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맥 11]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소재열 | 기사입력 2021/01/26 [13:03]

[성경의 맥 11]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소재열 | 입력 : 2021/01/26 [13:03]

 

 

창세기에 의하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다(5:21-26).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11:5-6).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은 어떤 성경적인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으며 그 창조세계를 붙드시고 보존하시고 보호하신다.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만남의 자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만드셨다.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며 그에게 영광과 찬양으로 경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아담 안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을 통해 구체화되며, 그 약속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주()가 되시며, 인간은 주()이신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해야 한다. 아담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해야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주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단에 속임수에 빠져 피조물의 지위를 상실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언약의 저주 조항에 해당된 심판이 임한다. 심판이 임했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동행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울 정도였으며 동행했다. 그래서 아담은 기쁨과 희락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동산지기로 삶(생명)을 누릴 수 있었다. 아담이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였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여 범죄하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으므로 동행이 아닌 심판이 임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심판과 동행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구속이라는 죄 용서함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동행해 주신다. 동행은 죄에 대한 용서의 결과였다. 구약성경에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사를 통해 실현되어 갔다. 이 제사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성취되었다.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위한 증거로 사용하셨다(11:4). 어떤 증거인가? 당사자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대리자를 내세워 희생하는 원리이다. 대리자는 당사자의 죄를 짊어지고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이는 장차 종말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으로 희생을 당할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가인에 의해 아벨이 죽자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주셨다. 하나님은 셋을 통해 자신의 구원계획을 계속 이루어가셨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한다(4:6).

 

하나님은 당시 불순종한 인간의 심판 속에서도 택한 언약의 백성들과 동행해 주심으로 구원계시를 이루어가셨다. 하나님은 동행하는 선택된 자들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언약에 의한 구원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구속은 죄에 대한 심판 중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그와 함께한 자들을 세워주셨다. 동행은 심판을 통해 극대화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는 하나님은 언약과 약속의 자손을 이어가시는 과정에서 에녹을 부르셨고 그와 동행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받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으며,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의 믿음이라고 한다(11:5).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한다(11:5).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장이라는 11장은 구약성경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들을 열거한다. 이들은 믿음으로 동행한 삶을 인정받았다(11:2). 이러한 믿음의 증인들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한 삶은 우리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12:1).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 주시고 동행해 주시고 기뻐하신다면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가? 즉 무엇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들과 동행해 주시고 만나주시는가? 인간의 열심인가? 인간의 정성인가? 인간의 의로움인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이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은 감동을 받아 우리들을 만나주시는가?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우리들을 만나주시는가? 하나님과의 동행 조건은 무엇인가?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가? 그 조건은 지상에는 없다. 인간의 요구와 노력에 의해 만나는 신은 신이 아니다. 철학자 칸트는 현상계에 속한 인간이 초월계의 신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신은 이미 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내놓은 결론은 인간을 신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철학적 논거는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알게 해주시고 믿게 해주시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하나의 주제로 모든 기록된 특별계시를 이끌어 가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성취되는지를 보여준다. 창세기에서는 씨앗의 형태로 발아된 구원계시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활짝 핀 꽃의 형태로 보여준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다. 셋의 시대에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셋의 6대손인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행하였다고 했다. 이것이 동행이다. 이 동행은 언약과 약속에 의한 선택 사상에 기초한다. 하나님이 먼저 에녹을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행할 수 있었다. 즉 동행할 수 있었다.

 

에녹을 통해 이루고자 원하신 하나님은 에녹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사게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다. 동행의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오늘날 하나님은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을 동행해 주셨는가? 즉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쓰임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 동석해 주셨는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행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일꾼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한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성경은 이를 우리들에게 각인 시켜주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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