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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성전과 성품 3
김희석(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기사입력: 2017/04/06 [09:20]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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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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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석 박사
이 글은 김희석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대해 연구하고 제시한다. 창조의 사건에서, 구약의 구속역사에서, 신약에서 나타난 성품을 제시하고 있다.


IV. 신약에 나타난 성품

이제 신약 성경에 나타난 성품 논의에 대해서 고찰해 보도록 하자. 신약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 즉 예수님의 성육신, 공생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을 보내신 사역에 의하여 구약시대의 계시가 종말론적으로 완전히 성취된 시대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있어서 예수님의 사역과 교회의 사명에는 성품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는 구약시대의 고찰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성품/백성의 성품에 대한 계시가 신약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점검해보고, 그 후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야 하는 열매들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1. 하나님의 성품/백성의 성품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본체이시나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시다. 그분은 자신을 참된 성전으로 이해하셨다(요 2:19-21).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 임재의 구현이시자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셨기 때문에, 그분이 자신을 성전으로 말씀하신 것은 구약의 성전론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선포의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참된 성전이신 예수께서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을 그대로 성취하셨다. 마태복음 9장 13절이 이 사실을 잘 증거한다.

마태복음 9장 13절 "너희는 가서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세리 마태를 부르신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비판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긍휼’의 의미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기서 긍휼의 원어는 ‘엘레오스’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LXX)에서 ‘헤세드’의 번역어로 채택된 헬라어 단어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인자함’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에게 응답하신 것이다. 특별히 이 구절은 앞서 살펴본 호세아 6장 6절의 인용이기도 하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 행위나 조건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것이기에, 이를 위해 그 나라를 반드시 이룩하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인자함’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반절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자함’의 주제를 죄인을 부러 이 땅에 오신 자신의 사역과 연관시키셨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성취하셔서 죄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성전’되신 예수님의 ‘인자하신 언약적 성품’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성전 공동체’로 회복시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을 실천하게 만드는 성품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자함’의 실천을 강조하신 본문으로 또한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이 비유의 정점에서 예수님은 ‘너도 이와 같이 가서 인자를 실천하라’라고 명령하셨다.

누가복음 10장 36-37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자비’로 번역된 헬라어가 바로 ‘엘레오스’ 곧 구약의 ‘인자함’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인자함을 실천해야 함을 명령하신 것이다. 여기서 인자함이란, 외적인 종교행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구현하는 성실함이다. 하나님의 동일본질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성전으로 사셔서 죄인들을 의인으로 회복시키셨듯이, 그 예수의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면서, 죄인을 정죄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을 예수께서 이끌어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참 ‘언약의 성실성’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자한 성품이란, 예수님을 닮은 성품이란, 예수의 뒤를 따르면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신앙의 정체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2. 성령의 열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대한 구절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갈라디아서 5장에 나타난 성령의 열매에 대한 본문일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지면의 한계로 인해 여기서 아홉 가지 열매를 세부적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그 열매들의 기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열매’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어떤 가치나 목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당연히 열려야 하는 결과를 뜻한다. 갈라디아서 전체의 내용이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고, 갈 5장의 문맥은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비교하면서 육체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성령으로만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맺을 수 없는 열매로, 성령이 역사하신 결과로만 주어질 수 있는 열매인 것이다. 그 구체적인 열매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반드시 열려야 하는 필수적인 열매들로, 인간 스스로 맺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열려질 수 있는 열매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그리스도인으로 성품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성품교육에 대한 열매는 오직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성령은 제 삼위 하나님이신데,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여 계시는 분이시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성전’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면, 오순절 이후 성령의 임재 역시 ‘성전’ 즉 하나님의 임재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육체가 곧 “성령의 전”이라고 말했으며(고전 6:19),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공동체라고 말했다(엡2:22). 그리스도인 개개인 및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는 ‘성전’이라는 것이 신약성경의 일관된 주장임을 생각해 볼 때, 갈라디아서 5장이 말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란 성령께서 함께 거하시는 ‘성전’에 열리는 열매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피조세계를 말했는데, 그 성전이 이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된 것이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이다. 그 성전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보여주는 대리통치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란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드러내게 되는 ‘정체성’의 구체적인 측면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 각 사람이 독특하게 드러내는 개인적 인격의 특수성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 사명’과 연결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성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정체성’에 따른 ‘새로운 본질적 성품’이며, 이 본질적 성품에서 열리는 열매로 인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사명이라는 방향성 가운데 이해되어야 한다.

V. 함의

우리는 지금까지 창세기 1:1-2:3의 창조사건에 나타난 인간의 성품, 그리고 타락 사건 이후의 구속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성품에 관하여 논의해 왔다. 이러한 논의가 우리의 성품 이해와 교육의 현장에 어떤 시사점을 던질 수 있을까?

첫째,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피조세계 가운데 하나님을 닮은 인격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갖게 되는 본질적 특성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성품론은 “하나님은 어떠한 성품을 지니고 계신가”라는 측면에서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품에 대하여 논하거나 성품을 교육하려고 할 때, 그 성품훈련에 대한 기준을 하나님의 성품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논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거울로 하여 사람의 성품을 비추어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닮은 성품을 소유한 사람인지에 대한 사색과 묵상만이 진정한 성품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여러 측면들 중에서 구속역사 가운데 가장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이다. 인자, 은혜, 사랑, 자비, 진실, 성실 등의 여러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은 그 기본적인 개념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즉 타락한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인데, 그러한 구원계획을 반드시 성취하고야 마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이 뜻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성품론은 개인의 인격에 대한 논의 정도에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론’과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이 땅에 왜 존재하며, 내가 복음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었고, 내가 이 땅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육하고 논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에 대한 가르침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 나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될 때, 성품의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바른 인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셋째, 성경이 묘사하는 성품은 항상 ‘관계성’ 속에서 드러났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백성들을 향해 베푸신 인자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요구하신 인자하심은 하나님을 향해 지키는 인자함과 주변 이웃들을 향한 인자함이었다. 신약교회가 드러내야 하는 인자함도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교회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 상호 간에 베풀져야 하는 인자함 및 교회 밖의 비신자들을 향해서 베풀어야 하는 인자함으로 설명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성품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성품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훈련되어지는 것이며, 또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실천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공동체적 사명을 기억하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말씀의 기준을 실천하려고 할 때라야 우리는 자신의 성품이 얼마나 모나고 훈련되지 않았는지 알게 되며, 거기서부터 하나님을 닮은 성품의 열매가 실제적으로 맺어져 나가게 된다. 성품교육은 이러한 수직적 관계성과 수평적 관계성의 통전적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성품 교육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어떤 이론적인 기계적 훈련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을 통해서 계속되어져야 할 장기적인 교육임을 기억해야 한다. 언약적 성품 즉 성령의 열매로서의 맺어지는 성품들은 어떤 정형화된 시스템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개발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영적인 싸움으로부터 맺어지는 인격의 열매들이다. 따라서 성품 교육은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을 가르치는 교리교육 및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에 대한 교육과 연계되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 커리큘럼 가운데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인자하심으로 오래 참으셔야 했고 하나님의 성품들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성화 과정 가운데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성품 교육을 천편일률적인 시스템이 아닌 인격적인 관점에서 다루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품 교육은 교육의 대상자를 정죄하려는 부정적인 관점이 아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이란 모든 것을 그냥 용납하고 받아주는 쉬운 사랑은 아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백성들의 죄악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훈련하고,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희생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던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해서 끝끝내 언약을 성취하여 백성들을 성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우리의 성품교육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족한 사람을 정죄하거나 교육의 과정 중에 어려움이 생길 때 포기하거나 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처럼, 끈질기고 가열찬 교육 즉 반드시 열매가 열릴 것을 믿고 진행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하는 자가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을 소유하고,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그 교육 가운데 드러내는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성품 교육은 진정성 있는 교육이 되어 실제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이다.

VI. 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성품에 대하여 성전의 개념과 연관하여 살펴보았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란 하나님의 형상됨에서 흘러나오는 성품으로,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며, 그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그분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성품이다. 이러한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성령의 역사로만 열려질 수 있다. 올바른 성품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나타나게 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현되는 특성을 지녔다.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특성들을 잘 이해하면서 우리의 교육현장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들을 복음으로 양육하여, 그들이 성경적인 성품을 지닌 사명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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