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섬 선교를 위한 김정두 목사의 복음의 열정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 선교사인 이눌서 유대모 선교사가 1894년 4월 26일에 완도에 최초로 방문

소재열 | 기사입력 2021/11/07 [16:51]

완도 섬 선교를 위한 김정두 목사의 복음의 열정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 선교사인 이눌서 유대모 선교사가 1894년 4월 26일에 완도에 최초로 방문

소재열 | 입력 : 2021/11/07 [16:51]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은 1892113일에 이르러서야 7인이 입국했다. 북장로회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이 입국한 지 7년이 지난 이후였다. 남장로회 소속 7인 선교사들은 1892년 한 해를 보내고 1893년 새해를 맞이했다. 1893.1.28. 서울에 있는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인 빈톤 집에 모여 한국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는 장로회 출신 선교사들이 모여 장로회 미슌공의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예양협정(禮讓協定)인 선교지 분할이 결정되었다. 선교의 지역적인 편중과 중복을 피하고 같은 지역에서 과도한 경쟁을 피하려고 선교지역을 나누었다. 이때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당시 선교사 방문이 없었던 호남지역을 선교지역으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충청도 지역을 포함하여 남장로회 선교부의 선교구역이 되었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최초 7인 선발대  © 리폼드뉴스


1893.1. 28. 회의를 마친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2월에 1차 모임을 갖고 레이놀즈 선교사의 비서이며, 어학 선생이었던 청년 정해원을 전라도 도읍지인 전주에 파송하기로 했다. 정해원은 양반들이 사는 중심지 성안을 피하고 천민들이 사는 전주 성문 밖 은송리 언덕에 아담한 초가 한 채를 26불을 주고 매입했다. 이는 전라도 지역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이 교회가 바로 전주 서문밖교회인 전주 서문교회이다.

 

남장로회 선교회 소속 7인 선발대에는 의사 선교사가 없었다. 미국 선교본부에 인원 증원을 요청하여 1893년 제2진으로 의료선교사인 배유지 선교사(유진벨)와 유대모 선교사(두루) 부부가 서울에 도착했다. 이눌서(레이놀즈) 선교사는 장차 전라도 지역의 선교 확장과 지역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의사인 유대모 선교사(두루, A. D. Drew)를 대동하고 무려 47일간의 전라도 선교 여행을 떠났다.

 

이눌서 선교사는 두루 의사 선교사와 함께 1894327일 오전 730분에 서울에서 출발했다. 그날 오후 230분에 강화도에 도착했다. 다음날인 329에 제물포에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 출발하여 330일 새벽 430분에 군산항에 도착하여 전주를 거쳐 영광읍에 416일 도착한 후 17절에는 함평읍에 도착했다. 

 

▲ 1893년 4월 26일에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서 최초로 완도와 신지도를 방문한 선교사, 이눌서(좌), 유대모 선교사(우)  © 리폼드뉴스

 

17일 무안을 통해 418일 오전 10시에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 부둣가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었다고 한 젊은 청년을 만나기도 했다. 19일 해남 목장을 거쳐 우수영에 도착했다. 423일 우수영, 24일 진도에 도착했다. 진도에서 짐을 고흥으로 보냈다.

 

진도에서 해남 완도, 신지도, 저리도(거금도), 녹동을 거쳐 고흥으로 이동하는 바닷길에 짐을 가지고 출발할 수 없었다. 대신 짐은 육로로 먼저 보냈다. 1894426일 완도를 거쳐 27일 신지도, 저리도(거금도)를 거쳐 오후 4시에 녹동에 도착했다. 신지도와 저리도(거금도)427일에 선교사가 방문했다.

 

필자는 거금도의 기독교 전래사를 집필하면서 호남의 최초 선교사의 전라도 선교 여행의 발자취를 따라 진도, 해남, 완도, 신지도를 여행했다. 이때 완도에서 목회하면서 섬 선교 사역과 복지관을 운영하는 김정두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특히 1894426일에 최초로 완도에 이눌서 선교사와 유대모 선교사가 방문한 이후 127년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 완도읍 전경  © 리폼드뉴스


1894426일에 최초로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완도, 신지도, 저리도(거금도)라는 섬 선교 여행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인 목사 선교사인 배유지, 의사이며 동시에 목사인 오웬 선교사 등이 전남의 전역에 복음을 전했다. 특히 그에게 전도를 받거나 그의 조사들이 완도에까지 복음을 전하여 오늘의 완도 선교가 그 꽃을 피우게 됐다.

 

최초로 선교사가 완도를 비롯한 신지도를 방문한 지 90년이 되는 해인 1983한국섬마을선교회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완도를 중심으로 섬 선교가 이루어졌다. 성결호와 천사호라는 이름을 가진 두 대의 복음선까지 운영하면서 활발한 선교 사역이 이루어졌다. 섬 선교의 한 중앙에 김정두 목사가 있다. 완도는 265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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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두 목사는 1982년 경기도 안양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부흥하던 중, 섬 선교를 위한 완도를 위해 목회지를 완도로 옮겨 완도선교교회를 개척했다. 1983년에 완도선교교회를 설립하면서 동시에 한국섬마을선교회를 설립했다.

 

한국에는 3,201개의 섬이 있고 517개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완도는 26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는 섬을 돌며 영화를 상영하는 등 복음을 전했다. 이 사역은 군 복무 시절 익혀둔 영사기 활용기술이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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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섬이나 농어촌 독거노인의 어려운 형편, 노인들의 임종을 지키면서 노인을 돌볼 시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양로원을 설립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평강재단 설립과 양로원 및 복지원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다현재 약70여명이 돌봄 혜택을 받고 있다. 대지4,000여평에 1200여평의 건물이 자라잡고 있으며  구 건물은 해암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방문객들을 위해 무료로 숙소를 재공하고 있기도 한다.

 

김 정두 목사는 완도군 홍보대사이며 2016년도에는 완도군민의상과 미국남가주목사회로부터 자랑스러운 목회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1999년 1월12일부터 2016년 12월23일까지 미국 본도 50여개 주를 7바퀴를 돌며 530여교회에서 800회 이상을 간증집회 및 부흥회를 인도할 정도로 미국을 방문했다

 

 신지도 © 리폼드뉴스

 

김정두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소속 목사이며, 현재 동목포노회 노회장이기도 하다.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복음의 접촉점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활용한다. 특히 노인 복지를 비롯한 붕어빵 전도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김정두 목사와 이영채 사모  © 리폼드뉴스


김정두 목사의 전도 열정과 섬 선교는 지칠 줄 모른다. 아직도 섬 지역에 교회가 없는 곳에 복음을 전하며, 완도의 미래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눌서(레이놀즈) 선교사, 유대모(두루) 선교사의 뒤를 이어 완도의 여러 섬을 방문하여 선교하는 이 시대의 사도 바울과 같은 정신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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