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정교분리론

김순정 | 기사입력 2020/01/11 [19:11]

칼빈의 정교분리론

김순정 | 입력 : 2020/01/11 [19:11]

▲ 칼빈 (1509-1564)   © 리폼드뉴스

 

오늘날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첫째는 에라스티안파의 제도(국가 지상주의)이다. 이것은 교회를 국가 내에 있는 하나의 기관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교회를 직접 통치하는 것을 강조하고 교회 자체의 내부정치를 부인했다.

 

둘째는 교회 지상주의의 제도이다. 이것은 국가를 교회의 일부분으로 본다. 그래서 교회가 국가 위에 군림한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국가에 대한 배타주의이다. 이것은 국가 정치에 대해 교회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국가이고 교회는 교회이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정치적 무질서와 혼란에 있어 교회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과거 재세례파의 주장이기도 했다.

 

넷째는 정교 분리 및 보완주의이다. 교회와 국가는 다같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나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편이 다른 편에 대해 어떤 권한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회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있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고, 국가는 교회를 보호하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우리 장로교회는 마지막 네 번째 견해를 받아들인다. 칼빈을 비롯해서 개혁주의는 정교분리 및 보완주의를 국가와 교회관계의 바른 이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칼빈이 말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강요」 제4권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영적 통치와 국가 통치의 차이점

 

칼빈은 종교개혁자이며 장로교회의 정치체계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신학의 체계를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철저하게 성경에 기초하여 신학 사상과 교회의 정치체계를 세워나갔다. 그는 그의 저서인 「기독교강요」 제4권 20장에서 “국가 통치”라는 주제를 가지고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해 나간다. 그가 그의 저서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쪽에서는 미친 야만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 제도를 전복하려고 날뛰고 있는 동시에 또 한 편에서는 군주들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군주의 권력을 과장해서는 하나님 자신의 지배에 대립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해독을 다 억제하지 않으면 순수한 믿음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인류의 유익을 위해서 이 일을 마련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마음에 있는 경건에 대한 열성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입증하게 되기 위해서 이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J. Calvin, Inst, IV. 20. 1)

 

칼빈이 살고 있던 당시에 야만인들과 군주들에게 아첨하는 자들에 의해 국가와 교회관은 엉망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성이 엉망으로 치닫게 되면 결국 피해는 교회에서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몰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국가와 교회관을 가질 때 두 기관은 서로의 임무와 책임에 충실할 수 있고 신자들은 순수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는 성질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를 혼동하는 일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것이다. 이 둘의 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이 둘을 혼동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왕이나 집권자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본다. 이런 사람들은 법원, 법률, 집권자, 자유를 속박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개조하여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몸과 영혼을 구별하며 덧없는 현세와 영원한 내세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과 세속적 지배권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안다(J. Calvin, Inst, IV. 20. 1).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우리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든 또는 우리가 어느 나라의 법률 하에 살든지 이런 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상태에 있어도 아무런 구별이 없다(J. Calvin, Inst, IV. 20. 1). 따라서 교회는 국가를 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국가는 교회를 적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려 하거나 성질을 바꾸려 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오는 결과는 대혼란이 되고 마는 것이다.

 

2. 두 가지 통치

 

국가와 교회는 이렇게 구별된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는 부패한 것이고 그리스도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칼빈은 이런 생각은 함부로 날뛰는 광신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J. Calvin, Inst, IV. 20. 2). 그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초등학문에 대해 죽었고(골 2:20), 우리의 신분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옮겨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는 상관이 없는 일에 비열하고 세속적인 근심이나 걱정에 매인다는 것은 아주 하찮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재판이나 재판소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칼빈은 “그러나 이런 통치는 그리스도의 영적이고 내적인 나라와는 다르다고 우리가 지적한 것과 같이 우리는 이 둘이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J. Calvin, Inst, IV. 20. 2). 즉 국가와 교회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적인 통치는 시상에 사는 우리 안에 이미 하늘나라가 시작하게 만들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 속에서 영원불멸의 복락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통치의 목적은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외적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하며 우리를 사회생활에 적응시키고 우리의 행위를 사회정의와 일치하도록 인도하며 우리가 서로 화해하게 하고 전반적인 평화와 평온을 증진하는 것이다.”(J. Calvin, Inst, IV. 20. 2)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국가와 교회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를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신령한 생활을 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 세상의 영역으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지는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게 하고 사회정의를 이루도록 인도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살도록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국가가 없다면 악인들은 어떤 악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악인들은 더욱도 악을 저지를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질문한다. “악행을 억제하는 권력이 전혀 없을 경우 그런 악인들은 어떤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J. Calvin, Inst, IV. 20. 2) 국가라는 것이 없다면 악은 더욱더 창궐할 것이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찰 것이다. 하나님은 국가라는 기관을 통해 악을 억제하시는 것이다. 공의를 실천하고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국가라는 기관을 세우셨다. 이것이 국가가 가지는 또 하나의 기능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 정의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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