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권징조례 단상(斷想)

현 체제에서 '돈 없으면 고소하지도 당하지도 말라'고 한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19/04/22 [07:58]

예장합동, 권징조례 단상(斷想)

현 체제에서 '돈 없으면 고소하지도 당하지도 말라'고 한다.

소재열 | 입력 : 2019/04/22 [07:58]

▲1930년 판 권징조례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권징조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규정된 권징재판에 의한 절차법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우리나라로 보면 민법, 형법과 민사, 형사소송법을 총괄한 것과 같은 법규정집이다.

 

총 제146조로 구성되어 있는 권징조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전국교회의 권징재판과 행정재판에 근거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러한 교단의 권징조례인 사법제도는 현행 대한민국 사법제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사법제도이다. 이러한 권징조례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2007년 전면 개정을 하여 권징조례권징으로 하되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근접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본 교단인 합동교단은 초기 선교사들이 웨스트민스터헌법을 번역하여 사용한 것을 약간씩 자구를 수정하여 100년 넘게 사용해 오고 있다.

 

이 헌법의 특징은 전형적으로 1643년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제정할 당시 영국의 사법제도를 참고하여 본 교단 헌법을 이해하여야 한다. 영국은 2005년 헌법개혁법률에 의해 2009년에 대법원이 설립됐다. 그 이전에서는 상원 의원 12명의 종신 상원의원이 3심 재판을 했다.

 

이런 유사한 제도가 웨스트민스터헌법의 권징조례에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헌법은 본 교단 헌법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위 1643년 당시의 웨스트민스터 헌법의 권징조례가 오늘날 본 교단의 헌법 정신과 그 절차로 진행되어 운영되고 있다.

 

국가 권력의 입법, 사법, 행정인 3권이 분립되어 절대 권력으로 인한 부패를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은 3권 분립과 무관하다. 최고의 행정과 사법치리회인 총회는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체계하에서 권징재판은 입법과 행정으로부터 독립된 법원과 같은 성격이 아닌 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장악하는 형태의 교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행정과 입법권을 갖고 있는 총회가 사법권까지 장악하고 있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판은 요원하다.

 

따라서 이러한 교권을 갖고 있는 주체세력들에게 괘씸죄에 걸리면 용서받을 수 없다. 그래서 전국교회는 늘 이로 인한 정치교권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교권에 언제 교회와 담임목사가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교회들이 교단과 노회의 필요성, 교단과 노회가 과연 교회에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그 필요성에 회의적이다.

 

본 교단 권징조례의 규정과 현행 우리나라 사법제도와 상이하여 현행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틀에 의해 권징재판을 이해하다 보니 헌법인 권징조례 규정은 무용지물이 되고 교단총회 규칙과 총회결의로 권징재판을 하여야 하는 웃지 못한 일들이 발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징조례 규정들은 실무적으로 현행 교단의 권징재판과 충돌이 발생된다. 이런 경우에는 교단헌법의 권징조례 규정을 나열하여 언급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권징조례 각 규정들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법통들이며, 전문가가 된다. 오히려 교회를 지키고 살려야 하는 법이 교회를 죽이고 목회자를 죽이는 법이 되어 버렸다.

 

현행 권징조례가 갖고 있는 권징재판의 절차법과 총회와 각 노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권징재판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총회도 오해하고 이러한 권징재판을 해석하여 교회 분쟁을 종국적으로 판단하는 법원 판사들도 오해하고 있다.

 

법원 판사들은 교단헌법의 해석의 전권은 총회라고 인정하여 적용하면서 자신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권징조례 조문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에는 총회 유권해석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총회 유권해석도, 법원 판사들의 권징조례 해석도 모두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제 권징조례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총회 규칙과 총회 결의를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할 때가 됐다. 아니면 다시 전면 개정작업을 하여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권징조례로 권징재판을 시행할 때 과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필자가 볼 때에는 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즉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본다.

 

가장 좋은 길은 돈이 없으면 고소하지도 말고 고소당하지도 말라는 일각에서 비아냥하면서 내놓은 평가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회나 총회 재판국에 소송이 진행중 때 자신만만한 경우는 한결 같이 로비가 진행되고 있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이제 권징조례는 누구 편에서 해석하여 재판을 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법학자로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소재열 목사(한국교회법연구소,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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