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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성도의 고난에 대한 칼빈의 신학적 이해(벧전 4:12-19) 1
안인섭(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기사입력: 2017/03/08 [09:5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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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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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인섭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베드로전서 4:12-19의 해석을 통해 성도의 고난에 대한 칼빈의 신학적 이해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성도의 고난의 의미와 신학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I. 들어가는 글

창조세계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고난은 언제나 찾아온다. 인간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고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없다. 그 중에는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과 이슬람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과 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그 자체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다. 인간이 고난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셨는가? 이 주제는 개혁신학의 섭리 사상 측면에서도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관한 질문에 대해 종교개혁자 칼빈의 신학적인 관점은 무엇인가를 연구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칼빈이 자신의 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성경해석을 분석할 것이다. 베드로전서는 성도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보내진 편지인데, 특히 4장은 성도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현존하시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고난에 대한 칼빈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서 19절에 대한 칼빈의 성경해석에 초점을 두고 고찰하게 될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본고는 성도의 고난에 대한 칼빈의 이해가 어떤 신학적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살필 것이다. 결국 성도의 고난을 성육신과 하나님의 숨어계심이라는 칼빈의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살펴보게 될 것이다.

II. 베드로전서 4:12-19 해석에 나타난 칼빈의 고난의 이해

격동의 시대였던 16세기 유럽에서 칼빈은 인문주의자이고 종교개혁운동가이며, 교육자이자 설교자이면서도 동시에 목사였다. 그러나 특별히 칼빈의 다양한 모습의 중심에는 성경 해석자로서의 칼빈이 존재한다. 칼빈의 신학을 고찰함에 있어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성경해석이다. 무엇보다도 칼빈은 그의 모든 사상을 성경에 근거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의 방대한 성경 주석은 칼빈의 사상 이해를 위한 자료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의 성경해석을 통해 그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강조점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주석과 더불어 칼빈의 신학을 정리해 주는 기독교강요는 1539년 판에서 칼빈이 자신의 근본적인 신학적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1539년 판 기독교강요의 구조는 그 이후의 판본에서도 연속성을 유지해 주고 있다.

1. 베드로전서와 고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한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곧 교회가 이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말할 때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이 지상에서 세상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승리는 종말론적인 측면을 함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를 읽을 때에 편지를 수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딜레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 자체(nomen ipsum) 때문에 겪는 험난한 고난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특별히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우리는 지배적인 이교적인 문화에 의해서 고난 당하고 있는 기독교 공동체를 격려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감지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가 또한 모욕을 받았으며 고난을 당했음을 환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약의 베드로전서는 고난 당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강력한 연대로 이끌어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베드로전서의 성경 구절에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본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베드로전서 4장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을 회중들과 연대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 해석하도록 허용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는 하나님이 고난의 한가운데 현존하시며, 하나님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수여하기 위해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강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름 아닌 성육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신의 거룩한 속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고난 당하는 자들과 연합시키신다. 그러므로 성육신 모티브는 고난의 신학적 성찰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 4장은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시키면서 동시에 고난 당하는 회중과 연계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칼빈은 베드로전서 4장 12-19절 가운데 특히 12절을 해석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가 유익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해서 잘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이며, 둘째는 이 고난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4장은 칼빈의 고난에 대한 해석의 특징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성경 본문이 된다.

2. 칼빈의 베드로전서 4:12-19 인용

칼빈은 고난과 관련된 성경 구절 가운데서 특히 베드로전서 4장 12-19절을 그의 여러 신구약 주석에서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강요에서는 인용이 2회밖에 없다. 그러므로 칼빈의 다양한 주석들에서 베드로전서 4장 12-19절에 대한 칼빈의 해석이 실제로 어떻게 발전되어가고 있는지 연대기적으로 분석한다면, 고난에 대한 칼빈의 사상의 발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칼빈의 주석들에 나타나 있는 베드로전서 4장 12절-19절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지를 주로 연구하게 될 것이다.

칼빈의 베드로전서 4장 인용의 현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칼빈의 해석학적 발전과정을 통해 드러난 칼빈의 신학적 특징과 성격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적은 분량이라고 하더라고 그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베드로전서 4장 인용이기 때문에, 먼저 간략하게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베드로전서 4장 12절-19절 인용을 분석할 것이다.

1) 기독교강요

먼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베드로전서 4장을 사용한 것을 살펴보면, 이성경 구절을 세 번 직접 인용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인용은 고난이라는 현재의 주제와 관련이 없으므로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두 개의 인용을 살펴볼 것이다.

(1) 기독교강요에서 인용한 베드로전서 4:17

심한 고통을 받을 때에 신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무장해야 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렘 25:29),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베드로전서 4: 17을 인용하면서, 칼빈은 채찍으로 고통을 겪는 신자들은 하나님이 비록 그들의 범죄 때문에 진노하는 중에도 그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이런 자신의 글을 기독교강요 1536년 초판부터 최종판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다.

(2) 기독교강요에서 인용한 베드로전서 4:12

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치욕이나 재난을 받을 때에, 우리는 성경에 있는 이런 경고의 말씀에서 충분한 위로를 받는다. 따라서 주께서 주시는 이런 고통들을 기꺼이 또 즐겁게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도 은혜를 모르는 자들일 것이다. 특히 이런 십자가는 신자가 지는 것이 가장 적당하며, 베드로가 가르친 것과 같이(벧전 4:12이하) 우리가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칼빈은 베드로전서 4장 12절 이하의 성경 본문을 자신의 기독교강요 1539년 2판부터 사용하여 최종판까지 유지하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받을 때, 그들은 그런 욕보임과 재앙으로부터 위로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칼빈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의를 위해서 박해나 혹은 나쁜 평판을 경험해야만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므로 칼빈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1536년 초판에서 처음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한번 인용한 후에, 1539년 2판에서 베드로전서 4장 12절을 추가 인용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강요 자체에서는 베드로전서 4장의 사용이 현격하게 적어서 성도의 고난에 대한 칼빈의 신학의 발전을 추론하기는 어렵지만, 칼빈은 베드로전서 4장을 통해서 성도의 고난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잘 피력해주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 제시될 칼빈의 주석에는 상대적으로 더욱 증가된 베드로전서 4장의 인용을 발견할 수 있다.

2) 주석

칼빈은 그의 다양한 주석들에서 베드로전서 4장을 인용하고 있다. 칼빈은 어떤 문맥에서 어떻게 베드로전서 4장을 인용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고난에 대한 그의 이해가 어떻게 발전되어 갔는지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목록들은 칼빈의 그의 주석들에서 인용한 베드로전서 4장의 목록을 해당 주석들이 출판된 연도에 맞추어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a. 베드로전서 4:13 인용

(1) 고린도후서 1:5 (1546)

내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있어서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물론 주께서 그들의 죄 때문에 부과하는 처벌이 그들에게 유익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서 보듯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기 전에는 그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빈은 믿는 자들은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후에 그는 베드로전서 4장 13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아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2) 사도행전 5:41 (1554) (간접적인 인용)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그의 영광의 동참자가 또는 동반자가 되기 위하여 현재 그리스도의 고난에 순응하게 된다는 이 문구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참고 롬 8:17, 벧전 4:13). 결국 이 사도행전 5장 41절 주석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과 수치가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b. 베드로전서 4:16 인용

(1) 시편 44:22 (1557)

이 말씀은 베드로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고 한 말씀과도 맞서고 있는 것 같다. 이 말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곧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그 이유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란 사실은 우리의 슬픔에 대한 가장 큰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더욱 힘 있게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이 되시도록 하기 위해서 이 신실한 자들이 자기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부당하게 고난 당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헛되거나 잘못된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에 대한 지속에 관심을 가지심은 정당한 일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자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c. 베드로전서 4:17(18)인용

(1) 고린도전서 15:19 (1546)

주님은 특별히 그의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시는데 그것은 불신자들에게 가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하신다. 주님은 첫째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훈련시키는 까닭에 그렇게 하시고, 두 번째로 그들을 인내하도록 가까이하며 참으로 새롭게 중생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다음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관계되는 한 언제나 진실을 알고 있다. 즉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칼빈은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하나님의 백성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2) 이사야 13:1 (1551/1559)

그가 먼저 유다와 이스라엘왕국이 당할 황폐와 패망에 대해서 말한 것은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벧전 4:17).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특별히 보살펴 주시면서 그들에게 가장 주의를 기울이신다.

이어 연속적인 4회의 이사야 주석의 베드로전서 4장 17절 인용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환기하고 있다.

(3) 이사야 21:11 (1551/1559)

자녀들이 이처럼 징계 받는다면 하물며 이방인들이나 버림받은 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벧전 4:17-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한 백성이, 그들의 이웃 백성이 사면에서 그들을 공격할 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훼방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곳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고난을 언급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의 고난이 얼마나 클지를 지적하고 있다.

(4) 이사야 22:5 (1551/1559)

[…] 사실상 주께서는 인간의 불신앙을 벌하시되 교회 밖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 내에서도 벌하신다. 더욱이 그는 교회에서부터 징계를 시작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남용하거나 그의 이름을 헛되이 자랑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벧전 4:17).

역시 칼빈은 먼저 하나님의 징계는 교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5) 이사야 35:1 (1551/1559)

[…] 이는 그가 이미 하나님께서 유다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으며, 또 그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그의 집에서 또는 성소에서 시작되므로’(벧전 4:17) 하나의 본보기를 삼으시고자 성지의 특별한 서글픈 멸망이 예언되었으므로, 실제로 온 땅에 진멸이 예언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서에서 칼빈의 마지막 벧전 4장 17절 인용이 나타나는 이곳에서 역시 칼빈은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6) 요한복음 9:1 (1553)

그러므로 여기서 주목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로 심판은 대체로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 (벧전 4:17). 따라서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묵과하시는 반면에 그의 친 백성이 범죄 했을 때는 그들을 심각하게 벌하신다.

요한복음 주석에서도 칼빈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주목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7) 시편 79:67(1557)

비록 우리가 하나님에게 그의 행동규칙을 정해드려서는 안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벧전 4:17)라는 말씀에 끈기 있게 복종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성도들이 불신자들이나 자기를 경멸하는 자들보다 더 나쁘게 취급되지 않도록 자기에게 호소하는 자유를 성도들에게 허락하신다.

이어지는 두 번의 시편 주석 인용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첫 시편 인용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심판은 특히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8) 시편 90:11 (1557)

그 다음에 나오는 “누가 주를 두려워해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될수록 더욱 신중하고 엄격하게 하나님의 진노를 대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기”(벧전 4:17)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들에게 이 세상의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해 주시는 동안에도 택한 백성들에게는 계속되는 근심에 시달리도록 하신다. 요컨대 “주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히 1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들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더 모질게 다루고 계신다는 교훈은 참되고 유일한 교훈이다.

역시 시편 90편에 등장하는 베드로전서 4장 17절 인용에서도 칼빈은 하나님의 백성들,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징계가 시작된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9) 스바냐 3:8 (1559)

그러나 그가 모든 민족과 왕국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인들로 하여금 심판이 더 이상 지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비교될 때에는 이미 성경에 기록된 것 같이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관례이며 (벧전 4:17), 더 나아가 진리의 빛이 없으므로 유대인들이 어둠 속으로 빗나간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칼빈은 스바냐 주석에서 역시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10) 스가랴 6:2 (1559)

유대인은 혹독한 괴로움을 당함으로써 자기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맹위를 떨치는 것을 겪었다. 하나님께서는 의례 심판을 자기 집에 제일 먼저 행하시며, 또한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이 경우에서도 그와 같은 순서를 지키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와 다른 민족들을 징계하시기 전에 택정된 백성의 죄악부터 징계하시는 것이다.

칼빈은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인용하고 있는 스가랴 주석에서 하나님은 다른 민족을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의 백성들부터 징계하신다고 설명하고 있다.

(11) 다니엘 11:36 (1561)

즉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의 죄악에 합당한 벌을 내리기를 원하셨으므로 심판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항상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사 10:12; 렘 25:29; 벧전 4:17).

다니엘 주석에 나타난 칼빈의 베드로전서 4장 18절 인용에서 칼빈은 역시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주석하고 있다.

(12) 예레미야 25:18 (1563)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벧전 4:17)고 기록된 것 같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다[…].

연속되는 세 번의 예레미야 주석에서 칼빈은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인용하고 있다. 먼저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13) 예레미야 25:29 (1563)

그는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될 것을 언급한 후에 즉시 하나님의 보복이 얼마나 무섭게 공공연한 원수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벧전 4:17).

역시 칼빈은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먼저 시작된다고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인용하여 주석하고 있다.

(14) 예레미야 49:23 (1563)

베드로전서 4장 17절과 18절에도 비슷한 위로의 말씀이 나온다. 거기에는 그 고통이 하나님의 교회가 지금 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베드로는 우리가 상하기 쉽고 섬세하여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들, 곧 자기 집에 속한 자들을 향해 그렇게 엄격하시다고 하면 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겠느냐? 얼마나 무서운 복수가 그들을 기다리겠느냐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을 언급하면서 베드로전서 4장 17-18절을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집에 속한 사람들에게 엄격하시다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악한 자들에게는 더욱 심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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