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회 분열사 1] 1950년대 세 번의 분열로 네 교단으로 정착

공적 기록물인 당회록, 노회록, 총회록이 역사의 객관적 근거자료

소재열 | 기사입력 2014/11/07 [10:30]

[한국장로교회 분열사 1] 1950년대 세 번의 분열로 네 교단으로 정착

공적 기록물인 당회록, 노회록, 총회록이 역사의 객관적 근거자료

소재열 | 입력 : 2014/11/07 [10:30]
▲ <역사와 교훈"에 대한 휘호는 고인이 되신 김의환 박사가 써 준 글이다    © 리폼드뉴스
 <역사와 교훈"에 대한 휘호는 고인이 되신 김의환 박사님이 써 준 글이다. 필자의 한국교회사 철박박사 논문의 지도교수님이시다. 한국교회, 그것도 장로교회는 왜 그토록 많은 교단으로 얼룩져 있는가? 한국 장로교회 분열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추적해 보면서 연합의 조건과 근거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추적해 보려고 한다. (판집부).
 
 
연대기로써의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기록이라는 의미와 함께 후세 사람들에게 그 사건을 보고한다(이야기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이처럼 과거의 사료(史料)들을 꿰어 맞춤으로써 정리되고 기록된 역사, 또는 사가(史家)들의 증언을 취사선택하여 역사책 속에 서술해 놓은 역사를 가리켜 콜링우드(Collingwood)는 ‘가위와 풀의 역사’(scissors and paste history)라고 비판한다.

역사의 개념들은 모두 어떤 사건을 목격했거나 경험했던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나 그들이 기록한 내용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거 인물들의 증언이나 주장들은 주관적일수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당대의 공적 기록물인 당회록, 노회록, 총회록은 적어도 과거 역사의 이야기를 할 때 객관적 근거자료가 될 것이다.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성경과 신학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주 원인으로 등장했다.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인식론과 해석의 문제는 초대 교회사부터 오랜 기간 진행되어 왔는데, 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비판과 논쟁이 있었다.어떤 학문이나 종교든 인식론적 해석의 차이가 생기면 끝없는 갈등과 논쟁,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돼 있다.

한국장로교회는 이러한 신학에 대한 인식론적 해석의 차이로 인한 논쟁과 투쟁이 있어왔고, 그 투쟁의 결과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의 준거(criterion)에 대한 변증적인 신학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이러한 변증적인 학문의 성과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통보수신학의 맥이 이어질 수 있었기에, 우리 합동교단은 이 맥을 계승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

선교 초기 한국에서 사역하였던 초대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은 보수적이었다. 보수신학의 성향을 지닌 선교사들의 영향에 의해 한국장로교회는 보수신학과 신앙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이 수립 되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 초기부터 해방 전후까지 보수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첨예한 대결도 있었다.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신학의 대결의 초점은 성경에 대한 해석의 문제였다

초기 선교사들이 공의회를 구성하여 한국교회를 지도 및 관리하였으며 1930년대 말 선교사들이 일제의 압정으로 한국을 떠날 때까지 보수신학의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장로교회는 급격하게 신학적인 혼란과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는 많은 고통을 겪게 됐다. 1942년 제31회 총회를 끝으로 일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해산하고 대신 “일본기독교장로교단”으로 한국교회를 지배했으며, 노회를 폐쇄하고 각 지역마다 노회대신 교구를 세웠다.

이러한 역사의 상황속에서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했고, 해방과 더불어 총회와 각지역의 노회를 복구하여 교회 재건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해방이후 약 10년 동안 세차례의 분열이 있었다.
 
1951년 고신측(“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Kosin)과 분열,
 
1953년 기장측(“한국기독교 장로회 총회”,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과 분열,
 
1959년 통합측(“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이 분열되었다.
 
이후 본 교단 합동측(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GAPCK: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이라는 네 교단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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