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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통신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소강석 목사 설교 전문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라(행2:1-4)
기사입력: 2018/05/09 [23:23]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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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첫째날 저녁 집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존경하는 전계헌 총회장님과 총회 임원들께서 올해도 저를 또 세워주셔서 목사님과 장로님들 앞에서 말씀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목장기도회에 서면 설수록 능수능란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퍼펙트 스톰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둘 이상의 작은 태풍이 서로 충돌하면서 그 영향력이 가히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더 큰 피해를 당할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0년에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재난 영화가 상영되기도 하였는데요. 

 

이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립니다. 보통의 태풍은 흔적이라도 남기는데 퍼펙트 스톰은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완벽한 폭풍이에요. 그러니 이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치면 어마어마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세계 기독교는 재난을 맞고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들이 세계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고 있어요. 특별히 그 재난의 폭풍은 지금 한국교회에 더 불어오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1)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잃고 거룩의 능력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원래 십자가 복음, 천국 복음, 재림 복음 등 오직예수를 붙잡고 시대정신과 영혼세계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한국교회도 급속한 성장주의와 속도주의적 시류에 편승을 하고 만 거예요. 

 

그래서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물량화, 자본주의화, 세속화가 되기 시작하였어요. 그리고 서민의 옷 대신 귀족의 옷을 입고 종교적 카르텔을 형성하며 이너 서클화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결과 현대인들은 한국교회를 향하여  스마일 패러다임이 아닌, 아주 차갑고 냉정한 사무라이 패러다임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럴 때 한국교회는 자성하고 변화를 모색했어야 하는데 안일한 자세로 자기 성(castle)만 쌓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성장만능주의와 세속화, 교권의 욕망 때문에 도덕적, 영적, 거룩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비난과 공격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재난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난의 바람이 우리 총회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반기독교적인 사상의 흐름 때문입니다. 

 

이 반기독교 사상과 흐름이 언제부터 시작된 줄 아십니까? 철학적으로는 후기구조주의, 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적으로는 네오 막시즘 사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후기구조주의는 지금까지 정형화 되어 왔던 모든 구조와 형태를 해체하는 거예요. 이 후기구조주의 영향으로 바로 프랑스의 68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이성보다 감성을 더 우월하게 생각하고 모든 권위를 붕괴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사회 시스템 안에서 기존 가치관과 이념 등으로부터 탈피하거나 해체를 하려고 하지요.(자막) 네오 막시즘은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문화적 휴머니즘을 혼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진보사상과 신좌파 사상이라 할 수 있어요.

 

이 세 가지 사상과 문화적 흐름이 하나가 되어 교회를 공격하고 해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특별히 네오 막시즘 사상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서 발전이 되었는데요. 여러 학자들 가운데 안토니오 그람시와 빌헬름 라이히의 사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이런 네오 막시스트들이 꿈꾸는 세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누구나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지요.

 

그래서 빌헬름 라이히는 성정치를 주장한 거예요. 그에 의하면 인간 내면에서 억압받고 있는 성적 욕망을 해방시켰을 때 새로운 마르크시즘의 세상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정치에서 가장 앞세우는 무기가 바로 동성애예요.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런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헤게모니 이론을 주장해요. 모든 사회와 문화에 있어서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헤게모니를 잡는데 가장 큰 걸림돌을 학교나 교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든지 교회를 해체해야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전, 언론전을 잘 펼쳐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사상을 가지고 그는 ‘문화적 패권’이라는 책을 썼지요. 그래서 그들은 먼저 언론부터 장악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국민의 의식과 상식, 세계관을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언론의 반복을 통해서 계속 무의식적 세뇌를 시키는 거예요. 검은 것도 자꾸 흰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면 흰 것이 된다는 그람시의 반복이론에 근거해서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금기시했지 않습니까? 완전 비정상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끊임없이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성소수자로 보도를 하며 미화를 시키니까 10년이 지나자 대중이 그렇게 인식을 해 버린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정치권으로 P.C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P.C운동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이 P.C란 Political Correctness를 말하는데, 우리 말로는 정치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 정도라는 말로 번역이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인종이나 성,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나 종교, 직업 등의 편견이 섞인 언어를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곧이 곧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유리하고 아름답게만 말을 하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낙태나 동성애를 나쁘다고 말하지 말고 인권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고 이슬람의 테러도 다문화의 아름다움으로 미화시켜 말하자는 것이지요. 

 

이러한 P.C운동이 유럽에서 먼저 일어나게 되었고 미국으로 번져가게 되었습니다. 우선 듣기엔 좋은 말이죠. 그러나 바로 이러한 P.C운동에 의해서 문화적 병리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기독교의 절대 가치나 절대 진리가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구라파교회 뿐만 아니라 미국교회가 힘을 잃기 시작한 거죠. 

  

제가 얼마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오셔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계시는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옆에도 다가갈 수 없는 인격과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뭐라고 충고를 한 줄 아세요? 

 

“소목사님, 절대로 교회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역이나, 교회 연합사역 같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거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어차피 유럽과 미국에서 되어진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복음을 잘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에 절대로 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아버렸는지 모릅니다. 그 분도 9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바로 이 P.C운동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교회가 무너지고 미국교회가 반기독교적인 악법을 수용할 때 목회자들이 다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이슈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노터치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복음만 전하고 목회에만 충실하겠습니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잘 전해야지요. 그러나 그러다가 영국교회나 미국교회는 반기독교 악법을 허용해 버리게 되고 목회생태계를 다 파괴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P.C의 흐름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던 때에 영국교회와 미국교회 목회자들은 이러한 흐름과 싸우지 못한 자신들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이렇게 변명했던 것이죠. 우리는 오직 복음만 전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국교회 목회자들은 지금에 와서는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싶어도 법으로 금지되어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P.C운동은 교회까지 침묵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 한 권 있는데요, 홍지수씨가 쓴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라는 책입니다. 홍지수씨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난크리스챤입니다.

 

그런데도 이 P.C의 흐름, 즉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사상과 공격적 사조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이 P.C라는 문화적 병리현상 때문에 지난번에 역으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의 흐름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소득과세 등이 법으로 통과되었다면 한국교회는 재난에 완전히 쓰러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3년 전에는 하마터면 국회에서 종교인과세가 아니라 종교소득과세로 통과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부족하지만 제가 그것을 뒤늦게 알고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장들과 함께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당이 의총을 해서 종교소득과세를 종교인과세로 바꾸게 된 거예요. 만약에 그때 종교소득과세로 입법이 되어버렸다면, 한국교회 모든 선교 활동이나 목회자의 목회 활동이 완전히 위축되고 교회가 기업처럼 세무조사의 대상이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종교인 과세가 되어서 최소한의 마찰을 겪으면서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교회가 성역화되어야 하느냐, 교회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하는데요. 교회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교회는 절대로 영리단체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교회는 종교 고유의 목적인 성경의 가치와 예수님의 진리를 실현하는 사역이 보장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반기독교적인 세력은 계속 집요하고 전략적으로 한국교회를 해체시키고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어요. 이러한 사실을 과거 종자연에서 활동했던 이정훈 교수님이 양심고백을 하셔서 우리는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께서 내일 오전 강의를 하시는데 꼭 들으시기 바랍니다마는.

 

여러분, 교회가 완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도 인간이 모인 곳인데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도 어쩌다가 교회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요소가 나오면 그렇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이런 현상들이 엄청난 재난의 바람으로 발전할 수도 있거든요. 

 

퍼펙트 스톰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별로 위력적이지 않은 작은 바람이 갑자기 엉키고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재난의 바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 총회도 방심할 수 없어요. 총신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지만, 더 큰 재난의 바람이 불어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큰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더 크고 더 능력 있는 홀리(Holy) 퍼펙트 스톰을 일으켜야 해요. 우리가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불은 산불을 놓아 끄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에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을 거룩한 하늘의 바람으로 잠잠케 해 버려야 합니다.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으로 이 땅에 불어오는 반기독교적 재난의 바람을 다 날려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을 하셨지만 유대종교로부터 강력한 핍박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이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재난의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존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 다락방을 향하여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벌벌 떨게 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그 재난의 바람들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불어온 홀리 퍼펙트 스톰이에요. 

 

행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여기 급하고 강한 바람은 헬라어로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인데요, “파괴적인 힘을 가진 몰아치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지요. 그런데 급하고 강한 바람과 함께 불의 혀가 갈라짐같이 임한 거예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데 거기에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얼마나 불이 잘 번지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이 마가 다락방에 임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교회를 태동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을 급하고 강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날려 버렸어요. 

 

오늘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께서 목장기도회로 모이셨는데, 오늘 이 자리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부흥의 역사가 어디서 일어났습니까? 좁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지 않습니까?(영상) 물론 저 건물은 비잔티움 시대에 지은 건물입니다만, 사실은 저보다 더 훨씬 적었겠지요. 저런 곳에서 위대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다면, 이 엄청난 충현교회에 수천 명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모인 곳에 더 큰 성령의 거룩한 홀리 퍼펙트 스톰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구원사적으로 볼 때는 단회적인 사건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영속적인 사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가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는 전역사적이고 거룩한 영적 혁명의 기도회가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1. 먼저 우리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든 부흥의 역사는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미스바 부흥운동, 수문 앞 광장의 부흥운동, 갈멜산의 부흥운동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했습니까?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냥 기도만 했을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회개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날 주님을 배반했던 일들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 체험을 한 후에 맨 먼저 어떤 메시지를 전하였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행2:38) 그리고 그 회개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행3:13-15) 그랬을 때, 마가 다락방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 위대한 부흥의 퍼펙트 스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총신의 문제와 교단의 모든 문제를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기도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회개 기도부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말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한국교회를 공격하는 반기독교 정서와 흐름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최전방에 서서 활동을 하며 사상전, 영전, 문화전을 했어요. 사실 동성애 문제도 한국교회가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를 몰랐어요. 그러나 그것이 교회 생태계와 건강한 사회를 무너뜨리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만약 국회에서 독소조항이 담긴 채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더라면 목사나 성도가 동성애반대를 하는 발언을 하거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설교를 해도 법으로 처벌을 받게 돼요.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차별금지법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여러 국회의원들과 소통하고 설득을 하였고, 대한문 앞 광장에서 퀴어축제 반대집회를 주도하면서 동성애의 폐해에 대해 알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KBS 9시 뉴스에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애 문제에 대해 보도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과 주요 일간지에 이슈가 되게 되었고, 마침내 질병관리본부에서도 동성애가 에이즈를 감염시키는 원인이라고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인 과세도 마찬가지에요. 분명히 종교인과세로 입법화가 되었는데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가 잘못 이해해서 종교소득과세처럼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35개 조항이나 나열해 놓은 과세 항목을 정부와 잘 협의하여 다 정리하고 오로지 목사님들의 사례비만 과세를 하도록 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진표 의원님을 통하여 저소득층 목회자들에게는 근로 장려 세제 혜택까지 받도록 하였어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김선규 증경총회장님과 전계헌 총회장님께서 저를 목회자납세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교회와 관계된 다큐, 즉 ‘일사각오 주기철’(사진), ‘밀림의 크리스마스’(사진), ‘발굴추적 예수’(사진), ‘다시 코리아로’(사진), ‘전쟁과 기억’(사진), ‘시인과 독립운동’(사진)등을 다큐로 제작하여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 되게 하였어요. 

 

특별히 올해는 3.1절 특집 다큐, ‘이방인과 3.1운동’(사진)이라는 다큐를 촬영 제작하여 KBS 방송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선교사들의 헌신과 한국교회 성도들의 애국애민의 정신을 알리는데 기여하였어요. 

 

그 다큐에 이승희 부총회장님께서도 출연하셔서 3.1운동의 불씨가 된 미션스쿨 현장을 직접 찾아서 민족독립을 위한 한국교회의 공헌을 증언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부산의 문상무 목사님, 대전의 신종철 목사님, 광주의 한기승 목사님, 여수의 김성천 목사님 등이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용서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마는, 저는 이런 사역을 하면서 은근히 저 스스로 프라우드하게 여겼고 대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형교회 목사 중 이런 사상전과 문화전을 최전방에 서서 하는 사람이 전혀 없거든요. 

 

그러나 예기치도 못한 순간에 우리 총신 문제와 교단의 문제가 지상파 방송과 일간지 신문, 그리고 수십 종의 인터넷 신문에 부정적으로 보도되는 모습을 보고 뒤통수를 맞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없었던 저 자신의 무능함을 바라보면서 한없는 자학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무차별적으로 보도되는 뉴스들을 어떻게 막습니까? 막을래야 막을 단계를 넘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저는 억울해서 잠이 안 왔습니다. 저의 무능이고 모든 것이 제 책임 같아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표현하기가 너무나 어색합니다마는, 행여라도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는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며칠 동안 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상황적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빚어지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한 사람의 지나친 욕망 때문이었죠. 그 욕망으로 쌓은 바벨탑이 이 결과를 가져온 것이죠. 그래서 그 바벨탑을 허물기 위해서 외부세력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높은 바벨탑을 허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방송과 일간지에 보도가 되게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의 아픔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받아보기도 합니다마는. 그러나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최선을 다해서 일단락을 지었지만, 우리가 앞으로 남아있는 산적한 문제를 잘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 하늘로부터 거룩한 역설적인 퍼펙트 스톰이 불어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정치권에 있는 분들의 욕망과 무능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의 총신문제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와 교권 싸움이 빚어낸 결과가 아닙니까? 이 일에 완전한 승자나 의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패배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치권에 있는 교단의 지도자들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아니, 그냥 팔짱끼고 방조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방조한 사람들도 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정의와 개혁을 앞세우며 싸웠던 우리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아픔이 없었고 애통함이 없었다면 그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아니,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을 향해서 분노와 증오심으로만 가득 했고 행여라도 마음 깊은 곳에 은근한 사욕이 숨어있었다면 그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솔로몬 앞에서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두 여인 가운데 어떤 여자가 진짜 엄마였습니까? 연민과 눈물과 애통함을 가진 여자가 그 아이의 진짜 엄마가 아니었던가요?(왕상3:26-28)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총신과 교단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함께 회개하고 애통을 해야지요. 

 

그래서 구약 백성들은 이웃의 죄도 나의 죄로 알고 회개를 하였고, 심지어 느헤미야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조상의 죄까지 짊어지고 회개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코퍼레이트 퍼스널리티(Corporate Personality), 곧 집합적인 인격체 사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내 개인의 죄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회개를 하고 민족적 회개를 했던 것이죠.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다면, 어찌 우리가 교단에 이런 재난의 바람을 불어오게 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우리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개혁주의자들이 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만 개혁주의, 개혁주의 했지, 실천적인 개혁주의자가 못 되었습니다. 행동하는 개혁주의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개혁신학과 사상을 실천하는 목사와 장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교단의 장래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교단의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현실적인 문제에만 급급했고 때로는 교권의 욕망에만 사로잡혀 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총신이 살 수 있고, 총신이 일어날 수 있고, 우리 총회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목사님, 장로님들이여, 우리가 이곳에 왜 모였습니까? 기도하러 모였지 않습니까? 이 거룩한 기도 시간에 우리가 먼저 회개합시다. 우리가 이 시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거룩한 퍼펙트 스톰을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불어오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합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오늘의 총신사태를 가져오게 했고, 오늘의 교단 현실을 낳게 하였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잘한다고 했지만 행여라도 우리가 주님 얼굴에 먹칠하지는 않았는지요. 행여라도 우리의 손으로 주님 얼굴에 주먹질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주여, 목사와 장로인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의 죄 탓입니다. 우리 모두를 살려주옵소서. 우리의 총신을 살려주시옵소서. 우리의 교단을 살려주시옵소서. 우리 한국교회를 살려주시옵소서.”

 

2.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거룩한 성령의 임함과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어요(행1:14). 그들이 하루 이틀 기다리며 기도했겠습니까? 적어도 10일 동안 그들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성령의 임함을 사모하고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간구했던 거예요. 그럴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한 거에요. 

 

“홀연히”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프노”인데 영어로 “Suddenly”, “갑자기”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언제 임할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임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할 일은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을수록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부흥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도 이렇게 기도했지 않습니까?

 

합3:2하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흥하고 망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부흥을 사모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이예요. 미국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영국의 청교도들이 성공회의 핍박 때문에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왔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성경적인 가치관과 청교도적인 믿음의 기초 위에서 미국을 세웠어요. 그들은 순결, 정결,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아주 경건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심령이 점점 컬컬하고 메말라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몇 사람만 모여도 서로를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파벌싸움을 하고 쪼그라드는 거예요. 이런 모습이 ‘주홍글씨’라는 소설에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자기들 스스로 영적 각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흥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 거예요. 

 

“아,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겉으로는 청교도의 규율을 지키며 경건하게 산다 할지라도 우리의 심령이 메말라 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냉랭하고 냉소적이 되어 가는가. 우리 교회 역시 얼마나 침체 되어가고 있고 냉랭한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는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우리 믿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다시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먼저 우리의 심령과 교회에 새롭고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바로 이런 영적 각성과 영적인 갈망이 미국의 1차대각성 운동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2차 대각성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차 대각성운동은 맨 먼저 예일 대학교에서 일어났어요. 티모시 드와이트 예일대 총장이 학생들에게 영적 각성과 갈망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의 3분의 2가 일어서서 기도하고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계속 기도운동을 하게 된 거예요. 그 엘리트 학생들이 먼저 우리의 심령에 부흥을 달라고 미국 전역에 부흥의 불길이 치솟게 해 달라고 기도한 거예요. 

 

그러자 이런 부흥의 열기가 저 메사추세츠주 북서쪽에 위치한 윌리엄스 대학으로까지 번졌어요. 그래서 대학생 5명이 풀밭에서 부흥을 갈망하는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건초더미에 가서 기도회를 계속했어요. 

 

그러자 바로 그 5명의 청년들에게 성령의 불이 임한 거예요. 그래서 그 기도회는 지금까지 ‘건초더미 기도회’로 알려지고 있어요. 거기서 그들의 가슴에 부흥에 대한 갈망이 타올랐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났어요. 

 

바로 그 건초더미에서 일어난 그 영적 불꽃으로 말미암아 미국 최초로 ‘해외선교 위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선교사를 해외로 보낸 미국의 첫 선교기관이었습니다. 바로 이 운동 때문에 미국은 세계 각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867년에 그 대학 동문회가 3.5미터의 기념비를 세워서 건초더미 아래서 기도회가 열린 장소를 기념했습니다.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추수할 밭은 온 세상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 부흥운동 후에 찰스 피니가 나타나고 이어서 무디가 나타나 미국의 부흥운동에 불을 붙입니다. 

 

특별히 무디로부터 은혜를 받은 미국 청년들이 10만 명이나 해외선교사로 헌신을 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와 같은 푸른 눈의 청년들이 우리나라 선교사로 오기로 결단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고 우리가 목사와 장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위대한 부흥의 역사가 몇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장로님들이여,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부흥의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거룩한 부흥의 바람, 하늘의 폭풍이 불어오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저녁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회가 끝나도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시고 숙소에 돌아가셔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와 반대로 부흥을 사모하지 않는 성도나 교회는 항상 내면이 냉랭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면 반드시 소모적인 논쟁을 하거나 싸움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냥 마음이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냉소적이고 비판적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며 기득권 싸움과 교권 싸움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얼마나 우리는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행여 우리는 옳은 일을 한다 하면서도 상대방을 향한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습니까? 정의감과 의분으로만 가득한 나머지 부흥을 사모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잃어 버렸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봐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거룩한 바람이 불어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 생태계를 보호해보려고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서로 오해하고 증오하고 다투고 싸우는 사람들을 아무리 중재하고 화목하게 해보려고 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반기독교 세력은 교회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아주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공격해오고 있는데 우리는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부흥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 거룩한 부흥의 바람,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이 이 모든 재난과 갈등과 어지러움을 다 날려버리고 우리의 교회를 다시 부흥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감지할 정도로 부흥을 사모하며 뜨겁게 기도합시다. 성령의 부흥의 역사, 성령의 퍼펙트 스톰의 역사를 사모합시다. 

 

2천 년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120명이 모여서 기도했는데도 거기에 하늘의 퍼펙트 스톰의 역사가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목사님 장로님들, 귀한 시간을 내서 오셨는데 오늘 우리도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도록 기도합시다. 정말 이런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오늘 이 저녁에 논현동의 하늘을 찢고 가르고 열리게 하는 하늘의 퍼펙트 스톰 역사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해요. 오늘 우리 교회가 거룩함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에 불과하고 눈알 빠진 삼손에 불과해요. 

 

삼손이는 얼마나 기괴한 괴력의 사나이였습니까?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을 때, 맨손으로 마치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사자를 찢어 죽어 버렸어요(삿14:6). 그리고 당나귀의 뼈 하나를 가지고 순식간에 블레셋 군사 1000명을 쳐 죽여 버리기도 했습니다(삿15:14-16). 그러니 블레셋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괴력의 사나이입니까? 

 

그런데 삼손이가 들릴라를 만나 거룩의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그 모든 힘을 잃어버렸어요. 결국 블레셋 군사들에게 잡혀 두 눈이 뽑혀 버렸고, 두 눈이 뽑힌 채 피 눈물을 흘리며 맷돌이나 가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삿16: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런 것처럼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눈알이 빠져 나간 채 맷돌이나 돌리는 한국교회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해요. 

 

그러면 거룩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성과 완전성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분리성은 세상, 죄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고 완전성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인 정결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고 그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닮아가는 온전한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룩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영역이에요. 성경에 정결하신 하나님, 순결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있던가요? 하나님의 수식어는 정결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에요. 

 

대신 정결이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레위기를 보면 거룩의 전제조건이 정결이에요.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정결한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을 뿐이지 인간이 본래부터 거룩을 소유하거나 인간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정결 그 자체가 거룩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정결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거룩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레27:28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그러니까 구약에서 정결한 짐승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거룩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아무리 정결한 삶을 살고 정결한 영성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해요. 그래서 레위기는 거룩과 세속, 정결과 부정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     © 리폼드뉴스

이렇게 성-속, 즉 거룩과 세속은 신적 영역이요, 정-부정, 즉 정결과 부정은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런 내용을 개혁주의 노선에서 최초로 레위기를 전공한 김경열 박사님께 배웠습니다마는. 

 

그러면 오늘날 왜 우리의 교회가 싸우고 총회가 싸웁니까? 자기생각, 자기주장이 옳다고만 하기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자기는 깨끗하다고 하고 양심적이라고 하지요. 자기는 정결하다고 해요. 

 

그렇다면 정말 우리의 정결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주장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것이라고 인정을 받았습니까? 아무리 자신의 정결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앞세운다 해도 그 속에 교권이라고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인 깨끗함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경건과 정결과 의만 앞세우니까 하나님의 거룩은 오간 데가 없어요. 그러니까 자신의 의와 도덕은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복음과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거룩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거룩의 영성을 회복해야 해요. 이러한 거룩함이 있을 때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 거룩의 은혜와 능력 앞에 세상은 부끄러워하고 떨게 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이 거룩함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니까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생각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말 양심적이고 경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의 영역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의 능력이 여러분을 덧입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거룩한 영성과 삶이 서로 맞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합쳐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이 서로 합쳐져서 큰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순결과 거룩의 영성이 서로 합쳐지고 맞닿아서 거룩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설적인 하늘의 폭풍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역설적인 부흥의 폭풍이 일어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했다면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한 행실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퍼펙트 스톰이, 이제는 시대와 사회 속으로 불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회들을 해체시키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들을 무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와 성령의 역사를 이 세상 영역 속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가 하나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저 적폐중의 적폐였던 김정은 위원장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시대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러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소원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한 번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 곳에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① 먼저 우리가 회개하게 하옵소서

②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③ 거룩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④ 거룩함의 행실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