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특징과 그 구원론적 함의2

김광열(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18/12/12 [11:17]

[논문]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특징과 그 구원론적 함의2

김광열(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입력 : 2018/12/12 [11:17]
이 글은 김광열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개혁신학의 성찬론의 회복을 위하여 그 의미와 영적 임재설,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찬을 제시하고 있다.

III. 성찬의 의미

그러면,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성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찬에서 신자에게는 어떤 영적 유익이 주어지는가? 성찬은 우선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예식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으면서,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고 승귀하신 현재적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확인하고 그 분이 이루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과 은총들을 받아 누리며 영적 성장을 이뤄가는 구원론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또한 그러한 영적성장을 누리는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도 향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박형룡 박사도 이러한 성찬의 의미를 4가지로 요약하여 주의 죽음, 그리스도에 참여(연합), 영적 양육과 성장, 그리고 신자들의 연합이라고 정리해주었다. 여기에서는 성찬이 의미하는 바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먼저 성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의 사건을 선포하는 예식이다. 대교리문답 168문에서 제시된 답은 성찬의 의미를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떡과 잔을 주고받으면서 그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설명한다.

성찬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죽음을 보게 된다. 떡이 떼어지고 포도주가 부어질 때, 물론 우리는 그것이 문자적으로 주님의 몸과 피라고 간주하지는 않지만 주님의 몸이 찢어지고 그 분의 피가 흘려졌던 골고다 현장을 기억하게 된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골고다 언덕에서 주님이 감당하셨던 그 속죄적 죽음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고전 11:26에서 바울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고 성찬의 의의를 설명했다.

2) 더 나아가 성찬을 통해서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모든 구원의 영적 축복들에 참여한 자됨을 확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떼어주신 떡과 포도주가 상징해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받아먹음으로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확인하고, 그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의 모든 영적 축복들에 현재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대교리문답 168문에서도, 성찬의 참여자들은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을 확인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성찬은 -개혁신학의 구원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말해주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예정의 은총에서부터 거듭남(중생), 회개나 믿음, 칭의, 양자, 성화 등과 같은 영적 축복들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누리게 되는 영적 축복들이고 성찬은 그 연합의 축복들을 확인시켜주는 예식이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의 구원론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예수 믿는 것은 별도이고, 또 구원받는 것은 또 다른 일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 그 분과 연합함으로서 그 분 안에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고전 1:30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고 의로움(칭의)이시고 거룩함(성화)이심을 말해준다. 그 밖의 중생이나 회심, 양자, 성도의 견인 등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적 축복들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영적 축복들은 그리스도와 분리되거나 떨어져서는 주어질 수 없는 성격의 축복들인 것이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공급받음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재확인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성찬의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찬은 구원론적 현재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구원론적 중요성”의 의미는 중세 카톨릭의 미사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다시 끄집어내는 과거시제적 중요성이 아니라, 승귀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현재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시는 성령의 비밀한 역사를 통하여 향유되는 구원의 영적 축복이라는 현재적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성찬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존재임을 확인하고 선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참 생명을 얻게 되며 영적 음식을 먹고 성장하게 된다. 이 땅의 음식들이 우리의 육적 존재에 자양분을 공급하듯이, 성찬에서의 “영적음식”은 신자의 영혼에 영적 자양분을 제공해준다. 대교리문답도 “성찬을 합당하게 받는 사람들은 그의 몸과 피를 공급받아 영적으로 강화되고 은혜 안에서 성장하게 되며”라고 말해준다.

칼빈은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의 실제성(real presence)에 대한 핵심개념으로 “참 생명을 얻게됨”을 제시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4권 17장 8장에서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성찬에서의 “생명 얻음”의 원리를 설명한다.

먼저 그리스도만이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이심을 사도 요한이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분은 “생명의 샘이시며, 또 시작이 되시며, 모든 것은 여기서 받아 살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생명의 말씀”이라고도 했고 (요일 1:1), 또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요 1:4)고 말하기도 했다고 지적하면서 칼빈은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모든 피조물에까지 항상 힘을 미치게 하여 모든 것을 숨 쉬게 하며, 또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요한이 그 뒤에 덧붙여서 쓰기를 “이 생명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육을 취하셔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의 손으로 만질 수 있게 자신을 주심에 이르러서였다”고 말하고 있다.(요일 1:2)

이처럼,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피조물이 그 힘으로 존재하고 생명을 얻게 됨을 성경이 가르친다고 지적한 후에,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말씀되신 이로부터 멀리 떠나 교제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그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상태에서 해결받기 위해서는 말씀되신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으로 들어와야 하며, 그래야 생명을 얻고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비록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충만한 생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고 하여도 당신 자신은 그 말씀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 있어서 당신 자신 가운데서, 또 당신 자신의 주위에서 죽음 밖에는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고 하면 거기서 당신이 파악하는 확신은 얼마나 작은 것일까? 그러나 생명의 샘이 우리 육체의 모습을 취하여 머물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벌써 그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으시는 일은 없고 우리가 그 분에게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그는 자신께서 머물러 계셨던 육체를 소생시켜서....이 육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죽지 않는 삶으로 양육을 받는 데 이르게 하신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이다” “내가 주는 떡은 나의 살이며, 그것을 나는 세상의 생명으로서 주려고 하는 것이다”(요 6:48, 51)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칼빈은 이러한 설명의 결론을 요한복음 6:55에서 찾고 있다: “그의 살은 참된 양식이며, 그의 피는 참된 음료로다.” 결국 그리스도의 살은 “생명을 주는” 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강요의 바로 다음 절에서 칼빈은 그와 같은 요점을 반복한다: “그 분은 그의 인성 안에 차고 넘치는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그 때문에 그 분의 살과 피를 받는 자는 누구나 동시에 생명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결국, 성찬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가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요한복음 6장 53절 이하에서부터 주님은 그러한 교훈을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물론, 예수님은 여기에서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늘로부터 내려온 영적 양식인 자신과의 연합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신자가 사는 것은 물질적인 살과 피를 먹음으로가 아니라,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를 먹음으로서 그것이 상징해주고 있는 실체인 (몸을 지니신 채로 승귀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지는 영적양식을 먹게 되며 생명을 얻게 되고 그가 이루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성찬에서 신자는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고 있는 참된 양식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고, 또 그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되며, 구원의 여정에 필요한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생명 얻은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4) 또한 신자들이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 그들은 주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교리문답도 “동일하고 신비한 몸의 지체로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있음을 증거하며, 또한 이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울도 고전 10:17에서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라고 말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으므로, 그들도 또한 서로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5) 이와 같은 성찬의 의미들을 깨닫게 될 때, 결국 신자는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고, 또 앞으로도 더 풍성한 영적 축복들로 인도받게 될 것도 확신하며 감사하게 된다. 성찬에 참여하는 동안, 신자는 자신을 위하여 당하신 주님의 죽음과 베푸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을 확신하게 되며, 그분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가시적인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체험적으로 느끼게 된다.

주의 만찬으로 자신을 초대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한 몸된 그의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영적 음식을 나누는 가운데, 또한 신자는 앞으로 종말에 주어질 어린양의 성대한 혼인잔치에까지도 초대받게 될 것을 확신하며 감사하게 된다.

IV.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찬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이 제시하는 바, 신자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외적 수단들에는 말씀, 성례, 기도가 있다. 그것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서 자신이 이루신 중보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수단들로서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 가지의 은혜의 수단들 중의 하나로서 성례에는 성찬과 세례가 포함되지만, 그 둘은 차이점을 지닌다. 그 성례들에 참여함에 있어서 두 가지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대교리문답 177문이 지적하는 두 가지 차이점들을 요약해보면, 첫째는 세례가 신자의 생애 중 한 번만 시행되는 것이나 성찬은 일생동안 자주 시행하는 것이라는 점이며, 두 번째 차이점은 세례는 유아에게도 시행될 수 있으나 성찬은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행된다는 것이다. 성찬은 그 예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교리문답 속에서 성찬이 어떻게 은혜의 수단으로 설명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로 정리해보려 한다.

1) 그렇다면, 만일 불신자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 주제는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취급하고 있다. 기독교강요 IV권 17장 33절, 34절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이 떡 안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불신자들의 성찬참여의 주제를 거론한다. 그들은 불경건한 자나 사악한 자 혹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몸을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영적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지 않은 채로 먹는 자는 모두 김빠진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같고, 그리스도의 살을 조금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이 죽은 것으로서, 힘이 없는 것으로서 비신자가 더럽히는 대로 버려두었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너무나도 욕보이며 또 찢는 것이 된다.

결국 불신자가 성찬에 와서 떡과 포도주를 받을지라도 그들은 단지 외면적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며, 헛되이 그리고 목마른 상태로 그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칼빈은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육적인 먹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참여해야 진정으로 받아먹을 수 있고, 그 분과 연합 안에서만 성찬의 진정한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 제IV권 17장 34절에서 칼빈은 이러한 이해는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어거스틴의 글을 인용한다: “성례전의 힘은 눈에 보이는 성례전이 아닌, 내면적인 성례전에 있으며 그것은 마음으로 먹는 것이지 이로 깨무는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칼빈에게 있어서도 성찬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은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성찬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마술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찬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은혜의 방편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신자가 성찬에 참여한다 해도, 그는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성찬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고, 또 떡과 포도주도 단지 입으로만 씹고 갈 뿐, 진정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지는 못한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불신자에게는 성찬이 은혜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그러면, 믿음이 연약한 성도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문제에 대해서 대교리문답은 그들도 참여할 수 있다. 아니,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대교리문답 172문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혹은 자신이 성찬에 참여할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성찬에 참여해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주어지는 답은 이러하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혹은 자신이 성찬의 성례에 참여할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도, 비록 이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해도 그리스도에 대해 참된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걱정하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죄악을 떠나기를 거짓 없이 소원한다면, 그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믿음이 약하고 의심하는 성도들도 구원하기로 약속하시고 성례를 정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 없음을 애통하고 의심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그는 성찬에 참여해도 되며, 또한 성찬에 반드시 참여해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결국 172문답에서 성찬이란 은혜의 방편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성찬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찬에 참여하게 하여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며 영적 성숙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찬이란 단순히 골고다 언덕에서의 주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만 하는 예식이 아니라, 승귀하셔서 현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음으로서 그 분과의 연합을 확인하고 영적음식을 받아먹음으로서 연약한 믿음의 자리에서 영적 활력소를 공급받고 성장해가도록 돕는 효과적인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3)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 참여하는 동안, 그리고 참여한 후에 신자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대교리문답은 이 세 가지 시점들 속에서 성도가 준비하고 노력해야할 일들을 제171문, 174문, 그리고 175문에서 각각 답변해주고 있는데, 그러한 세밀한 지침들이 주어지는 이유도 역시 성찬이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은혜의 방편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도록 하기 위한 지침들인 것이다.

171문은 참여하기 전에 준비해야할 일들을, 174문은 성찬을 시행할 때 해야 할 일들을, 그리고 175문은 성찬에 참여한 후에 성도가 해야 할 일들을 말해준다.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 171문에 대해서 주어진 답은 이러하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를 살피고, 자신의 죄와 부족한 점, 그리고 자신들의 지식과 믿음과 회개, 하나님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진실된지,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야 하며,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새롭게 복종하고자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 모든 은혜를 새롭게 하고, 진지한 묵상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준비해야 합니다.”

이 모든 준비사항들에 대한 자세한 지침들은 신자가 성찬에서 참여하게 될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예식으로 이어지며 그래서 승귀하신 그리스도와의 영적 임재와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예식임을 전제로 할 때, 마땅히 해야 할 준비들인 것이다. 더 나아가 성찬은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 간의 사랑의 마음들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참된 하나됨을 회복해가는 예식이 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찬에 참여하는 동안에 해야 할 일들을 말해주는 174문에 대한 답 속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음으로서 진정으로 승귀하신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경험하고 그 분과의 연합을 확신하고 그 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영적으로 새롭게 되며 성장하는 “은혜의 방편”으로서 효과적으로 시행되기 위하여 성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찬 후에 성도들이 해야 할 지침에 대한 175문에 대한 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은혜의 방편으로 시행된 성찬예식의 결과들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이며, 둘째는 만일 성찬을 통해서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면 무엇이 잘못됐었는지를 돌아보며 다음 성찬에서는 은혜의 방편으로서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점검해야 함을 가르친다:

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성도들에게 있는 의무는 자기가 성찬을 받을 때 어떻게 행했는지, 그리고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만일 소생함과 위로를 받았으면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그 은혜를 계속 주시도록 간구하고, 퇴보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기가 한 서약을 시행하고, 그 성례에 자주 참석하고자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때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자기 자신의 성찬에 대한 준비가 어떠했으며, 또한 성례의 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와 관련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 앞에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면, 때가 되면 나타날 열매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비나 행동에서 잘못한 것이 발견된다면, 자신을 겸손히 하고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이후에 있을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에서 성찬과 관련해서 제시해주는 이와 같은 지침들은, 성찬은 단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승귀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로 들어감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은혜의 방편”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의 기념예식 정도로만 취급해야할 성례가 아니라, 신자의 영적 성숙과 구원의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게 하는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으로 그 의미가 한층 고양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찬이 “자주 기념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례가 그저 형식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시행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성례의 구원론적 중요성 혹은 은혜의 방편 차원의 중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성례가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로 나아가게 하고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는 은혜의 유효한 외적 수단이라면, 그것을 자주 시행하는 것이 성도와 교회에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자주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기하고, 이로 인하여 그들의 신앙을 북돋아 강하게 하고, 자신들이 힘을 얻어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그의 선하심을 선언하고 마침내는 이로 인하여 서로의 사랑을 배양하며 그들 서로가 이 사랑을 증거하여 그 유대로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식별케 하기 위하여 모든 신자들 간에 성례가 자주 이용되도록 제정되었다.”

V. 결론과 제안

본고에서 우리는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성찬이해를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찬론에 있어서 중세 카톨릭의 화체설을 거부했다. 그러나, 동시에 칼빈의 이해는 루터나 쯔빙글리와 같은, 다른 종교개혁자들과도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카톨릭의 화체설이 떡과 포도주의 본질의 변화를 근거로 하여 성찬의 신비를 주장하려 한 것도 문제이지만, 동시에 루터교의 공재설도 떡과 포도주 안에 주의 살과 피가 포함된다는 방식으로 주님의 몸에 참여하려 한 것은 승귀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 (신적속성교류에 관한 오해)에서 주어진 것임을 칼빈은 성경적으로 지적해 주었다. 카톨릭과 루터교가 성찬의 신비를 떡과 포도주라는 표상에 묶어둠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왜곡 혹은 제한시키는 오류를 범했다면, 반대로 쯔빙글리의 기념설은 성찬의 의미를 너무 피상적인 차원으로 추락시키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음을 칼빈은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칼빈의 “영적, 실제적 임재설”을 단순히 루터와 쯔빙글리의 관점들 사이에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칼빈이 이해한 성경적 구원론의 기초 위에서 일관되게 바라본 구원론적 가르침의 한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로버트 레담 교수는 칼빈의 성만찬 교리는 그의 전반적인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칼빈의 성찬론은 그의 신학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담이 지적하는 “그의 신학”이란 특히 그의 구원론을 가리키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진 구원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그리스도가 인류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루신 구속의 성취가 신자들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됨으로서 주어지게 되는데, 칼빈은 그리스도의 성취된 구속의 열매들이 신자들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오늘 신자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게 되고, 그 그리스도와 함께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중생, 칭의, 양자, 성화 등과 같은 구원의 영적 축복들이 주어지고 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빈에게 있어서 성찬이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는 예식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그 분과의 연합과 교제 안에서 구원의 은혜와 축복들을 향유하게 되는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육신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귀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통해서 이루신 모든 영적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이 칼빈과 개혁신학의 구원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살과 피를 영적으로 먹고 마시는 성찬 예식은 바로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통해 구원의 축복들을 누리는 은혜의 순간들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기억하거나 그 분을 기념하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분의 실제적인 임재를 영적으로 확인하고 누리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먹음으로서 영적 성숙을 이루어가는 은혜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례란 구원론적 현재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은 기도와 말씀과 함께 은혜의 수단으로서 교회 안에서 적극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연약한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성도들 간의 사랑의 교제의 회복을 이루기 위하여 성찬에 대한 바른 교육과 대교리문답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은 구체적인 적용지침들의 진지한 시행들이 지교회 안에서 실천되어질 때, 주님의 몸된 교회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을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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