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회 총회 기념행사,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15년은 제104회 총회, 그러나 100회 총회일 수밖에 없는 아픔

소재열 | 기사입력 2015/02/02 [01:33]

제100회 총회 기념행사,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15년은 제104회 총회, 그러나 100회 총회일 수밖에 없는 아픔

소재열 | 입력 : 2015/02/02 [01:33]
▲ 1912년 총회설립 이후 2015년은 제104회 총회여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제100회 총회로 모일 수밖에 없는 총회의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을 축하겠다고 제100회 총회 기념식을 거창하게 진행하겠다는 것은 역시의식의 부재이다.    ⓒ 리폼드뉴스
 
일제는「조선예수교 장로회 제31회 총회」(1942)를 끝으로 강제 해산시키고, 대신 1943년 5월「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을 조직하였고 각 지역은 교구제도를 두었다. 해방직전인 1945년 7월 19-20일에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기타 군소교단이 통합되어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을 조직하였다.
 
해방 후 총회는 1945년 9월 8일「일본기독교조선교단」을 해산하고 남한 중심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회 성격인「남부대회」를 소집하였다. 대회가 개회되자 감리교 대표들은 감리교를 재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퇴장하였고 장로교 역시 본래의 교파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자동으로 남부연합회의 성격인「南部大會」는 실패로 돌아갔다.
 
1946년 6월 11-14일 남한의 노회 대표들이 참석하여 일제가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해산시키고 만든「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을 해산하고「남부총회」(제1회)라는 이름으로 서울 승동교회에서 개회하였다.
 
1946년 봄에 장로교 각 노회가 다시 복구되고 1946년 6월 11일에는 서울에서 총회가 소집되었다. 이 총회는 남한만의 총회이기 때문에 「남부총회」(南部總會)라고 하였다. 이 때 결의된 것은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교회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것과 제27회 총회에서 가결된 신사참배 문제는 죄악된 것이므로 취소하였다. 1946년「남부총회」를 1942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제31회 총회」를 이은 「조선예수교 장로회 제32회 총회」로 결정하였다.
 
제2회 남부총회가 1947년 4월18-22일에 대구제일교회에서 소집되었다. 제2회 남부총회는 제33회 총회로 개회 할 것을 결정하였다.  
 
제36회 총회(총회장 권연호)가 1950년 4월 21일 대구제일교회에서 회집되었다. 총회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신학교 문제였다. 임원 개선도 하지 못한 총회는 비상정회를 하고 말았다. 속회 총회는 1950년 9월 1일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하여 정한 날짜에 속회하지 못하고 다음해인 1951년 5월 25일에 제36회 총회가 부산중앙교회에서 모였다.
 
일제에 의해 1943년, 1944년, 1945년 은 총회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총회로 모이지 못했으며, 1950년 제36회 총회가 비상정회하여 그 해에 모이지 못하다가 1951년에 소집되었으므로 1950년 1951년을 제36회 표기한다.
 
결국 4회가 빠진다. 2015년 총회는 제104회여야 하지만 제100회인 셈이다.
 
제99회기 임원회에서 제100회 총회 기념 행사를 거창하게 진행할 모양이다. 지난 2012, 2013년에 우리는 총회설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 제100회 기념행사를 하겠다고 한다. 제100회 총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1912년 총회설립 이후 2015년은 제104회 총회여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제100회 총회로 모일 수밖에 없는 총회의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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