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감람산 종말 강화(마 24-25)의 구조 연구 2
김상훈(총신대신학대학원 신약신학)
기사입력: 2017/02/15 [10:2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     ©리폼드뉴스

이 글은 총신대신학대학원 김상훈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마태복음 24-25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훈하신 감람산 종말 강화에 대한 구조를 연구하였다. 실로 이 종말론 강화는 매우 난해하다. 저자는 그 해결법으로 부분적 실마리를 통해 구조를 파악하고 제시한다.

여섯째, 24:34-35는 13절에서 제자들이 제시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부분은 첫 단원(24:1-35)의 마지막 소단락일 수 있다. 여기서 주님은 그의 종말 예언이 반드시 그대로 이뤄진다고 확언하셨다. 이 말씀은 독자에게 앞의 13절을 상기시킨다. ‘언제’와 ‘징조’를 질문했던 제자들에게 성전의 파괴와 함께 인자의 ‘징조’(사실 인자의 재림 그 자체가 진정한 ‘징조’이다)가 반드시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구절은 13절의 귀결이 되는 부분이다. 그 날과 그 시를 알 수 없다는 36절을 35절에서 떼어놓는 이유는 36절이 35절보다 그 의미상 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갑자기, 알 수 없게 종말이 온다는 내용)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또 이 ‘알 수 없다’(없게)는 주제는 그 후, 42-44절의 중심 주제이고, 45-51절의 핵심이 되는 소재(특히 50절)가 된다. 따라서 36절은 오히려 그 뒷부분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곱째, 그렇다면 24:1-35가 종말 강화의 한 단락 묶음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3절이 시작 부분, 4-28절이 전반부, 29-33절이 후반부, 그리고 34-35절이 귀결 부분이 된다. 시작과 귀결이 짝을 이루고, 전반부(4-28절)와 후반부(29-33절)가 병행적 사이클(cycle, ABC-A′B′C′)을 구성하므로 전체적으로 A(1-3절, 도입부) –B(4-28절, 종말의 1차 사건들) –B′(29-33절, 종말의2차 사건들) –A′(34-35절, 귀결부/확언)의 역교차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판정할 수 있다.

여덟째, 24:36 이후를 살필 때, 먼저 24:42-44가 25:1-13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예수께서는 24:42-44에서 깨어 있을 것을 명령하셨고 25:1-13에서 깨어 있는(준비된) 이들과 깨어있지(준비되지) 않는 이들을 대조하는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24:42-44만이 25:1-13과 연결되는가 하는 점이다.

24:36-41은 세 가지의 짧고 연속된 내용을 담고 있다. (1) 그 날과 그 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36절). (2) 그러다가 노아의 때와 같이 갑자기 온다(37-39절). (3) 그 때, 노아의 때처럼 사람들이 두 집단으로 나뉜다. 데려감을 받는 자들과 데려감을 받지 않는 자들이다(40-41절). 그런데 이 부분은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42-44절(그 날과 때를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36-44절 자체가 역교차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37-39절과40-41절의 유사적인 내용 때문이다. 노아의 때도 두 집단(구원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으로 나뉘었고(B, 37-39절) ‘그 때’도 두 집단(데려감을 받는 자들과 내버려지는 자들)으로 나뉠 것이다(B′, 40-41절).

그렇게 나뉠 것이기 때문만 아니라, 그 날과 그 시를 알 수 없으므로(A, 36절) 그의 종들은 ‘깨어’ ‘준비해야’ 한다(A′, 42-44절).

아홉째, 그렇다면 24:36-44가 묶일 때, 25:1-13과 어떻게 짝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보자.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신 말씀(명령)은 다음과 같이 열 처녀 비유로 다시 반복되고 보완된다. (1)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라는 점(42절과 44절의 반복법 열 처녀 모두 자고 있다 깨었으나 다섯은 준비되어 있고 다섯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역시 준비된 자가 깨어 있는 자라는 말씀이다), (2) 그 날(또는 그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점(24:26, 42-44; 25:5), (3) 그러므로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24:42, 44의 명령법과 혼인잔치에 아예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계), (4) 두 집단의 나뉨과 대조(특히, 24:40-41, 데려감을 받는 자와 내버려지는 자들 25:10-12,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한 자)가 공히 강조되어 있다. 그러므로 24:36-44와 25:1-13이 연계된 짝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열째, 이런 점은 24:46-51의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에 대한 말씀과 25:14-30의 ‘달란트 비유’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이 둘은 모두 그 앞에 ‘깨어 준비하라’는 주제의 말씀(24:36-42)과 비유(25:1-13)가 있다는 점에서, ‘깨어 준비하는 것’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24:36-42나 25:1-13이나 모두 ‘깨어 준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나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준비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반면에 24:46-51과 25:14-30에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24장 뒷부분의 두 종의 대조는 25장에 가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 다시 보완된다. 두 내용의 공통점이 상당하다. (1) 주인과 종의 이야기이다. (2) 주인은 종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맡겼다. 24:45에서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도록 그(주인의) 집사람들을 맡겼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장사하게 주인의 달란트를 맡겼다(25:14-15).

(3) 주인은 종에게 그의 것을 맡기고 멀리 떠나 있다(24:46, 48; 25:15, 19). (4) 주인이 돌아올 때가 있고, 돌아와서는 종들이 어떻게 하였는지 반드시 평가한다(24:46-47, 51; 25:19-30). (5) 주인의 평가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뉜다. 상(칭찬)을 받는 집단(24:46-47; 25:21, 23)과 벌(책망)을 받는 집단(24:51; 25:26-28)이 생긴다. (6) 주인은 칭찬 받는 종에게 더 크고 많은 것을 맡긴다(24:47; 25:21, 23). (7) 악한 종들의 마지막에는 슬픔과 고통(이를 갊)이 뒤따른다(24:51; 25:30). 비록 조금 떨어져 위치하나, 이 두 단락(24:45-51과 25:14-30)은 사실상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고 또 본문의 동질적 기능이 같은 단락이다.

열한째, 그러므로 24:42-25:30은 크게 병행적으로 묶인 단락들이다. 그 자체로 A(24:36-44, 깨어 있어야 함) –B(24:45-51, 준비하는 종과 준비하지 않은 종) –A′(25:1-13, 열 처녀 비유) –B′(25:14-30, 달란트 비유 준비하는 종과 준비하지 않는 종)의 병행법으로 구성된 단락의 묶음이다.

열둘째, 종말 강화에서 두 번째로 묶인 24:36-25:30을 빼면 남은 부분인, 종말 강화 마지막 부분 25:31-46은 인자의 날에 구분될 ‘양과 염소’에 대한 말씀이다. 인자의 날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판결에 의해 두 집단으로 나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인자의 날’(25:31, ‘인자가 올 때’)이 실제적으로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심판(판결)이 있고, 그 결과 두 집단, 양과 염소로 나뉘게 될 것이다.

양과 염소에 대한 말씀은 앞의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와 달리 비유라 할 수 없다. 인자이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평가(심판)하시는 장면을 그대로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이라는 칭호 대신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칭호인 ‘인자’(人子)란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비유적 표현에서 사실적 표현으로 전환되어 있다. 이 부분이 앞의 24:36-25:30과 다소 다른 방식과 기능으로 쓰여진(말씀된) 이유는, 이 부분이 종말 강화(24-25장)의 마지막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종말 강화 전체의 종결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단락은 다음과 같이 네 부분의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열셋째, 마태복음 24-25장의 종말 강화는 그렇게 세 개의 강화 묶음(24:1-35, 24:36-25:30, 25:31-46)으로 구성되어 있다. 24:1-35, 24:36-25:30이 각각의 묶음이고 25:31-46은 따로 홀로 있는 단락이다. 첫째 묶음(24:1-35)은 그리스도이신 인자의 임함과 그에 따른 전조들에 대해 말씀한다. 둘째 묶음(24:36-25:30)은 인자의 오시는 그 날을 모르게 하셨기 때문에 늘 깨어 그 날을 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종으로서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한다.

세 번째 부분(25:31-46)은 그 날 이후 이뤄질 인자의 재판과 그에 따라 양과 염소집단으로 나뉠 것을 말씀한다.

제자들이 질문한 두 가지 내용(24:3), 즉 ‘언제’와 ‘징조’와 관련해서, 첫째 묶음에서는 ‘징조’에 초점을, 둘째 묶음에서 ‘언제’에 대해 주로 답해주고, 셋째부분에서 그 날에 있을 ‘나뉨의 판결’에 대해 강조한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여러 전조들이 있을 것인데, 가장 중요한 ‘징조’는 그리스도 재림 그 자체이다. 그날이 ‘언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날은 반드시 있을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날 심판(나뉨)이 있을 것이고 두 집단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의 날에 인정 받는 자리에 서도록 지금 준비해야 한다.

열넷째, 종말 강화를 24:1-35, 24:36-25:30, 25:31-46, 이렇게 셋으로 구분할 때, 이 세 단락들간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그리스도의 화법과 마태의 작법이 짝을 이뤄 구성하는 ‘병행적’(parallelpairing) 방식임을 이해했다면, 좀 더 큰 거시적 단락들의 관계를 찾을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열셋째’ 참조), 첫 부분(24:1-35), 둘째 부분(24:36-25:30), 마지막 부분(25:31-46)은 ‘순차적인’(sequential) 연결성이 있다. 종말 이후에 인자의 재림이 있을 것이고(24:1-35), 그러므로 그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24:36-25:30), 그 날에는 인자의 심판(판결)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25:31-46).

그런데 한편으로 이 세 부분은 역교차 가능성이 높다. 즉, 첫 부분(24:1-35, A)이 마지막 부분(25:31-46, A′)과 짝을 이루는 것이고, 그 중간에 둘째 부분(24:36-25:30, X)의 기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4:1-35이 25:31-46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는 점들이 있다. 첫째, 24:1-35의 끝 부분에 있는 ‘인자의 오심’이 25:31-46의 ‘인자의 오심’과 연결된다. 앞에서(24:30-35)는 인자의 오심이 확실하게 예고되었고 뒤에서는(25:31-46) 인자의 오심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전개된다. 이는 24:1-35를 25:31-46에 바로 이어도 내용 전개의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24:30의 ‘인자의 오는 것’이란 표현은 25:31의 ‘인자의 올 때’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 두 구절이 상당히 밀접하게 상관된 증거이다. 또 ‘영광’(δόξα, 24:30; 25:31), ‘천사’(ἄγγελος, 24:31; 25:31), ‘모으다’(24:31, ἐπισυνάγω 25:32, συνάγω)등의 용어는 이 두 부분에서 나온다.

둘째, 제자들이 ‘언제’(πότε)에 대해 물었을 때(24: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종말의 때(또 인자의 날)와 관련하여서 ‘그 때’(τότε)란 용어를 사용하여 여러 번 말씀하셨다(24:9-10, 14, 16, 21, 23, 30, 40; 25:1, 7, 31, 34, 37, 41, 44-45).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님 자신이 ‘언제’란 어휘를 쓰신 것은 24-25장에서 모두 네 번인데, 모두 25:31-36의 말씀 중에 쓰셨다(25:37, 38, 39, 44)는 점이다. 제자들의 ‘언제’에 대한 답은 사실상 25:31-46에서 답변된 것이다. 제자들의 관심은 ‘언제’ 그 날이 오는 지에 대한 것이었고, 주님께서는 이를 ‘언제’(어느 때에) ‘형제들을 섬겼는가?’로 그들의 초점을 전환하신 것이다. 이 역시 24:1-35과 25:31-46의 밀접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다.

그 날이 있을 것(24:1-35)과, 또한 그 날의 판결과 그에 따른 나뉨이 있을 것(25:31-46)이란 말씀이 앞뒤에 위치하고, 그 중간에 ‘그 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25:36-25:30)가 있다. 따라서 종말 강화(24-25장)의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다.

A 24:1-35 종말 이후에 인자의 재림이 있을 것이다. ABB′A′
     X 24:36-25:30 그 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ABA′B′
A′ 25:31-46 인자의 재림 때에 일어날 일들(양과염소)

나가며

말씀에는 ‘결’(texture)이 있다. 말씀의 ‘결’은 말씀이 저자에 의해 어떤 방식, 어떤 갈래로 짜여 있는지 보여주는 문양이다. 주의 깊게 살피면 그 결을 발견하게 된다. 말씀의 결은 크게는 ‘본문의 구조’(literary structure)를 이루고, 작게는 ‘문체적 구성’(stylistic construction)을 이뤄낸다. 구조는 저자가 글(말)을 전달할 때 쓰는 문학적 틀이고, 문체는 그 틀에 기반하여 전달할 내용을 구성해 가는 방식이다.

저자인 마태에 의한 것이든, 화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든, 본문의 병행적 작법(글쓰기/말하기)의 구성(구조)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4:42-44(깨어 있으라), 24:45-51(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25:1-13(열 처녀 비유), 25:14-30(달란트 비유), 25:31-46(인자의 양과 염소 판결) 등 마태의 종말강화의 적지 않은 단락들이 병행적 작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병행적 작법을 단락 내에 국한하여 볼 필요는 없다. 작은 단락들을 ‘그렇게’(병행적으로) 구성하여 의사소통을 하려 하는 것이라면, 보다 큰 단위(단원 등)도 그같이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닌가?

실제로 마태복음 24-25장은 단락과 단락의 연결 방식도 병행적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24:1-35(ABB′A′), 24:36-25:30(ABA′B′)이 그렇게 병행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24:1-25:46 전체를 24:1-35(A), 24:36-25:30(X), 25:31-46(A′)의 역교차로 보는 것 또한 부자연스럽지 않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배너
배너
배너
최근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