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총회신학교 3천만 환 재정 사고와 그를 이용한 음모

1959년 통합측과 합동측의 분열의 원인은 신학적인 문제였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19/02/10 [00:41]

[역사] 총회신학교 3천만 환 재정 사고와 그를 이용한 음모

1959년 통합측과 합동측의 분열의 원인은 신학적인 문제였다.

소재열 | 입력 : 2019/02/10 [00:41]

 

【(리폼드뉴스)통합측에서는 박형룡 박사의 3천만 환 사건을 1959년 합동측과 통합측과의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합동측에서는 3천만환 사건을 이용한 W.C.C.측의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3천만 환 사건이 있기 이전부터 이미 총회 안에서는 W.C.C.와 NAE라는 두 세력이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대립의 씨앗이 발아 되어 갈등관계가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갈등과 대립은 이미 1959년 제44회 분열 총회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통합측에서는 박형룡 박사 3천만 환 부정지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에큐메니칼을 걸고 나온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시각이 W.C.C.을 지지하는 통합측의 시각이라고 한다면 W.C.C.의 신학적인 문제로 반대했던 합동측에서는 W.C.C. 운동과 그 신학을 은폐하기 위하여 박형룡 박사 3천만환 사건을 걸고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같은 두 대립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분열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려는 논리이며 분열의 정당성을 자신들의 유리한 입장에서 확보하려는 생각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이 분열의 책임을 논할 때에는 양측이 다 자유로울 수가 없다.

  

통합측의 역사학자들은 지나치리만큼 합동과 통합의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을 박형룡 박사 3천만 환 사건으로 전개한다. 민경배 교수는 “분열의 기원이 총회신학교 교장이었던 박형룡 박사의 신학 기금 유용에서 유래된 교장 사임과 관계가 있고 더욱이 에큐메니칼의 중상이라는 박형룡 일파의 소행에서 결국 왔다고 한다면, 한국 장로교회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에게 정통성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진현 목사의 말대로 역사를 그렇게 창작하면 안 된다(노진현,「眞實과 證言」(서울:하나, 1995), 64.).

 

조동진 박사는 ‘총회신학교 건축기금의 실체와 그 오용(誤用)에 관한 진상’에 있어서 그 헌금이 어떻게 박형룡 박사에게 전해졌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총회신학교 교장 박형룡 박사가 불법으로 지출했다는 신학교 건축기금 3천만 환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제10장로교회의 장로로 미국의 대 은행금용기업가가 개인적으로 친구로서 교장 박형룡 박사에게 보낸 1만 달러 개인수표와 별도로 공식으로 보내진 10만 달러 중에서 지출한 것이었다.

 

제 십장로교회 장로의 이 특별헌금은 본래는 미국장로교회 총회의 세속적이며 비복음적인 것을 불신하는 제 십장로교회의 미국 은행금융가의 거물 장로가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를 통해서 한국의 신학교육을 위하여 헌금하기를 원하여 준비된 돈이었다.

 

그 특별헌금은 교장 박형룡 박사의 총회신학교에 보내진 것이지 그를 축출한 미국연합장로교회 산하 신학교인 장로회신학교에 보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교장 박형룡 박사가 남산에 있는 신학교 대지를 불하받기 위하여 3천만 환을 이사회의 결의 없이 지불한 것은 행정상 과오이기는 하지만 그 지불의 결과로 대지를 불하받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지 불하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으로부터의 헌금이 선교부를 통하지 않고 교장 박형룡이 수령한 것부터 문제를 삼고자 했던 선교부로서는 그것을 교장 박형룡 박사의 축출을 위한 구실로 삼았던 것이다.

 

교장의 행정적 실수를 구실로 박형룡 박사를 추방하고 에큐메니칼 정신에 맞는 새 교장을 세운 연합장로교회의 에큐메니칼 정책에 합치된 신학교로 개편하자는 것이 그들의 본심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의 개요를 박형룡 박사의 진술서를 총회신학교 재정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대한예수교 장로회 제43회 총회(1958), 180.).

 

총회에 보고 된 이사회의 보고에 의하면 “박형룡 교장께서 교장직을 사임하셨음으로 이를 수리하였사오며”라고 기록하였고 “후임 교장이 선출된 때까지 교장 대리는 총회장으로 하되 이사장이 협동케 하였사오며”라고 보고하므로 일달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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