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산책(10) 4:1-22/ 약속의 후손

김순정 | 기사입력 2013/03/02 [10:48]

룻기산책(10) 4:1-22/ 약속의 후손

김순정 | 입력 : 2013/03/02 [10:48]

1-6절. 가까운 친족의 거부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가 거기에 앉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성문에는 넓은 공터와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만나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읍의 장로들이 백성을 만나고 율법의 판결을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이 이곳에서 백성의 송사를 직접 맡아 판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며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성문 어귀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는 성읍의 유력한 자만 가능했습니다. 아마도 보아스는 그 성에서 이러한 위치에 있던 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오미의 가정의 기업을 무를 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아스는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그 성읍의 장로 10명을 청하여 함께 앉게 합니다. 10명을 부른 것은 재판 사무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Cassel). 이렇게 완전수인 10명의 장로를 불러서 재판하는 것은 후에 다른 말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의 소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오미는 그의 남편 엘리멜렉이 소유했던 땅을 팔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그 친족에게 그 기업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만약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사서 자신의 소유를 삼을 수 있습니다. 대신에 나오미와 룻을 거두어야 했고, 그의 가문을 이어주어야 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싫다고 한다면 그의 다음으로 2순위인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4절에 보면 그 친족은 무르겠다고 합니다. 아마도 친족은 여기서 엘리멜렉의 소유지에 대한 것을 듣고서 그렇게 대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음의 말을 듣고서는 마음이 바뀝니다.

5절에 보면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죽은 자의 아내 즉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조건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이 죽고 나서 그의 기업은 두 아들에게 상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 역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업은 가까운 친족에게 돌아가는데 그것이 바로 두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둘째인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제 룻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업에 대해 권리는 룻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소유지를 사야 하는 기업 무를 자는 룻과 결혼하여 전 남편의 이름으로 그 기업을 잇게 하고 족보를 잇게 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땅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문의 대를 이어주는 후손을 생산해주어야 하는 책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혹시 그것으로 인해 손해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친족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무르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오미의 기업만 단순히 무른다면 그에게는 손해가 없고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룻의 기업까지 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법에는 희년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희년이 되면 땅을 다른 이에게 팔아도 다시 다 찾을 수 있습니다(레위기 25:25-28). 그러나 어떤 이가 상속자가 없는 친족의 땅을 무르게 되는 경우 그것은 무른 자에게 영원히 속하게 되어 무른 자는 그 기업을 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과 계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땅은 룻을 통해서 출생하게 되는 아들에게 상속이 되어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는 유익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룻과 그 아이를 길러주어야 하기 때문에 드는 비용이 상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거절합니다. 어찌 보면 이 사람은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를 가리켜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 입장이 된다면 그처럼 대답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주어지는데 누가 그것을 정당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대부분이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법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법을 주셨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법을 통해 즉 고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힘없고 약한 자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반드시 그 백성으로서 이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손해가 주어지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구속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우리의 믿음과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은 신약으로 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의 일요일 즉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요일에 모여 예배하고 그 날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이 말씀을 따른다면 오늘 우리들은 주일에 가게의 문을 닫아야 합니다. 주일에 가게의 문을 열고 장사하는 일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손해가 말도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주일에 예배 후에는 장사를 계속합니다. 자신에게 오는 손해 때문입니다. 과거에 교회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장로님들이 주일에 가게 문을 열고 장사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성도들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장사를 하고 가게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손해를 보지 않는 것 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손해를 보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신조 제1조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本分)에 대하여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唯一)의 법칙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앙과 본분에 대해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유일한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 당위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손해가 주어져도 성경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손해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가장 흉악한 죄인들이 달려 죽는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죽으셨습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을 예수님은 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고 우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시기 위해 다 담당하셨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를 살게 하였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조금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자신만 배부르고 따뜻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우리만 배부르고 따뜻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까? 여기서 손해를 보면 안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생각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인식이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여전히 죄인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점진적 성화의 길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은 연약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이후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늘 이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점점 우리의 신앙과 생활이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은 바로 성화의 길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엡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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