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두동교회('ㄱ자’ 교회당) 100년사 출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두동교회 ㄱ자’ 교회당을 보존

소재열 | 기사입력 2023/12/03 [13:45]

‘두동교회('ㄱ자’ 교회당) 100년사 출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두동교회 ㄱ자’ 교회당을 보존

소재열 | 입력 : 2023/12/03 [13:45]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김제 금산교회와 함께 'ㄱ자' 예배당'을 보존한 익산 두동교회가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 보물, 'ㄱ자' 두동교회 100년사>(브엘북스 )를 출판하고 감사예배를 드린다.


호남선교, 
전북 익산 지역 역시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의 선교지역이었다. 미국 북장로회 소속인 의사인 알렌 선교사(1884. 9. 20)가 최초로 입국했다. 이듬해인 188545일 부활주일 오후 3시에 미국 북장로회 목사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가 두번째로 입국했다.

 

  © 리폼드뉴스


언더우드 선교사의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출국하여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에 조선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했고 선교사 파송에 따른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1892113일에 입국하였다. 이듬해인 18932월에 선교사들이 가지 않던 전라도 지역을 선교지역으로 할당받아 선교를 시작하였다. 남장로회 선교사 7인이 최초로 입국하였는데 이들을 ‘7인 선발대라고 한다.

 

  © 리폼드뉴스


남장로회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가장 먼저 전주 성문 밖 운송리에 초가 한 채를 구입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이 교회가 바로 전주 서문교회이다. 전주 서문교회는 호남의 모 교회인 셈이다.

 

선교사 중심의 공의회가 전국 교회를 관리·감독하게 되었으며, 선교사 공의회 이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시대에는 전라노회를 조직(1911. 10. 15)하였다. 전라노회는 다시 전남노회(1917. 9. 17)와 전북노회로 분립되었고(1917. 10. 10), 익산 지역은 전북노회에 소속되었으며, 전북노회 제13회 정기회(1923. 6. 26)를 전후하여 익산에 두동교회가 출발했다.

 

  © 리폼드뉴스


전북노회에서 군산노회가 분립(1939. 10. 5)되었으며, 익산 지역을 비롯한 두동교회는 전북노회에서 군산노회에 소속하게 되었다. 이어 군산노회에서 익산노회로 분립(2004. 11. 15)되었으며. 두동교회는 익산노회에 소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결국 두동교회는 1923년 전북노회, 군산노회, 익산노회로 이어지는 소속 노회 산하 지교회였다.

 

  © 리폼드뉴스


총회가 출판한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하권)에서 다음과 같이 설립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923(계해) 익산군 성당면 두동리교회가 설립되다. 선시에 선교사 하위렴(河徫濂)과 조사(助師)김정복(金正福)이 전도하므로 귀인(歸人)들이 믿고 부곡리교회(富谷里敎會)에 내왕(來暀)하더니 안신애(安信愛)의 열심전도(熱心傳道)로 신자(信者)가 점진(漸進)하매 박재신(朴在新)이 자기 가옥중(自己 家屋中) 부속(府屬)을 차여(借與)하여 회집예배(會集禮拜)하니라.”

 

하위렴(William B. Harrison, 1866. 9. 13~1928. 9. 22)은 의료, 교육, 복음 사역 등의 분야에서 전천후 사역을 할 만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선교사였다. 두동교회는 하위렴(해리슨) 선교사와 김정복 조사와 함께 신앙인들이 세웠다.

 

  © 리폼드뉴스


두동교회 ㄱ자 교회’ 1929년에 건축되었다(두동교회 100년사, 212-216, 218). 두동교회 100년사는 다음과 같이 ㄱ자 교회의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ㄱ자 두동교회 예배당의 구조는 동서 방향으로 4칸짜리 건물은 남자 석이고, 모서리에서 남북방향으로 3칸짜리 건물은 여자 석인데 남녀 좌석은 ㄱ자로 구분하여 남녀가 서로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유교의 예절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에 강단이 있고, 강단 크기는 4평이다. 그리고 강단 4평을 뺀 남녀가 앉을 수 있는 평수는 똑같다. 지붕은 홑처마에 우진각 형태로 처음부터 함석지붕을 하였다. (2003년 복원시 아연골 함석으로 교체하였다.) 예배당 안은 기둥이 없는 통 9칸 건물이며 남자석 마루 도리에 구주강생 일천구백이십구년 오월십사일 상오 십일시 반 견주(堅柱상양이라 먹으로 쓴 상량문이 보인다.

 

  © 리폼드뉴스


강단은 1단으로 강단 모서리 부분을 비스듬히 깎아 강단 방향을 남.여석 중간을 향하게 하였고, 강단 앞에 팔각기둥을 세워 거기서 건물 안쪽 모서리로 휘장을 쳐서 설교자는 휘장과 기둥을 보며 설교하도록 되어 있다.(초창기에만 휘장사용) 설교자는 남.여석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예배당 안의 남녀 성도들은 서로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동쪽과 북쪽의 남.여 출입문 외에 서쪽과 남쪽 벽면에 각기 남.여 인도자용 출입문이 있다. .여석 공간 크기가 같게 한 것이나 강단이나 남.여석 가운데를 향하게 배치한 것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두동교회 ㄱ자 예배당은 남녀를 구분하면서 남녀평등을 추구한 묘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ㄱ자 두동교회는 건축양식이 조선의 전통적인 기와집 형태의 내부와 똑같다. 내부는 석가래와 석가래 사이에 순수한 흙과 회를 섞어서 흰색으로 마감하였고, 내부는 온화하고 정결한 분위기이며 청결한 모습이다. 외부는 기와가 아닌 조선시대 초가지붕을 벗기고 함석을 덮은 모양의 가옥이며 초가에서 함석으로 근대로 넘어가는 분위기를 묘사해주고 있다. 전형적인 시골교회이며, 수도원적인 향기를 나타내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ㄱ자 교회는 두동교회 초대교인들 사이에 존폐문제가 대두되었으나 보존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오늘에까지 ㄱ자 교회를 보전할 수 있었다.

 

  © 리폼드뉴스


두동교회는 ㄱ자 구 예배당200246일 전라북도로부터 지방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받았다. 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들은 본 교회를 방문하여 ㄱ자 구 예배당건물을 자세하게 조사한 후 의견서를 종합하여 문화재로 인정하였다. 그 의견서에서 두동교회는 ㄱ자형 교회로서 한국의 토착성과 자율성을 강조하였으며 일종의 현지 자립형 선교라 할 수 있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통하여 기독교와 한국의 전통을 잘 살렸다라고 밝혔다.

 

익산 두동교회는 100주년 및 100년사 출판감사예배를 2023. 12. 9. 본 교회당에서 가진다. 두동교회 100년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전 총회역사우원장인 황기식 목사가 집필했다.

 

  © 리폼드뉴스


황기식 목사는 100년사에서 한국의 ㄱ자교회가 금산교회를 제외하고는 익산에 두동교회뿐입니다. 그래서 금산교회와 두동교회는 한국교회 보물입니다. 두동교회는 19299월에 ㄱ자교회를 세웠으나 그것은 한국교회가 세운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ㄱ자교회가 여러 사방에 세워져 있는 교회가 아니라, 금산과 익산 두 곳에만 ㄱ자교회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과 자료가 부족함에도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추가하여 두동교회 100년사를 쓰기로 하였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담임인 강동훈 목사는 100년사 발간사에서 "다행히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두동교회가 이제라도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게 됨을 무척 다행이라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편찬위원장인 김수배 장로는 "100년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현 두동교회 당회  © 리폼드뉴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