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한 모델로서 정근두 목사 설교 연구(3)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20/08/01 [19:13]

[논문] ‘하나님 중심적 설교’의 한 모델로서 정근두 목사 설교 연구(3)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김순정 | 입력 : 2020/08/01 [19:13]

  

 

2. 정근두 목사의 야고보서 설교에 나타난 성경 해석과 설교 원리

 

이제 구체적으로 정근두 목사의 야고보서 설교에 나타난 성경 해석과 설교의 원리를 살펴보자.

 

1) 성경 전체의 빛 아래서 야고보서 본문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신약 서신들의 인사말 차이를 설명하면서 신앙의 다양성과 자유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오늘 우리는 흩어진 열 두 지파에게 보내는 야고보의 인사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야고보는 어떻게 인사합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문안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실 신약 서신서를 보면 편지 초두의 인사에서 문안하노라고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보통 어떻게 인사합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13)와 같이 모든 축복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유일한 축복의 통로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비는 것이 신약서신의 일상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바울의 편지는 그러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도들은 어떻게 문안합니까?"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그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2)라고 문안합니다. 은혜와 평강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그 나름대로의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은 어떻게 인사를 합니까? 요한일··삼서에는 통일된 형식이 없습니다. 그때마다 적절한 형식으로 접근합니다.

 

요한일서와 요한삼서에는 형식적인 인사말 자체가 아예 생략된 느낌을 줍니다. 다만 요한이서에 그런 대로 한 번 인사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이 1:3). 하지만 여기서도 일상적인 표현을 피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대신 우리에게 있으리라고 말함으로 문안에 자기 자신을 포함시킵니다. 말하자면 세 번 가운데 한 번 문안하면서 그것도 탈 형식적으로 접근합니다. 마지막으로 유다서를 살펴봅시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1:1)라고 소개하는 유다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우선 사도들마다 인사말에 통일된 형식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모두 다 개성을 가지고 인사를 합니다. 같은 사람도 경우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요한처럼 아예 형식적인 인사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의 편지를 조금만 읽어보아도 거기 내포된 성도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야고보서와 로마서를 비교하며 각각의 의미와 차이를 분명히 제시한다.

 

문제는 로마서에서 바울의 주장과 오늘 야고보서의 본문이 서로 모순되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2:21-22). 224절에서 야고보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일언지하에 바울이 애써 가르치는 교리를 뒤집는 느낌을 줍니다.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받았다고 하는데 로마서에서 바울은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4:2)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성경 해석 원리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해석 원리 가운데 하나가 해석은 문맥의 흐름 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구절을 바로 해석(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구절의 앞 뒤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야고보는 저렇게 말하니 모순이 아니냐고 하면 나무는 보면서도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그런 면에서 야고보의 목적과 바울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기존 관념을 반박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끝까지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율법대로 살아야 된다고 믿는 이들을 향해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반면에 본문에서의 야고보의 목적은 실생활에서 아무런 열매가 없는 자들이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하는 데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 야고보 선생은 믿음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마치 별개인 듯이 나오는 이들의 주장(2:18 참조)을 반박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상대한 청중과 야고보가 만나서 다루는 청중은 문제가 서로 다릅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노력을 통해서 무언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가끔 우리도 그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고 하면 꼭 주를 답니다. “! 교회에 가긴 가야 하는데, 먼저 제 문제를 좀 정리해 놓고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2) 야고보서 전체의 구조적 관점에서 각 단락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예들을 찾아보자. “우선 전체적인 문맥 속에서 본문의 위치를 살펴봅시다. 어떤 의미에서 126절과 27절은 야고보서 전체의 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의 관심은 신앙의 진위에 있습니다. 거짓 경건과 참 경건을 구별해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이 세 가지를 126, 27절은 말하고 나서 21절에서 13절에서 계속해서 참 경건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불쌍히 여기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인간 차별이야말로 거짓 경건의 특색이요 속물근성의 표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14절부터 끝 절까지 참 경건은 행동이 뒷받침되는 신앙임을 설명합니다. 구체적인 돕는 행위, 그것이 있어야 참된 경건,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31절부터 12절에서는 참 경건은 자기 혀를 제어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얼핏 보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앞부분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13절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31절에서 시작했던 주제로 다시 돌아 가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도 다 아는 말이지만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3:1)고 말하고 나서 2절부터는 선생들이 범하기 쉬운 말의 실수를 길게 거론했습니다. 마치 처음에 시작한 주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 만큼 혀를 다스리는 문제를 길게 그리고 심각하게 다루었습니다.”

 

3) 가까운 문맥 속에서 본문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예들을 살펴보자.

 

본문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왜 지혜 없는 자인지 살펴봅시다. 앞 구절의 주제는 생의 어려움을 당하면 온갖 기쁨으로 여기라고 하는데, 그렇게 여기지 못하니까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니까 지혜가 부족한 자입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지만 야고보 선생은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문단마다 첫 명령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문단에서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명합니다. 두 번째 문단에서는 지혜를 구하라고 명합니다. 그럼 세 번째 문단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자랑하라,” 신나게 자랑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꼬집는데 야고보의 특징이 있습니다. 매우 간결해서 쉽게 앞뒤 문단을 연결 짓기가 쉽지 않지만 잘 살펴보면 내면의 흐름이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전후 관계를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은 13절부터지만 12절과 이어집니다. 12절부터 계속 시험이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12절에서는 외적인 시련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 이하는 내적인 유혹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나 시련이 12절에서 다루는 문제라고 하면 13절 이하는 우리의 마 음속에 일어나는 일반적인 유혹의 문제입니다. 공통 주제인 듯하면서도 12절과 13절 이하에서 말하는 시험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야고보를 통해서 주신 이 말씀의 흐름을 살펴봅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18절인데, 18절은 12절부터 시작된 말씀의 계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3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논리의 계속입니다. 12절부터 18절까지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우선 주제 파악부터 해 봐야 합니다. 자 그러면 이 부분의 전체 주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시험에 대해서, 특별히 시험의 원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야고보 선생의 논리 전개 방식을 잘 살펴보십시오. 우선 시험에 빠지는 원인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그다음 사람마다 시험에 드는 것은 자기 욕망에 이끌린 탓이라고 말합니다. 시험에 드는 원인이 아닌 것을 먼저 말하고 난 후, 무엇이 원인인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명제를 먼저 부정적으로 다루고 나서 다음에 긍정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빠진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선물과 그의 선하신 뜻이 우리 삶에 이루신 놀라운 사건이 무엇입니까? 18절은 그것을 말해 줍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그것은 바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8절은 17절의 논지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17절에서 야고보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은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8절에 와서는 하나님을 은인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낳아주신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논리적인 진전이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 자기의 해석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논지가 발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도 우리에게 귀하지만 그보다도 부모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더 귀한 분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온갖 선물의 한 예로서 피조물 가운데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생명으로 낳아준 구체적인 사건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그분이 우리를 사망으로 빠뜨리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13절에서 시작한 논지를 17절에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번 이야기하면 충분한데 같은 것을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왜 일까요? 인간을 차별하지 말라는 21절만으로는 야고보 선생에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절 이후에 같은 주제를 다시 논증하고 8절에서 다른 각도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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