Bruc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49-50).

 

훗날 다드는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실현과정에 있는 종말론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게 된다(J. Jeremias, The Parables of Jesus, 159). 사실 이 사상은 예레미아스의 고유 사상이 아니라 그도 에른스트 헨쉔의 표현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했다.

 

다드는 실현된 종말론에서 구속사의 절정으로서 예수의 수난과 승리의 구원 사건에 의해 완성된 예수의 사역을 강조하였다. 최근 오스카 쿨만은 전쟁의 결정적 전투와 전쟁 후의 승리의 축제 사이의 유추를 사용했다. 그는 D-dayV-day의 개념으로 구속사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은 결정적인 전투이다. 재림 때 영광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은 승리의 축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적 전투라는 것이다(O. Cullmann, Christ and Time, 139).

 

루돌프 불트만은 실존주의 해석학파로 모든 현재적 순간은 종말론적 순간으로 과거의 대답들과 문제들이 현재 속에서 우리를 다시 조우하고 그것을 새로운 것 다시 말해서 미래가 되게 하는 책임있는 결단의 반응을 일으킨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F.F. Bruc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51).

 

3. 종교사학파의 해석

 

종교사학파는 원시 기독교가 당대 근동이나 그리스-로마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전제 위에 신약을 연구하려는 학파이다. 리챠드 라이첸슈타인은 대표적인 학자로 이란의 구속 신비 종교는 악의 세력과 싸움을 벌이고 또 그에게서 인류가 나오는 태고인 즉 가요마트라는 천상의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마지막 때는 사요샨트가 구원자로 죽은 자를 일으키러 올 때 가요마트는 처음으로 부활할 것이고 천사장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이런 사상이 신약이나 초지 영지주의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다(F.F. Bruc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52).

 

4. 신해석학

 

신해석학은 신약의 메시지를 현대인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만들려는 현대적 노력을 말한다. 이 메시지가 인간 실존에 관심을 두고 현대인이 본질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인간 실존이라는 불트만의 주장과 연결된다(R. Bultmann, “Das Problem der hermeneutik,” 211). 신약을 마음의 심층부에 가지고 있는 인간 실존의 문제와 더불어 접근하려 한다면 그는 신약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비본질적 거침돌이 비신화화되어 신약에서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말이다(R. Bultmann, “New Testament and Mythology,” 1).

 

불트만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이 인식 과정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상호적으로 관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불트만은 전제없는 주석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R. Bultmann, “Ist voraussetungslose Exegese moglisch?”142).

 

에른스트 푹스는 성경의 본문은 하나님이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잘 해석되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경의 언어는 믿음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언어사건이 된다는 것이다(E. Fuchs, Studies of the Historical Jesus, 207). 비슷한 생각을 게하르트 에벨링도 표현했다. 그는 언어사건 대신에 말씀사건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표현되어지는 그런 믿음이 듣는 자 속에서도 일어나게 함으로 지금 여기서 효과적 행위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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