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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김철홍 교수, 이상학 목사 논문 속죄론 비판

원래 속죄론에서는 치유라는 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든 인간은 다 죄와 질병에 걸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다 치유해 주셨다고 말해야 한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23/05/20 [11:27]

장신대 김철홍 교수, 이상학 목사 논문 속죄론 비판

원래 속죄론에서는 치유라는 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든 인간은 다 죄와 질병에 걸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다 치유해 주셨다고 말해야 한다.

소재열 | 입력 : 2023/05/20 [11:27]

 김철홍 교수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학문은 통일성과 근거를 생명으로 한다. 신학이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 신학이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목표하는 학문으로 통일성과 근거 역시 논문의 성격과 권위를 보장해 준다. 신학 논문은 성경적 근거와 통일성을 생명으로 한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이며, 한국 선교 이래 조직교회로서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 위임목사(통합 측은 위임목사와 담임목사를 구분함)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밝힌 속죄론은 전통적인 속죄론에 벗어났으며,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같은 대학교 교수인 김철홍 교수가 모 인터넷 유튜브 방송에서 비판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상학 목사는 2011년 GTU에서 “Reclaiming the Understanding of Sin and Salvation from a Korean Experience of Han”(한인들의 한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죄와 구원의 이해에 대한 재평가) 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철홍 교수는 자신의 전공은 바울신학이고 속죄론이라는 분야는 바울신학의 기본적인 부분으로 자신이 이 분야에 전공자임을 밝혔다. 먼저 김철홍 교수는 이상학 목사에 대한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 ‘기독론’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상학 목사의 논문은 기독론이 아니라 속죄론의 영역에서 토론한 주제라고 했다.

 

김철홍 교수의 논평을 들어본다. 

 

이상학 목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전통적인 속죄론을 비판한다. 먼저 전통적 속죄론을 이해해야 이상학 목사가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전통적 ‘속죄론’이란 ‘형벌 대체론’, ‘형벌 대속론’으로 번역한다. 전통적 속죄론은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다. 첫째, 대체(Substitution), 혹은 ‘대신’이다. 둘째, 진노의 해소(Propitiation)이다. 신의 진노를 풀어 해소한다는 개념이다.

 

인간이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 전통적인 속죄론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는 것을 형벌이라고 한다. 여기서 형벌 대체론이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 형벌을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노의 해소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형벌을 내려야 하는데 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렸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죄에 대해 가진 하나님의 형벌이 만약에 100이라면 그 100이라는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 쏟아부으셨다. 하나님에게는 진노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전통적 속죄론은 초대교회로부터 계속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종교개혁 이후에 와서 신학적으로 전통적 속죄론이 규명되고 밝혀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최근에 전통적인 속죄론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전통적 속죄론은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여성 신학자들이 반대를 많이 했는데 이들은 여성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며 자랐다. 그런 경험으로 상처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님이 진노하거나 화가 나 있다면 거기에 너무나 부정적인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전통적 속죄론을 말하지 말자고 한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도 전통적 속죄론을 반대하면서 이것을 가르치지 말자고 한다. 전통적 속죄론 대신에 다른 방식으로 속죄를 설명하자고 한다. 그들의 3가지 방식은 첫째, 승리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사탄과 싸워 승리한 사건이다. 둘째, 화해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서 화해가 이루어졌다. 셋째, 치유이다. 이 치유가 이상학 목사가 논문에서 주장하는 이상학 목사 방식의 속죄론의 핵심이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 속죄론도 성경에 나와 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이 있다. 이처럼 복음주의 내에 속죄론 논쟁이 있어 왔다. 문제는 전통적 속죄론을 버리자는 데 문제가 있다. 전통적인 속죄론을 말하거나 가르치거나 설교하지 말고 승리, 화해, 치유로만 설명하고 가르치자는 것이다. 

 

인간에게 죄와 죽음이라는 병이 인류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치유가 되었다고 설명한 것은 전통적인 속죄론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통적 속죄론을 반대한 현대적 속죄론을 주장하는 자들도 모두 최소한 치유를 이야기할 때는 죄라는 병, 죽음이라는 병에서 치유를 말한다. 

 

그러나 이상학 목사는 그의 논문에서 죄와 죽음이라는 병에서 치유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는 한으로부터 치유를 말한다. 한이라는 개념은 민중신학에서 왔다. 민중신학에서 한이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가해자는 죄를 지었고 피해자는 계속하여 마음속에 가해자로부터 억울함을 당해 한이 쌓였다. 인류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었을 때 가해자가 죄인이다. 피해자는 죄인이라고 볼 수 없다. 죄인이 아닌 것이다. 피해자일 뿐이다. 

 

원래 속죄론에서는 치유라는 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든 인간은 다 죄와 질병에 걸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다 치유해 주셨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학 목사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두 세력으로 나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다. 피해자는 피억압 계층이고 가해자는 억압계층이다. 

 

피억압 계층인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한풀이를 해 주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해자들이 가진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설명하자는 것이다. 치유는 곧 한을 치유하자는 것이다. 복음주의 내부 속죄론 논쟁을 가져다가 민중신학의 한의 개념을 집어넣어 짬뽕을 만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 피를 흘리시고 고난받고 죽으셨다는 것은 성경에 근거가 없다. 성경에 없는 기형적으로 십자가를 설명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을 푸는 방법이 성경에 나와 있다. 한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한을 가진 피해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면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해자만 죄인이 아니고 피해자도 죄인이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서 희생을 당하셨다. 구원의 은혜를 알면 용서를 하게 된다. 한을 해결하는 것은 용서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상학 목사님이 심사숙고하여서 나도 전통적인 견해를 존중한다고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다. 통합 측은 문제가 있다. 저희는 통합 측 신학에서 기준(standard)이라는 것이 없다. 사실 총신, 고신, 합신의 보수 교단은 좀 부러운 것이 있다. 이런 교단은 최소한 기준이 있다. 교수들이 그 기준을 벗어나면 안 된다. 교수들이 그 기준을 벗어나 강의하면 강단에 서지 못한다. 우리 학교는 그런 기준이 없고 뭐가 기준이냐면 통합 측은 아주 오른쪽(극우)이나 극좌 신학으로 가지 않고 그 중간에서 신학을 하는 한 다 신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계속해서 그 경계선이 왼쪽으로 가고 있다. 오른쪽으로 가지 않는다. 계속해서 기준이 왼쪽으로 옮겨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정도의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기준이 이제는 무너지고 있다. 이상학 목사의 논문을 교수들에게 주고 이 논문이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해 달라고 하면 결론은 뻔하다. ‘문제없다’이다. 왜냐하면 신학이라는 이름 아래서 할말 못할 말 다 해도 “그것도 신학이지” 해 버린다. “최소한 기준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할 때, 그것도 문제인 것은 “성경도 해석의 방식이나 해석의 관점이 틀리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왜 너의 성경해석 방법만 옳다고 주장하느냐”라고 비판한다. 결국 절대적 진리는 없어져 버리고 상대적 진리만 있을 뿐이다. 이상학 목사처럼 저런 논문을 쓰고 통합 측 대부분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그것도 신학이고,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 가지고 뭐 틀렸다는 등의 말을 하느냐”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희 교단이 염려스럽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은 신학의 관점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이제 진리는 다 무너진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대 혼돈의 시대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염려스럽고 그런 면에서 이상학 목사의 논문은 문제가 된다고 봐야 한다.

 

이상학 목사는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냥 전통적 속죄론을 인정하시고. 그것을 인정하는 선에서 보완적인 보조적인 설명 방법으로 치유 이런 것들을 나는 이야기 한 것이다. 치유도 죄와 죽음의 질병에서 치유되는 것이 궁극적인 구원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그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러나 한에 대한 문제도 내 나름대로 신학적인 탐구를 해 본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해 주시면 저 역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염려된 것은 이런 논문을 가지고 우리 신학교 목회학석사 과정에서 강의하고 있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가지고 강의하면서 이것이 마치 기준(standard)인 것처럼 강의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상학 목사님이 심사숙고하셔서 이런 문제에 대해 나도 전통적인 견해를 존중한다고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다.

 

이상과 같은 김철홍 교수의 이상학 목사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은 앞으로 계속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중요한 교의 중에 하나인 속죄론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상학 목사의 논문 중에 중요한 논지로 등장한 것은 "전통적 속죄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 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져 있다.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 된다는 논지는 속죄론의 완전성, 충족성에 대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그래서 이상학 목사는 설교 시간에 자신의 논문 비판에 대한 해명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형식의 논문이었음을 밝혔다. 그의 답변은 원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못박히신 구속을 믿음으로 받는다고 답변해야 하고 이러한 원칙에서 논지를 펼쳐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학 목사의 답변에서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답변에 "믿음으로 받는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속에 응어리와 상처로 인해서 울분이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듬고 싸매주고 위로해 주고 머물러 주면서 이 사람의 상처와 응어리를 만져주어서 주님의 사랑으로 이 상처가 녹여지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이 사람이 복음을 복음으로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상학 목사는 "전도의 방법, 즉 접촉점"으로서 "상처와 응어리를 만져줌"이 아니라 "구원의 방법"으로  "상처와 응어리를 만져줌"으로 설명하자 더 문제가 복잡해 져 버렸다. 전통적인 속죄론과 한에 대한 치유의 관계의 논문을 작성해 놓고, 복음 전도의 접촉점을 구원받은 방법으로 해명하니 이상한 해명이 되어 버려 더욱 논쟁을 부추겼다. 그는 "이 전 과정은 기독교 신앙에서는 전인적 구원의 과정"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또 문제가 되어 버린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길 외에 다른 길을 주신 일이 없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한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이 임한다. 물론 여기에 성령깨서 역사하신다. 이러한 복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할 때, 전통적 속죄론을 강조하면 안 된다는 이상학 목사의 논지는 김철홍 교수에 의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상학 목사의 해명보다 논문에 의해 정확한 논지가 무엇인지, 그 논지를 이끌어간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다음 정확한 평가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소모적인 논쟁만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이상학 목사가 설교시간에 자신의 논문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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