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회 분열사 7]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배경(2)

고신측은 박형룡 박사가 왜 고신측을 떠났다고 하는가?

소재열 | 기사입력 2015/02/27 [23:34]

[한국장로교회 분열사 7]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배경(2)

고신측은 박형룡 박사가 왜 고신측을 떠났다고 하는가?

소재열 | 입력 : 2015/02/27 [23:34]

고신측은 분열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박형룡 박사가 출옥성도로 구성된 고려신학교를 떠난 사건을 두고 있다. 고신측은 박형룡 박사가 왜 고신측을 떠났는가에 대한 이유를 신학적인 차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박 박사가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 철저한 보수주의자였지만 교회관에 있어서 만은 약했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박형룡 박사가 출옥성도들의 공적 권징시행에 동조하지 않고 고려신학교를 떠난 행위가 교회 순결성을 외면한 행위라고 본다. 그 이유를 “교회의 순결성은 교회 내에서 교리 및 생활에 대한 공적 권징이 철저히 시행되므로 가능하다”라는 점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면 고신측이 박형룡 박사의 교회론보다 더 강한 교회론을 가지고 순결성을 지키기 위한 권징시행을 어떻게 하였는지 분열이후 첫 고신측 총회의 결정들을 보면 고신측이 갖고 있는 교회론에 있어서 공적 권징 시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고신측 제1총회 회의록(1952, 5.)에 의하면 “자숙문제연구위원회”가 제시한 것이 바로 “1. 대상: 목사 장로. 남녀 전도사 2. 기간: 3주간(9월 22일-10월 12일) 3. 내용: ①공인죄(신사참배 신도연맹 가입자, 미소기바라이) ②자인죄 4. 방법: 공예배 인도와 성례주례와 공중기도 인도중지”였다. 고신측이 분열이후 가장 먼저 시행한 “자숙안”은 당시 장로회 헌법적으로 볼 때 공적 권징도 아니었으며, 1946년 제32회 총회로 명명된 남부총회 제1회 때 1938년 제27회 총회 시 가결한 신사참배 취소와 공적 회개결의를 뛰어넘지 못했다.

고신측 허순길 교수는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한 이후의 가시적 교회 (可視的敎會)는 모두가 실질적으로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배교한 교권아래 ‘사단의 회’로 전락한 교회였으며, 배교하지 않는 참 교회는 말할 수 없는 큰 박해를 받았다”라고 말한다. 고신측에 소속된 교회는 참된 교회요, 그 외는 ‘사단의 회’로 평가한다.
 
민경배는 신사참배를 항거하다 검속되어 무서운 고문을 당하거나 순교한 분들은 세상사는 “슬기”가 부족했던 사람들이란 인상을 남기고 신사참배 동방요배 황국신민의 서사를 하면서 교회 안에 머문 분들을 세상에 사는 “슬기” 있는 분들로 말한다. 그리고 그가 쓴 “대한예수교 장로회 백년사”에도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이런 모든 일을 다 검토하고 나서 그래도 마지막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다. 이들이 저항으로 순교했든, 전향으로 모반했든 다들 우리교회의 ‘한 몸’이란 통절한 자각이다.”

민경배 박사는 “한 몸”이란 자각 속에서 신사참배를 항거했든지 신사참배를 했든지 양자가 다 한 몸의 교회로 보고 있다. 여기에 허순길 교수는 “이것은 개혁주의적인 교회관도 역사관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개혁주의 교회관은 보이는 교회의 참된 고백과 생활을 참 교회의 표지로 삼고 있다. 교회는 개인 신자가 불완전하여 실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잘못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통절한 회개와 갱신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적으로 범죄한 교회 공동체도 공적인 진실한 고백과 개혁을 통해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 설 수 있다”라고 말한다.

허순길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은 회개가 신사참배한 자들에게 없었다는 말인가? 허순길은 없었다고 말하면서 고신역사를 기술함으로써 교회론에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경배 교수는 주기철 목사와 한상동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것은 동일하지만 한상동은 분리주의적 교회관을 가졌고, 주기철 목사는 정통교회론을 가졌다고 말한다.
 
김영재 교수는 제1차 고신측과 분열의 한 원인을 교회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장로교회가 교회관에서는 건전한 개혁주의의 그것보다는 종교개혁의 제삼세력이었던 재세례파의 신령주의의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전제하면서 ‘보이는 교회’에 충실하고 또한 ‘보이는 교회’에 충실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교회’를 지향하는 칼빈의 교회관 대신 ‘보이지 않는 교회’ 곧 ‘신자들만의 교회’를 추구하는 분리주의 교회관의 영향을 한국교회가 역사의 여러 경로를 통해 받아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막심한 교회 분열의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같은 신학적인 문제, 즉 교회론이 제1차 고신측이 분열한 가장 큰 분열의 원인라고 필자도 평가한다.

박형룡 박사는 “고려파는 신사참배 문제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 다른 선의의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후일에(1951년 12월 25일)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측에 보낸 글에서 고려신학교를 떠날 때 갖고 있었던 생각을 편지글로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출옥한 지도자들이여 우리 교회 전체의 회개의 지연함에 불만하여 당파를 이루어 교회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른 일이겠습니까 교회전체의 회복갱신이란 원래 힘드는 일이요 일조 일다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참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보다도 그들 속에 남아 있어 그들을 잘 권면하여 회개시키는 것이 출옥성도 여러분들의 하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회개를 빨리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아 서로 당파를 만들고 그것을 신실성의 근거로 삼아 상대방과 구별하여 정죄하는 일들은 옳지 않다. 1차 고신측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인 문제는 고신측이 무형교회론으로 그 시대교회를 평가를 했다는 점이며, 그 반대측에서는 무형교회론과 유형교회론에서 그 시대교회를 이해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같은 인식과 신학적인 차이가 제1차 분열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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