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논문] 느헤미야와 구속역사

김순정 | 기사입력 2023/08/19 [08:43]

[논문] 느헤미야와 구속역사

김순정 | 입력 : 2023/08/19 [08:43]

 

▲     ©리폼드뉴스

  

I. 서론

 

히브리어 성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한 권으로 나온다. 이 두 권의 성경을 히브리어 성경은 에스라서라고 제목을 붙였다(F.W. 슐츠, 구약주석: 에스라 느헤미야, 느헤미야 서론을 보라). 70인경(LXX)은 느헤미야서를 제2에스드라서라고 했다(Septuagint, ΕΣΔΡΑΣ Β). 그러나 라틴어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이것을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로 분리한다. 우리성경은 이를 따라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분리하였다.

 

본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느헤미야, 에스라, 후대 역대사가 등의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느헤미야를 본서의 저자로 본다. 저작연대는 BC 425로 본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통해서 남유다 왕국의 백성에 대해 예언을 주셨다. 그 예언은 남유다 왕국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포로 기간은 70년이었다. 하나님은 그 포로 기간 동안 남유다 민족을 벌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70년이 차면 그들을 회복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말씀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보내 유다 백성을 인도하여 바벨론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게 하신다. 에스라서는 성전의 재건을 느헤미야서는 성벽의 재건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신앙의 회복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의 나라를 회복해 주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님은 과거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에게 주신 언약을 중단하지 않으셨다. 느헤미야서도 그 언약을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계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II. 느헤미야의 구조

 

느헤미야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김순정, 하나님의 구속역사 관점으로 성경읽기, 292).

 

A. 1:1-3:32 성벽 건설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느헤미야

B. 4:1-5:19 주변의 적들의 항의

C. 6:1-10:39 성벽 완성과 언약갱신

D. 11:1-13:31 성벽봉헌과 종교질서 확립

 

III. 느헤미야와 구속역사

 

1. 하나님의 구속역사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은 이 기간에도 지속적으로 구속의 역사를 써 나가신다. 그래서 남유다를 보호하고 지켜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속의 절대 주권을 보여준다(H.G.M. 윌리암슨, 구약주석: 에스라 느헤미야, 574). 우리가 아는대로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자세히 보면 1:12절 이후에 바벨론 포로 이후의 족보가 나오고 있다.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1:12)

 

느헤미야와 동시대 인물인 에스라가 기록한 성경에도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3:2)라고 나온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족보의 기록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족보를 자세히 보면 1:13절 이후에 스룹바벨 이후의 족보는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은 유대인들 사이에 여러 족보를 기록한 문서들이 유행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들이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손들이라고 기록된 문서를 제출했다고 할 수 있다(2:62).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 사람들도 포로 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족보를 가지고 있거나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1:5; 2:36; 4:36; 11:1). 그러면 족보는 여러 지파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바벨론의 포로 귀환 후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바벨론 포로 후기에도 일하고 계신 것이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는 것이다(1:1).

 

2. 느헤미야와 구속역사

 

느헤미야는 멸망한 남유다의 소식을 듣게 된다. 남유다에 있던 동족들과 성전, 성벽이 다 파괴되고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때에 느헤미야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아닥사스다의 아들 때에 술을 맡은 관리였다. 그는 유다의 상황을 듣고 왕에게 허락을 구한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1:11-2:1)

 

왕이 그에게 조서를 내리자 그는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받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그는 3차에 귀환을 하였다. 에스라는 그보다 13년 일찍 2차에 귀환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성벽공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성벽공사 소식이 주변에 전해졌다(2:17-18). 주변에서는 그의 성벽공사를 지지하고 협력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방해했다(2:19).

 

성벽공사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신학적 의미는 대단히 중요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징계로부터 회복해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에는 항상 사탄의 방해가 뒤따른다. 사탄은 유다의 주변나라들을 통해 성벽공사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한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승리로 끝이 난다. 하나님은 이 영적 싸움에서 느헤미야에게 승리를 주신다(브루스 월키, 구약신학, 927).

 

3.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대한 방해

 

성벽의 공사가 재개될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비웃었다(4:1-3). 이들은 원래 이스라엘의 후손들이고, 남유다와는 형제들이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언약을 파기하고 죄악 가운데 살자 하나님은 앗수르를 통해 북왕국을 심판하셨다.

 

북왕국은 식민이주정책을 펴서 북이스라엘에 이방인들을 이주시키고 북이스라엘 민족을 대거 다른 식민지로 이주시켜 버린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지역에는 혼혈족이 남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자손도 아니었다.

 

그들은 성벽 재건을 보고 조롱하고 비웃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조롱하고 방해했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한다(4:4-5).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4:4-5)

 

남유다의 성벽공사를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방해하는 것이다. 남유다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심판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즉 노략거리, 이방에 포로, 그들의 악에 대한 심판,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말아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원한을 푸는 기도가 아니다.

 

성도는 모든 마귀의 힘있는 침입을 막아야 하고 모든 불경건의 행위를 막아야 한다(Fr. W. Schultz, The Books of Ezra and Nehemiah: an Exegetical and Doctrinal Commentary, 4:9-17).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방해했다. 사탄은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동원해 하나님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방해했다.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보자. 하나님의 구속의 계보로 아벨을 택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가인을 통해 아벨을 제거해 버린다. 사탄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방해한 것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씨 셋을 주셨다(4:25).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도 그러했다. 사탄은 헤롯을 통해 베들레헴의 2살 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였다(2:1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애굽으로 피신하셨다. 호세아 11:1에 이미 이 사건을 예언하고 있다. 마태는 예수님이 바로 참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기초로 이 구절을 사용했다(R.T. 프란스, 신약주석: 마태복음, 1250).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속의 역사를 방해하는 그 어떤 세력에 방해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그 은혜와 역사로 인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결론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해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해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걸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우리의 삶과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언약백성의 책임이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