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북노회100년사 발행 역사적 의의

100년사 편찬의 역사적 의의는 총회 역사 속의 한 부분을 정리한 것

장영학 | 기사입력 2015/01/20 [17:53]

함북노회100년사 발행 역사적 의의

100년사 편찬의 역사적 의의는 총회 역사 속의 한 부분을 정리한 것

장영학 | 입력 : 2015/01/20 [17:53]
 
▲함북노회 100년사를 집필한 장영학 목사가 함북노회장으로 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다     © 리폼드뉴스

우리와 뿌리를 같이하는 통합총회의 무지역 노회인 함해노회, 평양노회, 평북노회는 2012년 노회 설립 100주년 행사와 100년사 출판을 하였다. 모두 노회 내의 역사위원회가 있고 장신대의 교회사 교수와 연세대 교수들에게 역사에 대한 자문과 고증 그리고 집필을 의뢰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합동총회 산하 황해노회, 평양노회, 평북노회, 평서노회, 안주노회를 비롯한 무지역노회 와 경북노회, 경남노회, 전북노회, 전남노회, 경기노회, 충청노회 등은 노회 설립 100주년를 기념하는 일을 전혀 생각지 않고 역사 편찬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장영학 목사     © 리폼드뉴스
이중 많은 노회들은 나름대로 역사 편찬을 하였다. 황해노회100회사(1971년), 경기노회100회지(1973년), 부산노회100회사(1975년), 동평양노회사(2003년), 서평양노회사(2005년), 안주노회사(2003년), 평서노회사(1998년) 함남노회100회사(1996년) 등이다.

2012년 가을 노회시 경북노회 정기 노회시에 개회를 선언하고 한 시간 세미나를 실시하였다. 세미나 내용은 ‘경북노회의 정통성과 역사성’(장영학목사 강의)으로 2012년이 노회 설립 백주년이 된다는 논지의 강의였다. 1917년 경상노회에서 경북노회와 경남노회로 분립하면서 경북노회가 시작하였지만 노회의 역사는 경상노회의 역사의 연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립을 허락한 제5회 총회(1916년)는 경상노회의 문부를 관리와 보관하는 노회를 결정하고 역사의 연계를 의미하는 결의와 함께 분립을 허락하였다.

문부란 문서와 장부를 의미한다. 즉 경상노회의 역사적인 문서와 회록의 연계성을 선교부 활동과 교회 설립이 먼저 시작된 지역의 노회가 가지도록 하였으며 장부는 재산과 재정을 나누는 일로 재정은 당시 형편에 따라 나누도록 결의도 하였다.

“정치위원보고(제5회 총회록(1916년) 39쪽)
경상노회에서 헌의한 노회 분립사건은 허락하는 것이 좋은 줄로 아오며 허락하시며 그 명칭은 경북노회 경남노회라 칭하며 그 노회를 조직할 임시회장은 경북에 홍승한 경남에 왕길지씨로 정하고 조직할 일자와 처소는 각기 임시 회장이 광고케 하오며 그 재산은 경북에 5분지 3, 경남에 5분지 2 나누게 함이 가하오며”


경북노회의 이름의 역사는 1917년이지만 경북노회는 1912년 제1회 경상남북도 노회를 역사의 시작으로 잡고서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함북노회도 마찬가지이다. 제6회 총회(1917년)에서 분립 허락을 받고 1917년 11월 20일 간도용정교회에서 노회를 시작하였다.

▲함북노회 100년사 표지     ©리폼드뉴스
당시 총회 정치부 보고서를 보면
* 정치부장 마포삼열 씨가 여자히 보고하니 채용하기로 하였으니
1. 함경노회 분립 신청에 대하여는 남북이 분계하여 성진으로 원산까지는 함남노회라 칭하고 경성 부령 무산 회령 온성 종성 경원과 북간도는 함북노회라 칭하되 다만 해삼위 지역은 함남노회에 부속될 일.
2. 함남노회 조직회장은 이두섭씨로, 함북노회 조직회장은 부두일씨로 지정 하여 그 노회의 회집할 위치와 일자는 두 곳 회장의 지정대로 시행할 것
3. 함경 남, 북노회의 분할할 때에 재정은 반분하고 문부는 함남노회에 전부할 일


이처럼 함북노회는 함남노회와 역사를 함께하면서 문부의 원본은 함남노회가 가지고 사본은 함북노회가 소장하며 역사의 연계성을 이어왔다.

함북노회는 1898년 9월에 내한한 캐나다 선교사인 그리어슨(R. Grienson,구례선.具禮善) 의사 부부와 푸트(W. R. Foot,부두일.富斗一) 목사 부부 그리고 맥레(D.M. Mcrae,마구례.馬具禮) 목사들이 함경도에서 처음부터 사역하였으며 노회 분립 후에도 함북 노회의 성진과 함흥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선교활동을 계속이어 나갔다.

이런 함북노회는 1921년 간도노회를 분립하였고 1922년 시베리아노회를 분립하였으며 1925년에 함중노회를 분립하였다. 이런 함북노회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버티다가 1942년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 해방이후 1945년 다시 함북노회를 재건하였으나 공산당에 의해 강제 해산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월남한 마지막 함북노회 임원 중 문준희목사와 유성원목사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다가 1976년에 완전히 복원되어 총회에 정식 가입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함북노회 100년의 역사 중에는 일제말기 1942년에서 1945년까지 3년의 암흑기가 있었지만 노회내 교회들은 여전히 유지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5년 동안 10회의 노회를 했으나 또다시 공산당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남한에서 월남한 함북노회 목회자들에 의해 재건한 것이다.

함북노회100년사는 해방 이전 함경북도의 3개시 11군의 72개의 교회들의 존재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으며 앞으로 통일시대에 교회 재건의 근거로 남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의 역사는 사도행전의 후편을 이어가는 성령의 역사이므로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역사 의식을 가진 신앙인의 본문이다.

함북노회100년사 편찬의 역사적 의의는 총회 역사 속의 한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며 정확히 역사의 연계성도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총회내 무지역 서북노회들의 뿌리를 확인하는 의미도 있다. 특히 함북노회의 뿌리인 카나다 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순교적인 사역을 총회와 노회가 기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하는 것이다.
 
또 총회내 지역 노회의 역사적 기원과 내용을 정확히 알고 역사들을 정리하는 일을 위해 총회 역사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조직하고 총회 역사자료실을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총회와 노회 그리고 교회와 산하 모든 기관들의 기록물을 보존 및 관리와 역사 편찬을 총회가 지도 감독해야 할 것이다. 사실 총회 내의 순교자 관리와 역사적 유적지 지정과 관리도 필요한 것이다. 
 
장 영 학 목사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장, 함북노회100년사 집필, 총회100주년사 집필) 
 
▲함북노회 100년사 감사예배를 드린 후 노회 관계자들의 기념     © 리폼드뉴스

 
     함경도지역 교회 재건을 바라며 (함북노회100년사 저자 서문)


함북노회는 1911년에 시작된 함경노회의 역사를 간직한 노회이다. 1898년에 내한한 캐나다장로교회 선교사들인 부두일, 구례선, 맥레선교사가 들어와사 먼저 사역하는 북장로교회 선교사와 호주장로교회 선교사들과 협의하여 함경남북도 지역은 선교구역으로 할당받고 본격적인 1899년부터 사역하면서 교회 설립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 지역에는 이미 캐나다에서 파송된 평신도 선교사인 게일이 1891년부터 원산에서 사역하면서 1893년 원산광석동교회를 설립하였고 1896년에는 함흥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이후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1901년 성진욱정교회가 세워졌다. 이후4교회가 더 세워져서 한국장로교회 선교사 공의회가 조직될 때는 모두 7교회였다.

이후 1907년에 한국인 목사 7인을 장립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조직하면서 함경도교회들은 함경대리회의 치리기구를 조직하였다.이때 함경도지역의 교회는 19교회였으며 함북은 5개, 함남은 8개, 만주에 6개 였다. 1912년 함경노회가 조직될 때에는 교회가 155개였으며 이중에 단독 예배당을 가진 교회가 130개교회였다.
 
이중 장로가 16명으로 조직교회가 16개 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발전헤 가는 함경노회는 1917년 함북노회와 함남노회가 분립하였으며 1921년에는 함북노회에서 간도노회가 분립해 나갔고 이어서 1925년에는 함중노회가 분립하였다. 그럼에 함북노회는 꾸준히 발전하여 1927년 당시 39개교회의 13개의 조직교회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의해 교회 탄압과 신사참배 강요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노회가 어려움을 당하였으며 급기야 1942년에 선교사들이 철수하는 어려움이 찾아왔다. 이때부터 한국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노회를 이끌어가다가 일제에 의해 1944년 노회가 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노회와 교회 재건을 꿈꾸었지만 북한에 상주한 소련군과 북한공산당에 위해 핍박을 받으면서 노회를 겨우 명맥을 유지했으나 거의 기록을 찾을 수 없고 6.25전쟁으로 월남한 함북노회의 임원인 유성원목사에 의해 노회 재건을 시도하여 남부총회에 옵서버로 참가하면 명분만을 지키고 있다가 1976년 유성원목사 자택에서 여용덕목사와 함북노회 복구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노회를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노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일부회원들이 이탈하여 함중노회와 함중노회를 구성하여 총회에 가입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노회원들은 더욱 합심 협력하여 노회 발전을 헌신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2011년 제118회 노회에서 역사 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전문가에게 집필을 의뢰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한국장로교회에 함북노회는 예장합동총회만 있다. 통합총회는 함해노회에 함경도교회의 역사를 수록하였지만 대체로 함남노회 역사의 일부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최초 함북노회의 역사를 기록함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르게 되었다. 함경노회록과 함북노회록이 일부만 전해지고 있고 총회 보고에 함북노회 보고는 노회사를 기록하는데 필요한 개교회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없이 부족하였다.
 
그렇지만 이번 노회사 편찬을 기하여 해방이전 함북노회 선교사들과 역대노회장들의 사진들을 거의 구하였고 해방 이전 함북노회 산하 교회들의 현황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 북한에 남아있을 회의록과 교회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거나 해방이 된다면 더욱 노회사가 풍성해지라고 생각하며 함북노회 100년사 발간의 의미를 가져본다.

함북노회100년사는 함경노회의 시작과 함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함경노회 내의 함북대리회는 독립적 치리회의 기능을 가진 소노회롤 출발하였기에 충분히 노회의 역사적 기록을 간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집필자: 장영학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장)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한국장로교회 역사이야기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