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회 분열사 3]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역사적 배경(2)

고신측과 분열에 대한 역사적 배경 두 번째로 신학교 문제를 들 수 있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14/11/15 [08:50]

[한국장로교회 분열사 3]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역사적 배경(2)

고신측과 분열에 대한 역사적 배경 두 번째로 신학교 문제를 들 수 있다

소재열 | 입력 : 2014/11/15 [08:50]

고신측과 분열에 대한 역사적 배경 두 번째로 신학교 문제를 들 수 있다. 박형룡 박사가 1947년 9월 14일에 부산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후 1948년 5월에 교장직을 사임하고 신앙동지회 회원들과 함께 1948년 6월 3일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고신측에서는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떠난 것이 분열의 원인이라고 말한다(고신측 제1회 회록, 1952, 5).

박형룡 박사의 사임은 반 고려신학교 결집, 이로 인해 고려신학교가 교권주의자들로부터 집단적인 공격을 받음은 물론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고려신학교 인사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신학자인 박형룡 박사도 수용하지 못하는 독선적 인물, 혹은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결과로 분열되었기에 분열의 책임은 박형룡 박사가 져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박형룡 박사의 고려신학교 교장 사임으로 인한 분열 책임론에 대해 철저히 고려신학교, 혹은 출옥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는 주관적 역사해석방법임에 틀림없다.

신학교 문제는 고신측의 분열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사설신학교와 장로회 직영신학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총회직영신학교를 거부한 사설신학교라면 총회와의 관계 속에서 역사를 평가할 이유가 없다. 그 이유는 사설신학교는 개인이 운영하는 신학교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설신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총회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하여 설명하며 역사를 해석하려고 할 때 사설신학교 측에서는 자신들의 유리한 입장에서 설명할 것이고, 총회 측에서는 한낱 분리주의자로 치부하고 말 것이다. 이 같은 두 긴장된 관점을 살펴보자.

한산동 목사와 박윤선 목사가 주축이 되어 1946년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했다. 고려신학교측에서는 만주 봉천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박형룡 박사를 모셔와 1947년 9월 14일에 교장으로 취임케 했다. 박형룡 박사는 부산고려신학교에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한상동 목사와 “박형룡 박사는 교장의 직을 수락하기 전에 한상동 목사와 더불어 신학교는 전국교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조건에 합의” 했으며, 이러한 합의를 보지 못하는 때에는 박 박사는 수도 서울에 장로회신학교를 따로 설립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박형룡 박사는 신학교가 총회의 인준을 받아 총회적인 신학교로 전국교회의 지원을 받는 학교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한상동 목사측에서는 “일제시대 배교하고 계명을 공적으로 범한 자들이 공적인 회개와 권징을 멸시하고 총회에서 교권만을 쥐고 행사하려는 상황에서 학교를 총회에 맡긴다는 것은 신학교를 통한 참된 교회재건의 이상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판단하여 자신들도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그 총회로부터 자신들의 신분을 보장받고 있는 그들은 고려신학교를 총회에 승인받기를 거절했다. 박 박사는 신학교가 총회의 인준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데다 고려신학교 측이 박형룡 박사에게 기존 교회와 총회와의 결별을 권고하게 되자, 그는 결국 고려신학교에서 마음이 멀어져갔다.

결국 박형룡 박사는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가 약 7개월 만인 1948년 5월 27일 고려신학교를 사임했다. 고신측은 그 사임은 분열로 이어졌고 따라서 분열의 책임을 다음과 같이 박형룡 박사에게 돌리지만 이는 그들의 주관적 아집에 불과하다.

첫째,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게 된 것은 고려신학교를 반대한 인사들이 박형룡 박사를 중심으로 뭉치는 결과를 가져왔기에 고려신학교가 교권주의자들로부터 집단적인 공격을 받는 책임은 고려신학교를 사임한 박형룡 박사가 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둘째,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와 결별함으로서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고려신학교 인사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신학자인 박형룡 박사도 수용하지 못하는 독선적 인물, 혹은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이 말은 박형룡 박사가 떠나지 않았으면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고려신학교 인사들은 독선적이라는 인상을 받지 않았을 터인데 박형룡 박사가 떠났기 때문에 박형룡 박사도 수용하지 못한 독선적인 인상과 질타를 받는 것은 순전히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고 떠난 박형룡 박사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셋째,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를 이탈한 것은 한국장로교회 보수 진영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박형룡 박사와 한상동 목사는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차이가 없었는데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를 떠나므로 보수신학과 신앙을 소유한 한상동 목사와 결별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한국장로교회 복음적 서클의 분열을 가져왔고, 이것은 한국교회 분열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결국 박형룡 박사가 분열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상과 같은 박형룡 박사의 고려신학교 교장 사임으로 인한 분열 책임론은 철저히 고려신학교, 혹은 출옥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는 주관적 역사해석방법임에 틀림없다. 박형룡 박사는 “신학교는 전국교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조건에 합의”가 이행되지 않자 계속 고려신학교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다. 고려측 인사들은 총회와 관련된 신학교를 거부했다. 이는 그 총회가 ‘사단의회’, ‘이교적 집단’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형룡 박사의 고려신학교 교장직 사임이 분열의 원인이라는 고려신학교 입장은 결코 인정할 수 없으며, 총회와 관련된 신학교, 즉 총회직영신학교에서 목회자 양성을 거부하고 사설신학교에서 목회자 양성을 원했던 고려신학교 측의 인식과 그 실천의 고집이 분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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