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제10강 /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석봉 | 기사입력 2015/07/30 [09:56]

요한계시록 제10강 /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석봉 | 입력 : 2015/07/30 [09:56]
제10강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3:7-13)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 빌라델비아(Φιλαδέφεια, 형제 사랑) 교회의 배경

1) 빌라델비아 이름의 뜻과 유래
빌라델비아(Φιλαδέφεια)라는 뜻은 헬라어 “필로스(φίλος 사랑)”와 “아델포스(ἀδελφός 형제)라는 말의 합성어로 ”형제 사랑“이라는 뜻이다. 

빌라델비아(Philadelphia)의 현재 이름은 '알라세히르'(alahsehir)이다.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30마일 지점에 있으며 유메네스(Eumenes) 2세와 그의 동생 앗타루스 필라델프스(Attalus Philadelphus)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이 도시의 이름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ία = φίλος + ἀδελφός)’는 이 두 형제간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2) 빌라델비아는 황제 숭배와 우상숭배 땅이었다.
빌라델비아 역시 드로아에서 버가모, 사데를 거쳐 이어지는 로마의 주요 통신로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도시는 상업에 매우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땅이 비옥하여 특별히 포도 농사를 짓기에 매우 적적한 토양을 지녔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A.D 17년에 사데를 강타했던 지진이 빌라델비아까지 영향을 미쳐서 삶의 환경은 열악했다. 당대의 역사가 스트라보(Strabo)에 의하면 여진으로 도시의 건물들은 안전한 것이 없었고 날마다 벽에서 조각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 살게 되었다. 
 
빌라데비아의 종교는 다른 도시들처럼 아나톨리안(Anatolian)과 헬라적 종교 행위들을 혼합하는 이방 종교의 형태를 취한다. 수호신은 술의 신 디오니수스(Dionysus)이다. 황제숭배가 다른 도시들처럼 강요되었을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다.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역사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히타이트, 고대 그리스, 비잔틴 등의 문명과 기독교, 이슬람이란 두개의 문화가 교차하고 대립하던 지역이다. 따라서 고대도시에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가 남아 있다. 

현재 ‘알라셰히르’(Alahsehir)로 불리는 고대도시 빌라델비아에는 성벽과 아크로폴리스 극장, 신전 등의 흔적이 있지만 오랜 세월의 풍상과 도시개발로 고대도시의 원형은 찾기 어렵다. 마을 한가운데 AD 6세기에 건축된 빌라델비아 ‘요한 교회’가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약 15m 높이의 육중한 돌기둥이 당시 교회의 규모가 거대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BC 1세기경 ‘밀의교’(密儀敎)의 규정이 기록된 대리석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빌라델비아에 이교(異敎)가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종교적 풍토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의 간계에도 흔들리지 않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로마의 종교가 무엇인가?
첫째, 황제숭배
황제는 현현신이고 법과 질서의 수호자이며 지역 번영과 국민생명의 보존자로 숭배하였다.

둘째, 밀의종교
의식을 비밀하게 행하는 신비주의 종교다. 죄 씻는 의식으로 황소 피(성수)로 목욕하며 구속적 성례식 강조, 금욕주의 강조한다.

셋째, 사이벨교
자기 고행으로 채찍질을 하며 제사장들은 구걸행각을 한다. 3월 22일 아티스신의 죽음을 조상하는 ‘피의 제전’과 3월 17~27일까지 힐라리아신의 부활을 기념하는 대규모 축제로 유명하다. 

3)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켰다.
헬라어로 ‘형제사랑’이란 뜻을 가진 빌라델비아는 소아시아 7개교회 중 가장 작은 도시였으나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킨 교회’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여기서 ‘열린 문’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이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복음 전도의 문’으로 해석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고후 2:12). 복음전도를 위해 주님께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빌라델비아에 최초로 전도한 사람은 사도바울의 친척 ‘누기오’로 전해진다. 

또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겠다”(계 3:10상)고 말씀하신다. 또 충실한 성도들을 향해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계 3:12). 현재 세상으로부터 크고 작은 도전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울림을 주는 말씀이다. 
 
2.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3:7-13절)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3:7-13).

1)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3:7절)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1) 거룩하고 진실하신 예수님(ὁ ἅγιος, ὁ ἀληθινός)의 모습이다.
거룩은 예수님의 영적 속성이고, 진실은 영적 특성에서 오는 의로운 행위이다. 거룩은 죄악과 더러움과 부패로부터 구별된다. 거룩의 주체는 주님이시며, 거룩한 장소는 성소이고, 거룩한 시간은 안식일이다. 

 진실(ἀληθινός)은 부정을 뜻하는 접두어 아()와 ‘남의 눈을 피한다는 뜻인 레도(λήδω)와 란다노(λανθάοω) 의 합성어로 진짜이기 때문에 남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가짜나 위조품에 반대되는 진짜를 가리킨다. 이것이 예수님의 진실이요 참이다. 

(2)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ἔχω τὴν κλεῖν Δαυίδ)의 모습이다. 

“7...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부분이다. 첫째는 진실하신 분이고 둘째는 거룩하신 분이며 셋째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는 1:18절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을 좀 더 발전시킨 것이다. ‘다윗의 열쇠’는 22:22-23의 배경으로 주어진 것이다. 열쇠는 ‘소유, 권세, 권리’를 함축 상징하며 메시아 왕권 자체를 의미하고(사 22:22), 다윗의 뿌리로서 신적 권세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시며 종말론적 주권자라는 의미를 말한다. 

(3) 열린 문을 두신 예수님(δέδωκα θύραν ἠνεῳγμένην)의 모습이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첫째는 예수님 자신이 구원의 문이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했다(요 10:1-2). 구원의 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제사로 열어놓은 문이다. 아무도 닫을 자가 없는 것이다.

‘또한 열린 문’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묘사한 계 21:9-27의 ‘열두 문’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새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열린 문’을 두었고 그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닫을 권한 이 없다. 

2)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칭찬이 무엇인가?(3:8절)

“8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1)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첫째로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공항의 도시다. 둘째로 황제 숭배하고 상인조합 Guild에 가입해야 살 수 있는 도시다. 셋째는 자칭 유대인들의 회유를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도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기란 너무나 힘겨운 도시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말씀을 지킨 것을 칭찬하고 있다. 

(2)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칭찬하셨다.
그리스도인의 힘이란 약하고 약했다. 황제숭배 거부로 상인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으니 하루하루 삶이 고달팠다. 그러나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치 안했다. ‘적은 능력’이란 구성원이 매우 적었다는 것과 그들이 도시의 하층민이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진 시련과 환난(9절)을 너끈하게 이겨냈던 참된 믿음의 소유자들 이었던 것이다. 

3) 빌라델비아 교회를 항하여 무엇을 보상하셨는가?(3:9-10)
(1)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칭 유대인들이 무릎을 꿇게 하신다(3:9).


“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3:9).

빌라델비아 교회도 서머나 교회처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 곧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무리들’인 자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었다. 사단의 도당에 대하여 요 8:44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로부터 지속적인 박해를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는 승리의 말씀이 주어진다. 이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시 23:5)’를 연상시킨다. 또한 사 45:14; 49:23; 61:14에서 모든 이방 민족이 유대인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영적 이스라엘인 빌라델비아 교회 공동체 앞에 육적 이스라엘인 유대인들이 무릎을 꿇으므로 역으로 이 말씀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8절에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배반하지 않았던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은혜이다.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회유하는 자들이다.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격려하며 그것은 하나의 의식일 뿐이라고 유도한다. 적당히 의식을 행하면서 풍요와 자유를 누리자고 유인함에도 불구하고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거절하고 이긴 자요 남은 자들에 대한 주님의 보상이다. 

(2)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신다(3:10).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8절의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라는 말씀의 확증이다. 보상으로 우주적 성격의 시험의 때의 공통된 시점은 바로 세상 종말 시험의 때이다. 이러한 시험의 때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때이고 신자들에게는 구속의 때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사단에 속한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전문용어이다. 시험의 때는 사탄에 속한 자들을 향한 심판의 때를 가리킨다. 바로 이 ‘환란의 때(עת צרה> ἡ ἡμέρα θλίψεως)에 생명의 책에 기록된 자는 구원을 즉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은 시험의 우주적 성격을 보여준다(계 3:10).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 구별 법이 무엇인가?
하늘에 속한 자 –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의 인침 받은 자, 생명책에 기록된 자다.
땅에 속한 자 – 사탄에 속한 자, 짐승의 표를 받은 자,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다.

(하늘에) 거한다 - 스케노오(σκηνόω)’ 성막을 치다, 천막을 치다, 거처하다, 거한다는 의미다. 영이 옮겨진 거처를 상징한다.

(땅에) 산다 -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 살다, 유숙하다, 육신이 자리잡고 사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된 단어이기도 하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겠다’는 것은 단 12:1, 10의 문맥으로 볼 때 시험으로부터 제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험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보호해 준다는 의미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p. 200). 따라서 환난은 사탄에 속한 자들에게는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이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적 실력을 키우기 위한 시험(test)으로는 “도키마조(δοκιμάζω)가 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믿음으로 증명한 증인이다. 다른 하나는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temptation)으로 동사 ‘페이라조(πειράζω)’, 명사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가 있다. 예수님을 마귀가 시험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징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는 훈련으로 “도키마조(δοκιμάζω)에 속한다. 징계란 헬라어로 ‘파이데이아(παιδεία)로서 어린이를 말하는 ’파이디온(παιδίον)‘과 같은 어원이다. ’아들을 만들어간다‘, ’훈련하다‘는 뜻이 있다. 

3)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권면이 무엇인가?(3:11)

“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속히 임하리니’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이면서 위로와 보호를 위해 상시적으로 오시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2-3장의 예수님의 오심은 2:5, 16, 3:3에서 조건적으로 오심을 말하므로 상시적 오심을 의미하는 경우와 2;25, 3:10의 경우처럼 재림의 때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11절의 오심은 이 두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예수님의 오심은 언제나 ‘속히’의 개념을 가진다. 그것은 고난을 당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극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오심은 성령을 통하여 상시적으로 성도들에게 일어나며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곧게 잡고 있다가 주변의 도전에 굴복해서 잡은 것을 놓으므로 승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수고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견고히 해야 할 것이다. 

4) 이기는 자에게 주는 종말론적 약속이 무엇인가?(3:12)

“12이가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3:12). 

첫째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된다.
이는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 위에 새긴다. 기둥’은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를 말할 때 사용한다. 이것은 일종의 승리의 사인(sigh)으로 지상의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한 교회는 하나님께 속하는 백성이 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한 기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는 표현은 이 지역 주민들이 지진 때문에 도시를 떠나 대피했다가 돌아와야 했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따라서 지푸라기 같은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도성을 약속받은 사람이 받게 될 새 집은 흔들리지 않는 기초 위에 세워진 영원한 도성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이기는 자에게 기록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기록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소유임을 표상하듯 곧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갈 4:26; 빌 3:20).

*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 예루살렘은 천국이 아니다. 미래에 완성될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계 21:9-10).
계 21:9에서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어린양의 아내 그리스도의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계 21:10에서 새 예루살렘을 보여준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아내 신부인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미래에 완성될 교회의 모습이다.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건축적 구조를 통해서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이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하라(계 13:12)”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성 곧 새 예루살렘의 이름‘ 그리고 ’나의 새 이름‘은 서로 동격 관계이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다.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새겨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은 성육신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구속과 생명의 이름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이다.

4) 마지막 권고가 무엇인가?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1) 귀 있는 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귀(우스, οὖς)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귀가 있는 자는 많지 않다. 더구나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어져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딤후 4:3-4) 예언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13:19, 13:43, 막 4:9, 4:23; 눅 8:8, 14:35)라고 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7교회에 보낸 편지의 결구(結句)로 반복되었다(계 2:7, 11, 17, 29, 3:6, 13, 22, 13:9) 성령으로 할례 받은 자의 귀 만이 들을 수 있다(행 7:51).

결론(적용)

빌라델비아 교회가 자연 지진에 시달린다면 우리는 영적 지진에 시달리고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의 혼합 종교에 시달린다면 우리는 기복사상과 배금주의의 유혹을 받고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의 회유를 받고 있다면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리는 것이며 굳게 붙잡는 길 밖에 없다.  

질문
 
1. 빌라델비아의 뜻이 무엇인가?
 
2.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이 무엇인가?
 
3.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칭찬이 무엇인가?


 


빌라델비아 교회 터의 성 요한 교회 간판 
                                          빌라델비아 교회 터에  ‘성 요한 교회’라고 쓴 안내판이 붙어 있다. 
                                                       
                                            
 


 

교회 터 뒷쪽에 작은 모스크가  보인다. .



 

 



                                     빌라델비아 교회 터, 주님의 칭찬을 받던 교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돌과 벽돌로 겹겹이 쌓은 육중한 기둥만이 세월을 지키고 서 있다.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역사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히타이트, 고대 그리스, 비잔틴 등의 문명과 기독교, 이슬람이란 두개의 문화가 교차하고 대립하던 지역이다. 따라서 고대도시에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가 남아 있다. 하루 다섯 차례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아잔’(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려 퍼지는 이슬람국가 터키에서 기독교 유적지를 만나는 순간은 고대와 현대 시간이 중첩되는 듯했다.


 

현재 ‘알라셰히르’로 불리는 고대도시 빌라델비아에는 성벽과 아크로폴리스 극장, 신전 등의 흔적이 있지만 오랜 세월의 풍상과 도시개발로 고대도시의 원형은 찾기 어렵다. 마을 한가운데 AD 6세기에 건축된 빌라델비아 ‘요한 교회’가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약 15m 높이의 육중한 돌기둥이 당시 교회의 규모가 거대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BC 1세기경 ‘밀의교’(密儀敎)의 규정이 기록된 대리석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빌라델비아에 이교(異敎)가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종교적 풍토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의 간계에도 흔들리지 않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헬라어로 ‘형제사랑’이란 뜻을 가진 빌라델비아는 소아시아 7개교회 중 가장 작은 도시였으나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킨 교회’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여기서 ‘열린 문’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이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복음 전도의 문’으로 해석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고후 2:12). 복음전도를 위해 주님께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빌라델비아에 최초로 전도한 사람은 사도바울의 친천 ‘누기오’로 전해진다.


 

또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겠다”(계 3:10상)고 말씀하신다. 또 충실한 성도들을 향해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계 3:12). 현재 세상으로부터 크고 작은 도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향해 울림을 주는 말씀이다.


 

빌라델비아 고대도시는 따로 보존되지 않아 아쉬웠다. 고대도시 위에 신도시가 형성돼 유적지 바로 옆이 주택가이며, 교회 터 앞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 원래 빌라델비아 기념 교회 유적으로 6개의 기둥이 있었으나 그 중 3개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건축했다고 한다.

이석봉 목사
한국 최초 신구약성경주석을 집필한 경건한 주경신학자 박윤선 박사의 문하생이요, 13개국 언어에 능통한 구약원어신학자 최의원 박사의 문하생이다. 목사요 박사로 총회신학교와 총회연합신학교에서 학장으로 섬겼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신 총회신학교(학장 / 전 국회부의장 황성수 박사)에서 5년,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 유니버시티 하와이 브랜치(학장 / Timothy I Han 박사)에서 13년, 수원신학교(학장 / 이근구 박사)에서 10년간 성경원어교수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쳤다. 예장 합동 인터넷신문 리폼드뉴스(www.reformednews.co.kr)의 논설위원이며 칼럼리스트이다(이석봉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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