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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설교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오정호 목사 설교 전문
시편 78:1-8 / 믿음의 세대를 일으키라
기사입력: 2018/05/13 [23:15]  최종편집: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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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사진은 지난 4월 21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이었으며 전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4명의 전직 미국 대통령과 4명의 전&#8226;현 퍼스트레이디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사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정권을 뺏고 빼앗겼던 정적(政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이 사진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미국의 품격이 담겨 있다.>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단절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품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의 품격은 무엇으로 결정합니까?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우리 예장 합동 교단의 현실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직시하고, 교단의 미래를 염려하시는 분들과 작금의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총신사태가 학교 발전의 디딤돌로 이어져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도하시는 분들은 예외 없이 총회의 고결함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속한 교회가 어떤 품격을 지니기를 원하십니까? 이러한 질문은 본질적 질문입니다.
우리는 고백합니다. 성도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을 세우는 지혜는 주님과 그 말씀으로부터 찾는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펴고 있는 시편 제 78편은 표제는 “아삽의 마스길”입니다. 아삽(Asaph)이라는 사람은 레위인으로서 다윗 왕 때 예배 음악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는 놋 제금(바이올린)을 켠 악장(대상 16:5, 15:19)의 직무를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헤만의 오른편에서 일했으며(대상 6:39), 그의 후손들은 성전 음악의 전통을 대대로 이어 갔습니다. 그는 열한편의 시편(50편과 73-83편)을 기록하였습니다.

마스길은 히브리어의 음역으로 동사로 ‘사칼’에서 온 말입니다. 이 동사는 ‘생각하다’(시 64:9), ‘깨닫다’(신 32:29)로 번역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교훈적인 시편이며 자기 성찰적 시편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통한 오늘의 교훈을 주목하게 합니다. 그러하기에 눈으로 읽는 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시입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영혼의 귀를 열어 내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아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교훈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입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그를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로 부르실 때 그의 믿음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이제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하니라.”(대상 28:9-10)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야 할 솔로몬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의 복음의 동역자들인 에베소교회 장로님들을 향하여 눈물 가득 담은 마음으로 당부 하였습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기 위하여, 영적 지도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주문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28-31)

우리 함께 다윗의 심정으로, 바울의 심정으로 말씀에 주목합시다. 72절까지 전개되는 마스길의 골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과 불변성과 영원성을 권위 있게 드러냅니다. 한결 같지 않은 세태에서는 단숨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견해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유일무이한 소망임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매 사건마다 인간의 부패, 지도자의 타락, 회중의 변질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한계를 가진 우리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부패성은 무조건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까지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 들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이용합니다. 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스스로가 걸어온 역사를 통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배웠습니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얼마나 철저하게 배우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기적적으로 구출하신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을 진심으로 청종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작은 한 걸음이라도 삶의 현장에 옮겨 놓으려고 치열하게 몸부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펼쳐 가시는 일들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부패성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하여 강력하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기적입니다. 그 기적이 이스라엘 역사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셨습니다.(13절) 그들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도록 인도하셨습니다.(14절)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갈라 생수를 먹이셨습니다.(15,16절)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처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24-29절)

“그들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29절)
그들에게 어떠한 기적이 더 필요합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것은 오직 감사와 찬송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역시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드러내 줍니다. 배은망덕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좋은 것을 선물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불순종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10절) 약속을 잊었습니다. 언약을 불순종하였습니다. 범죄와 배반, 시험과 불신, 탐욕과 거짓이 그들의 진면모(眞面貌)였습니다. 민낯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할 예배마저 변질시켰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상들을 향하는 천박함을 훈장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56-58절)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켜 한 오라기 희망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는 있기나 한 것입니까?

이제 소망의 첫 단추를 채우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하나님을 향하여 온 이스라엘이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 길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집을 나온 탕자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할 길은 무엇입니까? 그 유일한 길은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여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1절)
그렇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은 단초는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의 귀를 열어 듣는 것이야말로 만복을 불러오는 새로운 삶의 거룩한 출발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도의 성도됨과 교회의 교회됨은 주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항복함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조는 하나님의 뜻을 자손에게 전하는 거룩한 사명을 위탁 받았습니다. 왜 당대가 후대에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긍정적인 이유와 부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이유는 7절이 증거합니다.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렇습니다. 마땅히 이스라엘은 그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이유도 이어집니다. 곧 전세대의 실패 곧 선조들의 악한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8절)

이전 세대의 부정직과 불충성 그리고 완고함과 패역함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경고입니다.

▶ 어떻게 우리 당대와 후대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Ⅰ. 우리 당대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해야 합니다.

본문 전편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고백을 생활현장으로 옮겨 놓아야 하였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매일, 매순간 주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온 몸으로 복종합니까?” “나는 진정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뻐합니까?”

장로교회 12신조중 제 1조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입니다.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本分)에 대하여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唯一)의 법칙이다.”

근본이 세워진 가정과 근본이 없는 가정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기준은 그 가문에 재력이나 그들이 거하는 집의 평수가 아닙니다. 근본 있는 가정은 부모의 권위가 존중되는 가정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자녀들의 생명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의 역사(役事) 곧 일하는 믿음과 사랑의 수고(受苦) 곧 희생을 동반한 사랑과 소망의 인내(忍耐) 곧 인내를 가져오는 소망이 주님사랑과 교회 사랑의 표지(標識)였습니다. 그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굴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매우 큰 긍지를 가지고 데살로니가교회를 인정하고 칭찬했습니다.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최근에 우리 총회에 속한 교회 가운데 적지 않은 교회에 분쟁이 있습니다. 갈등하는 노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전생애를 통하여 선포해야 할 신학도들을 양육하여 배출하는 총신(總神)이 학교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총신개교 117년 이래 최악의 사태입니다. 그 위기의 뿌리는 재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직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건물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수시로 총장이 동원한 용역이 학교에 진입하였습니다. 힘으로 신학교를 제압하려고 갖가지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후 교수 사회와 학생들은 편 가르기를 하여 건전한 생각을 하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매도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감독기관인 교육부에서 직권을 발동하여 감사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총장과 추종 교수들과 직원들이 저질러 놓은 갖가지 비리가 매스컴을 타고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다 못해 일반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리백화점으로 온 국민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총신이 순결함을 강탈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뿌리는 무엇입니까? 그 위기의 뿌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무지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발생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서약하고 목사 장로와 직원으로 직분을 부여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총회의 권위를 무시하는데서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대학의 총장과 그를 추종하는 이사들과, 마땅히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교수들이 슬프게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본분을 넝마처럼 던져버리고 급기야 인간의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말씀의 통치를 받아야 할 선지 동산이 정치의 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학생들이 좌절하여 가슴을 치게 되었습니다. 자리보전에 목을 매는 총장과 그를 맹종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의 비리를 숨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관을 도둑질하는 일뿐 아니라, 범죄의 합리화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다보니 양심이 마비가 되고 판단력이 흐려진 것입니다. 자칭, 타칭 장자교단이라고 하는 우리의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 그들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과 총회와 조국에 용서를 구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야고보서가 증거한대로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언제쯤이면 수치의 장막을 걷어치우고 은혜의 광명한 시대를 열어갈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느 때 쯤 사도 바울처럼 담대한 마음으로 나를 본받으라고 외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성도의 성도됨과 교회의 교회됨은 말씀의 권위에 절대 순복함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를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Sola Gratia!)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Sola Scriptura!) 우리의 신앙양심에 거리낌 없이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겠습니다.” 이런 은총의 날이 속히 도래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 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Word & Music by 김영범)

Ⅱ. 믿음의 다음 세대를 세웁시다.

본문 4절은 다음세대에 대한 당대의 거룩한 책무 이행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 어떻게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울 수 있습니까? (4Ts)

1. 목표대상(Target)

혈육의 자녀와 믿음의 자녀를 양육하되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을 복음으로 살립시다. 우리 품에 안겨주신 아이들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품에 안겨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최대의 기대주입니다. 우리의 미래이며, 분신입니다. 다음 세대는 믿음의 세대계승의 영순위입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시 144:12)

2. 영적 조기교육(Timing)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친히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에 안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른 중심의 가치관이 몸에 밴 제자들의 마음은 주님과 엇박자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 앞에 나아오는 어린아이들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반대로 결정적 순간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안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부모의 심정을 온전히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 13-16)

무릇 아이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아는 교회는 결코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최근에 알려진 통합 교단의 주일학교 학생 수 감소에 대한 통계입니다.

2017년도에 개최된 제 102회 총회에 보고된 2016년 기준 교세통계를 보면 작년도(2015년)의 278만 9102명보다도 5만 8200명이 감소한 273만 900명으로서 이는 최근 몇 년의 감소 중에서 가장 큰 감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500명 성도 교회가 100개 이상이 1년 사이에 사라진 셈이다. 5만 8200명 감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인들은 다음세대이다. 교회학교 학생들과 청년들이 감소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학생들이 어느 정도 감소했느냐? 교회학교 전부서가 감소하였는데, 아동부의 경우, 지난 10년 사이에 41.9%나 감소하였다.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등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학교의 경우는 2006년, 2007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중고등부는 2009년부터 급격한 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2007-2016) 간의 부서별 교회학교 학생 수 감소율을 보면 영아부가 2011년 이래 23.5% 감소하였으며, 유아부가 2010년 이래 10.0% 감소하였고, 유치부가 지난 10년 사이에 30.7%가 감소하였다.

초등학교 학생에 해당하는 부서의 학생 수 추이를 보면 지난 10년 사이에 유년부가 42.1%, 초등부가 36.7%, 소년부가 47.0% 감소하였는데, 초등학생의 경우 평균 41.9%가 감소한 셈이다. 중고등학교 교회학교 학생 수 추이는 지난 10년 동안 30.2%가 감소하였다.

이를 학령인구 추이와 비교해 보자. 지난 10년 사이의 학령인구 감소율은 초등학생의 경우 -31.3%인데 이에 근거해 볼 때, 교회학교 초등학교 학생 수는 학령인구보다 10% 이상 더 감소한 셈이다. 중고등학생의 학령인구 감소율은 &#8211;20.5%로서 교회학교 중고등학생의 감소율(30.2%)이 10% 가까이 더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박상진 교수/ 장신대/ 평양대부흥운동과 기독교학교)

다음세대를 향한 골든타임을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주님께서 열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3.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Trust)

모든 관계의 핵심은 신뢰입니다.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는 신앙이라 합니다. 이웃과의 신뢰는 윤리의 탁월성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따라 삶을 경영하기로 결단한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대적 사탄은 하나님과의 신뢰와 인간관계의 신뢰를 탈취해 가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돌아보십니다. 하나님 신뢰지수는 반드시 사명수행지수로 그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을 신뢰하는 세대로 세우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영적인 급선무(急先務)입니다.

4. 변화된 가치와 삶(Transformation)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동시에 성도를 무장하여 성숙함을 이루는 책이기도 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7)

우리 총회 교육진흥원에서 청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식사시 기도여부에 대한 설문 조사한 결과물입니다.(2016년 기준)

청년 대학생(1,608명)이 캠퍼스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10명 중 9명 정도(86.3%)가 식사 기도를 실시하고 있었으며, 식사 기도를 하고 있는 청년 대학생(1.388명)의 식사기도 방식은 눈을 뜨고 속으로 한다가 76.4%, 눈을 감고 기도한다가 23.6%로 나타났습니다.

식사기도 한다(86.3%) 식사기도 거의하지 않는다(13.4%) 눈을 감고 기도한다(20.4%) 눈을 뜨고 속으로 한다(65.9%) 식사기도 거의 하지 않는다(13.4%) 무응답(0.3%)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결과입니다. 식사기도하지 않는 청년, 대학생들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식사기도 형식 또한 놀랍게 다가옵니다. 현장성이 결여된 신앙훈련은 능력부재와 성도로서의 자기 정체감을 세우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청년들의 의식과 태도가 캠퍼스 복음화를 확실하게 열어갈 것인가 깊은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담임교역자와 청년대학부 지도자들이 대오 각성을 촉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무늬만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당당한 그리스도인 청년들을 세워야 합니다. 구름에 뜬 대학 청년부 활동이 아니라, 신앙생활이 생활신앙으로 전환되도록 실사구시의 대학청년부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대학 청년들의 실생활의 모습을 대하면서 우리각자 섬기는 교회의 대학 청년부를 위한 새로운 기도의 제목을 붙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부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젊은이들을 판단하지 말고, 성경적인 가치가 실생활로 옮겨지는 생활 밀착형으로 청년들의 삶이 세워지도록 그들이 처한 사회, 문화적 형편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삶의 역할 모범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의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기 위한 개인과 교회의 결단이 매우 무겁게 요청되는 때입니다. 시편 78편 본문의 원리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 실천해야 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신적기관(神的機關/Divine Institute)인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결코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아군들끼리 서로를 향하여 총질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코 적전분열(敵前分裂)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전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움꾼이 되는 것은 절대 피해야 될 일입니다. 싸움 하는 가정은 역기능 가정으로 전락합니다. 싸우는 교회는 맛 잃은 소금으로 버려질 뿐입니다. 기성세대가 싸우면 신세대가 떠납니다. 당회가 싸움판이 되면 더 이상 교회 성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합동 교단이 싸우는 교회의 이미지로 각인 되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의 종답게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로 쓰임 받읍시다.

우리 속에 꿈틀거리는 분노의 영을 추방합시다. 성령님의 강력한 은혜로 스스로를 다스립시다. 말씀에 순종하여 화목 체질로 변화 받은 모습으로 세우신 자리를 복되게 합시다.

은혜로우신 주여! 우리 총회와 총신과 섬기는 교회에서 싸움의 영이 물러가게 하소서!
화평의 영으로 충만케 하소서! 화목의 은혜로 채워 주소서!

▶ 부흥을 사모합시다.

초대 교회에서나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人工知能) 시대를 맞은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동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우리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사경회와 형제우애의 아름다운 전통을 받아 누렸습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울 때 강직한 성령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개인과 가정이 새로워졌습니다. 죄가 더 이상 맥을 못 추게 되었습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온 땅에 성령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한국 교회를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과거의 역사로만 기록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오늘의 부흥이 요청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 2)

부흥은 괄목상대할만한 개인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평양대부흥운동 이듬해인 1908년 1월 15일자 <예수교신보>에 실린 여성도에 대한 기사입니다.

삼가 아뢰옵기는 용천 교회에 황씨 성을 가진 여성도는 삼년 전 겨울부터 감화를 받아 사신(邪神) 우상을 다 거절하고 주를 믿사오며, 열심히 국문을 공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경읽기와 찬송과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오며 작년 가을부터 본 교회 권찰 직분을 맡은 후로 수고를 사양치 아니하옵고 찬송과 성경을 가르치오며 또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권면하기와 기도를 게으르게 하는 집에 가서 열심 권면함으로 여성도들의 믿음이 자라 모이기에 힘써 지금은 네 칸 방이 좁사오며 황권찰의 가세는 넉넉하지 못하오나 교회에 무슨 구제할 일이 생기면 항상 열심히 연보하여 모든 교인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개인의 변화는 전국적인 교회성장으로 나타납니다.
원산부흥운동, 평양대부흥운동과 백만인구령운동은 “출석교인의 대단한 증가”로 한국교회가 전에 없는 성장을 이룩하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부흥운동은 전도열을 고취시켰고, 그 결과 한국교회에 놀라운 성장을 가져다 주었다.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은 “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가져다주었고, “부흥의 열정을 지닌 그 특성을 영원히 각인시켰다.” 대부흥운동을 거치면서 한국교회에는 전도열이 뜨겁게 달아올라 민족복음화운동과 해외 교포에 대한 전도열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 영국 주교가 런던 타임즈(Lodon Times)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의 놀라운 권능의 현시”를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비견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1884년 개신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하고 약 20년이 지난 1905년 한국교회 교세는 약 5만 명으로 급증했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거치면서 그 성장은 더욱 두드러졌다. 심지어 대한매일신보도 현금의 놀라운 교세에 힘입어 우리나라가 “장차 기독교국이 될 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히 한국교회 성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대단한 성장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한국개신교 선교가 25주년을 맞는 1909년 교세는 약 20만으로 증가했다. 초등학교도 115개에서 606개로 증가하고, 주일학교 학생수가 17,894명에서 87,117명으로 증가했다. 1908년과 1909년 11개월 사이 북장로교에서만 6,500명 이상이 세례를 받아 순수 27%의 증가를 보였다. 장로교의 경우 1907년에 7명이 목사안수를 받은 후 1910년에는 20명의 목사, 거의 1,000교회, 25,000명의 세례교인과 전체 교인 11만 명의 교회로 놀랍게 신장했다.

이 시대 한국에 사역하면서 부흥운동의 현장을 목도한 이들이라면 지난 25년, 특히 지난 10년간처럼 이 나라에 복음의 진보가 지속된다면 확실히 한국은 머지않아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것은 부흥운동 기간 동안 복음이 얼마나 놀랍게 확산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박용규 교수/ 총신대 신대원/ 한국기독교회사Ⅰ)

이제 우리는 부흥운동이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것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부흥을 사모합시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부흥의 불씨로 우리 자신을 드립시다. 우리 가정이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레갑의 후손의 가문처럼 쓰임 받읍시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안디옥 교회처럼 복음의 진원지가 됩시다. 이 모든 일은 오직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비록 우리의 부패한 본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반항하며 주님을 슬프게 함이 있다할지라도 거듭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했다할지라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합시다.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시 78:38,39)

이제 시편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 광명한 곳에 우리를 이끌어 들입니다. 과거 범죄로 인하여 암흑 역사가 전개되었다 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와 하나님의 종 다윗을 택하신 것처럼 우리를 선택하시고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가문과 민족에게 희망의 기치를 높이 들게 하십니다.

오늘의 목사 장로 기도회가 또한 여기 함께 모인 모든 성도들의 삶에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펼쳐갈 하나님의 부흥을 갈망합시다.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종이 되어 쓰임 받읍시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 78:70-72).

우리 총회를 통하여 주님께서 온전히 영광을 받으시도록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합시다.
총신을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친히 다스리시기를 소원합시다.
우리 목회자와 장로님들의 차원 높은 사랑과 한결같은 성도 섬김을 통하여 모든 교회가 영적으로 펄펄 살아나는 은혜를 간구합시다.

주여! 우리 예장 합동이 믿음의 세대를 힘써 일으키는 교단으로 힘 있게 쓰임 받게 하소서!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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