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성탄감사설교)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

마 1:18-25

김순정 | 기사입력 2019/12/21 [09:55]

[김순정목사 설교](성탄감사설교)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

마 1:18-25

김순정 | 입력 : 2019/12/21 [09:55]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성탄절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성탄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모여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년 중 행사이기 때문에, 혹은 달력에 나와 있는 휴일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입니까? 이제는 아기 예수 오심을 노래하는 캐럴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바르게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성탄은 세상에 구원자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 복된 소식을 기쁨으로 전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성령으로 잉태된 그리스도(18-20)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사실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합니다(18). 마리아와 요셉은 약혼을 한 사이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동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동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임신은 보통 생육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를 강조합니다.

 

사람에 의해 임신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임신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원문은 전치사 에크(ek)를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통 생육법에 의해 출생하게 되었다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수 없습니다. 아담의 원죄를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분이 오셔야 했고 우리 대신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통 생육법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되자 남편인 요셉은 마리아와의 약혼을 조용히 끝내려 했습니다.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9). 그런데 이 일을 요셉이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20). 요셉은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즉 유다 지파 출신이며 다윗의 후손인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창 49장에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유다 지파에 주어졌습니다(창 49:9-10). 그리고 삼하 7장의 다윗의 언약을 보면 그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삼하 7:12-16). 요셉은 바로 그 계보를 잇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요셉의 아내인 마리아에게서 출생하게 될 아기는 바로 이런 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야만 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성탄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소개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2.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21)

 

다같이 21절을 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천사는 계속해서 요셉에게 아들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예수(Iesous)라는 이름은 구약시대에도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호세아가 그것입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헬라어로 음역하면 예수가 됩니다.

 

즉 예수라는 이름은 앞으로 그분이 해야 하는 일, 사명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분입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정치적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헤롯 대왕을 꺾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자기 백성의 죄를 해결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로마로부터의 해방자, 헤롯으로부터의 해방자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다윗의 시대를 꿈꾸며 메시야가 오시면 세상을 정복하는 강력할 왕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왕의 자리에 앉게 되시면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막 10:35-39절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3.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22-25)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을 하고 동거하기 이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의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예언된 것입니다(22-23).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약 700년 전에 이미 이 일에 대하여 예언이 주어졌습니다.

 

사 7: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처녀의 몸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사건이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처녀의 몸에서 오시는 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Emmanuel)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동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녀의 몸에서 날 메시야에게 적용되는 칭호입니다. 이 이름에서 보는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버리지 않고 죄악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25). 드디어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야 예수님이 출생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의 역사는 이렇게 성취됩니다. 창세기 3:15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은 마 1:25절에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이고, 복된 소식입니다.

 

결론

 

2019년 성탄절이 돌아왔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세상에는 영원한 기쁨도 소망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고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며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이 복된 소식을 세상에 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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