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김지찬 교수 정년 퇴임식 "총신 캠퍼스에서 못한 사역 이어간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23/11/29 [20:24]

총신대 김지찬 교수 정년 퇴임식 "총신 캠퍼스에서 못한 사역 이어간다"

소재열 | 입력 : 2023/11/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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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 신학을 가르친 김지찬 교수가 정년 은퇴를 맞이하여 지난 1128일 정년 은퇴 감사예배 및 퇴임식을 가졌다.

 

김대웅 교수(구약학과 주임)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감사예배는 이희성 교수(구약)의 기도와 박철현 교수(구약)가 봉독한 요한복음 18:37-38절 말씀을 통해 김지찬 교수는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어 이세용 목사(총신신대원 78)의 축도로 1부 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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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2부 순서는 김희석 교수의 사회로 진행했다. 김희석 교수의 퇴임한 김지찬 교수의 약력 소개와 총신대 박성규 총장의 기념패수여와 기념품을 증정했다. 논총 편집위원장인 김대웅 교수가 은퇴논총 증정을 했다. 이어 김정우 명예교수의 축사가 있었으며, 영상으로 오정현 목사, 이규현 목사, 류응렬 목사 등이 축사했다.

 

김지찬 교수의 정년퇴임 인사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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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찬 교수의 자서전적 약력

 

신앙 이력

 

나는 모태 신앙인으로 1973년 평창중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배문중학교 3학년 때 가난으로 휴학을 하고 권사님들을 따라 산기도를 다니다 복착시켜 주시고 귓병 낫게 해주시면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였다. 복학을 하고 1974년 무시험 추천으로 휘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목사가 되기 싫어 재수하면서 일반대를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서원을 어기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였고, 1978년 총신대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철거민촌인 신월동의 신월중부교회에서 유초등부 전도사(1979~7981)로 사역하였다.

 

목사의 소명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있어 4학년 때 졸업여행을 포기하고 오산리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한 후에야 비로소 신대원 진학을 결정하였다. 서초동의 조은교회(1983~1984)에서 중고등부-청년부 전도사로 섬겼다. 1986년 강도사 인허를 받았으나 유학 중에는 full time 학생이기에 목사 안수를 받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귀국하던 해인 1993년에 한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대길교회에서 교육목사(1993-1995) 혜성교회에서 협동목사(1996~1998)2015년부터 현재까지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학력

 

총신대에서 문학사(BA, 19821 와 목회학 석사(M. Div, 1985)를 받은 후에 미국장로교 신학을 배우려고 1987년에 태평양을 건너 Calvin Theological Seminary로 유학을 떠났다. 등록금 면제에 3,000불 주는 장학금을 받은 데다가 심오한 성경해석으로 교수 중의 교수로 불리우는 John H. Stek의 지도로 석사학위(Th.M,1989)를 받은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 후 유럽 개혁신학을 공부하려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네덜란드의 Kampen Theological University에 들어갔다. 고대 우가릿(Ugarit) 연구와 구약의 -내러티브분야의 석학인 J.C. de Moor 교수의 지도하에 1993년에 신학박사(Th.D.) 학위를 취득하였다. 캄펜에 있는 동안 De Moor 교수의 도움으로 네덜란드 정부에서 전체 생활비를 제공하는 연구조교(1990-1992)로 일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교수 경력, 학회-봉사, 설교 활동

 

귀국하기 전부터 모교로부터 전임대우로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1993년 귀국했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시간 강사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대원 교수는 새벽기도회와 채플 설교를 나에게 허락하는 공식 결정을 해 줄 만큼 선배 교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조교수와 부교수를 거쳐 귀국 11년 만인 2002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종신은 120년 넘게 예장 합동 교단의 유일한 목회자 양성 기관이었기에 15,000명이 삶의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것은 나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학내에서는 총신 원보 주간, 성지언어 연구소장, 신대원 학생처장, 구약신학 학과장/전공주임, 신대원 교무처장, 연구처장, 대학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학내 보직은 누군가가 맡아야 하며 학교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교수의 영혼은 연구하고 가르치고 집필하는일임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대외 활동으로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신학 자문위원과 법인 이사로 봉사하였고, 한국복음주의 구약신학회 안에서 회계, 서기, 부회장을 거쳐 제8대 회장(2015-2016)으로 섬겼다. 학회 활동을 통해 총신은 학문적으로 탁월한 교수진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일에는 주로 지역교회들이 주일 설교와 부흥회 강사로 섬기고 있으며 합동 교단은 물론 초교파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해외에서 예배의 부흥사경회의 설교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단독 연구 저서물

 

그동안 나의 단독 연구 저서 물은 11권이며, 그 외 설교집이 3권이 있다 박사학위논문인 The Structue of the Samson Cycle(1993)를 출판하였으며, 목사의 작업 자료는 언어이기에 언어의 직공이 되라”(생명의말씀사, 1996)를 저술하였다.

 

교단을 위해서는 구약개론(예장총회, 1998)을 출간하였다. 한편 장신대 김지철 교수(후에 소망교회 담임목사)의 초청으로 행한 10번의 사무엘서 강의를 묶어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한국성서학연구소, 2003)를 출판하였다.

 

구약 역사서 교과서로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1993)”을 집필하였고, 후에 전면 개정하여 1,400쪽이 되는 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2016)”를 출간하였다. 십계명은 율법의 짐이 아니라 자유의 헌장임을 강조하는 오경 교과서로 데칼로그: 십계명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2016)”를 저술하였다. 성경 주해 방법론에 대해서는 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2018)”와 노아 언약의 이해를 위해서는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생명의말씀사, 2019)”를 교과로 저술하였다.

 

그리고 나의 설교를 들은 출판사 관계자들의 독려로 하나님의 백성이 전 생애로 대답해야 할 6가지 직문(조이선교회 2009)”, “문제는 유혹이다”(생명의말씀사, 2016), “믿다, 살다, 웃다”(국제제자훈련원, 2019)란 세원의 설교집을 내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 시절, 팬데믹의 현상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성경과 팬데믹”(2020)을 출판하였다.

 

단독 번역서

 

나는 신대원 1학년부터 생계를 위해 번역을 하였는데, 생명의말씀사에서 20권 넘게 번역하였다. 유학 직전에 매일 5시간씩 1년 반 동안 요세푸스 전집4권을 혼자 번역한 것은, 돌아보면 유학비를 마련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적 축복이었다.

 

또한 선교학에서 불멸의 책인 돈 리챠드슨, “화해의 아이를 번역하였다. 가룟 유다처럼 우정으로 살찌운 후 배신하여 살해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여기는 이리얀 자야의 식인종들 속에서 15년간 어린 자녀와 함께 선교하던 중 화해의 아이라는 그들의 풍습에서 구속 유비의 원리를 발견하고 예수님이 바로 화해의 아이라고 복음을 전하게 된 자선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자주 번역 작업을 하기 어려운 정도로 가슴이 뛰었고 그 감동은 40년 넘게 내 심장에 남아있을 정도이다.

 

또한 월터 카이저, “구약 난제 해설과 윌리암 다이어네스, “주제별로 본 구약 신학같은 구약 서적은 물론 칼빈 연구의 최고 업적인 T.H.L. 마커의 존 칼빈의 생애와 업적허드슨 테일러의 자서전과 로버트 웨버의 예배학외에 15권을 번역하면서 나는 수많은 학문적 선배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풍성함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독 학술 연구 논문

 

나는 귀국하여 총 50편 정도의 단독 학술연구 논문을 썼다. 초기에는 성경해석과 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설교자는 시인 혹은 수사학자 혹은 이미지스트가 되어야 한다식의 논문을 썼다. 그러다가 총신의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평양대부흥과 성경의 축자적 영감”, “박형룡의 성경관과 한국장로교: 김재준과 벌인 성경관 논쟁을 중심으로”, “총신 구약학 형성의 토대등의 논문을 통해 청교도적 개혁주의, 보수 정통신학”,

 

그리고 성경무오, 축자 영감, 성경 비평학 거부가 총신의 신학적 정체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지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교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여호수아서의 농촌 선교적 이해”, “신비주의 은사(방언과 치유) 집회 어떻게 볼 것인가?”, “교역자 최저 생활비 시행의 성경적 근거: 미자립 교회 지원은 구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등의 논문 작성하였다.

 

다짐

   

30년의 교수 생활을 돌아보면 더 열심히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지만,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여 남은 생애 총신 캠퍼스에서 못한 사역을 이어가리라. 다짐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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