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직분에 대한 심판

본문 - 약 3:1

김종준 | 기사입력 2014/12/21 [22:44]

[설교] 직분에 대한 심판

본문 - 약 3:1

김종준 | 입력 : 2014/12/21 [22:44]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 담임)    ©리폼드뉴스
우리는 주일 낮 예배 시간을 통해 야고보서에 나타난 교훈으로 영의 양식을 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양적인 신앙보다 질적으로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숙한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으로써 우리를 구원 할 수 있지, 성숙하지 못한 병들고 죽은 신앙은 결코 우리를 구원 할 수 없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요지입니다.
 
1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숙한 신앙은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에 좌절하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여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신앙은 사회적인 삶과 신앙적인 삶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자기의 행동과 신앙이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이 성숙한 신앙이요, 삶이 없는 신앙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3장 1절에서는 선생이라는 직분 그리고 2~12절에서는 말의 영향력과 폐해에 대해서 13~18절에서는 참된 지혜에 대해서 충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1~2절에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직분에 대한 심판’이란 주제로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생을 랍비라고 하는데 랍비라는 말의 뜻은‘큰사람’ ‘위대한 사람’이란 의미로 교회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유대교도들은 랍비가 되는 것이 선망의 대상 이었습니다.
 
또 유대교도들은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부모와 랍비가 물에 빠져 죽어 갑니다. 한사람 밖에 구원 할 수 없을 때, 부모보다 랍비를 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교회지도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된 지도자들 때문에 초대교회 내에 많은 갈등과 문제가 빚어 졌습니다. 신성해야 될 교회 안에 파당이 생겨서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 등 파벌로 인한 세력다툼과 자리다툼이 일어나서 치고받고 싸우는 꼴사나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일어나는 모든 분쟁의 문제는 평신도들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같은 직분자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오늘 본문 1절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이 말씀은 교회 직분을 받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직분을 주시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전서 1:12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정해서 은혜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선생이 “직분 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직분에 대한 심판이 있으므로 직분을 감당하지 못할 바에야 안 받는 것이 낫다는 얘기 입니다. 고린도전서 4: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했습니다. 직분을 받은 자가 그 직분에 걸맞게 최선을 다해 충성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럴 바에야 직분을 받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교회직분을 받아 지도자 위치에 서 계신 분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모든 교우들은 성도라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직분을 주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 대해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한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한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맡은 것에 대해서 심판을 하십니다. 그 심판의 결과는 끔직합니다. 물론 그 직분에 걸맞게 책임을 다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습니다. 문제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바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받지를 말든가 받아 놓고는 그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심판의 결과 마25:30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했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끔찍합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처럼 직분에 대한 심판이 있으므로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눅 20:45~47에 보면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서기관은 당시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맡은 교회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직분자로 세우신 이유는 요한복음 13;13~15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말씀 하신 것처럼 선생, 지도자는 섬김의 본을 보이라고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높임과 대접을 받고 군림하는 자들은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선생이 될 바에야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 선생을 통해서 주신 말씀 앞에 우리의 모습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병들고 죽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즉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신앙생활을 누구보다 잘한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사데교회 교인들, 라오디게아교회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이미 병들어 죽고, 타성에 젖어서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에 빠져 있는데도 이 정도하면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이 그런 미성숙한 병든 죽은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급에 있는 직분자들에게 오늘 말씀은 경고합니다.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은 선생이 되지말라”이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살아있는 성숙한 신앙인지, 아니면 너무나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타성에 젖어 죽어 있는 신앙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위해서 자극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오해는 마십시요. 지난주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거창하게 장식하고 성가대가 몇 달 전 부터 준비해서 성대하게 찬양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추수감사헌금 현황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참여 하신 분들이 특히 직분자 들이 너무 형식적으로 참여 했다는 점입니다. 물질에 관계되는 얘기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여러분 스스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는가? 아니면 형식적으로 했는가 살펴보며 여러분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직분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 걸맞게 행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분명히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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