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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논문] 이머징 설교에 대한 비평과 개혁주의적 대안에 관한 연구 1
김경덕 · 김창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설교학)
기사입력: 2018/01/24 [09:5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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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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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경덕, 김창훈 교수가 공저하여 개혁신학회에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들은 현대 교회에서 유행중인 이머징 설교에 대한 비평과 개혁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 들어가는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에 대한 대응으로 북미에서 시작된 이머징 교회 운동의 영향 속에서 새롭게 개척되는 많은 교회들이 전통적 교회와 다른 양상으로 출현하고 있다. 이머징 계열의 교회에서는 설교 역시 전통적 설교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포스트모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머징 설교의 제 시도들에 대하여 한국교회 강단은 어떠한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 설교학적 진단과 대안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이머징 설교는 표면적으로는 그 형식에 있어서 신 설교학(New Homiletics)의 세 가지 특징, 즉 ‘청중에 대한 관심과 고려’, ‘귀납적 접근에 대한 강조’, ‘이야기 형식에 대한 강조’로 나타나는 효과적인 전달 방법에 대한 설교 신학적 적용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그러나 그 철학과 신학에 있어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성 추구라는 미명 하에 성경의 권위와 설교의 위상 자체에 대한 해체와 도전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변화하는 목회적 환경과 청중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이머징 설교를 비평적으로 진단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이머징 설교의 신학과 형식을 연구하고 이를 비평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개혁주의 설교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이머징 설교의 신학

이상흥은 “한국에 소개되고 진행 중인 이머징 교회에 관한 연구들은 이머징 운동 내 급진계열인 이머전트 그룹에 대한 평가와 비평임에도 불구하고 이머징 전체에 대한 비판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머징 계열은 넓은 신학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에드 스테처 (Ed Stetzer)와 짐 벨처(Jim Belcher)는 이머징 지도자들을 연결주의자(Relevants), 재건주의자(Reconstructionists), 수정주의자(Revisionists)로 범주화하고 있다. 세 그룹 간에는 각각 신학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들의 설교 신학에는 전제적 오류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본 연구에서는 연결주의자로 분류되는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과 댄 킴볼(Dan Kimball), 수정주의자로 분류되는 브라이언 맥클라렌(Brian D. McLaren)과 토니 존스(Toney Jones)와 덕 패짓(Doug Pagitt)을 중심으로 이머징 설교 신학을 연구하고자 한다.

2.1 권위

홍병수와 이상홍에 따르면 이머징 교회는 단순히 교회의 모습과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생각과 교회론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교회론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시작된 이머징 교회의 설교는 전통적 설교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머징 설교의 논쟁의 초점은 설교의 최종 권위를 어디에서 찾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솔로몬 포치 교회의 설립자이자 이머징 교회의 리더인 덕패짓은 이머징 설교에 있어서의 권위를 ‘관계적 권위’(Relational Authority)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패짓이 관계와 소통을 중심으로하는 설교관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의 교회론과 권위에 대한 철학이 작용한다. 그는 문화적 변화의 시기에 “권위가 어디에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이머징 세대에게 대부분의 권위가 설 땅을 잃었기 때문이다.

패짓은 “이머징 시대에 대부분의 권위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상실했다. 정부, 교단, 군부와 같은 권위의 구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실상의 힘은 잃었다. 교회에서도 성직의 권위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마땅히 받아들여지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게리 길리(Gary E. Gilley)가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진리에 대해 경멸하는 것을 받아들인 현대 교회가, 권위적 진리를 통해서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잘못 단정하고 있다고 말한 비판은 타당하다. 진리의 배격과 권위의 해체라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정신을 받아들인 이머징 설교가 그 권위의 기초를 성경이 아닌 공동체에 두기 시작함으로써 설교적 귄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2.2 성경관

이머징 설교자들의 포스트모던에 대한 시각과 권위에 대한 인식은 그들의 성경관을 통해 확인된다. 이머전트 그룹의 리더인 토니 존스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믿음의 중심이라면, 성경은 우리를 교리와 실행으로 이끄는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존스는 모더니즘 시대에 성경은 다양한 그룹들에 의하여 각각 분리되고 임의로 조합되고 분석되어 연구됨으로써 성경에 대한 지식은 풍성해졌지만, 그로 인하여 성경의 이야기로서의 아름다움은 상실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실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경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존스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이들은 성경을 시와 노래와 이야기와 찬양으로 가득한 단순한 하나님의 이야기로서 회복되는 것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그는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포스트모던적인 방식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존스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포스트모던 방식으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대적 신학의 체계로 정의된 근본주의를 넘어서 마침내 성경을 오늘의 포스트모던 젊은이들의 삶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성경 해석의 방법론에 변화를 가져온다. 존스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 세대를 다루기 위해서 문화적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수많은 저자들에 의해 삼천년에 걸쳐 기록되었고, 이처럼 다양한 책들이 하나의 성경이 되어 “이야기” 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체계적인 신학을 담고 있는 책으로 오해하는 덫에 빠져왔다는 것이다.

존스는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시대가 구두 전승이 약화된 것에 대하여 지적하면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아이들에게 전 할 수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젊은 세대에게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라 말한다. 문병호는 개혁주의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모토로 집약된다고 말한다. 그는 ‘오직 성경’ 안에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모토가 다 들어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개혁주의 성경관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와 달리 성경을 주관적인 기록으로 보는 존스의 성경관은 영원한 객관적 진리를 담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적인 성경관과 큰 차이를 보인다.

2.3 설교관

이머징 교회의 권위와 성경관에 대한 이러한 신학은 영적 성장에 있어서 설교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댄 킴볼에 따르면 이머징 지도자들이 이끄는 교회들은 설교 외의 다양한 방식으로 영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어윈 맥매너스(Erwin McManus)가 이끄는 모자이크 교회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할 때 감각, 정서, 몸, 지성을 몰입시키는’ 영적 성장 묵상회(retreat)를 진행한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이끌었던 시더 릿지 공동체 교회(Ceder Ridge Community Church)에는 ‘영혼 찾기’(Soul Findings), ‘여정’(Journey), ‘점화’(Kindle)라는 이름의 영적 성장 강좌가 있다. 맥클라렌의 경우에도 관상의 삶과 영성 훈련을 강조하는 고대 영성 훈련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포스트모던과 현대 문화에 대한 관심에 두는 이머징 신학이 영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침묵과 관상으로 상징되는 고대적 영성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맥클라렌은 ‘영적’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하며, 관습적인 기성 종교에 모든 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고대 영성 훈련들을 발견함으로써 ‘환원주의적 세속주의와 배타적이고 반동적인 근본주의와 모호하고 개인적인 영성’을 초월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고 속에서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와 교리를 통합하려는 다윈주의적 시도가 엿보인다. 로저 오클랜드(Roger Oakland)는 이머징교회가 관상을 중시하는 이유는 참된 복음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오클랜드는 성경적인 교훈이 기갈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의 영적 영양분을 채우려는 지도자들은 말씀 대신에 종교적 의식들이나 자질구레한 여러 방법들- 아이콘들, 촛불들, 향, 기도문들, 예식 등 - 을 동원하여 체험 중심의 종교를 구축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머징 교회의 약화된 성경 중심적 사고는 말씀과 설교 중심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2.4 교회론

이머징 설교자들의 교회론적 특징은 교회를 선교적 공동체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김도훈에 따르면 이머징 계열에서 많은 경우 ‘선교적(missional)’이라는 말과 ‘이머징(emerging)’이라는 말은 혼용된다.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church)이 추구하는 교회는 세상의 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침투하는 변혁적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세상과 문화에 참여한 것처럼 교회도 현대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교를 위한 문화적 상황화를 강조하는 이머징 교회의 교회론에서는 공동체성 역시 강조된다. 이머징 리더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함께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다.

마크 드리스콜은 ‘개혁’(reformation)과 ‘선교’(mission)를 조합하여 만든 ‘선교개혁’(Reformission)이라는 신조어로 그의 교회론과 선교적 관심을 표현한다. 드리스콜은 “선교개혁은 선교가 외국에서 행해진다는 교회의 전통적으로 잘못된 입장을 개혁하고, 그 대신 예수님과 교회 생활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많은 다양한 문화의 미국인들이 바로 우리 주변 이웃의 절박한 필요에 초점을 맞추자는 근본적인 개혁의 외침이다.”라고 설명한다. 선교적 교회론을 기반으로 하는 드리스콜의 교회론은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태도를 반영한다. 이처럼 같은 경험과 친밀한 관계에 기초한 공동체성과 이에 기반한 선교를 강조하는 이머징 교회론은 신학적 상황화와 해석학적 상황화의 위험에 노출된다. 김도훈에 따르면 이머징 교회들은 교회의 성격에 관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며 그 핵심에는 새로운 교회론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향한 선교 지향적 교회를 형성하기 위한 이머징 설교자들의 교회론은 설교 위상의 약화를 초래했고 전통적 설교 신학의 변형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머징 설교자들의 신학은 설교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3 이머징 설교의 형식

3.1 귀납적 방식

이머징 설교자들은 신 설교학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1971년 프레드 크레독(Fred B. Craddock)이 「권위없는 자처럼」(As One Without Authority)을 출판하게 되면서 ‘신 설교학’은 북미 설교학의 큰 맥을 형성해 왔다.

크레독은 “설교자와 청중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수립하려는 움직임들이 강단을 포함해서 교회 안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적 토대를 침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귀납적 설교 방식은 신 설교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고 이머징 설교자들에 의해서 목회적으로 적용되어 이머징 교회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설교를 진리를 향해 청중과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정의하는 이머징 설교의 신학은 그 형식에 있어서 귀납적 방식을 취한다. 이머징 설교자들이 귀납적 설교를 취하는 이유는 신 설교학자들과 차이가 있다. 크레독이 귀납적 설교 방식을 제시한 것은 ‘언어의 위기’(language crisis)에 대한 설교학적 대응이었다.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하는 크레독은 “누가 이 설교를 들을 것인가?” 즉 청중의 컨텍스트를 중시한다. 크레독에 따르면 귀납적 방식의 설교 형식은 흥미를 유발시키고 지속시킨다. 청중의 관심사를 끝까지 붙들어 두기 때문이다. 설교를 의사전달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신 설교학의 관점에서 귀납적 방식은 청중이 설교를 들음으로써 열정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정인교에 따르면 기본적 논리 전개를 귀납추론 방식을 사용하는 이야기식 설교는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실 명제를 전제로 한다. 귀납이란 그 출발을 인간의 경험으로 잡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하나님 말씀’과는 접근 자체가 정반대라는 지적은 적실하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사적 목적으로 귀납적 방식을 취하는 신 설교학과는 달리 이머징 설교자들은 명제적 진리를 거부하고 경험된 진리를 채택하는 포스트모던화된 신학이 그 동기로 작용한다. 연역적 방식에 대한 거부가 귀납적 방식을 취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3.2 이야기식 설교

연역적인 설교를 비판하는 신 설교학은 설교의 형태에서 내러티브 혹은 이야기식 설교를 지향한다. 신 설교학의 지도자인 유진 로우리(Eugene L. Lowry)는 설교는 이야기(The Story)이며, 설교자의 임무는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의 모습을 형성하는 것이지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 설교학의 영향 속에서 이머징 설교자들은 이야기 방식을 취한다. 패짓은 ‘연설’(speech)과 ‘설교’(preaching)를 조합하여 “Speaching”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공동체에 전하려는 충동은 옳지만, 연설하는 방식(making speech)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킴볼은 새로운 시대에 유효한 설교 방식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말해주는 것이며, 성경으로부터 명제적인 원칙들의 개요를 말하고 설교의 적용 포인트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 이야기로 초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맥클라렌은 신학을 정의함에 있어 “신학은 신념의 목록이나 신념의 개요 따위는 전혀 아니야. 그것은 오히려 이야기, 즉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에 관해서 배워왔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신비하고 모호하고 이야기이기 때문에, 설교에 있어서 아름다움과 흥미를 환영한다.

성경과 신학을 이야기로 규정하는 이머징 지도자들은 설교 전달의 방식에 있어서 이야기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설교에서 설교자의 위상은 진리를 전달하는 대사가 아니라 함께 진리를 경험하는 여행 가이드의 역할로 축소된다.

3.3 대화식 설교

이머징 설교자들은 귀납적 방식과 이야기식 설교를 넘어 대화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패짓은 “이머징 세대에 권위는 관계로부터 나온다. 권위는 공동체로 인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권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기원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패짓은 그의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로 인하여 새 로운 차원의 소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관계가 교회의 권위의 출처라는 그의 포스트모던적 교회관은 설교 역시도 공동체의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설교 철학과 방법론을 야기시켰다. 패짓의 설교의 철학은 청중과의 대화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박현신은 패짓의 이러한 설교관에 관하여 성경의 권위를 하나님에 두지 않고 신앙 공동체에 두려하는 위험과, 해석학적 아젠다를 ‘오직 성경’ 보다는 ‘오직 문화(sola cultura)’에 두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설교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패짓은 설교자가 속한 공동체의 한 멤버로 살아가면서 전진하는 대화적 설교를 추구하거나 아니면 권위적인 일방적 스피치를 선택하는 양자 택일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머징 설교자들이 시도하는 대화식 설교는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에 대한 전면적 재설정이 일어나는 현장이며 설교의 위상과 설교자의 권위에 대한 해체가 발생하는 현장이다.

3.4 다감각응용 설교(multi-sensory preaching)

이머징 설교는 구두 커뮤니케이션과 언어적 전달이라는 전통적 설교 방식을 해체한다. 댄 킴볼은 경험과 참여를 중요시하는 이머징 세대를 위한 예배는 다감각 응용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다감각응용 예배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그리고 경험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가 찬양, 침묵, 설교, 그리고 예술을 포함할 수 있고, 또 훨씬 더 근사한 표현의 스펙트럼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단지 듣고 찬양하는 것을 지나서 우리의 모든 감각들을 통해서 예배에 동참하는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방식으로 옮겨 간다.”고 말한다. 킴볼은 설교의 방법에 있어서 언어 이외의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할 것을 강조한다. 킴볼은 이에 대한 실제적인 제안으로 화면에 성경 본문과 함께 사진, 미술 작품, 또는 그래픽 요소를 투사하고, 시각적 요소를 사용하여 요지를 전달하라고 말한다.

카슨(D. A. Carson)은 이머징 교회 운동에서 설교는 예배 모임에서의 경험의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머징 설교의 메시지는 말과 시각 예술과 침묵과 증언과 이야기의 혼합을 통해 전달되며 설교자는 사람들이 성경을 배우도록 격려하는 동기부여자일 뿐이다. 오클랜드는 이머징 설교자들의 이러한 시도가 성경적 근거가 없음을 지적한다. 그는 “성경에는 제자들과 초대 교회가 예배의 ‘원시’형태로 돌아갔다는 증거가 없다. 특히 그들이 어떤 영적인 것을 더 느끼기 위해 어두운 분위기를 필요로 했다는 증거는 더더욱 없다. … 지금 이머징 교회가 다감각 예식을 통해 사람들의 환심을 간교하게 얻으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요 초대 교회 교인들의 용기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비판한다. 오클랜드가 지적하는 대로 이머징 교회 운동의 목표는 포스트모던 세대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신비 체험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교회 교부들과 신비주의자들로부터 영적 통찰력을 얻으려하는 시도는 성경이 시대를 초월한 진리요 살아 운동력 있는 말씀이라는 성경관을 배격하는 행위이다. 이미지 중심적 사고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청각만이 아닌 다감각을 사용한다는 접근은 의미가 있으나, 강단 중심에서 벗어나 침묵과 관상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영적 훈련들로 연결됨으로써 전통적 설교의 기초를 해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초래한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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