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회 분열사 5]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정치적 배경(2)

총회에서만 뿐만 아니라 경남노회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15/02/16 [19:26]

[한국장로교회 분열사 5]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정치적 배경(2)

총회에서만 뿐만 아니라 경남노회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리폼드뉴스 | 입력 : 2015/02/16 [19:26]

6.25 전쟁이 일어나기 2달 전에 1950년 4월 21일 오후 8시 45분에 제36회 총회가 대구제일교회에서 있었다. 제36회 총회는 회무처리 벽두부터 회원 자격 문제로 격론이 벌어졌다. 조선신학 측에서는 선교사 회원중 중앙선교사협의회에 가입하지 않는 선교사(미국 남장로회 파송선교사)는 회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장로회신학교 측에서는 고려파 문제로 분열사태를 이룬 경남 5노회의 총대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주장이 격렬하게 맞섰고 흥분한 회원 일부는 강단에까지 올라가 난투극을 벌여 드디어는 무장 경관까지 동원되는 수치스런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남장로회 선교사(미국 남장로회 파송 선교사)의 회원권에 대한 문제였는데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중앙선교사 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에 대한 회원권 문제는 정치 제18장 2조에 의하여 중앙선교협의회에 가입을 권유하는 것으로 가결하였다. 본 총회는 고려파문제로 분열사태를 맞이한 “경남 5노회 회원권 문제로 갑론을박하다가 목사 45인 장로 43인 합계 88이 됨으로 개회하자고 제안하매 경남노회 회원권을 보류하고 회장이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제36회가 개최됨”을 회장이 선언하게 된다.

총회 이튼날인 22일 오후 2시에 속회된 총회는 경남노회 총회전권 위원의 보고를 받을 때 까지 경남 5노회 회원권을 보류하고 계속 회무가 진행되었다. 경남노회 회원권 문제는 전권위원회, 특별위원회로 오고가면서 24일 10시 10분에 속회된 회의에서 “회장이 경남노회 총회전권 위원의 보고는 기각하기로 하고 가결됨을 선언함에 장내는 소란함으로 동 12:30분에 회장이 비상정회를 선언”하게 되었다.
 
이 문제로 계속 회무가 진행되지 못하게 되자 25일 오후 2시에 속회된 회의에서 총회임원, 각 노회장, 증경총회장, 각선교회 대표 1인씩과 이대영 목사에게 연석회의를 개최케 하여 타개책을 강구키로 가결하게 된다. 연석회의를 위해서 2시 30분에서 5시까지 정회하였다. 동일 5시 15분에 속회된 회의에서 연석회의 결과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저녁시간에 토의하기로 하고 정회하였다. 저녁 8시 30분에 본회가 속회되었다.

연석회 결론은 첫째, 금년 총회는 금년 9월 19일 7시 30분까지 정회하되 장소는 청주에서 회원은 금번 총회원으로 한다. 둘째, 경남지방 노회건은 특별위원 7인에게 노회합병, 조직, 해벌하는 권한을 부여하여 파송처리케 한다. 셋째, 남장로회 선교회의 선교사업 중앙협의회 가입건은 호남구약 선교사업 협의회에 위임하여 권유한다. 넷째, 신학교 문제는 각 노회 대표 2인씩과 총회임원, 4선교회 대표 1인씩과 신학교 합동위원이 7월 상순에 청주에서 연석회의를 열고 성안을 얻어 이를 각 노회에 수의하여 결정한다. 다섯째,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조 제1조를 위반하여 성경유오설을 주장하거나 선전하거나 옹호하는 자는 각 노회에 명령하여 권징조례 제6장 제42조 제43조에 의하여 엄중 처리한다.

이같은 결의는 앞으로 총회의 향방이 보수측의 행보로 나갈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연석회의 결의가 총회의 결의가 되었는데 세 번째 결의는 고려신학교측을 잠재우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결의는 자유주의 노선의 조선신학교를 제거하고 보수신학인 장로회신학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조항으로 한국장로교회 보수신학의 승리를 예고해 주는 결의이기도 했다.

제36회 총회가 1950년 9월 19일 7시 30분까지 정회하되 장소는 청주로 하여 계속총회를 소집하기로 했으나 1950년 6월, 6.25전쟁으로 소집하지 못하고 다음해인 1951년 5월 25일 오후 2시에 제36회 계속회가 피난지 부산 중앙교회에서 부회장 박용히 목사의 사회로 목사회원 44명, 장로 총대 41명 선교사 4명 합계 89명의 참석으로 속회가 되었다. 계속회는 임원선거를 하기 전에 먼저 경남노회 특별위원회의 보고부터 받았다.

특별위원회의 주관하에 통합 경남노회 제52회 노회를 조직한 후 제36회 속회총회에 보고했다. 제36회 속회총회에서 경남노회 특별위원는 분립된 5노회 중 4노회가 합동하여 경남노회로 문제 해결을 보았다는 보고 후 경남노회 회원을 포함해서 목사 53명, 장로 48명, 선교사 7명, 계 108명이 계속총회 회원이 되었다. 경남 법통노회(회장 한상동)를 제외한 4개로 분열되어 있는 경남노회가 합동되어 제36회 계속총회에서 회원권을 갖게 됐다.

특별위원회는 “경남교계는 외면상으로 정통신앙과 순복음주의를 표방하나, 기실에 있어서는 교권과 감정이 무엇보다 더 큰 근본원인이 되여 있음으로 완전한 성과를 거둘 수가 없게 되었다”라는 보고를 끝으로 특별위원회의 보고가 있자 총회는 받아 총회결의로 가결시켰다.

제36회 총회에서 출옥성도를 중심한 고려신학교 측인 소위 경남(법통)노회를 제외된 4개의 경남노회가 합동하여 경남노회로 승인되었다. 경남 법통노회(회장 한상동)측은 제36회 총회를 끝으로 기존 장로회총회로부터 “총회의 문외로 쫓겨났다”, 혹은 “총회에서 완전히 이탈되었다”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됐다.
 
결국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분열의 원인을 추적할 때 총회에서만 뿐만 아니라 경남노회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신사참배한 죄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래 너희만 거룩하냐”라는 식의 논쟁은 경남노회를 거대한 권력투쟁과 감정싸움의 현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총회가 개입하기까지 했지만 총회특별위원회의 보고대로 “외면상으로 정통신앙과 순복음주의를 표방하나, 기실에 있어서는 교권과 감정이 무엇보다 더 큰 근본원인”이었다.
 
개혁신학과, 교회갱신을 부르짖으며 노회와 총회를 개혁하겠다는 이면에 교권을 장악하기 위한 계략이 급기야 교단이 분열되는 일이 않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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