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재단법인 재조선야소교장로파교회신학교유지재단' 재산 일본에 귀속

소재열 | 기사입력 2023/11/30 [00:02]

'재단법인 재조선야소교장로파교회신학교유지재단' 재산 일본에 귀속

소재열 | 입력 : 2023/11/30 [00:02]

  © 리폼드뉴스

 

평양장로회신학교 유지재단의 공식명칭은

'재단법인 재조선야소교장로파교회신학교유지재단'이다 


(리폼드뉴스)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1938. 9. 9)에서 신사참배가 결의되었다. 전국 교회가 신사에 참배하도록 결의한 것이다. 성경과 신앙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불행한 결의였다.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가을학기 개학인 831일에 개학하지 못하고 무기한 연기되었다. 교문은 굳게 닫혔다. 그리고 휴교 상태에서 통신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듬해인 1939. 4. 13. 오전 10시 학교 강단에서 제34회 졸업식이 교장 라부열 박사의 사회로 54명의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선교사들은 다시 신학교 문을 열지 못했다.

 

총회는 선교회가 신학교의 문을 열지 않자 1940. 2. 9.에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1940411일에 개교하였다. 이 신학교를 ()평양신학교였으며, 교장은 채필근 목사였다. 이 신학교는 평양 신사에서 참배를 하고 동방요배를 했다. 그러나 이 후평양신학교는 엄연히 총회 직영신학교였다는 점이다.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지 후평양신학교 학생들이 평양신학교 기숙사를 불법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학교 유지재단측은 미국 영사관에 문제 해결을 청했으며, 영사관은 총독부와 의논해 보겠다는 통보를 하였다.  

 

  © 리폼드뉴스

그러나 일제의 기독교법인에 대한 재산파악과 통제는 일제 말기 적산(敵産)처리 과정에 의해 처리되고 말았다. 일제는 1940년부터 1942년까지 강제적으로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할 때 선교사들이 철수하면서 재 조선 선교회법인 명의 재산, 신학교 유지재단의 재산은 일제에 의해 적산처리 되었다.

 

19411222일 적산관리법을 朝鮮臺灣樺太에 시행하는건(칙령 제1178)과 적산관리법시행령(칙령 제1179)이 일본의 적산 관리법 제정에 맞추어 조선에서 시행되었다. 이어 19411229일 적산관리법시행규칙(조선총독부령 제343)이 제정되면서 미국과 영국이 적산관리법과 적산관리법시행령 상의 적국(敵國)으로 고시(告示)되었다(조선총독부고시 제2086, 1941.12.29.).

 

이어 신학교 유지재단 뿐만 아니라 1942522일의 조선총독부고시 제776호는 미감리교선교회, 남감리교선교회, 북장로교선교회, 남장로교선교회, 캐나다장로교선교회, 호주빅토리아국장로회선교회, 동양선교회 소유재산을 적산으로 고시하고 적산관리인을 지정했다.

 

이렇게 하여 평양신학교 유지재단 재산은 일본 적산재산으로 귀속되고 말았다. 후평양신학교는 이러한 적산재산을 임대하여 신학교를 운영했다. 후평양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도록 1941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을 수정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 수정기초안을 개정하여 제30회 총회(1941)에 임시 채용하였다.

 

이 개정 기초안은 선교사 중심의 헌법에서 우리 일본적 기독교주의에 의해 헌법을 개정했다고 서문은 밝히고 있다. 이 수정기초안은 후평양신학교를 졸업하지 아니하면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도록 하여 신학교 뿐만 아니라 목사 안수까지 일본적 기독교주의를 표방했다.

 

이 후평양신학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설립한 학교로서 총신의 전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총신대의 역사에서는 총신 졸업 기수는 후평양신학교 졸업생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 신학교 교장인 채필근 목사를 역대 총장 명단에서는 삭제했다.

 

불행하게도 후평양신학교 졸업생은 역사 총신 기수에 포함하지만 남산장로회신학교의 졸업생은 역대 총신 기수에서 삭제했다. 남산장로회신학교도 총회 직영신학교였음에 불구하고 졸업기수에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긍금하다.

   

남산장로회신학교는 박형룡 박사와 51인 신앙동지회 중심으로 1948년에 설립되었다. 19494월 제35회 총회는 장로회신학교의 총회 직영을 가결했다. 그런데 직영신학교임에도 졸업생을 총신 기수에 포함시키지 않는 총신대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