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강해>구름 타고 오시는 이

김근수 | 기사입력 2008/11/13 [19:28]

<계시록 강해>구름 타고 오시는 이

김근수 | 입력 : 2008/11/13 [19:28]
󰏈 본문 : ∙계시록 1:7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오늘은 본문 7절 말씀을 해석하고 이 말씀이 주는 약속을 우리가 굳게 붙잡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7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여기에 “구름 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중요한 역사를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해서 “구름 타고 오시는 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7절을 해석하고 같이 기도하려고 합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 본문 말씀인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하는 말씀을 먼저 해석함으로써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말은 “구름을 탄다.”는 말과 “오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오시리라”하는 이 약속의 말씀을 대할 때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건은 승천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서 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이 이 구름 타고 올라가는 이것을 본 것과 같이 구름 타고 오시리라.”

따라서 “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하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재림의 사건을 연상시켜주는 가장 중심적인 단어가 되겠습니다. 여기에 “구름 타고 오시리라” 하는 이 말씀의 예언은 3:11에도 나타납니다. 3:1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라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기에 보면 “내가 속히 임하리니”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임한다.”고 번역이 되었으나 원래 성경에서는 “내가 속히 오리라” 하는 표현입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약속이 세 번 나타나는데 전체는 다섯 번 나타나고 22장에는 3번 나타나는데 제가 읽어만 드리겠습니다. 22장에는 7절, 12절, 20절에 나타나는데 7절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여기에서는 똑같이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2절에도 뭐라고 그랬습니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20절에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이 요한계시록에서만 대략 살펴봐도 예수님께서는 말세 사건 중에서 이 재림의 사건을 중심적으로 다루시면서 “자신이 오시겠다”, 오되 “속히 오시겠다”하는 약속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겠다”하는 이 약속은 구약에도, 신약에도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겠다” 하는 이 약속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보게 되는데 오늘 이 본문을 중심해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말씀과 “인자”라는 말입니다.

본문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으로 묘사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기는 오시는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먼저 한번 살펴보면서 이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인자 같은 이

구약의 말씀에 보게 되면 특별히 다니엘서 7:13에 오늘 이 본문 말씀과 매우 유사한 표현이 거기 나타나있는데 다니엘 7:13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다니엘 7:13 이전 말씀을 계속 읽어보게 되면 “이제는 영원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그런 약속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해야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인자 같은 이”라는 말을 잘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인자 같은 이”가 오시는데 어떻게 오십니까?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겠다.”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데 첫째, “구름 타고 오시는 이”와 둘째 “인자”입니다. 구름 타고 오시는 그 이가 누구냐 하면 “인자 같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다니엘서를 중심으로 해서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창세기 28:12를 만나게 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서 성경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28장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야곱이 형의 칼날을 피해서 먼 외삼촌 집에 가는 중에 광야 깊은 사막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그 사다리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내리락 오르락”이 아니라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했다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까? 땅에서 올라간 것입니까? 땅에서 올라간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설화의 내용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야곱을 지키는 천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8장 10절에 보게 되면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실족치 않도록 지켜주는 “저희 천사들”이 있다는 표현이 또 있습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성경에는 정확한 그런 표현은 없지만 믿는 성도들을 지켜주는 천사가 계시는 것으로 표현되어지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의 사상 속에는 그런 맥락이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야곱을 지키던 천사가 있는데 야곱이 잠이 들 때에 그 사다리를 통해서 빨리 천계에 올라가서 위에 있는 천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 이야기 내용이 중요합니다.

이 천사가 올라가서 “야! 너희 천사들이여 빨리 내려오라. 저기 지금 인자가 자고 있다.”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인자라는 말이 에스겔서에서도 나오지만 이곳의 인자는 다른 말입니다. 같은 내용이 아닙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인자”라는 것은 “나 같은 인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리켜 인자라고 표현한 것은 재림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예수님의 이름인데 이 천계에서는 감히 천사들이 그 인자의 면전에 나가 볼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인자의 면전에는 나가 볼 수가 없어서 이 천사들이 그저 인자를 보고 싶어 했으나 볼 기회가 없는데 바로 이 천사가 올라와서 “인자 같은 이가 여기 있으니 내려와 보라”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에 천사들이 내려와 보고 또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야곱은 오실 인자, 즉 예수님을 보여주는 구약의 그림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뿌리에서, 야곱의 씨, 야곱의 자손에게서 메시아이시며 인자이신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암시해준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모든 내용들은 이제 “인자가 오리라”,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을 대단히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구름을 타고 온다는 이야기를 했을까요? 여기에 구름은 오늘날 우리가 그저 천계에서 보는 그런 구름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구름이 어떤 영적인 의미를 지닙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구름과 더불어 나타나는 것이 구약의 표현이었습니다. 

여호와 영광의 임재

출애굽기13:21-22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22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 불기둥,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사건입니다. 그 다음에 16:10절에도 같은 내용입니다. 거기에 보면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합니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구름 속에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도 신약에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만 한두 군데만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7:5에도 그 구름과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연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누구의 말씀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구름 속에서 울려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것은 구름으로서 표현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9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여기에서 “저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구름이 가려서 보이지 않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약에서나 혹은 신약에서 구름과 더불어 나타나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구름 속에서 공중으로 승천하신 아들 되시는 하나님이신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하는 것을 암시해 줬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을 친히 목도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광 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암시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름으로서 우리 인간에게 보여 주십니다. 구름 가운데서 친히 출현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와 교제하신 것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인자”라는 말씀은 창세기에서(창28:12) 다니엘로(7:13), 다시 요한복음에서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51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다니엘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인자 같은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자 위에 “내리락 오르락”입니까? “오르락 내리락”입니까? 창세기와 똑같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구름 타고 오시는 이”라는 말씀은 “구름 타고 온다.”는 표현과 이 표현과 관련이 깊은 “인자”라는 말은 구약에서부터 계속 내려오는 진리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구약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구름 타고 오시는 그 인자 같은 이가 어떤 분이냐?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데 구약성경 스가랴 12:10 말씀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여기 “찌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창으로 찌른다.”는 의미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그들이 창으로 찌른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예루살렘에 되어질 큰 사건을 예언하면서 그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찌른 자를 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찌른 자”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9:37에서 해석해 주는데 요한복음 19:3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복음의 말씀은 스가랴서 12:10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찔리신 자요, 찌른 자는 로마 군병, 예루살렘 사람들의 충동을 받은 로마 군병이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이제 구름 타고 오시는 이는 누구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구약에서부터 암시해 주고 있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 다시 말하면 구름과 더불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인데 하나님 자신이신 인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자의 고난(초림)

그런데 이 “오신다.”는 말씀은 제가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두 가지 면에서 이해되어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는 이 구름과 관련이 되어져서 이해되어지고, 또 한 가지는 인자라는 말, 이제까지 우리가 조사한 인자라는 말과 관련을 지어서 이해가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인자란 말은 무슨 말씀인가?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 자신을 뭐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었습니까?

예수님이 “나는 그리스도라” 혹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혹은 “나는 예수라” 혹은 “나는 인자라” 어느 말을 제일 많이 썼습니까?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게 거의 다른 명칭을 적용치 아니하고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면 인자는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인자”라는 말은 “사람의 아들”인데 그러면 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짜 우리와 같은 사람의 아들을 가리키는가?

여기에 사람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아담(םדא)”이라고 합니다. 아담은 아담의 이름도 되지만 아담이라는 말은 “인간”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아담이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사실상 “인간의 아들”이라는 의미로써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인자라는 이 말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받으실 것을 생각해서 인자라고 불렀습니다.

빌립보서 2:6-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신입니다. 구름 타고 올라가시는 그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나 그분이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조금 어려운 말로 “성육신” 혹은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양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양을 지니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이시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아하는 애완동물이 있다 할지라도 미국 사람들처럼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이 사람들은 개, 고양이라 하면 병원에 업고 다니고 여행할 때는 개, 고양이를 호텔에 재워줍니다. 또 자동차에 태우고 다니는 등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개나 고양이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개, 고양이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을 입으셨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고난을 암시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그런 의미에서 인자라고 부르신 것은 고난 받으시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으로서 이 말이 사용되어졌습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리라하는 이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옵니까? 구름 타고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옵니까? 아닙니다. 구약 쪽에서 이 하나님의 아들 인자가 오시리라, 메시아가 오시리라고 기다리는 것은 그가 인간을 위해서 고난 받으러 오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구약의 전체 내용은 우리 인간의 죄의 짐을 지시기 위하여, 우리가 맞아야 할 채찍을 대신 맞아주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감당해야할 질고를 대신 감당하기 위하여 그가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구약 쪽에서 메시야를 가리키면서 예언할 때는 고난스러운 아들로 표현을 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말하는 모든 “오시리라”는 약속은 고난과 깊은 관련이 있는 약속입니다. 

인자의 영광(재림)

그러나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7절에서 “구름 타고 오시리라”는 말은 “오신다.”는 말과 똑같은 기다림이지만은 이제는 바꾸어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함과 같이 이제는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은 무엇이냐면 영광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초림 하시는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 오신 그 자체가 고난이요, 인간의 형상을 지니신 그 자체가 수치요, 하나님으로서 엄청나게 비하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재림하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우리에게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시는 그 예수님은 다릅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초림 하신 예수님처럼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아무도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아무도 그를 따뜻하게 대접하지 아니하는 그저 볼품없는 연약한 잎사귀와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 오시는 그분은 구약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고난을 가지시고 심판하시는 이로서 임하실 것을 여기서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선명하게 구별하지 아니하는 것을 압니다. 그저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똑같은 선상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부분은 구름 타고 오시므로 재림하시는 영광스러운 통치를 완전히 이루실 분으로 예언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또한 어떤 부분은 말할 수 없이 고난을 받는 메시아로 예언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서 53장 전체는 우리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러 오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래부터 유대인들은 처음에 예수님이 오셨다가 다시 온다할 때에는 그들이 믿지를 못했습니다. 도대체 메시아가 한번 오면 끝이지 왜 또 왔다가 갔다가 다시 오느냐?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초림 하셔서 우리 가운데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고난이 아니었습니까?

더욱이 그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죄악을 대속하는 저주의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초림 하시는 예수님은 저주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지만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영원한 영광의 통치를 하시기 위하여 심판자로 오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각인과 찌른 자들이 보리라

본문으로 돌아갑니다(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기에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에서 “각인의 눈”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 즉 “빠짐이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의 눈이 다 그를 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며 이 말은 예수님을 불신앙하고 그에게 폭행을 가한 그런 자들도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여기에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라는 이 말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불신앙 하는 모든 백성들, 즉 “오기는 뭐가 와” 이렇게 재림을 믿지 아니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을 인하여 애곡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 “애곡한다.”는 표현은 무슨 말인가 하면 “목 놓아서 우는 것” 사람이 죽을 때 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과 불신앙 하는 자기 가족들에게 영원한 죽음을 애도하는 그런 표현이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아멘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아멘” 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멘” 이라는 말은 구약을 기록한 히브리어도 아멘(ןמא)이고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도 아멘(αμην) 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똑같은 용어를 지니고 있는데 아멘이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는 “진실로”라는 말입니다. 이 “진실로” 라는 말은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고 긍정하는 것을 가리켜서 “아멘”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읽으면 “아멘 아멘” 그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 그 재림으로 말미암는 종말 사건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것인가”하는 이 시간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성경이 완전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고전 11:26에 보게 이렇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것임을 암시해 주는 말씀이 거기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오실 때” 라는 이 말은 어디로 이어지느냐 하면 마태복음 28:20로 이어집니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오실 때가 언제인가? “세상 끝날” 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살전 5:1-2로 다시 이어 집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여기에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이 말씀은 “그가 오시는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라는 말입니다.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이 말은 주께서 임하는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도적은 언제 오는지 모름과 같이 예기치 못하는 시간에 홀연히 온다는 이 날의 끝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름 타고 오시는 그 시간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때가 언제쯤 될 것인가 하는 징조는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3에 보면 주의 임하심과 임하시는 날은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구름 타고 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7, 8절에서 대답하기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천지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이 재난이 시작되는 것은 이미 임박하게 주님께서 임하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겠다.” 즉 전쟁하겠다는 말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합니다. 다른 민족끼리 전쟁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합니다. 오늘 이러한 큰 징조들은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중요한 징조들이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미루어서 이제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오시리라는 이 약속이 실현될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여기서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어떻게 임하실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됩니다. 

공개적 임재

끝으로 우리가 이 부분만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구름 타고 오시리라.” 그런데 어떻게 오시는가를 알 수 있느냐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몰래 오시는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오시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이미 재림예수가 이 땅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재림한 예수가 지금 자신들의 교주와 같이 세계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기 위해서 몰래왔다고 합니다.

종교의 통일을 가져다주는 그때는 진짜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고 이런 허무맹랑한 내용을 가르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잘못되어진, 숨어서 오시는 재림주가 아니고 눈으로서 목도하게 되는 예수님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11에 보게 되면 중요한 네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데 이 네 가지 사실은 주님을 우리가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본 그대로 라고 하니까 우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인 모습을 우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몰래 그저 귀신처럼 임하시는 분도 아니고 빛으로 임하시는 분들도 아니고 소리로 임하시는 분도 아니라 육체를 가지시고 육체 그대로 재림하신다는 말입니다. 육체적인 재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이 말은 각 사람의 눈이 예수님의 육신을 다시 볼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는 “본 그대로” 오늘 이 본문에서도 “보겠고” 했으니까 이것은 가시적인 재림, 가시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눈으로서 식별되고 우리 눈으로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재림을 말합니다.

절대로 영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임하시는 주님이 아니시고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가시적으로 재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는 여기에 보게 되면 “모든 족속이 동시에 다 볼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과학적인 면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과천에 있는 어린 종이라는 그런 자는 수년 전에 오토바이를 한 대 사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가 재림주인데 심판하겠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다는 그런 참 이상한 이야기를 아마 여러분들 중에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재림하려면 얼마쯤 걸릴 것 같습니까? 이 세상 한바퀴 도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너무나 허무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쫓는 사람들이 또한 있으니 마귀의 장난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주님이 공중에 임하실 때 모든 백성들이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단지 모든 백성들 앞에 공개적으로 일시에, 동시에 재림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한국은 12시에, 미국은 아침 4시에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온 우주가 동시적으로 그의 재림으로 목격하게 되도록 임하실 것입니다.

네 번째 사실은 “예수님께서 올라가실 때 구름이 저를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구름이 가려졌다고 하는 표현은 오늘 본문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영광 중에 임하실 재림을 말합니다.

초림은 수치스러웠습니다. 사간에 있을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유하셨지만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워서 그를 불신앙 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바위여 내 위에 무너지라 산이여 나를 덮으라.”고 애곡하는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요한계시록에 제일 마지막 제일 큰 사건인 예수님 구름 타고 오시는 이 사건을 예언하는 이 본문의 말씀을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주님 오시는 이 소망의 날을 사모하면서 그 날을 잘 맞이할 수 있는, 그날을 도적과 임한다 할지라도 즐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리폼드뉴스 제공 :  http://www.reform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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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교수의 신약신학의 세계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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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목사 : 신약신학 교수이시면서도 목회자로서 서울 한가람교회에서 15년간 담임목사로 섬기시는 동안 세계 선교에 이바지하는 명성있는 교회로 부흥 성장되었으며 총신대 및 신학대학원, 한국 성서대학교, 칼빈대학교에서 25년여간 교수하시면서 20여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판하여 한국 신학계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책들과 설교 녹음 테이프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92년에 2차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셔서 세계 선교에 뜻있는 몇 분들과 기도하시던 중 한울교회를 개척하여 현재까지 섬기고 있다. '한국기독교21세기운동본부' 신학위원회가 주관하여 한국의 유수한 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 재학생 1천여명을 선정, 투표하여 뽑은 한국의 이상적인 신학자와 목회자 30명중의 한분이시다. 역서가 저서 다수가 있다. 약력 : • 한국 성서대학교 졸업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 美 칼빈 신학대학원 신학석사(Calvin Theological Seminary, Th. M.) • 美 남가주 성서 신학대학원 졸업 철학박사(Southern California Bible Seminary, Ph. D.) • 英 웨일즈 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Univ. of Wales Graduate School, Ph.D .) • 美 보스톤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박사과정 수료(Boston Univ. Graduate School of Theology) • 美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환교수(Yale Univ. Divinity School, Research Fellow) • 서울 한가람 교회 담임목사 역임 (15년) • 총신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강사 (10년) • 한국 성서대학교 부교수 및 신학대학원장 역임 • 현, 칼빈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겸 부총장) • 현, 분당 한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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