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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박사 대요리문답 강해 88] 성례의 유익문 161. 성례는 어떻게 구원의 유효한 방편이 되는가? / 문 162. 성례란 무엇인가? / 문 163. 성례의 부분들은 무엇인가?
문 161. 성례는 어떻게 구원의 유효한 방편이 되는가?
답. 성례가 구원의 유효한 방편이 되는 것은 그것들 자체 안에 있는 어떤 능력이라든지 혹은 그것들을 거행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서 나오는 어떤 효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성령의 역사과 그것들을 제정하신 그리스도의 복 주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벧전 3:21; 행 8:13, 23; 고전 3:6-7, 12:13).
1. 성례는 성경과 더불어 은혜의 방편이다. 그 은혜는 구원을 포함한다. 그렇다고 성례는 그 자체로 어떤 능력이 있지 않다. 마술사 시몬이 세례를 받았지만, 베드로는 그에게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고 말했다. 만일 세례 그 자체가 자동으로 중생을 준다면 시몬은 그의 세례를 통하여 중생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는 여전히 불의에 매인 인생이었을 뿐이다. 세례가 마술사 시몬에게 그 어떤 은혜도 수여하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성례 그 자체가 은혜를 베푼다는 로마 가톨릭의 교리가 잘못되었음을 교훈한다.
2. 성례의 효용성이 목회자의 경건과 도덕적 인격에 좌우되지 않는다. 성례의 효용성의 타당성은 그것을 집례하는 자의 경건과 도덕적 인격에 좌우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목회자는 경건해야 하고 도덕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영적 상태가 성례의 효용성을 전복시키지는 못한다. 혹시 경건하지 않은 목회자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 무효가 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은 목사에 의해서 베풀어진 성례의 효용성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3. 목회자의 의도가 성례의 효과를 결정하지 않는다. 성례가 그리스도의 제정 의도에 알맞게 베풀어지면 목회자의 개인적 의도는 그 효용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목회를 단순히 직업이나 생계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그릇된 의도로 목회 사역에 뛰어들어서 교회의 규칙 때문에 성찬을 베푼다고 하더라도 성례의 효용성과 타당성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참된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성찬 예식에 참석한 자들은 목회자의 그릇된 동기에도 불구하고 성찬의 축복과 유익을 얻을 것이다.
4. 성례의 효용성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성례를 친히 제정하신 그리스도의 축복으로 좌우된다. 사람이 성례를 제정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방편으로 제정하셨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정하신 성례에 참된 믿음으로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성례와 더불어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역사를 동반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은 그리스도의 것을 그의 백성에게 주신다. 성령은 성례를 통하여 성례와 함께 역사하신다. 따라서 성례는 그 자체로 내적인 능력이 없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참된 은혜의 방편이 된다.
5. 성례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많은 사람이 세례를 단순히 아이와 성인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교회의 의식으로 보았고 성찬을 구속의 진리를 상징하고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는 기념 의식으로만 생각해왔다. 성례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우리 교회의 신앙적 표준을 제시해주는 개혁교회의 신앙과는 모순된다. 세례는 단순히 헌신적 의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찬은 상징적인 초상이나 기념 예배가 아니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방편으로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문 162. 성례란 무엇인가?
답.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 안에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이니 이 규례는 은혜의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의 중보의 혜택을 표시하시고, 인치시고,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며, 그들의 신앙과 다른 모든 은혜들을 강화하고, 더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순종케 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의 상호 간에 사랑과 교통을 증거하고 소중히 기르며 그들을 은혜의 언약밖에 있는 자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창 17:7, 10; 출 12:1-51; 마 28:19 등).
1. 성례는 가시적인 표식과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들이 제시되어있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어 신자에게 인치고 적용하는 거룩한 규례이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를 사실 동안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 성례는 가시적인 표식의 사용과 관계되어 있다. 즉 물과 떡과 포도주와 같은 물질적 요소와 관계된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 성례는 가시적인 표식과 함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을 제시하고 인치며 적용하는 목적을 지닌다. 성례는 세상이 아니라 신자를 위한 것이다.
2. 성례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이 단어는 보증이나 서약 또는 동맹을 의미하는 ‘사크라멘툼’ (sacramentum)이라는 라틴어에서 연원 되었다. 사크라멘툼은 신비를 의미하는 ‘미스테리온’ (mysterion)이라는 헬라어의 번역이다 (엡 1:9; 3:3, 9; 5:32; 골 1:27; 딤전 3:16; 계 1:20; 17:7). 헬라어 미스테리온은 계시 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을 의미한다.
3. 성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제정되었다. 성례가 외면적 요소들과 행위들을 사용하는 것과 관계되어 있기에 보이는 교회에 맡겨졌다. 그래서 세례와 성찬은 교회의 규례이다. 따라서 성례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그리스도의 교회 밖에서 집례 되어서는 안 된다. 세례와 성찬을 사적으로 베푸는 것은 비정상이고 피해야 한다. 교회 밖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성찬을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성례는 가견적 교회에 속한 규례이다.
4. 성례는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중보의 혜택을 표시한다. 성찬에서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표시하고 포도주는 그의 피를 표시한다.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구속 혜택에 신자의 참여를 표시한다. 성례에는 물질적 요소와 외적인 행위 안에 영적 실재가 표시되어 있다.
5. 성례는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그의 중보 사역의 혜택을 인치려고 제정되었다. 이것은 성례가 참된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정당하게 시행된다면 인치는 기능 또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신적으로 보장함을 의미한다. 참된 믿음으로 성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자는 그것을 모든 언약의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 간주한다.
6. 성례는 그리스도의 혜택을 예수 안에 있는 신자들과 그들의 자녀에게 표시하고 인치며 나타내고 적용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중보의 혜택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성취하신 모든 것과 앞으로 행하실 모든 일이다. 그것은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직무 안에서 구속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사역이다. 즉 창세 전에 이루어진 구원의 모든 계획과 (엡 1:4) 그의 택하신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백성의 궁극적 영화와 영광의 나라에서 누릴 영생이다 (롬 8:30). 이 모든 것들이 표시하고 인치고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혜택에 포함되었다.
7. 신자의 생애에 있어서 성례가 수행하는 실제적 목적은 신자들의 신앙과 다른 모든 은혜를 강화하고 더하게 하며 순종하게 한다. 성례는 올바로 시행하면 신자들의 모든 삶의 국면을 강화하고 세워준다. 성례는 그들을 더 훌륭하고 일관성 있는 신자들로 만든다. 성례는 또한 하나님 언약의 요구 사항들을 기꺼이 순종하게 한다.
8. 인간 사회에 수행하는 성례의 기능은 하나님의 백성을 언약 밖에 있는 자들과 구별하는 기능을 한다. 성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표지와 증거이다. 성례는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을 일반적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과 구별한다. 세례는 교회 회원권의 표시이다. 세례받은 자는 악독한 죄로 출교당하기까지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구성원으로 간주 된다. 세례는 교회 회원권의 표시이고 주의 만찬은 교회원의 상호 교통의 표지이다.
문 163. 성례의 부분들은 무엇인가?
답. 성례의 부분들은 둘이니 하나는 그리스도 자신의 명령에 따라 사용되는 외부적이고 감각할 수 있는 표요, 다른 하나는 이로써 표시되는 내적, 영적 은혜이다 (마 3:11; 벧전 3:21; 롬 2:28-29).
1. 성례의 요소가 둘이라는 말은 성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믿음과 함께 올바르게 시행되기만 하면 그것은 외적이며 감지할 수 있는 표와 내적 영적 은혜라는 두 가지 요소를 의미한다. 성례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상관없이 그릇되게 사용하는 자는 전혀 성례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다. 그들은 외적인 형식 또는 성례의 의식에 참여할 뿐 영적 실재에 참여한 자는 아니다.
2. 외부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표는 외적이고 물질적 세계에 존재하는 표지이다. 그것은 신체적이며 화학적인 성질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에 존재한다. 물과 떡과 포도주라는 성례의 요소와 그것에 동반되는 행위는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외부적이다. 감지할 수 있는 표는 시각과 미각과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성례의 요소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맛볼 수 있다. 성례 행위는 시야로 인식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감지할 수 있는 표이다.
3. 성례는 외부적 요소로 물과 떡과 포도주와 같이 실제 필요한 재료적 요소 이외에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지정한 방식으로 적절한 행동과 말을 통하여 실행해야 한다. 따라서 세례에 있어서 물은 세례 받는 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은 특별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즉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성찬의 경우 떡과 포도주를 성찬에 참여한 자들에게 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찬의 요소를 진행하고 그것에 축사하며 떡을 떼고 떡을 나누어 주며 잔을 나눔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지정하신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4. 내적 영적 은혜는 표라는 단어와 대조되어 있다. 은혜는 신자를 위해 신자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은혜는 외부 적인 표와 대조된다. 은혜는 표가 의미하는 바이다. 은혜는 실체이고 표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외부적인 표는 은혜를 지시해주는 게시판과 같다. 이 은혜는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고 마음과 영과 인격의 세계에서 보이기 때문에 내적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영혼에 존재한다. 이 은혜는 시각이나 미각이나 감각이나 청각과 같은 신체적 감각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영적이라고 불린다. 이런 것은 육체적 감각이 아니라 영적으로라야 분변할 수 있다 (고전 2:9-16).
5. 외부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표와 내적 영적 은혜는 영적인 관계로서 성례전적인 상징적 연합이 있다.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대표한다. 외부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표와 내적이고 영적인 은혜 사이의 성례적 연합은 상징적이다. 이러한 상징적 관계성 이외에 표와 은혜 사이에 관계성이 있다. 그리스도의 지정하심에 따라 외부적인 표가 참된 믿음과 함께 정당하게 시행되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영적 은혜가 성례 참여자에게 전달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외부적인 표를 정당하게 사용하는 자에게 성령을 통하여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의미에서 외부적인 표와 은혜 사이에 관계성이 있다. 은혜는 성례 그 자체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다. 성례는 신적으로 지정된 은혜의 방편인 만큼 성령께서는 성례가 정당하게 사용하는 곳마다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문 164.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몇 가지 성례를 제정하셨는가?
답.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 안에 두 가지 성례만을 제정하셨으니 곧 세례와 성찬이다 (마 28:19; 고전 11:20, 23, 26:26-38).
1. 신약에는 오직 두 가지 성례가 있다. 즉 세례와 성찬이다. 세례와 성찬이라는 이 두 가지의 신적 규례들은 그 자체로 다른 규례들이 소유하지 못한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은 다른 규례들과는 구별되는 성례이다. 성례라는 단어는 이 두 규례에만 한정된다.
2. 로마 가톨릭이 7 성례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백성사, 주유성사, 영세성사, 종부성사)를 집행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7 성례 가운데 5개를 제외하고 세례와 성찬만 성경적이다.
정 규 철 목사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및 이사 전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예수인교회 협동목사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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