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우리의 메시야

요 1:35-42

김순정 | 기사입력 2019/09/21 [17:12]

[김순정목사 설교] 우리의 메시야

요 1:35-42

김순정 | 입력 : 2019/09/21 [17:12]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다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것을 증거했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를 보고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의 메시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에서부터 메시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를 주시기 위해 위대한 역사를 진행해 가셨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비뚤어진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왕, 다윗과 같이 막강한 왕권을 가진 메시야, 로마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주는 메시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정작 메시야가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을 거부했습니다.

 

1. 요한이 증거한 하나님의 어린 양(35-36)

 

요한은 자기 제자들 중 두 사람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다니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b)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개념은 구약의 제사 개념입니다. 이 어린 양이라는 개념은 출애굽 당시에 확실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습니다. 그것을 유월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절기는 장자의 목숨을 대신해서 어린 양이 죽고 피를 흘린 것을 기념합니다. 여기서 대속의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린 양은 대속, 희생제물, 구속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어린 양은 인간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사람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해결하는 길은 형벌을 받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자기의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을 갚아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속은 인간의 편에서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편에서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적인 은혜입니다.

 

딛 2:11-14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2.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37-39)

 

요한의 두 제자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37). 예수님은 그들이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했습니다(38). “무엇을 구하느냐”(티 제테이테)는 ‘너희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들이 ‘어떤 목적,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의 거처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지를 알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39).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디에 머무는지,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알려 주시지 않고 ‘너희가 직접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예수님께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했습니다. 그들이 그 날 종일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교회의 건물을 보여주고, 건물의 크기, 교인의 수를 알려주고, 교회에 나오면 부자되고, 건강하고, 자녀가 잘되고, 원하는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이런 것들을 말하여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도의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이 빠진 전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핵심은 바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전한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전도가 아닙니다.

 

3.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예수님(40-42)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두 사람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40). 안드레(안드레아스)는 갈릴리 바닷가의 벳새다라는 마을 출신의 어부입니다(마 4:18; 막 1:16-18). 그는 형제 베드로처럼 가버나움에 살았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자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안드레는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41).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십니다(42).

 

시몬은 히브리어 쉬므온에서 기원한 단어입니다. 야곱의 아들 시므온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시몬은 사막, 황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게바로 바꾸어주십니다. 게바는 아람어(케프)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것은 바위,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페트로스)가 됩니다.

 

예수님은 두 제자 안드레와 베드로를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진행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제자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결론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한 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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