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박스터의 “보편속죄론”에 관한 고찰

윤종훈 박사, 총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김순정 | 기사입력 2015/02/02 [09:03]

리차드 박스터의 “보편속죄론”에 관한 고찰

윤종훈 박사, 총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김순정 | 입력 : 2015/02/02 [09:03]


기독교서점에서 우리는 리차드 박스터의 저작을 자주 접하게 된다. 독자들은 그가 청교도 신학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칼빈주의자, 개혁주의자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속죄론에서는 정통칼빈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속죄론은 보편속죄론이었다. 이 논문은 보편속죄론을 주장한 리차드 박스터의 사상에 대해서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비평한 논문이다. 윤종훈 박사는 총신대학교와 일반대학원에서 역사신학을 교수하고 있으며, 이 글은 개혁논총에 기고한 논문이다.


1 문제제기

리차드 박스터는 후기 청교도의 거장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존 오웬과의 신학적 갈등 및 논쟁을 이끌어 왔던 당대 논쟁의 주역이었다. 그의 속죄론은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을 위시한 대륙의 신학자들의 영향권 속에서 형성되었다. 박스터는 당대 사회경제적 분위기와 신학적 성향에 걸맞게 하나님의 은혜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능력을 수용함과 동시에 당시 횡횡하던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에 맞서 싸우면서 값싼 은총론(Cheap Grace)의 부당함과 범사회적 적폐를 도려내기 위한 신학적 작업을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박스터는 당대 청교도 신학을 대표하였던 존 오웬과 칭의론 논쟁을 통하여 오웬을 율법폐기론자로 규정하고 매우 심도있는 논쟁을 가속화 하였다. 특히 그는 오웬의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1647)작품에 대한 반박서로서 “Aphorisms of Justification”(1649)을 출간함으로 양자의 칭의론 및 속죄론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게 되었다. 두 인물의 논쟁에 핵심적인 배경에는 박스터의 보편속죄론과 오웬의 제한속죄론에 대한 갈등이 놓여 있었다.
 
비록 칼빈주의 신학을 존중하는 박스터였지만, 속죄론의 배경과 요지 및 범위에 나타난 그의 신학적 입장은 오웬을 위시한 당대 청교도 운동의 핵심세력과 상당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후기 청교도 신학의 두 축을 형성하였던 박스터와 오웬의 갈등의 최정점이었던 칭의론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는 박스터의 속죄론을 고찰하는 작업은 양자 간의 차이점을 명확히 규정하는데 매우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청교도 신학자들 가운데 리차드 박스터의 신학사상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초기 한국교회에 소개된 청교도 인물 및 운동에 대한 주역으로 등장하였던 리차드 박스터는 청교도신학의 완성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존 오웬보다 먼저 소개된 인물이었다. 박스터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그의 작품인 “참 목자상”(The Reformed Pastor)이 번역 출판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의 작품을 접하고 진정한 목회자로서의 사명과 열정에 대한 충격과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 있어서 박스터는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었으며 장로교주의의 대변인처럼 인정받았다. 그러나 작품 속에 보여지는 박스터의 신학 사상은 청교도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신학들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본 논문은 박스터의 칭의론 배경이 되는 속죄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박스터의 작품이 너무 방대하다보니 짧은 지면에 그의 속죄론을 구체적으로 다루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그의 원작품들(Primary Sources)에 나타난 내용 및 특징들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려고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리차드 박스터의 속죄론 형성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인물들을 스케치하고 박스터 속죄론의 신학적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속죄론의 효과 등에 대하여 평가하는 작업이다. 박스터의 속죄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은 매우 소중하다. 왜냐하면 박스터의 속죄론은 후기 청교도 칭의론에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박스터의 속죄론은 이신칭의론에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곧 신앙과 칭의라는 거대한 두 주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2 리차드 박스터 속죄론의 사상적 배경 및 논쟁

박스터는 존 오웬과는 달리 소년시절부터 정식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준비되지 못한 목회자의 지도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의 신학 작업은 공식적인 기관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인연구와 자기 성찰 및 관리를 통해 형성되었다. 1638년 앙글리칸의 예배모범에 정식으로 사인을 하고 목회자로 안수받은 박스터는 1640년 “교회법 선서”(The Canons of 1640 and the Et Cetera Oath)에 대한 요구는 자신의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서약이므로 여기에 사인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서 앙글리칸을 떠나 비국교도의 목회자가 되었다.

한동안 키더민스터(Kidderminster)에서 목회사역을 담당한 박스터는 1662년 찰스 2세(Charles II)의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 선포로 인하여 이미 비국교도 신분으로서는 더 이상 목회사역이 허락되지 않아 목회지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1685년까지 온갖 협박과 감옥 수감생활을 하였고 잠시 석방되었다가 18개월 동안 다시 감옥에 끌려가는 고난의 삶을 보냈다. 다행히 윌리암과 메리(William & Mary)가 1689년 “관용령”(Toleration Act of 1689)을 선포함으로서 목회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삶의 여정은 그의 신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는 배경이 되었다. 박스터의 시대적 배경과 교육과정은 박스터로 하여금 독립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신학적 독창적인 절충주의(Maverick Eclecticism)를 추구하게 하였고 죽음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회복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죽어가는 자가 지금 죽어가는 자에게 마지막으로 외치는 소리”로서의 설교자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특히 그는 장로교 목사로서 개혁주의 신학을 존중함과 동시에 독립파 회중주의의 신학적 입장을 수용하면서 앙글리칸 신학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검토함으로서 극단주의(Extremism)적인 신학적 작업을 지양하고 조화와 일치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절충주의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스터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266-1308), 오캄의 윌리암(William of Ockham, 1300-1360)과 이들의 사상을 존중하였던 신학자들로부터 많은 신학적 영감과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화란 도르트 신조(Synods of Dort, 1618-1619)와 영국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Westminster Assembly, 1646)에 대하여 평가하길, “사도시대 이래로 이보다 더 뛰어난 신학적 작품은 가진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매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비록 이 두 문서에 제시된 교리문답의 일부와 장로교 교회정치에 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받아드렸다.
 
박스터는 칼빈주의자들과 다소 갈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박스터 자신을 칼빈주의자로 지칭하기 보다는 오히려 “온건한 중립적인 비국교도”(Non-aligned Moderate Nonconformist)의 신분을 유지하길 원하였다. 박스터는 1675년 자신의 작품인 “Richard Baxter’s Catholic Theology”을 통하여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가 서로 화해해야 함을 역설하였는데, 그의 입장에서 본 양자 간의 신학적 특징은 성경적 진리에 대한 본질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용어의 용도에 대한 다른 견해 차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케블(N. H. Keeeble)에 의하면 박스터의 신학은 리차드 십스(Richard Sibbes)와 제임스 어셔(James Ussher)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특히 그는 십스를 통하여 구원은 선택의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조건적으로 얻어지게 된다고 확신하였으며, 제임스 어셔를 방문하여 신학적 토론한 결과 신학의 극단성을 극복하고 신학적 다양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연합과 일치의 회복의 중요함을 배우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그의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학자는 다름 아닌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였다. 박스터는 자신의 작품인 “변호되는 성경적 복음”(the Scripture Gospel Defended, 1690)을 통하여 연합론의 필요성을 인각하게 되었음을 고백하였다.

박스터는 스코틀란드 글라스고우 출신인 존 카메론(John Cameron, 1579-1623)과 프랑스 소뮈르 학파(French School of Saumur)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박스터는 이들의 가르침에 의해 칼빈주의 이중예정론과 제한속죄론을 거부하였다. 대신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민을 위해 십자가에서 실질적으로 죽게 되었다’라는 “가설적 보편주의”(Hypothetical Universalism)를 주장하였다. 박스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결정이 먼저 있었으며, 이는 선택자들 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존 오웬과 속죄론 논쟁을 벌였던 박스터는 Thomas Blake(1597-1657)와 계속적인 논쟁을 벌였다. 장로교 목사이자 Kidderminster에서 불과 50킬로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사역하던 블레이크는 자신의 작품인 “Vindiciae foederis”(1653) 을 통하여 박스터의 “Aphorismes”(1649) 작품에 제시된 보편속죄론에 대하여 매우 심도있게 비판하였다. Cornwall의 교구목사였던 George Kendall(1610-1663)은 1653년 자신의 작품인 “Qeokratia: Or, A Vindication of the Doctrine Commonly Received in the Reformed Churched Concerning Gods Intentions Of special Grace and Favour to his Elect in the Death of Christ”을 통하여 당시 런던 독립파교회 목사였던 John Goodwin의 작품인 “Redemption Redeemed”(1651)에서 강조된 ‘보편구원론’에 대한 성경적 비판을 강하게 제기하였고 긋윈의 신학에 편승된 리차드 박스터의 작품을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Thomas Barlow(1607-1691)도 켄달과 함께 박스터의 주장, 즉 일반은총과 특별은 총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밖에 존재치 않음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품고 박스터의 신학을 논박하였다. 박스터는 Lewis Du Moulin의 작품인 “De fidei partibus in justiicatione Dissertatio”(1563)을 통하여 또 다시 신학적 반박을 당하게 되었다. 이 책은 박스터가 강조하는 사람의 믿음 즉 신앙이 칭의의 원인이며 우선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박스터의 속죄론의 논쟁자는 William Eyre였다. Eyre는 1650년에 자신이 목회하던 Salisbury의 St. Thomas 교회에서 가르치길, 신앙 즉 믿음은 새언약의 축복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였다. 1652년 Hampshire에서 목회하던 Thomas Warren(1617-1694)은 Salisbury에서 강의하면서 칭의에 선행되는 믿음은 건전치 못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Twisse의 계승자인 Benzamin Woodbridge (1622-1684)는 Salisbury에 와서 설교하길, 신앙은 칭의에 선행한다는 박스터의 주장을 옹호하였으며, 그 내용을 “Justification by Faith: Or, A Confutation Of that Antinomian Error, That Justification is before Faith”(1652)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박스터는 적극적으로 Woodbridge의 설교를 칭찬하였으나, Eyre는 매우 분노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두 사람은 논쟁의 대열에 가담하게 되었다.

또한 박스터의 속죄론은 Hampshire의 비국교도였던 John Crandon(1654)의 강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크란돈은 1654년 마지막 생애를 맞이하여 “Mr. Baxters Aphorisms Exorized and Anthorized”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칭의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증하였으며 교황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 그리고 박스터는 단지 인간의 행위와 의에 기초하여 신학을 구사하고 있음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1655년 Thomas Hotchkis(1611-93)가 “An Exercitation to the common Protestant distinction between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를 출간하였는데, 그는 이 책을 통해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사상을 비판하며 William Twisse의 칭의론과 속죄론을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그러자 당시 히브리어 학자였던 William Robertson(1686)은 자신의 작품인 “An Admonitory Epistle unto Mr Rich. Baxter, and Mr Tho. Hotchkis”를 1655년에 출판하면서 호치키스를 비롯하여 박스터 및 박스터 추종자들은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칭의론과 속죄론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하였다.
 
1657년 Hampshire의 교구목사인 John Warner는 “Diatriba fidei justificantis, qua justificantis”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복음적인 의로움의 절대적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칭의를 가져다주는 칭의의 주체는 그리스도이며 그 분은 죄인에 대한 구세주(Savior)이자 주인(Lord)이라기보다는 오직 구세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Faith)에 근거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즉, 그는 그리스도 자신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믿음에 더욱 강조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학보다는 박스터의 정치적 성향 즉, 믿음을 통한 삶의 중요성을 겨냥한 의도로 보인다.

3 리차드 박스터의 보편 속죄론 요지

박스터의 속죄론은 상기한 바처럼 그의 생애의 시대적 배경과 자신의 신앙관 및 사상에 근거하여 발전되었으며 특히 여러 제 학자들의 영향권 속에서 자신 만의 독특한 속죄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의 속죄론은 그의 사후 출판된 작품인 “Universal Redemption of Mankind by the Lord Jesus Christ”(1694)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속죄론의 의미와 본질 그리고 요지와 범위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박스터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속죄를 이루시는 의도와 목적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음을 피력하였다. 그 원인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질의 세계에 대하여 너무 무지하며 동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의 전체 윤곽을 사람들에게 자세히 계시하길 원치 않으셨으며 사람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스터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계시하고자 하시는 의도를 성경을 통하여 계시하셨으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모든 만사는 하나님 자신을 기쁘게 하시기 위함이며 이를 통하여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임을 주장하였다. 즉, 하나님은 또 다른 두 번째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을 통하여 사람의 구원의 열매와 완전한 만족을 실현시킴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도는 계시를 통하여 자신이 누구신가를 선포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완전한 만족을 구현하신 사역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의도였던 것이다.

리차드 박스터의 속죄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 자신의 감추어진 의도와 드러난 계획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는 하나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함과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경륜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서 영원 전부터 절대적으로 어떤 선택된 개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할 믿음을 주시되, 죄용서와 칭의와 생명을 주셨다.

이처럼 박스터는 하나님의 선택은 선택된 자들의 믿음의 통찰력에 근거한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조건이나 어떤 원인과 무관한 선천적인 것에 의한 결과였음을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내어주심으로 이 일을 이루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충분한 만족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로서 선택받은 자들이 구원 얻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무오류하게 절대적인 믿음을 주셨다.
 
“믿음을 주셨다”는 의미는 구원이 단지 의롭다고 여겨져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 그 자체를 통해 구원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기한 박스터의 속죄론의 요지는 일부에서는 칼빈주의의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그가 강조한 바처럼, 하나님의 속죄에 대한 의도 및 요지에 대해서 아무리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하나님의 속죄 경륜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은 매우 개혁주의적인 분석이다. 성경 곳곳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인생과 다르며 그분의 생각은 인간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죄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께서 속죄의 의도와 목적에 관하여 계시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다고 강조한 박스터의 주장도 매우 성경적이다.

가령, 고전 1:2-21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스터가 강조한 바처럼, 하나님의 속죄에 궁극적인 의도와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기쁘시게 함(엡 1:11;15)과 동시에 그 분의 영광을 위함(딤후 1:9)이라고 주장한 내용도 매우 성경적이다. 특히 엡 1: 3-6은 이를 지지해주고 있다. 박스터가 지적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무조건적 선택설은 딤후 1:9과 엡 1:4을 통하여 성경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인간의 선 조건이나 예지예정을 거부한 점도 롬 9:15-24와 출33:19, 마 11:25-27의 지지를 받고 있다.

4 리차드 박스터의 보편 속죄론 필요성

박스터는 속죄론의 필요성을 하나님의 정의와 죄에 대한 증오에서 찾았다. 하나님은 율법 수여자로서 자신이 제정하신 율법을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하셨으나 사람들이 이를 준수하지 못함으로 죄악에 처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율법을 위반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이기적인 경향을 추구하였다. 죄악에 처한 인간은 스스로 힘으로서는 결코 무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비록 인간은 하나님의 “본래적인 의”(Original Righteousness) 안에서 하나님 형상에 따라 창조되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였으나 인류의 최초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 사랑에서 자기 자신의 사랑으로 변질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지워졌으며 그의 본성은 부패되고 변질되었다. 타락이후 인간은 스스로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성을 추구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이처럼 박스터는 본래적인 의와 하나님의 형상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이는 William Dyrness의 주장과 상통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도덕적 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게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도덕적 의를 추구하지만 이는 단순한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박스터가 주장하는 바처럼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지워진 것(Blotted Out) 이라기보다는 몸과 영혼이 완전히 오염되어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죄악으로 인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원래적 의와 하나님과의 교제 면에서 타락하였다. 그 결과 죄안에서 죽었으며 그들의 몸과 영혼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오염되었다.”

도날드 거스리(Donald Guthrie)는 박스터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고 지워졌다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죄악의 세상으로의 유입은 형상(하나님의 도덕적 성향)이 망치는 결과(Resulted in the spoiling of the image)에 기인한다. 따라서 구원 계획안에서 형상의 회복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에 순응함으로서 실현된다. 바울은 본래적인 형상(the original image)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가령, 롬 8:29)에 주목해야한다. 만일 사람이 아직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이라면 그의 본래 모습 속에서 구별된 일부 표지가 보여야 한다. 참으로 사람이 도덕적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비록 사람 자신이 도덕적 본질이 부패되었지만 다른 피조물과는 분리시킨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을 입었으나(Defaced) 아주 파괴되거나 지워지지 않았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가령, 약 3:9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해선 안 됨을 선언하고 있으며, 고전 11:7에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라고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유효함을 제시해주고 있다. 박스터는 주장하길,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머리이자 아버지”로서 아담은 첫 죄악을 저지른 자가 되었으며, 그의 죄성은 선물이나 증여적 수단이 아니라 전가 또는 자연적 기원적 수단으로서 아담의 후손인 우리에게 전수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온 인류가 아담의 씨앗으로 그를 통하여 전수된 우리의 죄를 “징벌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처형”(Positive Execution of Vindictive Justice)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매우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박스터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온 인류가 죄악의 상태에 처해있음을 지적하였고, 아담의 죄악뿐만 아니라 가까운 우리 선조들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죄성의 씨앗이 우리가운데 전수되었음을 주장하였다.

박스터는 아담과 선조들의 죄악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죄악을 지적하였다. 죄악이 온 세계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온 나라와 모든 세대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법적으로 모두 죄인들이다. 이들의 죄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죄를 범한 사실에 대한 죄책감으로서, 혈통적으로 아담의 죄에 참여한 죄 또는 개인적으로 실제로 범한 죄를 의미한다. 둘째로, 죄의 실책에 의한 죄책감으로서, 개인적으로 엄밀히 죄의 사실로 드러난 결과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책망을 받을 만한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죄악은 형벌에 대한 의무로서, 죄의 실책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옥형벌을 받는 죽음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박스터는 죄의 세 가지 면을 나눌 뿐만 아니라 세 가지 죄의 유형을 구분하였다. 첫째 유형은 우리 자신의 실제적인 죄의 유형으로서, 이는 우리 자신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죄인의 본질에 근거하여 실제적인 범죄한 것을 말한다. 둘째 유형은 우리 선조들의 죄악에 혈통적으로 참여한 죄악의 유형으로서, 우리가 혈통적으로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함께 동참함으로서 이들의 죄악이 바로 우리의 죄악이 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유형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죄악에 연합 또는 참여함으로서 빚어진 죄악이다. 즉, 내가 속한 공동체의 죄악이 곧 내 죄악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박스터는 인간의 죄악은 아담과 선조 그리고 현재 인간의 죄악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박스터의 죄에 대한 세 가지 구분법 및 유형론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령, 둘째 유형으로서 조상들의 죄악이 곧 나의 죄악으로 동일시하는 현상은 성경적 가르침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한 바처럼 내 자신의 죄악은 나에게 책임이 돌아가지만, 부모 또는 조상들의 죄악은 그 부모나 조상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내가 직접 그 죄성을 담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18: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또한 세 번째 유형인 “공동체 죄성”은 오늘날 현대사회에 특징인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구조 속에서 이를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타당하지 못한 적용으로 보인다. 물론, 하나님이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성결과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적 책임을 부여한 점은 인정되지만, 이러한 유비론적 해석에 근거하여 오늘날에도 개인의 죄악을 공동체로 귀결시키는 해석은 성경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조건적 율법을 제공하시고 이에 근거하여 다루시며 자비를 베푸시지만 하나님 자신의 법에 근거하여 심판을 자행하신다.

5 리차드 박스터의 보편 속죄론 범위

제임스 파커가 잘 지적한 바처럼, 17세기 잉글란드 청교도 속죄론의 핵심을 제공하였던 존 오웬의 “제한 속죄론”(Limited Atonement)은 철저한 성경적인 논증과 입증과정을 통해 형성된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명제였다. 당대 인물들 가운데 오웬의 제한속제론에 대한 제동을 걸 수 있는 신학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자는 다름 아닌 리차드 박스터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인 “Universal Redemption”을 통하여 오웬의 작품인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을 반박함으로서 이론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은 사후에 출간됨으로 세상에 늦게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를 통하여 잉글란드에 새로운 속죄론의 논쟁의 물꼬를 트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웬과 박스터의 속죄론의 결정적인 차이는 속죄의 범위 즉, 제한속죄(the Limited Atonement)와 보편속죄(the Universal Atonement)에 있었다. 오웬은 개혁주의 노선에 따라 존 칼빈의 제한 속죄론을 지지하며 이를 성경적으로 논증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모든 만민을 속죄하기에 충분한 상태이었지만 만민을 위함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선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의 사역을 완성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보편속죄를 주장하는 박스터는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는 구절을 근거로 자신의 속죄론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오웬은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용어는 ‘인간들 개개인’(singula generum)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직 ‘일부의 모든 사람들’(genera singulorum)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박스터의 신학은 매우 정치적인 방법론(Political Methodology)을 구사하고 있음을 고찰할 수 있다. 그는 성경신학의 핵심으로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로 규정하면서 신학의 핵심은 모든 인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군주적인 왕국(regnum Dei)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17세기 잉글란드 정치사상에 입각하여 성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즉, 하나님은 왕이시며 우리는 그의 예속된 종이며 복음은 하나님의 법적 율례(Legal Code)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을 율법을 통한 입법자(Legislator)로서의 통치자(Rector)인 면과 절대적 주인(Dominus Absolutus)관계를 구별해야함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정치적 통치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자신의 율법을 주시는 통치자로서의 그리스도와 자신의 율법과 언약에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순전한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수여자(Benefactor)이자 절대 소유주(Absolute Proprietary)를 구분해야 하며, 사건과 사건의 본질 즉, 인간 행동의 책임론과 이에 따르는 통치자 하나님의 정치적 치리를 강조하였다.

게다가 박스터는 자연과학(Physick)과 윤리학(Ethick)을 구별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핵심주제인 ‘자연적 존재’에 관한 하나님의 의지와 윤리학의 핵심주제인 ‘인간의 의무’에 관한 하나님의 의지를 철저하게 구별함으로서 윤리적으로 책임있는 존재로서의 신자와 하나님의 통치적 심판을 강조한 것이다. 박스터는 이러한 이중구조적인 분명한 구별은 박스터 자신의 정치신학적인 성경 해석의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박스터는 하나님의 의지를 두 개로 구분하였는데, 첫째는 “Gods Will de Debito”로서, 믿음의 무소불위 기증자(Absolute Donor of Faith)로서 하나님의 사역과 의지를 의미하며, 이는 입법자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를 의미한다. 둘째로는 “Gods Will de Rerum Eventu”로서, 절대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의지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사법적 법집행을 수행하는 의지와 행위를 의미한다. 이처럼 박스터는 하나님을 통치자(Rector)로서 입법적인 사역을 수행하시는 분임과 동시에 절대적인 주인(Dominus Absolutus)으로서 입법에 입각한 사법적인 사역을 수행하시는 분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박스터의 이중구조 사상은 속죄론의 범위를 결정짓는 매우 중대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구조 사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 가령 자연과학과 윤리학에 대한 혼동이 신학적 이해뿐만 아니라철학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매우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박스터의 신학작업에 대하여 한 보스마가 잘 비판한 바처럼 박스터는 자신의 보편속죄론을 논증함에 있어 적절한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신학적 또는 철학적 분석법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박스터는 자연성과 도덕성, 자연과학과 윤리학, 사건과 책임의 구별을 근거로 하나님의 의지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신학적 작업에 근거하기 보다는 철학적 사유관념에 호소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또한 박스터는 그의 정치적 또는 철학적 신학에 근거하여 지상의 인간세계와 교회의 통치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의지와 행위를 두 개의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즉, 선행된 행위와 의지(Antecedent Acts and Will)와 결과적인 행위와 의지(Consequent Acts and Will)이다. 선행된 행위와 의지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의 언약에 근거한 자비를 전해주며 이에 근거하여 세상을 판단한다. 이러한 선행된 행위와 의지는 인간의 순종 및 불순종에 선행하며 원리적으로 입법적인 성격을 지니며 법집행의 첫 번째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번째 법집행으로서 결과로서의 행위와 의지는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을 찾아내어 심판하며 형벌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선행된 행위와 의지는 하나님의 입법자로서의 선언을 의미하며, 선행적인(antecedent) 면은 사람이 믿음이라는 조건을 수행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다. 선행적인 의지와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은 결과적인 의지와 행위 즉, 심판자로서, 절대군주로서 사람들에게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심판과 처벌을 수행하신다. 사람의 불순종은 새 언약이 요구하는 믿음이라는 조건을 수행하지 않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선행적인 의지와 행위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속량하며 의로운 존재라는 칭의를 수여해주시며 영광의 권리를 누리게 해준다. 입법자이자 언약자로서 그리스도는 선행적인 의지와 행위를 통하여 세상에 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편적으로 조건적인 죄용서의 기증서(Deed of Gift) 또는 망각의 보편법(Universal Act of Oblivion)을 수여하신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선행적인 의지와 행위를 통해서 모든 만민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서 속죄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선행적인 의지와 행위에 입각하여 조건에 걸맞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결과적으로 칭의와 죄 용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칭의는 다름 아닌 조건적인 결과에 기인하고 있다. 앞서 살핀 바처럼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과는 바로 그리스도의 결과적인 행위와 의지에 따라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사건을 통하여 새 언약의 출발을 이루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앞서 율법 정신을 언급한 바처럼 비록 그리스도가 화가 난 입법자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조건적인 언약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동등하게도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었지만, 그는 모든 사람이 실제적으로 칭의되거나 구원받도록 적절하게 의도되거나 목적된 것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일부 사람들만 이 칭의되거나 구원받도록 의도되거나 목적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박스터의 신학적 성향은 정치적 또는 철학적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박스터는 그리스도 속죄의 직접적인 효과를 그리스도의 세상에 대한 주되심과 소유권의 새로운 권한으로 이해하였다. 즉, 입법자 그리스도는 모든 만민을 대상으로 동등하게 죽음으로서 보편구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절대주(Domimus Absolutus) 그리스도는 절대적이자 직접적으로 자신의 원하는 자들에게 믿음의 은사를 시여할 특권을 소유하고 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절대적이자 직접적인 효과라고 주장하는 오웬의 입장을 거부한 박스터는 믿음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수여받은 소유주의 새로운 권한(novum ius dominii)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그리고 임의적으로 흘러나온다고 주장하였다.

박스터는 오웬의 그리스도 속죄의 충분성(Sufficiency)을 수용하는 점도 있었지만 속죄의 충분성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회개와 믿음을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비록 오웬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충분성과 유효성을 구분하며, 그 유효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입각하여 실행됨을 주장함에 반하여, 박스터는 속죄를 유효하게 하는 충분성의 결정요인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보다는 사람의 회개와 믿음이라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6 리차드 박스터의 보편 속죄론 효과

박스터에 의하면, “완전히 순종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에 의거하여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체결된 행위율법(The Law of Works)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었지만 불순종으로 인하여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은혜의 법(the Law of Grace)을 제정하셔서 온 인류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셨다. 이 법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죽음을 율법수여자이신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온 인류의 죗값을 충분하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치르심으로(Sufficient Price and Satisfaction) 모든 인류의 죄의 감면(remission of sins), 칭의, 양자됨, 구원이 효과적으로 발생하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을 받으심으로 행위율법은 만족되었다.

이러한 박스터의 율법이해는 율법의 용도와 목적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로마서 3:19-20은 율법과 생명과의 관계성을 묘사해주고 있는데, 이는 율법 아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앞에 책임성 있는 존재로써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에 대한 선언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적 기능은 어느 육체적 행위로서도 율법을 성취할 수 없으며 단지 인간의 죄의 심각성을 인식케 해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특히 갈 3:22-24에서 바울은 율법을 통해 모든 인간이 죄 아래 갇혔음을 선언하고 있으며,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 교사적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박스터는 이러한 율법적 기능을 새언약에 연관시켜서 율법적인 구원론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박스터에 의하면,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의 독특한 사역은 ‘전 인류의 죄의 희생자’로서 구속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죄의 희생자이자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것처럼 죄의 속죄물이 되어 죗값을 치름으로서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다.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악의 세 가지 면 즉, 사실로서의 유죄와 결점으로서의 유죄보다는, 형벌로서의 유죄(A Guilt of Punishment)의 댓가를 치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리스도가 당하신 죄의 형벌에 대한 고난은 중재자로서 자원적 동의를 통해 수행된 것이다.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하나님께 대한 죄의 만족의 원인은 단지 택함받은 자들만을 위함이 아니라 택자나 불택자 모두 동등하게 만민(All Mankind)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사용된 “모두”(All)은 오직 택자만을 위한 그리스도의 만족으로 제한시킴에 반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가 베푸시는 은혜는 성경과 복음 선포자들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구원과 칭의, 양자, 영화 등이 ‘믿음이라는 조건’으로 제공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은혜는 잠재적 신자들(Potential Believers)로 선택된 일부인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신자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됨을 강조하였다. 만일 그리스도의 은혜가 택자들에게 한정된다면 그리스도의 호의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선택 유무를 믿기 전에는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고 난 이후 복음적 제의에 반응한 이후에 자신이 선택된 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에 제시된 죄용서와 새 생명은 오직 선택된 자에게 해당되지만, 자신이 선택된 자이기 때문에 죄용서와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음이라는 조건을 이행함으로 가능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호의와 은혜는 선택의 유무가 결정되지 않은 모든 불신자들에게 제공되며 이들 가운데 믿음이라는 조건을 수행하는 자들에게는 죄용서와 새생명이 유효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박스터에 의하면, 이 믿음은 모든 사람이 아닌 일부 사람들만을 위하여 희생한 가공적이며 현혹적인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택자나 불택자 할 것 없이 불신자로서 믿으면 죄용서와 생명을 얻게 되지만 이를 거부하면 영원한 저주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도록 명령 받은 모든 만민을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택자 뿐만 아니라 불택자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이들의 회복과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단을 불신자들에게 잘못 요구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논리에 입각하여 박스터는 주장하길, 만일 그리스도가 모든 만민을 위해 속죄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저주의 원인은 이들의 계속적인 불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의 결핍 또는 부족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전적 희생은 전 인류의 죄악을 보편적으로 속량하셨으며 모든 인류는 믿음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서 그리스도가 이루어놓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편에서의 어떠한 요구나 행동을 수행하기 이전에 이미 성부 하나님과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의 법이 제정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선포되었으며, 오직 신실하게 믿음을 가지고 이 제의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은혜의 법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만민은 예외 없이 ‘믿음이라는 조건’을 통하여 죄용서와 칭의와 하나님과 회복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믿음을 소유하였을지라도 마지막에 주님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와 은혜의 법을 배척하는 자들은 은혜의 법을 버린 것에 대한 무한한 죄책과 형벌을 겪게 될 것이다.

박스터는 은혜의 법에 대한 ‘믿음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이 법의 취지는 누구든지 감사함과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 교사, 왕, 머리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구원자로 믿으며 그분과 그 분 안에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신실하게 그분에게 순종하는 자들은 그분의 첫 용납하심 가운데 칭의와 양자됨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분의 견인하심 가운데 심판 시에 정당화 될 것이며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고 영화롭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박스터는 믿음 없는 은혜의 법에 의해 죄용서 받거나 구원받을 자가 전혀 없으며, 이들에게 믿음을 가져다주는 그분의 특별한 은혜 없이 자연적 자유의지(Natural Free-Will)의 능력으로 이러한 조건을 수행할 수 있을 자가 전혀 없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박스터는 성경에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성경 단어를 발견할 수 없고 단지 성경은 “그들을 의로 여기게 되었다”(Being Reckoned) 또는 “우리의 믿음의 결과로 의로 여겨졌다”(롬 4:11,22)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의롭게 여겨지는 것이며, 신자들의 의로움은 그리스도 자신의 개인적 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것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하여 의롭게 여겨지는 것이며 이러한 의의 조성자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오웬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n)로서의 속죄론”을 강조하였다면, 박스터는 “믿음을 조건적으로 의로 여겨짐(Reckoned, Considered)의 속죄론”을 부각시켰다.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만족으로 인하여 모든 만민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Universally, Generally) 그리고 조건적으로(Conditionally)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신실하게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실제적으로(Actually) 구원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박스터의 속죄론의 주요한 효과는 은혜의 새로운 법(The New Law of Grace)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믿음의 유무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였다.

7 결론: 비평적 고찰

리차드 박스터는 당대 청교도 신학의 최고봉이었던 존 오웬과 속죄론 논쟁을 통하여 청교도 속죄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다양한 작품들을 출간하면서 존 오웬과 신학적 갈등을 초래하였는데 이들의 논점의 핵심은 다름 아닌 속죄론의 규모와 아울러 과연 속죄의 범위는 모든 만민에게 해당되는지 아니면 선택받은 제한적 개념인지 그리고 속죄의 본질은 무엇이며 율법에 제시된 형벌과 동일한 것인지(idem) 아니면 그에 상응할 정도로(tantundem)인지에 대한 다양한 입장 차이에 있었다. 이러한 속죄론의 견해 차이는 칭의 과정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박스터의 속죄론 사상은 Thomas Aquinas, Johannes Duns Scotus, Williamof Ockham 그리고 Richard Sibbes, James Ussher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특히 박스터는 어셔를 통해 신학의 다양성과 연합 및 일치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그의 “보편속죄론”은 Hugo Grotius(1583-1645)와 스코틀란드 출신의 John Cameron(1579-1623)과 프랑스 소뮈르 학파(French School of Saumur)의 직접적인 영향아래 놓여있다. 그러나 Thomas Blake, George Kendall, Thomas Barlow, Lewis Du Moulin, William Eyre, Thomas Warren, John Crandon, 그리고William Robertson 등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하여 칭의와 믿음의 상관성에 대한 박스터의 입장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박하였으며 박스터는 자신의 다양한 작품으로 응수 하였다.

박스터의 보편속죄론은 그의 작품인 “Universal Redemption”에 자세히 제시하였는데, 그는 딤전 2:4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며”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구원의 대상의 보편성의 문을 열었다. 그는 그리스도, 하나님 모두 율법에 대한 입법자이자 통치자의 면과 절대주인의 부분을 구별해야하며, 통치자 그리스도와 은혜수여자로서의 절대소유자를 구분해야 하며, 사건의 본질과 사건으로 인한 권한과 책임을 구분해야하고 자연과학과 윤리학을 구별해야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박스터의 사상적 배경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 즉,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에게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논증하기 위해 두 개의 속성들을 열거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의 신론적 개념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박스터는 하나님의 의지를 두 개로 구분하여 “Gods Will de Rerum Eventu” 즉, 일의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와 활동 그리고 “Gods Will de Debito” 즉, 입법자로서의 책무를 수행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활동으로 나눔으로서, 하나님은 입법자이자 사법자로서의 의지와 사역을 수행하심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의지와 행위를 두 개로 나누되, 먼저 선행된 의지와 행위를 통해 법집행의 첫 번째 과정으로서 입법부적인 기능을 가지는 반면에 결과적 의지와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상과 벌 즉 사법부적인 심판적 형벌의 기능을 수행하심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박스터의 이중구조적 신학체계는 성경에 근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또는 철학적 사고방법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처럼 박스터는 자신의 이중구조론에 입각한 보편속죄론을 완성하기 위해 도입한 요소가 다름 아닌 인간의 책임부분으로서의 “믿음 즉 신앙”이었다. 비록 그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충분성을 수용하지만 이 충분성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의 회개와 믿음을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개혁주의 노선에 입각한 청교도 신학의 속죄론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충분성과 유효성을 구분하여 그 유효성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입각하여 실행됨을 주장하였지만, 박스터는 이 속죄를 유효하게 하는 충분성의 결정 요인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보다는 ‘사람의 회개와 믿음’이라는 조건에 달려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적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박스터는 그리스도의 희생은 일부 선택된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며, 만일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시킨다면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저주의 원인은 이들의 불신적인 죄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의 부족 또는 결핍에 해당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박스터에게 있어서 은혜의 전가(Imputation)라는 단어는 성경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은혜를 통해 의로운 자로 여겨졌다”(Reckoned, Considered) 라는 표현이 더 성경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박스터의 주장은 전통적인 청교도 속죄론에 반기를 든 알미니안주의와 소시니안주의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신인협동설에 가까운 주장이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유효성과 충족성을 통하여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믿음에 근거한 칭의를 주장하였던 개혁주의 신학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노력과 공로 그리고 조건적 구원론적 성향을 지닌 인문주의적 사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이처럼 박스터는 리차드 십스와 휴고 그로티우스, 그리고 존 카메론의 사상과 맥을 같이함과 동시에 알미니안주의자들과 율법폐기론자들 그리고 동시에 엄격한 칼빈주의 신학사상에 대한 중간노선을 추구하였던 신학적으로 독특한 절충주의적인(Eclectic Maverick) 신학자로 평가될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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