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명성교회 사태 이후 한국교회 고민

이제 교회와 교단의 자기 결정권을 외부 세력들이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따라 선동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적 이데올로기로 저항하는 형태에 대해 한국교회는 각 교단별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원년이 되기를 제언한다.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23/02/26 [08:57]

[사설] 명성교회 사태 이후 한국교회 고민

이제 교회와 교단의 자기 결정권을 외부 세력들이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따라 선동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적 이데올로기로 저항하는 형태에 대해 한국교회는 각 교단별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원년이 되기를 제언한다.

리폼드뉴스 | 입력 : 2023/02/2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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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한국 개신교의 최초 복음 전도는 상주하는 알렌 선교사의 입국일(1884)로부터가 아닌 한국인의 최초 세례를 받은 1879년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 천주교도 이런 형식으로 힌국인에 의한 자생적인 선교와 교회 역사를 기록한다.

 

개신교는 이 땅에 상주하는 선교사가 입국하기 훨씬 전에 중국에 파송한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에 의해 한국인 선교가 있었고 전도를 받은 그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자생적인 교회(송천교회)가 세워졌다.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스코틀랜드성서공회(NBSS)에서 중국 영구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였다. 로스의 여동생과 결혼한 매킨타이어 역시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그는 로스와 처남 매부지간이었다. 그는 중국 동북 지방에서 사역하여 심양의 동관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로스는 최초의 세례인들이 생겼다는 매킨타이어로부터 보고를 듣고,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에 한국선교를 위해 1명의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요청하면서 로스가 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록 현재 한국이 서구의 나라들과 어떠한 접촉도 철저하게 격리시키고 있지만, 그 쇄국은 곧 무너질 것이고, 또한 한국인들은 중국인들보다 천성적으로 꾸밈이 없는 민족이고 보다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면 곧바로 급속하게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교회가 지금 바로 뜨거운 가슴과 명석한 머리와 지적 능력을 소유한 젊은 전도자들이나 상급 학생들 가운데 1명을 물색해야만 한다(Ross, “Manchuria Mission,”(1 October 1880), 333~334).

 

1879년은 첫 한국인의 세례인들이 발생하는 해인데, 특별히 또 다른 의미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매킨타이어의 집에서 개신교 공동체가 형성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해이다. 이 당시 1879년에 세례를 받은 4명의 인물로 인해 최초의 한국인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지게 된다. 매킨타이어의 보고서에는 첫 한국인 신앙공동체의 형성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개신교의 상주하는 최초의 선교사가 입국할 당시인 1884년은 한국 천주교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100년이 앞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1906년부터 개신교가 천주교를 앞질렀다. 천주교의 교세는 61,290명이지만, 개신교는 장로교와 감리교를 합하여서 총 89,652명이었다. 1906년 장로교의 신자 수는 56,934명이고, 감리교의 신자 수는 32,718명이다.

 

1907년에는 개신교의 단일 교회로서 장로교가 천주교의 신자 수를 앞질러 나갔다. 1907년 장로교의 신자 수는 72,968명인데 반해 천주교의 신자 수는 63,340명이었다. 1905년과 1907년의 2년 사이에 천주교는 730명의 신자 수만이 증가하였지만, 개신교는 50,740명의 신자가 증가하였다. 1906년 천주교의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개신교의 선전이 격렬한 것을 보고 통탄할 정도였다.

   

한국 장로교회는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1788,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다섯 가지인 가정의 파괴, 높아지는 세율과 계획성 없는 재정지출, 비정상적 쾌락 추구, 군비확장과 인구감소, 종교의 부패등을 꼽았다.

 

여기서 종교의 부패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오늘날 우리 조국과 교회의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2023년 현실의 교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로마의 쇠망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이 앞선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년 넘게 놀라운 부흥과 교회의 성장이 있었다. 이런 성장 이면에는 교회의 재산도 많이 확충되었다. 그 재산과 이를 움직이는 교회 내 교권 장악을 위한 갈등과 분쟁은 지난 10년 동안 극에 달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합동 측의 충현교회, 사랑의교회, 제자교회, 광주중앙교회와 통합 측의 광성교회, 강북제일교회, 두레교회, 명성교회의 갈등은 결국 법정 소송으로 이어져 오랜 기간 해당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일부 많은 교회가 법정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교회의 존폐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분쟁과 갈등을 경험한 분당중앙교회는 한국교회를 위해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은 교회의 정확한 규칙과 규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교회를 향해 외쳤다. 한국교회가 외면하고 그것이 교회를 예방하는 좋은 길임을 전혀 알지 못했던 한국교회가 비상이 걸렸다. 분당중앙교회는 한국교회에 비상을 걸은 셈이다. 이렇게 하여 지난 10년 넘게 한국교회가 자치 정관을 정비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모든 교회의 분쟁은 결국 교단헌법과 정관 파동이었다. 정관을 정비하면서 마치 한국교회 마지막 분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형교회는 이러한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분쟁이 발생할 때 교회 내부의 저항 세력과 외부의 시민단체와 결탁하여 교회를 공격하는 자세를 취했다. 특히 특종으로 먹고사는 일부 언론은 선동적인 기사로 교회가 한국사회의 부패의 온상으로 그림을 그려 갔다.

 

일부 언론과 저항 세력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각 교단은 이를 제재하는데 겁을 먹었다. 자신들의 약점이 폭로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일부 교회법을 위한다는 단체나 개인들도 그들의 공격을 받을 것을 염려한 나머지, 또는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를 일찍이 감지하고 침묵 일변도로 나갔다.

 

그러나 잃을 것이 없는 일부 단체와 일부 소규모 언론들은 그들의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파괴적인 성향과 맞서서 한국교회를 변호해 나섰다. 이 일은 일반 법률가들에게 맡길 수 없다. 오리려 그들 중 일부는 교회의 파괴적인 저항 세력과 연대하여 교회를 공격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각종 교리와 정치와 규범의 형태에 대해 무지한 그들은 감리교, 기타 회중 정치의 규칙과 규범으로 독특한 장로교회의 헌법적 구조와 해석을 외면한 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제 자기 교회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이러한 잘못된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고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교리상으로 이단 문제만을 위한 교단의 기관과 연대가 아닌 교회법에 대한 연대 그룹이 있어야 한다. 이를 연구하고 대응하는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여 잘못된 교회의 일부 저항 세력들이 법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단의 잘못으로 개별 교회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교단도 스스로 분쟁의 약점을 보이고 있는 각종 규칙과 규범들을 정비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언젠가는 그 분쟁이 내가 섬기는 교회에 닥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교회와 교단의 자기 결정권을 외부 세력들이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따라 선동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적 이데올로기로 저항하는 형태에 대해 한국교회는 각 교단별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원년이 되기를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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