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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종교개혁 50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 종교개혁을 스스로 일으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배후에 이 놀라운 개혁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반석 위에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남겨두십니다. 그 남겨두신 자기 백성을 통해 하나님은 복음과 교회를 지켜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을 통해 우리는 단지 종교개혁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개혁의 신앙입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롬 4장)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 율법 준수, 할례를 통해 구원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교의 구원론입니다. 바울은 참 구원, 칭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육신으로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는가? 만약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4:1-2).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3)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 그의 행위, 공로, 할례를 통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다고 합니다. 믿으니(에피스튜센)은 부정과거 능동태입니다. ‘그가 온전히 믿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보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아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5). 일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다윗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은 것입니다(7-8). 이것은 시 32:1-2입니다.
이 복은 할례자 즉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할례자 즉 이방인에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습니다(9). 그것은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입니다(10). 할례의 표는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11).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으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에게도 그러합니다(12).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습니다(13-14).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은 은혜에 속하기 위해 믿음으로 됩니다.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입니다. 율법에 속한 자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16).
17절은 70인경(LXX)의 창 17:5을 인용한 것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합니다(17).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18-22).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로 여기심을 받을 모든 자를 위함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모든 자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는 아브라함과 같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23-25).
2. 오직 주 예수를 믿음으로(롬 5:1)
롬 5: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합니다. 1절은 ‘그러므로’(운)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접속사입니다. 결론을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4장에 나오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의 결론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 비결이 바로 믿음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디카이오덴테스)는 부정과거분사 수동태입니다. 칭의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칭의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집니다. 그래서 칭의는 얻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음으로 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길입니다. 화평(에이레네)은 평화를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모두 원죄 하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범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의 담이 있습니다. 그 담이 허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는 화평하지 못합니다. 그 담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허물어 버리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다 무너져 버리게 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오직 믿음’(Sola fide)이라고 했습니다. 그 누가 뭐라고 유혹해도 교회는 바로 이 믿음 안에 서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이 아닌 행위나 다른 것으로 구원에 이르고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를 주십니다. 구원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을 통해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변해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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