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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
성경의 무오성을 둘러싼 역사적인 논쟁
기사입력: 2018/05/13 [00:49]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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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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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근 목사(대구서현교회)     © 리폼드뉴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성경의 신적권위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 기초하여 성장하였다. 미신과 무지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던 구한말 한국사회,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아 주권을 잃고 참으로 암울했던 그 시대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은 한국교회의 열렬한 선교열정과 눈부신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모든 열심의 원천이며 특히 한국교회가 선교 100년 동안 모진 세월을 헤치며 박해와 오해를 견디는 비결이기도 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며 순교의 피를 뿌린 한국교회를 생각해보라. 그 저력은 성경이 진리임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자식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도리어 양자로 삼아 한국의 성자로 불리는 손 양원 목사의 신앙과 불같은 삶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지난 100년간 쌓아올린 성장은 인간의 기교로 된 것도 아니고 탁월한 방법론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기도한 결과였던 것이다. 1934년 한국 선교 희년 기념식에서 찰스 알렌 클라크(Charles allen Clark)의 증언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말하기를, “한국의 개신교 역사의 처음부터 성경은 복음화의 가장 지대한 요인이었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박용규,한국기독교교회사(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2), 241.).  


그러나 최근 “성공의 우상화”와 “교회성장운동”으로 인해서 각종 프로그램이 진지한 성경연구를 대신하고, 대형화와 대중성이 진리의 척도가 되고 말았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대로 생각하고 일하고 철저히 살아가는 개혁주의적인 삶의 방식은 체험과 신비경험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각종 은사운동에 떠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 전에 없던 새로운 이단이 생겨나고 있고, 대중매체로부터 교회의 부정과 비리가 고발되고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상황은 심히 근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간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세는 약 150만 이상이 증가하였으나,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정체 아니면 감소였던 것도 이런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 유럽의 교회가 몰락한 근대교회사는 2,000년 교회사에서 어쩌면 가장 비극적인 시기라 아니할 수 없다. 혹자는 서구교회의 몰락을 두고 교회가 사회의 요구, 혹은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하고 신학과 교리만 주장한 탓에 그리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호소력을 갖는 전도와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며 뭘 모르는 소리다. 서구교회가 몰락한 이유를 신학과 교리를 강조한 것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무차별적인 신학무용론에 그들 자신들이 경도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히 주장하건데, 서구교회의 쇠퇴와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된 것은 교회 스스로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고 현대주의와 타협하였기 때문이다. 즉 17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합리주의를 교회가 수용하면서 성경의 모순과 비과학성, 비역사성이 강조되었다. 성경은 다양한 고대 문서의 짜깁기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면 슐라이에어마흐(F. Schleiermacher)는 성경의 편집설을 주장했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부정했고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믿지 않았다. 벨하우젠(J. Wellhausen)은 문서설을 주장하며 모세 오경이 전승 혹은 여러 자료들의 혼합물이라고 주장했다. 슈바이처(A. Schweitzer)는 신약 성경의 모든 이적을 부정했고, 성경의 본질을 윤리적인 가르침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신학은 성경의 신적권위를 과감히 부정하고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였다.


서구교회의 쇠퇴는 자유주의신학을 수용한 결과이며, 자유주의신학 외에 다른 요소는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 이런 점은 한 때 자유주의 신학자였다가 목회현장에서 자유주의신학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소위 신정통주의를 들고 나온 바르트가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부활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부성을 강조하면서도 심판을 부정하고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신학은 필연적으로 목회의 파탄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존 머레이(John Murray)가 말했듯이 신학적 자유주의는 분명히 모든 면에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로 이 자유주의신학을 받아들인 탓에 서구교회가 몰락했다고 해야 옳다. 혹 정통개혁신학이나 자유주의신학이 모두 사변적이고 추상적이기는 매 한가지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무신론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그런 해괴한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세기의 개혁파 신학자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가 신학요강의 서문에서 신학에 관해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 적이 있다: “신학이란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한 교리이다.” 신학은 단순히 사변의 산물이 아니다. 신학은 우리들이 가진 신앙의 체계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어떤 신학이 문제가 있다면 언제나 병든 신앙에서 시작된 것이다. 신학은 언제나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신앙이란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다. 신학에 대한 무관심은 언제나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 무엇인지 엄정하게 묻지 않는 태도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사실 계몽주의 이후 자유주의신학이 등장한 이래 무신학적이고 반교리적인 교회가 기독교회의 주류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자유주의신학에서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신학도 교리도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이 못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신학자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학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 이 시대정신과 아주 닮았다. 그러나 이런 신학 경시 태도 이면에는 사실 성경의 독점적 권위에 대한 부정이나 회의적 태도가 항상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근래 20년 동안 한국의 개혁주의교회 안에서도 신학과 교리를 경시하는 풍조가 확산되어 왔다. 무엇이든지 교세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개혁주의교회가 오순절적인 은사체험 프로그램을 채택하기도 하고, 만담식의 설교와 유희중심의 예배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병리현상으로 인해 결국 교회는 근본부터 쇠하게 되었고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악화되면서 다시 이 시대의 풍조에서 해결책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다에서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로 갈증을 달래는 식의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와 “모든 성경”(Scriptura Tota)의 신앙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선교초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서 신적인 책 그리고 권위 있는 책”이라는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성경관에 기초한 인물들이었다(간하배, 한국장로교신학사상(서울: 도서출판 실로암, 1991), 1.).


이들 대부분은 성경의 무오성을 철저히 믿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1901년에 평양신학교를 세웠던 마포 삼열 선교사는 선교회와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철저한 신앙과 열정적인 복음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간하배, 한국장로교신학사상(서울: 도서출판 실로암, 1991), 1.).


한국교회에서 성경관은 무오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이 성경관이 독노회를 결성할 때 작성한 12신조의 제 1조에서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이라는 고백에 반영되고 있다. 비록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료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12신조가 성경의 무오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여지는 거의 없다. 당시에는 무오성을 둘러싼 신학적인 논쟁이 일지 않은 때였고 미국장로교회가 “성경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1900년대 초부터 미국 유니온 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국 장로회 선교회 안에서 성경 무오성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공위량(William Kerr)이다. 그는 나중에 전통적인 한국 장로교 신학에 반기를 든 김장호의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몇몇 목사들과 학생들이 공위량의 입장에 동조했으나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교회사에서 성경의 무오성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은 김재준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그는 일본의 청산학원에서 수학했는데, 그의 말을 빌리면 청산학원은 신학적으로 “급진적이었고 일종의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분교와 같았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 자유주의신학에 물들었고 당시에 출간되었던 신정통주의 신학자 바르트의로마서 주석을 읽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당대의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였던 존 머레이 밑에서 수학하면서 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근본주의 신학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김재준은 자신 만의 신학을 추구했는데, 그것은 성경이 인간의 저작물에 불과하다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배격하면서도 그렇다고 성경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인정하는 것도 아닌 것이었다. 즉 현대주의와 성경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종합하고자 시도했다. 바로 그 결과로 도달한 것이 성경은 구원에 관해서는 무오하나 역사와 과학에 있어서는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성경의 무오성을 구원에 관한 내용만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그 나머지에 있어서는 역사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는 점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이런 식의 유보적인 태도는 감리교의 유형기가 목사가 주도한 아빙돈 단권 주석 번역작업에 참여한 장로교의 김재준, 송찬근, 채필근, 한경직 목사 등에게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성경 말씀이 종교적 견지에서 진리라 하여 반듯이 자연고학, 역사, 고고학에 있어서도 절대 무오 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또한 그렇게 주장할 필요도 없다. 성경에 기록된 과학설은 성경이 씌여질 적에 유행되는 것이오, 성경에 있는 종교적 진리와 같이 영원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유형기편, 단권성경주석(서울: 신생사, 1935), p. 24.)


1940년 김재준, 채필근, 송창근 등이 주축이 되어 마침내 평양 신학교와 신학적 단절을 선언하고, 성경 무오를 거부하는 조선신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그들은 1945년부터 정통신학과 성경 무오 및 축자영감을 더욱 공개적이고 과감하게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맞서서 1947년 박윤선 목사를 비롯한 53인이 평양 신학교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결국 성경의 무오성을 둘러싼 양대 진영의 격화된 대립은 결국 장로교가 예장과 기장이라는 두 교단으로 분열하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장로교의 최초의 분열은 성경의 무오성을 둘러싼 신학적인 대립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국의 교회사가 증명하듯이 예장이든 기장이든 교단의 정체성은 성경관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좋든 싫든 혹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각의 교단들은 자신들의 성경관의 지배를 받고 있다. 각자의 성경관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가장 좋은 예는 여성안수의 경우이다. 예를 들면, 기장 측에서는 1957년에 여성장로를, 1974년에 여성안수를 허락하였다.


그들의 여성 안수는 교회의 직제와 관련되었을 뿐 구원과는 관련된 것이 아니므로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구원과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 여성안수를 금지한 성경을 고대의 세계관의 결과라거나 당시의 남성우월적인 문화의 결과라는 식의 비평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닌 이상 오류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여성안수를 금지하거나 반대할 확고부동한 근거는 없는 것이다.


기장이나 통합 측이 여성안수를 지지한 것이 그들의 성경관에 따른 결과이듯이, 마찬가지로 합동 측이 여성안수를 금지하는 이유 역시 우리 자신의 성경관에 따른 결과이다. 말하자면 “모든 성경”(Scriptura tota) 즉 신구약 66권의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사실을(딤후 3:16) 믿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성을 단지 구원에 관한 것에만 제한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교회의 제도와 직제를 포함한 모든 신앙생활에까지 오류 없는 권위를 행사한다고 믿는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이 여성안수에 대한 반대의 본질이다. 여성안수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성경의 무오성이다. 그러므로 이 논쟁을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로 몰아가거나 혹은 여성도 남성만큼 능력이 있다는 사회학적인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여성안수에 대한 어떤 시비도 궁극적으로는 필연적으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논쟁으로 귀착된다. 한 때 이상근 목사가 여성안수는 남존여비사상의 잔존이며,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성경주석학자가 성경의 여성안수를 금하는 구절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했다면 가능한 설명은 오직 하나이다. 즉 그 역시 성경의 무오성을 제한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여성안수에 대한 성경의 금령을 고대문화의 잔존이라고 보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성경의 무오성을 어떤 식으로든 부정하지 않는 한 여성안수를 결코 지지할 수는 없다.


성경의 무오성은 신자들의 믿음과 생활에 직결된 문제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로 보지 않는 이상 탈현대주의의 거친 도전을 막을 도리가 없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마당에 어떤 절대적인 선도 어떤 절대적인 권위도 없다는 상대주의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상대주의는 탈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도전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와 윤리의 보편적인 긍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배타적인 우월성에 대한 부정을 지향한다.


모든 종교가 과정과 양상은 달라도 결국에는 단일한 하나의 궁극적인 진리 안에서 통합된다는 상대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성경 역시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시인하는 것은 상대주의가 내민 손을 잡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와 몇몇 개신교의 주류 교단에서 상대주의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리라. 


현대인들이 범하는 가장 어리석은 잘못 중에 하나가 그들 자신들이 고대인들보다 지혜롭다는 것과 성경이 자신들만큼 기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의 오류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2,000년 뒤의 어떤 독자들을 기만할 목적으로 편집 혹은 삽입한 것이라는 식으로 의심하는 것을 학문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고대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고 그들 또한 거짓을 사실로 수용할 만큼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정직성이나 역사의 정의로움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부과하신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오류 없이 알리셨다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믿음이다. 만일에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가 우리들의 오해와 무지 가운데서 실현되지 못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원이 단지 “천국 가는 것” 만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전인격적인 회복과 종말론적인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더 더욱 성경의 어떤 부분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유보적인 태도는 원칙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성경에서 약간의 오류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그의 보존섭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은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표지이며 증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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