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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라는 말은 사전으로 “신앙의 조목”, “꼭 믿는 일”(국어대사전) 또는 “신앙이나 견해의 제시”, “의식에 사용하기 위해서 기독교 신앙을 공식적으로 요약해 놓은 것들 중에 하나”(웹스터 사전) 또는 “공통의 믿음을 유지시키는데 꼭 필요한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소한의 믿음을 요약 진술한 것”(기독교대백과사전) 등으로 정의딘다. 이것은 신조가 믿을 신(信)으로 되어 있는 것이나, 영어에서의 신조를 의지하는 creed가 ‘나는 믿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라친어 크레도(credo)라는 어원에서 나온 것과 잘 어울리는 설명들이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와 벌코프는 신조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그 내용에 관한한 성경적 진리의 조직적 진술”이러고 정의했다. 그리고 기독교 신조들의 수집과 해설에서 탁월한 인물인 필립 샤프는 신조를 “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신앙고백, 또는 신앙의 내용을 언어의 형태로 표현하되 그것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여 구원을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여기거나 최소한 건전한 기독교회를 유지하기에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간주한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신조는 이러한 정의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회에 의해서 그 권위를 인정받은 믿음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조는 그 형태나 용도에 따라서 신경(creed), 요리문답(catechism), 교헌(canon), 규범(rule of faith), 상징(symbol of faith), 선언(decree), 신앙고백(confession) 등의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교회는 주님의 물으심에 답하여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던 사도 베드로처럼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해야 할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①어떤 사람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고 할 때, ②우리 가운데 신앙을 고백하여 신앙의 내용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③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음을 나타내고자 할 때, ④다른 사람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께 나아 오도록 하려 할 때, ⑤이단을 분별해 내려고 할 때, ⑥교회들 간의 연합을 이루고자 할 때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독교회는 오순절 이전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 즉 신조가 없었던 때가 없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형태가 어떠했든지 간에 반드시 자기가 믿는 주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고백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신념을 밖으로 표현해 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위의 글과 아래의 글은 다음의 책을 참고; 박일민, <개혁교회의 신조>, 성광문화사, 2002).
1. 작성배경 1907년, 한국교회에서는 대부흥 운동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 최초의 교단 조직적인 독노회(獨老會)가 조직되었다. 이 노회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을 대변할 만한 신조를 작성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 신조를 작성할 만큼 신학적 역량이 성숙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적으로 선교사들의 지도를 따라 신조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선교사들은 인도 장로교회의 12신조를 서언(序言)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채택하여 한국 장로교회의 신조로 삼았다. 인도 장로교회의 12신조는 영국 교회가 인도 선교지에서 인도 장로교회를 위하여 작성했던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결정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은 선교사 본연의 임무 때문에 새로운 신조를 작성할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했었고, 더욱이 교리적 논쟁발생의 여지가 많은 내용을 망라한 신조를 작성한다는 것은 결코 자신들의 선교활동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한국은 선교지 교회로서의 공통점이 있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12신조의 모델이 되는 인도 장로교회의 신조는 1890년에 작성된 영국 장로교회의 24개조 신조를 요약한 것이었다. 영국 장로교회의 24개조 신조가 작성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영국의 장로교회는 청교도 혁명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작성에 주도적인 영향을 행사했었다. 그러나 12년만에 다시 왕정이 복고됨과 더불어, 영국의 장로교회는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함께 박해를 받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688년에는 명예혁명에 따른 관용정책으로,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 중에서 유일하게 관용의 대상이 되어졌다. 하지만 노회나 총회 같은 조직이나 집단적인 활동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침체된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일어난 영국 감리교회의 부흥운동과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부터서 강한 자극을 받고는, 1876년에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던 장로교회들을 하나로 연합하였다. 그리고 1890년에는, 24개조로 된 영국 장로교회의 신조를 작성했다. 1892년에는 24개조 신조에다 모두 6장으로 된 부록을 추가했다. 이 부록은 교회정치, 주일예배, 국가정치, 교회정치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영국 장로교회의 24개조 신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하나님, 2. 삼위일체, 3. 창조, 4. 섭리, 5. 타락, 6. 구원, 7. 그리스도, 8. 그리스도의 사역, 9. 그리스도의 부활, 10. 복음, 11. 성령, 12. 선택과 중생, 13. 칭의, 14. 그리스도와의 연합, 15. 율법과 순종, 16. 성화와 견인, 17. 교회, 18. 교회의 질서와 친교, 19. 성경, 20. 성례, 21. 재림, 22. 부활, 23. 최후심판, 24. 영생. 2. 영향 및 평가 12신조는 영국 장로교회의 24개조 신조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언에서도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그 표현 양식은 신학적이라기 보다, 기본 신앙의 천명이라고 해서 좋을 만하다. 이처럼 기본입장의 표명에서 그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성장에 과정과 특성에 따라서 다양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서언(序言)에 이어 제시된 12개의 조항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 즉 1. 성경, 2. 하나님, 3. 삼위일체, 4. 창조, 5. 인간, 6. 죄, 7. 그리스도, 8. 성령, 9. 구원, 10. 성례, 11. 신자의 생활, 12. 내세 등만을 취급한다. 그리고 승인식(承認式)을 덧붙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2신조에는 교회나 교회정치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 이것은 한국 장로교회가 많은 분열을 거듭해 왔던 것과 연관이 없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12신조는 교리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은 가급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 예를 들어 보면,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그 근거가 되는 성경의 영감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정만을 말할 뿐, 선택과 유기를 동시에 인정하는 이중예정을 밝히지는 않았다. 또 죽은 자의 부활은 언급하였으나, 그 상태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는 신조로 인한 신학적 논쟁이 없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보수주의자들이 12 신조에 언급이 없던 성경의 영감론, 예정론, 부활론을 강조하고 나서자, 자유주의자들이 이에 반발을 하면서 뜨거운 신학 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성경의 축자 영감설을 부인하던 자유주의자들은 마침내 대한 예수교 장로회와는 별도로 한국 기독교 장로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들은 1972년, 한국 기독교 장로회 신앙고백 선언을 제정하였다. 이 신앙고백 선언은 모두 7장으로 되어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1-4항, 하나님 신앙과 성서, 제2장 1-5항, 창조와 세계, 제3장 1-7항, 인간과 죄, 제4장 1-5항, 예수 그리스도와 속량, 제5장 1-4항, 성령과 삶, 제6장 1-4항, 교회와 선교, 제7장 1-3항, 역사와 종말을 각각 취급하고 있다. 기독교 장로회를 제외한 한국의 다른 장로교회들은 아직도 1907년도에 작성된 12신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선교 100년을 넘긴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많은 신학 논쟁도 거쳐 왔다. 현재에는 선교 초창기에 비해 볼 때, 너무나도 달라진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12신조는 현재의 한국 장로교회를 대변할 수 있고, 분열된 교회들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을 만한 새로운 형태의 신앙고백으로 발전되어질 필요가 있다.
서언 대한예수장로회에서 이 아래 기록한 몇가지 조목을 목사와 강도사와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승인할 신조로 삼을 때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를 설립한 모(母) 교회의 교리적 표준을 버리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찬성함이니 특별히 「웨스트민스터」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한 것인즉 우리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 소요리문답은 더욱 우리 교회 문답책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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