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연재5] 책 속에서 교훈을 찾은 행복

책을 통한 인생에 대한 간접경험

소재열 | 기사입력 2015/06/15 [09:27]

[행복연재5] 책 속에서 교훈을 찾은 행복

책을 통한 인생에 대한 간접경험

소재열 | 입력 : 2015/06/15 [09:27]
▲     © 리폼드뉴스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않고 강단에 서면서도 내가 설교하면 하나님께서 할말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아무 수고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을 건방진 얼간이라고 말하겠다(칼빈).  
 
현대는 컴퓨터 시대라고 한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각종 자료와 정보를 얻는다. 특히 목회자들은 이제 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서 각종 설교 자료를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멀리하고 독사를 멀리하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라고 할지라도 독서는 여전히 우리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목회 환경이 예전과는 다르다.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목회는 더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목회의 대상인 성도들이 처한 다양한 환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는 안 된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통해서 우리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만 있다면 그 독서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책을 통한 인생에 대한 간접경험

필자는 종종 한국교계를 이끌어 가는 훌륭한 목사님들의 설교집이나 전기를 읽곤 한다. 책을 통해 그분들을 만나고 그분들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내가 젊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혜가 부족하여 일을 그르칠 경우를 대비하여 책 속에서 교훈과 길을 찾곤 한다. 이런 분들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중요한 어떤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 참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그분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떤 결단력으로 목회에 임했는지에 대한 글을 읽을 때면 그것이 곧 나에게도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내리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한다.

그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뿐만 아니라 그분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여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배울 수가 있다. 이런 글들은 이렇게 유익하고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미국 트루먼 전 대통령도 열 살 때 생일선물로 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책은 위대한 남자와 위대한 여자」(Great Men Famous Women)였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또 그는 친구와 2,000권의 책을 읽기로 약속을 하고 도서관에 파묻혀 백과사전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2,000권의 책을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설교가 스펄전은 21살 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끼치고 감동을 준 설교가였다. 그의 서재에는 12,000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의 설교를 위해서 어떤 때는 수백 권의 책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설교단에 오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방자한 것이다.”

칼빈 역시 이런 말을 했다.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않고 강단에 서면서도 내가 설교하면 하나님께서 할말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아무 수고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을 건방진 얼간이라고 말하겠다.”
 
우리들은 책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삶의 현장을 통해서 내 삶을 반추해 보기도 한다.
 
전화위복의 역사

필자는 한명수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보내주신 책 중에 「한국교회에 보내는 속달편지」라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무엇이 그분으로 하여금 속달편지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글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책을 읽어가면서 알 수가 있었다. 그 책 중에서 나는 그분의 전도사 시절의 이야기에서 눈이 떠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여기에 그 글을 옮겨보려고 한다.
 
나는 1963년 첫 주일에 서울 용산구의 N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부임 첫날부터 교회 분위기가 탁하게 느껴져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나는 명 모 전도사와 함께 부임했습니다. 부임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명 전도사는 양 모 장로님이 30평 가량 되는 독채를 얻어 주어 그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층 단칸방을 얻어주어 그곳에 거처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사 오단 날까지 방이 비지 않아 짐을 밖에 쌓아놓고 해가 질 때까지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것도 그 때까지 방세를 전부 치르지 않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여전도사는 돈 많은 재정부장 장로님 추천으로 그 교회에 부임했고, 나는 당회장인 강 모 목사가 추천하여 왔기 때문에, 첫 날부터 돈이 없어 변변하게 방세도 제때 치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몇 달은 생활비로 4천 원씩 받았지만 그곳을 나오기 전 6개월간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쌀 한 가마에 5천3백원 할 때니 4천 원을 꼬박꼬박 받는다고 해도 십일조 드리고 주일헌금 내고 나면 다섯식구가 밥 먹고 살기에도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이나 생활비를 못 받았으니 그때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때는 정말 슬프고 배고프고 답답했습니다. 목회로 들어선 첫길에 돈 때문에 고독할 줄 정말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는 돈 많은 장로가 있는 교회로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서는 목사를 보낸답시고 재정부장 장로가 협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양 모 장로와 홍 모 장로, 김 모 장로가 중심이 되어 생활비를 봉쇄하는데 저도 덩달아 얼마나 혼이 났던지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누구를 원망해서가 아니라 서글퍼서 하염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어떤 분은 “생활비를 여섯 달이나 못받고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야말로 정말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모진 목숨이 용케도 붙어 있었지요.

그 당시 엄지손가락 굵기의 20원 하는 국수 다발이 있었는데, 그 국수 한 봉지면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수 살 돈 20원이 없어서 굶고 밤을 꼬박 지새웠습니다. 다음날 가족 모두 쫄쫄 굶고 주일예배에 갔는데,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 달래느라 얼마나 혼이 났던지…. 그때 첫째아들 녀석이 다섯 살이었고, 돌이 지난 아들아이가 있었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애들이 많다고 두 명만 데려오라고 해서 세 살바기 딸아이를 체형 댁에 맡겨두고 자식이 둘인 것처럼 속이고 부임했습니다.

1964년 2월 첫 주일, 첫 사역지에 부임한 지 1년 하고도 한 달 만에 저는 그 교회를 사임하게 됐습니다. 사실은 사임한 것이 아니라 해임당했지요. 쫓겨난 것입니다. 당회장 목사님이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시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분이 외서 설교를 하셨는데, 홍 모 장로님이 광고 말미에 “오늘부터 한 전도사는 본 교회를 사임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바삐 떠나고 싶은 교회이기는 했지만 사전에 어떤 통보도 없이 많은 교인들 앞에서 갑자기 권고사임을 당하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부아가 치밀어 가슴이 울렁대고 흐르던 피가 역류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도 화가 치밀면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곤 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쪽에 앉아 있는 아내 보기도 민망스러웠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교인들 대하기는 또 얼마나 고역이던지, 그때 교회 문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던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목메고 복받치던 슬픔을 용케도 참았던 나, 지금도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는 수모요, 평생 사라지지 않는 나의 가장 가련한 모습니다.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고 쫓겨난 그날 주일 오후, 어느 집사가 여섯 달째 밀린 생활비 2만 4천 원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끝내 받고 싶지 않은 돈이었지만 형편이 형편인지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저희 식구는 마포구 염리동에 살던 친구의 지하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교회 교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사하는 모습을 내다보지 않더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요. 정말 처절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해 4월, 나는 상이군경과 전쟁미망인 및 그 유자녀들과 자녀 없는 노인들이 모여 있다는 이곳 수원의 한 모퉁이 연무동에 터를 잡고 찬훈대교회(彰勳臺敎會)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글은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감동을 주기보다 이런 현실은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의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창훈대교회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에 한 교회에서 버림받는 한 전도사를 통해 역사해 주신 기적과 같은 현장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버림받고 나약한 종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 사람

우리들은 구약 성경에 등장한 요셉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요셉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사랑을 많은 받았다. 그러나 그 형제들은 그런 동생을 시샘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필아 버렸다. 애굽에 팔려가 요셉은 쓰라린 아픔과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요셉과 함께 해 주셨다. 요셉이 종으로 어떤 집에 들어가면 그 집 주인에게 복을 주셨다. 요셉이 가는 곳에는 기적과 같은 역사가 일어났다. 끝내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해 주셨다.

훗날 히브리 땅에 흉년이 들자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먹을 양식을 얻으러 왔다. 그때 막내 동생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요셉의 형들은 동생인 총리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제 동생 요셉을 원수를 갚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두려워 떨고 있었다.

자신들이 그토록 무자비하게 다루었던 그 동생이 이제 자기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형들은 할 말을 잃고 만다. 형들은 요셉의 특별한 표정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지금 요셉 앞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당황해 하고 놀라움을 금지 못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동생 요셉은 형들에게 보복하려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요셉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내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으로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4-5)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의 경륜이다. 때로는 우리들의 현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처럼 로뎀나무 밑에서 나는 못난 사람이오니 죽여 주시옵소서 라고 원망의 기도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지금의 어려운 과정은 어쩌면 먼 훗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일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다름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될 때 원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다고 생각하자. 높은 산을 오를 때는 매우 힘들 것이다. 정상에 올라가서 힘들게 산밑에서 올라올 때를 생각하면서 흐뭇해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시간들이 훗날 우리들에게도 주어질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 어려움 때문에 원망하고 비관하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삼았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묵상하자. 지금까지 나에게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때로는 생명의 위급함 때문에, 또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런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지켜 보호해 주셨다. 지금까지 나를 버리지 않고 지켜 주셨다면 앞으로도 분명히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자. 내일 태양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과 같은 확신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한다. 그 확신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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