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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논설
정규오 목사 생애와 사상, “신학과 교권”
교단 신학의 보수 위해 총회교권은 필연적, 교권장악 위 신학 이용은 금물
기사입력: 2011/11/26 [23:37]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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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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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하기는 쉬우나 본받기는 어려운 모범자였다.”

해원 정규오 목사의 생애와 사상이 말은 칼빈의 제자 베자가 그의 스승인 칼빈의 전기를 쓰고서 칼빈의 생애를 한마디로 말한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말은 해원 정규오 목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진행된 해원기념강좌 제1회 때 강사로 나선 증경총회장 장차남 목사가 인용한 말이다. 장차남 목사는 “하나님께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지키도록 하신다”면서 “하나님께서 해방 후 박형룡 박사를 세우셨고 또한 정규오 목사를 세우셔서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관리하도록 하셨다”고 강의한 바 있다.

장차남 목사는 당시 정규오 목사에 관해 최종적으로 평가하기를 “정규오 목사는 기독교를 부인한 공산주의 이론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보호하기 위한 변증적 노력의 일환으로 공산주의와 싸웠고,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며 다른 종교일 뿐이다’라고 말한 메이첸(J. Gresham Machen)의 현대주의와 자유주의와 싸웠듯이 정규오 목사 역시 스승인 박형룡 박사와 함께 한국장로교회 내 자유주의와 싸워 교회를 지키고 총회를 지킨 지도자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1979년 분열의 아픔을 딛고 합동하는 쾌거를 이루는 데 일조한 지도자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필자는 얼마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선거를 앞두고 근거리에서 법리논쟁을 펼치며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 후보 자격을 논하는 위원 가운데 한 분이 호남과 관련된 분이었고, 역사적으로 정규오 목사와 관련된 분이었다고 생각한 필자는 호남기독교역사와 정규오 목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어르신은 필자가 정규오 목사에 관한 말을 꺼내자 말자 “그 분열꾼,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필자는 난감해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어르신은 지금 이단으로 정죄된 인사를 자신이 속한 교단으로 끌어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본인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신학적 문제”였다. 한국장로교회는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장로교 선교사들의 입국과 그 선교사 중심의 공의회는 한국장로교회 보수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기 선교사들이 공의회를 구성하여 한국교회를 지도 및 관리하였는데, 1930년대 말 선교사들이 일제의 압정으로 한국을 떠날 때까지 보수신학의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북장로교선교회와 남장로회선교회에서 파송받은 매우 보수적인 개혁파 복음적인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교회의 보수신학은 형성ㆍ발전되었다.

선교사들이 초기 한국교회의 유일한 신학적 안내자로 존재하였기에 보수신학의 입장을 취한 선교사들의 지도를 받은 한국장로교회는 보수신학으로 초기 교회가 형성되었다. 장로교 선교사들의 사상은 청교도적이고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하비 칸 선교사가 지적한 것처럼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앙은 한마디로 “보수적 복음주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장로교회는 무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정통보수신학의 성경 무오, 영감, 권위 등을 고등비평적 성경해석 방법에 의해 재해석하고 새롭게 정의하려는 현대주의, 자유주의자들이 등장하여 적극적으로 선교사들의 신학과 정착되어져가는 한국장로교회를 허물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신학과 교회를 지키는 세력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이 바로 박형룡 박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정규오 목사 중심의 ‘51인 신앙동지회’였다. 신앙동지회의 신학적 정체성은 이미 한국장로교회가 초석으로 삼고 있었던 성경적 진리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 준 성경관과 신학적인 입장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신학적 외풍을 막아내고 족보없는 신학이 한국장로교회를 혼란케 하려고 할 때 박형룡 박사와 함께한 신앙동지회는 교단 내에서 잠자는 의식을 깨우고 교회와 총회에서 신학과 교리, 성경관이 무너지면 교회와 총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공동 인식아래 그들은 총회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신학을 지키는데 학자도 중요하지만 총회의 교권 역시 중요하다. 교리와 신학, 성경관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공회의 결정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학적인 입장을 달리하는 총회 내 정치적 계파에서는 총회의 교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었다. 총회에서의 몰락은 곧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보수신학을 견지하는 이해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신학의 존립을 위해 총회에서 교권유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1951년 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고신측은 무형교회론을 근거로 하여 신사참배에 관련된 총회나 당사자들을 사단이요, 사단의 회로 정죄하면서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한 과거사 청산문제로 분열이 일어났고, 그것은 분명, 무형교회론만을 주장하는 그룹과 무형교회론과 유형교회론을 함께 주장한 세력과의 분열, 즉 고신측과의 분열이었다. 1953년의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보수신학과의 대립으로 인한 기장측과의 분열, 1959년의 정통보수신학과 WCC 문제와 신정통신학과의 분쟁으로 인한 통합측과 합동측과의 분열이 있었다.

분쟁의 과정에서 자파 세력이 주장한 신학적 입장을 공회로부터 공인받기 위해 총회정치권은 술렁거렸고, 교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고 총회교권쟁탈전은 무서우리만큼 치열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분쟁과 분열과정에서 우리들이 배운 것은 교단의 신학도 교권이 있을 때만이 지켜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형룡 박사와 정규오 목사 중심의 ‘51인 신앙동지회’는 그들, 즉 자유주의자들이 평가한 것처럼 분열꾼이 아니라 정통보수신학을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선각자들임에 틀림없다. 교단의 신학은 신학자들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다. 총회의 교권과 더불어 바른 신학이 지켜지는 것이다. 박형룡 박사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신학자였다. 그래서 언제나 총회교권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서로 협력했다. 즉 박형룡 박사는 총회의 존재를 신학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부산고려신학교를 그만 두고 서울로 올라와서 남산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총회직영신학교로 인준받기까지 박형룡 박사의 정치적 리더십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목사양성은 교단의 직영신학교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지 사설신학교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교단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하는 과정을 신학생 시절부터 지켜보았던 정규오 목사는 박형룡 박사의 뜻과 의지를 총회의 정치권에서 실현시키는 지도자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규오 목사는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총회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고, 그 리더십은 명분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명분은 교권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생사고락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들을 규합할 수 있는 힘이었다. 박형룡 박사 곁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그리고 교단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서 신학자, 신학교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그 결실의 열매가 바로 광주 광신대학교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안목을 갖고 있는 지도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호남지역에서 정통보수신학을 지키는 데 있어서 총회의 직영신학교인 총신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 정규오 목사는 광주에 광신대학교를 태동케 한 광주신학교를 설립하여 온 정열을 쏟은 이유도 바로 호남지역에서 미국 남장로회선교회를 통해 전해준 그 정통보수신학을 지켜나가기 위해서였다. 광주신학교 설립에 신앙동지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 과연 호남지역 목회자들은 이러한 정통보수신학의 열정을 갖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 우리 총회, 총신 모습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치 교권은 신학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명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신학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총회와 총회의 교권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런 명분은 찾아 볼 수 없다. 신학자들이 교단정치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교단의 정치인들은 교단의 신학과 신학자들의 잘못된 신학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적으로 신학교의 신학자들이 정통신학과 개혁신학의 보수를 주장하면서 그 신학을 위해 정치교권을 움직였다. 이제는 왠일인지 뒤바뀌어졌다. 신학교의 신학자들이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걱정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말하고 있는가? 정치교권에 신학의 좌경화 현상을 심각하게 전달하고 경고하는 일이 있는가? 오히려 정치교권에서 신학자들의 신학의 좌경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교수의 신학적 문제와 교리에 대한 잘못된 문제를 신문에 기사화 하자 교단직영신학교 교수는 자신을 암시한 이름으로 신학적 문제를 지적했다면서 신문사 발행인을 고발하는 형국이 돼 버렸다. 조사하는 경찰관 앞에서 총신의 신학적 논쟁을 설명해야 하는 형국이 돼 버렸다.

반대로 교단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교권을 위해서 개혁신학이나 교단의 신학을 그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총회 내에서, 산하기관인 총회세계선교회, 기독신문,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에서 공인된 권리와 힘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그 정치권력을 잘못 사용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시대 우리 교단과 교단의 신학적 정통성을 신학자 박형룡 박사와 함께 지켜왔다고 평가된 정규오 목사의 생애와 사상이 출판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해원기념 사업회가 그동안 해원기념강좌를 통해 발표된 소 논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제1회 기념강좌에서 발표된 장차남 목사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신학 사상”, 정준기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생애와 그의 영향력”에 관해서, 제2회는 소재열 목사의 “해원 정규오 목사와 ‘51인 신앙동지회’ 성경관”, 고광필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성광관”, 제3회는 길길성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종말에 대한 이해”, 조봉근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종말로 사상과 종말론적 삶”, 제4회는 이상규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교회론”, 김효시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교회 정치관”, 제5회는 문병호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자유주의 신학 비평”, 박정식 교수의 “해원 정규오 목사의 성경관: 자유주의 비판과 한국성경공회의 설립배경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이다.

오늘날 족보없는 신학들이 개혁주의와 개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개혁주의자로 행세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한 개혁주의 신학자, 정치교권의 리더자에 대한 출현을 갈망하는 우리들에게 본서는 특별한 어떤 교훈을 주고도 남음이 있음을 확신한다.
 
정규오 목사는 정통보수신학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기에 교회가 나아갈 길을 안내했다. 그 길을 안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법인식과 준수이다. 소위 법통으로 통했던 그의 생애는 교회를 바르게 섬기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들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현 우리 총회는 신학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교단총회를 전면에서 이끌어 가는 인사들의 법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교단의 정치교권은 교회를 살리고 교단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때 필자가 권하고 싶은 것은 <해원 정규오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한 번 읽어볼 수 있기를 권한다.

<책 문의 062-605-1004 해원기념사업회>

장차남 정준기 소재열 고광필 김길성 조봉근 이상규 김효시 문병호 박정식 지음 / 20,000원 / 400면 / 신국판 / 양장 / 2011년 11월 25일 발행
ISBN 978-89-6562-225-3 93230

<목 차>

해원(海園) 정규오 목사 약력
간행사_ 김정중 목사
추천사_ 박요한 목사
추천사_ 서기행 목사


제1회 해원(海園) 기념 강좌 : 해원 정규오 목사의 생애와 신학사상
해원 정규오 목사의 신학 사상 - 장차남
정규오목사의출생과그시대
정규오의학문에로의접근
책을통한박형룡박사와의만남
조선신학교입학과진정서사건
자유주의신학과의투쟁에대한정규오목사의입장
박형룡박사와정규오목사의관계
정규오목사와W.C.C.와의투쟁
결 론


해원 정규오 목사의 생애와 그의 영향력 - 정준기
1. 들어가는말
2. 정규오목사의유년시절
3. 금융인정규오
4. 집사, 장로, 신학생으로서의영향력
5. 목회자로서의영향력
6. 한국교회지도자로서의영향력
7. 대학책임자로서의영향력
8. 가장으로서의영향력
9. 나가는말
참고문헌

제2회 해원(海園) 기념 강좌 : 해원 정규오 목사의 성경관
해원 정규오 목사와‘51인 신앙동지회’성경관 - 소재열
1. 서 론
2‘. 신앙동지회’의보수신학정립과그배경
3‘. 신앙동지회’의진리인식과신학적전통
4. 신앙동지회의성경무오설과성경의권위
5. 신학교졸업당시정규오목사의신학적입장과성경관
6. 결 론

해원 정규오 목사의 성경관&#8212;고광필
I. 서 론
II. 성경관과신조
III. 성경관과‘하나님의말씀’
IV. 성경관과‘신앙과본분에대하여정확무오한유일의법칙’
V. 성경관과칼빈주의
VI. 성경관과성경해석
VII. 성경관과설교
VIII. 성경관과신학논쟁
IX. 성경관과신학적중요성
X. 정 리

제3회 해원(海園) 기념 강좌 : 해원 정규오 목사의 종말에 대한 이해
해원 정규오 목사의 종말에 대한 이해 - 김길성
서 론
I. 해원의신학과사상
1. 장로회신조에근거한신학과신앙의삶을사셨다.
2. 자유주의신학에대하여강력히대응했다.
3. 조직신학의중요성을바르게인식한분이셨다.
4. 신앙의생활화를실천하신분이셨다.
II. 해원의종말사상
1. 해원의종말사상개관
2. 재림전대사건에대한견해
3. 천년왕국에대한견해
결 론
참고문헌

해원 정규오 목사의 종말론 사상과 종말론적 삶 - 조봉근
들어가는말
해원의세아들들이회상하는목사관의종말론적풍경
1. 해원의 종말론 사상과 종말론적 삶은 그의‘세 설교집과 소논문’
에서발견할수있다.
1) 해원의‘아마겟돈전쟁’에대한설명
2. 해원의 종말론 사상과 종말론적 삶은 그의 기타‘저술 활동’에도
나타나있다.
1) 해원의‘지옥교리관’에대하여
2) 해원의‘지옥강하설’에대하여
3) 해원의‘성도의부활관’에대하여
4) 해원의‘영생관’에대하여
5) 해원의144,000명에대한해석
6) 해원의‘신천신지관’에대하여
3. 해원의 종말론 사상과 종말론적 삶은 그의‘생활신조’속에도 나타나있다.
1) 해원의‘하나님의말씀’(신구약성경)에대한뜨거운열정
2) 해원은요한계시록에대한‘단권강해서’를출판하지아니했다.
4. 해원의 종말론 사상과 종말론적 삶은 그의 ‘목회철학’과 ‘교회정치’ 속에도 나타나 있다.
1) 해원의‘십일조 상납제도’에는 그의‘종말론적 물질관’과‘종말론
적삶’이내포되어있다.
2) 해원은 유물주의 종말관과 세계관을 철저히 반대하고 비판하였다.
3) 해원은종말론적인주역사상의운명론을절대반대하였다.
해원은 일사각오로 군부독재 시절에 유신체제를 위한 헌법개정에 철저히반대하였다.
5) 해원은 예배를 체질화하고 생활화했던 예배 실천의 모범적 그리스도인이었다.
맺는말
참고문헌

제4회 해원(海園) 기념 강좌 : 해원 정규오 목사의 교회관
해원 정규오 목사의 교회론 - 이상규
서 론
1. 자 료
2. 해원의교회론
2.1. 교회의정의
2.2. 교회의제도, 무교회주의
2.3. 장로교직분관: 2직분론
2.4. 교회의책임과사명
2.5. 교회연합과분리
2.6. 교회연합운동과W.C.C.
2.7. 교회와국가
결 론

해원 정규오 목사의 교회 정치관 - 김효시
들어가는말
1. 교회정치가로서의해원
2. 교회정치의목적과필요성
3. 교회정치의유형
4. 장로정치제도의근본원리들
5. 교회의직원
6. 교회회의
7. 목사와교회행정
8. 해원의교회정치관
나가는말
참고문헌

제5회 해원(海園) 기념 강좌 : 해원 정규오 목사의 자유주의 신학
비평
해원 정규오 목사의 자유주의 신학 비평 - 문병호
1. 성경의사람: 교훈적, 고백적, 변증적삶
2. Sola Scriptura Scripta(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 해원의 자유주의 신학
비평
2.1. 성경론
2.2. 삼위일체론과신론
2.3. 인죄론
2.4. 기독론
2.5. 구원론
2.6. 교회론
3. 결론: 균형잡힌개혁주의목회자

해원 정규오 목사의 성경관 : 자유주의 비판과 한국성경공회의 설립
배경을 중심으로 - 박정식
1. 서 론
2. 해원정규오목사의성경관
2.1. 박형룡의신학적성경관의정립에영향을미친상황
2.2〈. 불기둥〉에나타난성경관
3〈. 표준새번역〉의번역원칙과반대운동
3.1〈. 표준새번역〉번역원칙과평가
3.2〈. 표준새번역〉공청회에나타난정규오목사의성경관
4. 한국성경공회의설립과〈바른성경〉의성경관
4.1. 한국성경공회설립배경
4.2. 한국성경공회의설립에서해원정규오목사의역할과성경관
4.3〈. 바른성경〉의번역원칙에나타난성경관
5.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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