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신학
[논문] 중세시대 개혁의 선구자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 2
김요섭(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기사입력: 2018/04/18 [09:52]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순정
배너
이 글은 김요섭 박사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중세시대의 개혁의 선구자였던 위클리프의 교회론에 대해 연구하여 제시한다. 위클리프의 교회론은 당시 로마 가톨릭과 달리 개혁적인 것이었다.


3.2 교회론적 의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독점적 지식으로서의 예정 이해는 위클리프의 교회론적으로 세 가지 의의를 갖는다. 첫째, 예정에 기초한 참 교회 이해는 무엇보다 가시적이며 제도적 교회 안에 선택자들뿐 아니라 악인들과 함께 혼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위클리프는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과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워크맨은 이와 관련해 위클리프가 비록 가시적 교회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초월한 예정에 기초한 참된 교회의 완벽함과 시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적 교회의 혼합을 대조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위클리프의 대조는 결국 교황제도를 대표로 하는 가시적 교회의 위계질서 제도를 상대화시키는 교회론이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위클리프는 교회의 제도나 직분이 결코 특정 신자의 예정여부를 확보해 주지 못함을 강조한다. “어떤 그리스도의 대리자도 만일 그가 특별한 계시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이 거룩한 보편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자신이 교회의 구성원의 하나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택자와 유기자의 혼합체인 지상 교회는 그 구성원들의 선택 여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한 개인의 지위를 당사자의 구원의 여부나 권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위클리프는 이와 같은 “혼합된 교회”(ecclesia mixta)의 이해를 바탕으로 당시 교황청의 분열을 비판한다. 교회 지도자들이나 지체들의 결함을 문제로 삼아 교회를 분열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는 본래 선택자들의 총합인 참된 교회가 지상에서는 유기된 자들과 악인들과 혼합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정”을 교회의 기초라고 말하면서 위클리프는 당시 각각 서로를 위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던 로마측과 아비뇽측 교황청의 분열을 비판했다. 다른 한편 참된 교회의 기초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을 강조한 기초에는 그의 철학 사상이 놓여 있었다. 위클리프는 자신의 실재론을 교회론적으로 적용해 개별적 교회 혹은 제도적 교회보다 보편적인 참된 교회가 존재론적인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 보편적 교회가 개별적 교회들에 대하여 인과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보았다. 그리고 참된 보편적인 교회의 존재론적 우선권을 모든 존재의 필연적 진리인 하나님의 결정에 놓으려 했다. 그러므로 위클리프가 그의 교회론에서 제도적 교회의 혼합성과 불완전성을 말한 것은 교황청의 분열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그의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각각 그 동기와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예정에 기초한 위클리프의 교회론은 지상에 있는 전투적 교회의 영속성과 그 지체인 성도들의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위클리프는 “교회에 관하여”에서 선택자들로 이루어지는 교회를 그 위치에 따라 셋으로 구별한다. 그것은 천상의 승리적인 교회(ecclesia triumphata)와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ecclesia militia) 그리고 연옥에 있는 잠자는 교회(ecclesia dormita)이다. 위클리프는 그 가운데 지상 교회에 대하여 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부터 그를 머리로 삼아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이 전투하는 지상 교회는 지금도 선택자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교회이다. 따라서 이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최종적인 견인의 은혜를 받음으로써 어떤 중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상태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교회론적 강조점은 교황제도나 수도회 제도 등 특정한 제도에서 교회의 합법성과 권위를 주장하며 파문과 정죄를 남용하는 잉글랜드의 적대적인 교권 세력과의 갈등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특히 람베스 재판으로 시작해 캔터베리 대주교와 교황청으로부터 이단혐의로 집중적 공격을 받고 있던 위클리프로서는 이와 같은 이단 정죄와 파문에 대해 신학적으로 반박해야만 했다. 그러나 더 주목할 만한 특징은 위클리프가 교회의 영속성과 지체인 성도들의 구원의 확실성과 관련해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교회의 머리이시라는 신학적 전제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어거스틴은 그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적인 것들은 예정되신 그리스도에 비해 이차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여러 성경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전체 교회의 머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에 불과한 교황과 그를 수장으로 하는 교회의 직분 구조가 아니다. 참된 교회와 그 지체들이 서 있는 교회의 기초는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이다. “이로부터 교회의 영적인 집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기초를 삼고, 소망을 벽으로 삼고, 사랑을 지붕으로 삼아 세워졌음이 분명해진다. 다른 어떤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교회가 세워진 그 기초인 이 반석 위에 교회는 참으로 세워졌다.” 위클리프는 이와 같은 교회론적 전제 위에서 선택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머리이심 이외의 다른 가시적 제도나 인간적 권위에 의해 지상 교회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신자들의 구원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비판했다.

셋째, 진정한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에 기초했다는 것은 그 교회의 지체인 모든 신자들이 직접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클리프는 모든 택자들은 교회의 제도적 장치, 특히 사제들의 중재 없이도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학적으로는 그의 실재론에 입각한 인식론이 신지식의 보편적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였다. 우리가 어떤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감각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 되는 존재 자체나 그 존재를 인식 가능하도록 하는 존재 안에 무언가 때문이다. 그리고 추상적 대상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의 인식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그 존재를 인식하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위클리프는 초대교회 때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보편 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황 제도와 같은 특정한 교회의 제도에 복종할 필요 없이 말씀의 진리를 접하고 이해했음을 상기시킨다. 루터의 “만인제사장사상”과 유사한 위클리프의 이와 같은 주장은 1370년대 후반 그가 경험한 세속권과 교권 사이의 투쟁에서 세속 군주의 권한을 변호하려는 동기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적 동기보다 그의 성경관이 그의 중요한 신학적 근거였다. 위클리프는 성경이 진리의 언어적 표현의 틀(paradigm)일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 표현의 수단(means)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성경은 신적 이해의 영원한 논리의 구현이며 모든 피조물들의 진리가 가능한 원천이기 때문에 모든 진리 주장들은 반드시 성경에서 우선적으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위클리프는 성경 해석의 권위를 교회의 전통이나 사제들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 자체에 두고자 했다. 그 결과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 왜곡되어 있는 당시 교회의 위계질서제도는 반드시 재정립될 개혁의 대상이었다.

3.3 교회 개혁 방안

위클리프는 그의 교회론적 작품들에서 예정에 근거한 교회 이해로부터 구체적인 교회 개혁 방안들을 제시한다. 첫째,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은 당시 교황청이 보여주는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을 비판한다. 위클리프는 하나님의 비밀한 선택에 기초한 교회 개념으로부터 가시적 교회의 어떤 구성원도 자신의 지위를 가지고 권위를 내세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주교일 수도 있고 교회의 주인이나 목회자일수도 있지만 여전히 위선자(prescitus)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현재의 의에 따라 은혜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사람이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일원인 것은 아니다.”

지위가 곧 택함과 참 교회의 구성원임을 확증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있어서 교황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위클리프가 볼 때 교황청의 문제는 교황 자신이 스스로 선택자에 포함되어 있는지의 확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이라는 지위에 따른 무오성을 주장하면서 비성경적인 권한을 남발한 데 있었다. 위클리프는 무오성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한다. “교황은 성직매매의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결과로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피조물에게 돌리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죄를 지을 수 없는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교황은 성경의 진리를 자신의 지위에 따라 임의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성경이 교황을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교황의 법들과 교서들과 교령들에 관한 때에는 오직 그것들이 성경에 근거한 한에서만 순종하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무오하지도 않고 독점적 성경해석의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황이 성경을 넘어서는 제도나 의식들을 법으로 제정해신 자들을 구속해서는 안된다. “갈라디아서 1:9과 다른 많은 구절이 명백히 말하듯 그리스도께서는 그 누구라도 자신의 법을 침해할 무엇인가를 첨가하는 것을 엄중한 저주로써 금지하셨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이 모든 진리가 발견되는 곳이라고 우리에게 말한 성경에서 어떤 근거로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법들을 거짓된 자가 조작해냈다.”

위클리프는 사제들의 사죄 선언권, 면벌부 제도 등도 이와 같은 권한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판한다. 위클리프는 당시 대분열을 염두에 두고 주로 교황청의 오류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사실상 교회 제도 전반을 향했다. 위클리프는 수도원 제도나 수도규율 역시 성경이나 사도적 순수성에서 벗어난 불필요한 인간적 조작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특별히 당시 탁발수도회들은 성경의 기준이나 사도적인 순수성을 따르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해 놓은 규율들에 따른 질서를 요구하고 있었다. 위클리프는 도미니크나 프란시스 등 특정 인물을 따라 특정한 규율이나 서약을 부과하여 그 수행을 통해 이루려 하는 “사도적인 가난”은 불필요한 요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의 규율이므로 신자들에게는 다만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면 충분하다. 위클리프는 교황제도나 수도원제도 등 교회 안의 여러 위계체제가 천상의 체제를 반영하기 때문에 정당하며 더 나아가 교권이 세속권 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천상의 완전한 위계질서는 도리어 지상의 부도덕하며 불완전한 인간적 체계들이 스스로의 잘못과 남용을 반성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개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은 교회 개혁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해 무엇보다 사제들이 가져야 할 본연의 직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했다. 위클리프는 교황 제도나 수위권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가 문제로 삼는 것은 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의 직무가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 있는 상황이었다. 위클리프는 성경이 베드로가 보여준 “신실한 믿음과 겸손과 섬김”을 교황이 추구해야 할 지도자로서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가 가진 우위는 명예나 세상적 권력과 영광에 있지 않았고 도리어 그것들 반대에 있었다. 베드로의 우위는 그의 신실한 믿음과 겸손과 섬김으로부터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교황뿐 아니라 모든 사제들은 목회자로서 얼마나 성실하게 교회 안에서 그 직무를 감당하는가 여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위클리프는 성경이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더 나아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는 모두 적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반드시 성직자들 안에서 그 원천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제들이 확고하게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그들의 영예로운 지위로 인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가시적 교회 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황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나그네들 가운데 로마 교황만큼 더 사탄과 적그리스도 우두머리의 주된 대리자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쉽게 자신의 위선과 모든 종류의 거짓말로 교회를 속여 빼앗을 수 있다.”

성경의 진리는 모든 선택자들에게 열려 있다. 이와 같은 성경에 대한 이해는 곧 사제들이 신자들의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사제들의 자격을 판단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무관한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성도들을 정죄하고 파문하는 것은 부당하다. 구원의 여부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신자들이 성경을 스스로 이해하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교황을 비롯한 교회의 가르침을 분별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위클리프와 그의 제자들은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성경의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이며 이 설교에는 반드시 현실 교회가 얼마나 성경의 진리와 교회의 본분을 벗어나 정치적 야망과 경제적 탐욕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폭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클리프가 제시한 영어 성경 번역과 일반 대중들을 위한 설교자들의 파송 등 목회적 제안들은 모두 이와 같은 그의 교회 이해의 실천적 결론들이었다.

셋째,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은 구체적인 개혁 방안들을 제안한다. 위클리프는 교황청이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 저질러 놓은 남용의 궁극적 원인을 교회가 사적 재산을 소유한 데서 찾았다. 이와 관련해 인류 역사를 일곱 시기의 순환으로 이해했던 위클리프의 역사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첫 세 시기는 구약 시대에 속하며 교회의 전성기인 네 번째 시기는 신약과 초대교회 시대에 해당한다. 다섯 번째부터 일곱 번째의 시기는 교회의 타락기인데 그 타락의 시작은 콘스탄틴 황제가 실베스터 1세(Sylvester I, 재위 314-335)에게 재산을 증여하면서 시작되었다. 10세기 그레고리 교황(Gregory I, 재위 590-604) 이후 교회가 급속도로 세속화되면서 여섯 번째 시기가 도래했고 14세기 인노센트 3세(Innocent III, 재위 1198-1216) 때부터는 교회가 세속 권세를 지배한다고 자처하는 일곱 번째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타락을 주도했던 교황청이 분열한 것은 이제 일곱 시기의 첫 순환의 종결을 예표하며 곧 이제 새로운 순환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순환적 세계관과 더불어 위클리프의 지배권 개념은 교회 개혁의 실천 방안에 관련해서 다시 한 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클리프는 교회의 타락과 회복의 판단 기준을 신적 지배권에 대한 세속적 지배권의 올바른 종속 여부에서 찾았다. 위클리프는 창조시 완전한 신적 지배권(divine dominion)에 완벽하게 부응하도록 주어졌던 자연적 지배권(natural dominion)이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적 지배권(human dominion)으로 변질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인간적 지배권은 신적 지배권에 절대성에 비교할 때 타락한 인간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잠정적인 지배권이며 일종의 허상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통해 취하신 새로운 지배권(Christ’s dominion)에 의해 구원받은 교회는 이제 복음적인 지배권(evangelical dominion)을 누릴 수 있다. 이 복음적 지배권은 곧 사도들과 초대 교회가 실천했던 가난과 단순한 삶의 실천이다. 위클리프가 보기에 인간적 지배권에 입각해 세상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타락 이후 인간들 사이의 잠정적 관계를 담당하는 세속 권세의 소임이며 결코 영적 기관인 교회에 속한 권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의 증여 이후 교회나 수도원이 사적으로 재산을 소유하게 된 것은 모든 지배권의 근원이자 기준인 신적 지배권을 위반한 것이다. 위클리프는 당시 교회가 세속화되고 교황청이 적그리스도의 소굴로 변질된 것은 결국 이와 같은 교회의 사유 재산 소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판단했다.

위클리프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위해서 세속군주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왕과 사제들 모두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각각 부여 받은 고유의 역할 있다는 이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두 명의 대리자를 가지셨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대 다시 말해 왕은 세속적 일들에 관하여 사제는 영적인 일들에 관하여 대리자들이다. 왕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행하신 것처럼 모든 엄격으로 반역을 억눌러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을 소유함으로써 타락으로 치달은 교회를 개혁할 책임은 세속 군주에게 있다. “왕은 그의 왕국 내에서 가장 보편적인 인간적 강제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왕이 성직자들의 세속적 재산을 강제적으로 빼앗음으로서 그들을 벌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것은 우선적으로 왕의 직무에 속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결국 왕이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교황을 비롯한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세속적 소유와 권력을 포기하고 청빈을 추구하며 본연의 목회적 사역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게 강제하는 것이 위클리프가 제안한 교회 개혁의 구체적 실천 방안이었다.

4 결론: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의 영향과 평가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과 교회 개혁 주장은 잉글랜드의 교회뿐 아니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결국 1382년 이단으로 정죄되어 추방당한 후 위클리프는 루터워스에 머물며 조용히 저술과 설교 활동을 계속하다가 1384년 12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사후 대주교 아룬델(Thomas Arundel, 1353-1414)은 위클리프의 사상을 다시 조사했고 그 결과 267개 항목에 걸쳐 위클리프가 이단적이며 오류가 있다고 단죄했다. 교황청 역시 꾸준히 위클리프의 사상에 대한 정죄를 계속했으며 마침내 후스를 화형에 처한 1415년 콘스탄스 회의에서 위클리프도 파문하고 그의 시신을 화형할 것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13년 뒤인 1428년 봄 잉글랜드의 교회가 위클리프의 유해를 파내 불살라 스위프트 강에 뿌림으로써 실행되었다.

사후까지 계속된 정죄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위클리프의 개혁 사상은 이후 나타난 교회개혁운동들의 밑거름이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1401년부터 잉글랜드 중부 지역에서 전개된 롤라드 운동이 위클리프의 성경중심의 신학 사상과 설교 활동의 영향을 받았다.88 한 세기 이후 위클리프의 개혁 사상과 그 구체적인 제안은 틴데일의 성경 번역 작업에도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다.

또 국외적으로는 위클리프의 개혁 사상은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와 보헤미아의 공주 앤의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두 왕국 사이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후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물론 후스의 교회론과 성찬론이 위클리프의 실재론 철학을 기반으로 삼고 있지 않으며, 후스가 명백하게 화체설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두 개혁자들의 이해에는 서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당시 로마 가톨릭의 성직 위계질서체제와 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한 점에 있어서는 후스가 위클리프의 개혁 정신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금 더 멀리 보면 위클리프가 심어 놓은 개혁 사상과 그 활동이 루터를 비롯한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등장하는 데 있어 동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개혁적 교회론을 전개함에 있어 자신의 정교한 철학적 논증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경 주해를 치밀하게 제시하지 않은 점, 하나님의 예정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교황 제도 자체를 거부하지 않은 점, 그리고 결국 세속 권세와 영적 권세의 구별을 간과하고 교회 개혁을 위해 세속 군주가 나서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정치적 해법만을 주장한 점 등은 위클리프의 교회론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과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들이다. 위클리프와 달리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부터 나오는 바른 교리의 재확인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는 원리에 따른 교황제도를 비롯한 교회 체제의 변화, 그리고 세속 권세와 영적 권세의 “분리가 아닌 구별”에 따른 총체적인 신앙의 개혁 실천을 추구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의 절대성에 대해 교회의 제도적 권세를 상대화한 점, 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의 권위를 그 직임이 아닌 충실한 직무 수행에서 찾으려 한 점, 하나님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을 강조함으로써 지상 교회의 영속성과 개혁의 필연성을 주장한 점은 위클리프의 교회론과 종교개혁자들의 연속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적 관계와 내용적 연속성을 고려할 때 위클리프를 16세기 종교개혁을 예비한 중세 후기 종교개혁의 선구자라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배너
배너
배너
최근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