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회 분열사 6]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배경(1)

고려신학교는 총회의 치리와 교권 밖의 사립학교로 시작하였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15/02/17 [20:58]

[한국장로교회 분열사 6]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배경(1)

고려신학교는 총회의 치리와 교권 밖의 사립학교로 시작하였다.

소재열 | 입력 : 2015/02/17 [20:58]

고신측은 자신들을 결별하고 떠난 박형룡 박사의 행위를 교회론과 신학적 문제로 접근해 간다. 고신측에 속한 한부선 선교사는 선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러나 그들은 작금의 에큐메니칼(교회일치)운동의 위험들과 신사참배에 대한 기존 교회의 근본적인 결함을 간파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했다. 고려신학교측은 한국교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신학적 자유주의 노선을 가진 선교단체와의 제휴는 수용할 수 없으나 박형룡 박사는 제휴함으로서 자유주의 신학 노선을 가진 선교단체와 함께 함으로 한국교회의 개혁과 재건을 위해 싸우는 진리운동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고 본다.

박형룡 박사는 “총회와 노회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교회재건은 부정”하였으며 메이첸파의 신학사상을 가장 건전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신학교 재건에 있어서는 4장로회 선교부(미국 북장로회, 남장로회, 호주, 카나다 선교부)와 뜻을 같이하는 것을 기본조건으로 내세웠다.

박형룡 박사는 별 무리 없이 고려신학교 운영방침이 “전국교회의 원조를 얻는 동시에 적당한 시기에 총회에 청원하여 총회승인을 받는다”는 장래방침이 확정된 이후 관심을 갖고 추진한 것은 총회와의 관계와 메이첸파 선교사와 4장로회 선교와의 관계를 조정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박형룡 박사의 고신측으로부터 신앙노선전향(총회신설론)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는 이를 거부하고 고려신학교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이때 출옥성도들은 박형룡 박사를 붙잡는 것보다 신앙노선을 붙잡는 것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노선 차이로 박형룡 박사는 고려신학교를 떠났고 고려측은 박형룡 박사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박형룡 박사가 메이첸파에 속한 선교사들을 거부하고 네 선교회와 교류하기 위해 고려신학교를 떠난 사건은 신학과 신앙의 차이점 때문인가, 아니면 교권욕 때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가? 이 같은 문제는 고신측 분열에 있어서 “신학적 배경”으로 살펴볼 수 있다.

박형룡 박사는 왜 자유주의화 된 네 장로회 선교사들과 뜻을 같이 했는가? 고려신학교는 박형룡, 박윤선, 한부선 등이 교수가 되어 강의하였다. 이들은 모두 메이첸의 직접 제자들이었기에 메이첸의 보수신학은 고려신학교에 처음부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당시 고려신학교를 도운 선교사들은 전원 메이첸이 세웠던 “독립교회 선교회”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계의 메이첸이 초대 총회장이었던 “정통장로교회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었다.
 
고려신학교는 개혁주의 보수신학의 확립과 교회 재건의 이상을 가진 몇 명 출옥 목사들의 소명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장로교 총회의 직접적 요구에 위해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연히 고려신학교는 총회의 치리와 교권 밖의 사립학교로 시작하였다.

장동민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박형룡 박사를 변호하기를 박형룡 박사가 메이첸 파의 고려신학교와 정통장로교 선교부를 떠나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정신에 영향을 받아 입국한 네 장로교 선교부를 택한 것은 한국에 나와 있던 장로교 선교부나 선교사 개인들은 아직 그렇게 자유주의화 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박형룡 박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의환 박사는 1970년에 「도전받은 보수신학」이란 저서에서 ”정통 장로교 선교사 한부선 목사를 전적으로 외면하여 버린 것은 비록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와의 관계성 때문에 그랬다고 할지라도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좌경되어 버린 북장로교회의 지원을 꼭 받아 가면서도 한국의 보수신앙노선을 견지하여 보려는 데서 이미 자기모순에 빠져버린 것이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전국적인 교회의 지원과 장로회 총회에 소속된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고려신학교를 등지고 서울에서 장로회신학교를 개교한 것은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신학적인 면에서 고려신학교와 한부선 계열의 선교사를 외면하고 좌경화 된 해외 네 선교부의 관계를 맺는 것은 고신측으로부터 오해를 받았다.

박형룡 박사는 왜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자신의 스승이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메이첸에 속한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을 가장 건전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왜 신학교 재건에 있어서는 메이첸파의 선교사들을 거부하고 4장로회 선교부와 뜻을 같이하였는가? 그 원인은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를 사임한 다음과 같은 이유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를 사임하는 이유를 헌트가 마르스덴에게 보낸 편지에서 “첫째, 고려파는 교회 밖에서 싸워서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려 한다. 둘째, 고려파는 신사참배 문제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 다른 선의의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셋째, 신학교가 소수의 사람에 의하여 운영된다”라고 하였다. 고려신학교가 총회에 소속된 목사 양성기관이 아니라 특정 소수의 사람들이 학교를 운영하여 목회자를 양성하는 사설신학교로 큰 비전이 없었기 때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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