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목회, 칼빈500주년 탄생기념 세미나

주승중 교수, 킬빈적 입장에서 본 바람직한 한국교회 설교방향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09/06/08 [11:25]

영성목회, 칼빈500주년 탄생기념 세미나

주승중 교수, 킬빈적 입장에서 본 바람직한 한국교회 설교방향

리폼드뉴스 | 입력 : 2009/06/08 [11:25]
 
▲ 칼빈탄생 500주년 기념 영성목회 세미나     © 리폼드뉴스
 
 

 
 
 
 
 

 
 
 
 
칼빈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영성목회연구회(총재 길자연 목사)가 “칼빈과 설교”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서초동 소재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 시무)에서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신대학교 주승중 교수(예배설교학)의 “칼빈적 입장에서 본 바란직한 한국교회 설교방향”이라는 주제와 총신대학교 문병호 교수(조직신학)의 “제네바의 설교자 칼빈”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으며, 강의가 끝난 후 각각 2인씩 논찬이 있었다. 주승중 교수의 강의에 논찬자는 서문강 목사, 송준인 목사 등이 맡았고, 문병호 교수 강의에 대한 논찬자는 김성천 목사, 호용한 목사 등이 각각 맡아 진행됐다.

▲ 세미나 강의를 듣고 있는 참석자들     © 리폼드뉴스

 
 
 
 
 
 
 
 
 
 
 
 
 
 
 
 
 
 
 
 
 
 


주승중 교수는 “칼빈적 입장”에서의 설교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면서 먼저 “칼빈의 설교신학”을 언급했다. 칼빈은 성경이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객관적인 계시라는 믿음을 가졌으며, 성경을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으며, “그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신학과 설교의 유일한 권위요 기준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설교자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 칼빈의 말을 인용하면서 칼빈은 “평생에 거의 모든 성경을 성실하게 강해하였고, 그것들이 모여서 된 것이 그의 주석집이다”라고 했다.

▲ 강의하고 있는 주승중 교수     © 리폼드뉴스
칼빈은 매 주일 두 개의 큰 교회를 번갈아 다니면서 세 번의 설교를 하였고, 마지막 세 번째 설교는 2번 주일에 전해졌으며, 평일에는 월요일과 수용일, 그리고 금요일에 각각 3회 설교를 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칼빈은 일년에 평균 290회 정도 설교한 것으로 추정되며, 1.25일만에 한번씩 설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일 아침에는 복음서를 중심으로 신약을, 오후에는 시편을 설교했고, 주중에는 주로 구약을 설교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듯이, 칼빈은 성경의 특별한 책 하나를 정해서 한 구절, 한 구절 연속으로 설교하는 것을 선호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해서 전체 성경의 책들을 하나씩 강해하였다.

칼빈은 “하나님의 입”의 역할을 하는 설교자를 하나님의 위탁을 받고 보냄을 받은 대사(ambassador)라고 인식하였으며, 그래서 칼빈은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ambassador)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고후 5:20)라는 말씀의 표현을 매우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대사(ambassador)로서 보냄을 받고 위탁을 받은 자라는 사실이 칼빈에게 강조되엇다고 강조한다.

또한 주교수는 “전하는 모든 말이 다 저절로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칼빈은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역사가 너무나 중요함을 지적한다”고 하면서 “그는 성령님의 역사를 제외한 설교는 사람의 말 잔치에 불과함”과 “설교의 효력은 인간의 혀로부터 나오는 것도, 소리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칼빈은 강조하기를 “나는 전적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았음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 세미나를 개최한 배경을 설명한 영성목회 총재인 길자연 목사     © 리폼드뉴스
계속해서 주교수는 “칼빈은 교회개혁의 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설교하였고, 동시에 이른 바 성경강해 설교방식을 통해서 가장 안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모범을 보인 강해설교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성경의 책들을 연속 설교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성경적 메시지를 전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교부들의 강해 설교 전통을 따라서 한 구절, 한 구절씩 이어서 하는 설교를 하였으며, 성경 원어에 능통했던 그는 성경 한 책 한 책씩을 강해하며 거듭 설교해 갔고, 이렇게 해서 전체 성경의 책들을 하나씩 강해”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칼빈의 설교는 성경강해 설교”였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칼빈이 이해한 설교 회중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칼빈은 “설교자에 대한 내용 만큼이나 회중들의 직무에 대해서도 가르쳤다”고 주장하면서 “회중들도 목사와 마찬가지로 설교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해야 하고, 단순히 눈감아 줌으로 설교를 인정해서는 안 되며, 설교를 그들의 생활 속에서 가장 큰 축복으로 열망해야 하고, 설교에서 설교자 자신만큼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회중들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해서도 다음 세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듣는 자들은 그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해야 한다.
둘째로 회중들은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면서 비판적으로 들어야 한다.
세 번째로, 회중들은 그들이 교회에 참석하기 전이나 교회에 왔을 때, 성령님이 임하셔서 설교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될 것을 기도해야 하며, 겸손과 믿음과 순종하는 태도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기다려야 한다.

주교수의 강의 내용의 두 번째에 해당된 “한국교회 강단의 문제점들과 갱신의 과제” 중에서 “설교사역의 주인공이신 성령님의 장중에 사로잡힌 설교”와 “오직 성경만을 그리고 성경 전부를 전하는 설교(성구집을 통한 강해설교)”,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설교” 내용 전문은 다음과 같다. 관련 참고 ‘주’는 올리 못함을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3) 설교 사역의 주인공이신 성령님의 장중에 사로잡힌 설교

▲ 강의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 리폼드뉴스
칼빈은 성령의 역사를 제외한 설교는 사람의 말잔치에 불과함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오직 성령님의 능력만이 설교로 하여금 효력을 나타나게 하신다고 믿었다. 칼빈은 성경말씀이 성령의 내적 조명으로부터 멀어진다면 그것은 죽이는 문자가 되지만, 그 문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에 새겨저 그리스도를 계시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소생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시 19:7) 생명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앞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칼빈에게 있어서 설교자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상호작용은 그의 설교신학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놓여있는 한국교회의 강단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분야이다.

실로 성령님의 감화가 없는 설교는 사람의 소리이며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칼빈이 주장한 것처럼 설교 속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만이 설교는 살아 있는 말씀, 즉 계시의 말씀이 된다. 따라서 설교자는 무엇보다 먼저 설교를 위하여 기도로써 준비하여 말씀을 전달하는 자신이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설교를 듣는 회중들도 성령님의 조명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교회가 강단의 회복을 위하여 추구하는 어떤 방법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의 소망이 보이는 것은 지난 2007년 목회와 신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설교자들이 준비된 설교를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평균 99.6분 정도라는 사실이다. 설교자는 준비 된 설교를 놓고, 설교자와 그 설교 위에 성령님께서 기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시간이 평균적으로 2시간 정도가 된다는 것은 한국교회 강단을 위한 작은 소망의 불빛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강단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부흥을 이루어 가려면 성령님의 능력과 감동이 느껴지는 설교가 요청되는데, 이를 위해 먼저 설교자가 성령님에 사로잡힌 ‘성령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강단이 성령님이 지배하는 말씀 중심의 강단으로 다시 태어날 때, 한국교회는 참으로 성경적인 부흥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4) 오직 성경만을 그리고 성경 전부를 전하는 설교(성구집을 통한 강해설교)

▲ 세미나에 참석한 김근수 교수(칼빈대학교)     © 리폼드뉴스
칼빈은 교회개혁의 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설교하였고, 동시에 강해 설교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가능한 한 설교하려고 하였다. 그는 성경은 성경으로 강해되고 해설되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오직 성경만을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그래서 그는 설교단에서는 인간의 사상을 가지고 서서는 안 되며,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말씀이신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에 설교자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만을 말해야 하며, 첨가시키거나 생략함이 없이 그가 받은 말씀을 성실하게 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경의 복음 대신에 자기 자신의 이념을 설교하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강단에 설 때 우리의 꿈이나 이상을 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앞서 이미 지적했듯이 그 동안 한국교회의 설교에는 너무나 인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왔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자기 말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자료(proof text)로 성경을 인용하는 모습이 있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결국 오늘의 한국교회의 강단의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외쳐지고 증언되기 보다는 인간의 말들만이 무성한 이런 모습은 분명히 강단의 오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게 해야 한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 말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전부가 증언되고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오늘 한국교회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어야 할 아주 중요한 도구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구집(lectionary)이다. 그렇다면 성구집은 무엇인가?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들려지고 설교되어지는 곳마다…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예배 시간에 읽혀지고 선포되어질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적인 체계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구집(lecionary)이다. 즉 “성구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드릴 때에 말씀 선포를 위하여 정리되고 의도된 성경말씀의 목록이다.” 이 성구집의 기원은 유대의 회당예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왜냐하면 예배 시간에 성경말씀을 체계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모습은 유대교의 회당에서부터 있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당예배의 영향을 받은 초대교회로 어떤 형태의 성구집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며, 4세기 이르러서는 그 형태가 비록 오늘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정된 규례와 절기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읽혀지고 있었던 듯하다.

▲ 논찬자인 서문강 목사     © 리폼드뉴스
그런데 이렇게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온 성구집은 지난 1983년 전 세계의 개신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공동 성구집”(The Common Lectionary)이 나온 이래 현재 많은 교회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공동성구집”은 1992년에 “개정판 공동성구집”(The Revised Common Lectionary)이 만들어지면서 현재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회 등의 모든 개신 교회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개정판 공동 성구집”은 매주일 구약의 말씀, 서신서의 말씀,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 3년을 주기로 읽고 설교할 수 있도록 성경 전체를 교회력을 따라 배열해 놓은 성구집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성구집을 따라 설교한다고 할 때에,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만일 설교자가 “개정판 공동 성구집”을 따라 설교하면서 매 주일 본문을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고 할 때, 9년이면 성경 거의 전체를 예배 시간에 한번 읽고 설교할 수 있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말은 회중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9년 또는 10년 정도만 주일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여도 그 회중은 예배 시간에 성경을 한번 읽고 그 읽혀진 성경이 해석되고 선포되어지는 설교를 듣게 된다는 말이다. 40년을 예배 드려도 한 번도 예배 시간에 읽혀지지 않고, 설교되지 않는 본문이 많은 오늘 한국교회의 강단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말씀의 회복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성구집은 이렇게 설교자들에게 예배 시간에 성경 거의 전부를 읽고 증언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회중들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듣게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교회의 강단에 진정한 갱신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설교자들이 성구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나 성구집의 사용은 성경 전체를 읽고 설교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구집은 무엇보다 성경이 먼저 말씀하게 한다. 설교자가 자신의 주제를 선택하여 그에 맞는 성경을 나중에 찾아 증명자료로서 본문을 사용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말하게 한다. 즉 성구집은 설교자로 하여금 세상의 상황이나, 설교자의 관심과 기호를 먼저 말하게 하기보다는 성경이 먼저 말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강단에 신선한 갱신의 바람이 불게 하려면, 그리고 인간의 말이 사라지고 칼빈이 외친 것처럼 오직 말씀만이 그 전부가 선포되어지게 하려면, 한국교회 설교자들은 이제 성구집을 따라 강해설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5)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설교

앞서 한국교회 설교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미 나왔듯이 한국교회의 강단의 위기를 가져온 문제들 가운데 치명적인 것들이 바로 인본주의적인 설교와 표퓰리즘적인 설교이다. 최근의 ‘새로운 설교학’(New Homiletics)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는 설교자가 주님이 전하시기를 원하는 메시지의 본문에 치중하기 보다는 메시지를 듣는 청중이 무엇을 듣기 원하는가, 곧 오늘의 상황(context)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설교는 청중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설교자가 회중의 상황에만 치중할 때 결국 회중들이 무엇을 듣길 더 좋아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설교의 목표가 잘못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설교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이에 타협하는 타락된 길로 나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설교자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설교사역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탁을 받고, 보냄을 받은 대사로서 절대적인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절대로 설교자의 영광이나 인기가 설교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논찬자인 송준인 목사     © 리폼드뉴스
칼빈은 계속해서 설교자가 자신의 야망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질을 떨어뜨리면서 청중을 만족시키려고 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적인 것과 타협하려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유혹에 대해서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너를 칭찬할 때 슬퍼하라. 이러한 경고는 특히 야망 이상으로 더 근심하게 할 만한 병을 갖고 있지 않은 교사들에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순수한 가르침을 더럽히지 않고 사람의 비위에 맞추거나 기쁘게 한다는 것이 불가능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목회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무릎 꿇고 기도하며, 본문에 대한 영혼을 짜는 연구와 이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목회자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보다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로 회중의 관심을 끌 것인가, 어떤 성공 철학과 축복 사례를 소개하여 회중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까에 더 관심을 기울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있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회중에게 그리고 설교자가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그의 설교사역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초지일관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장 중요시하였고, 그러기에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강해설교를 하였다. 그가 3년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피난민 교회를 섬기다가 제네바에 있는 성 피에르 강단에 복귀하였을 때, 그의 설교본문은 3년 전에 설교하였던 본문 바로 그 다음 본문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역을 감당하였는가를 웅변적으로 가르쳐 준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인기나 성공을 위하여 축복을 내세운 적이 없다. 그의 설교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성공이나 축복을 내세운 포퓰리즘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수한 복음의 증거를 전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칼빈 5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그의 강단 사역 중에 가장 우선적으로 본받아야 할 모습이 있다면, 바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그의 말씀선포 사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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