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영성목회 세미나, 제네바 설교자 칼빈

칼빈탄생 500주년 가념 세미나, "칼빈과 설교", 문병호 교수 강의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09/06/08 [13:40]

영성목회 세미나, 제네바 설교자 칼빈

칼빈탄생 500주년 가념 세미나, "칼빈과 설교", 문병호 교수 강의

리폼드뉴스 | 입력 : 2009/06/08 [13:40]
“지상의 가시적 교회는 오류가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라 완전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즉 영화가 아니라 성화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 칼빈탄생 500주년 기념 영성목회 세미나     © 리폼드뉴스

 
 
 
 
 
 
 
 
 
 
 

칼빈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영성목회연구회(총재 길자연 목사)가 “칼빈과 설교”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지면서 문병호 교수가 주제 강의에서 제일성으로 말한 부분이다. 교회는 무형교회와 유형교회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질 때 유형교회 특징은 양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양육을 받아 영화의 단계에 이르기 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다.

▲ 강의에 열정하고 있는 문병호 교수     © 리폼드뉴스
본 세미나는 서초동 소재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 시무)에서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신대학교 주승중 교수(예배설교학)의 “칼빈적 입장에서 본 바란직한 한국교회 설교방향”이라는 주제와 총신대학교 문병호 교수(조직신학)의 “제네바의 설교자 칼빈”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으며, 강의가 끝난 후 각각 2인씩 논찬이 있었다. 주승중 교수의 강의에 논찬자는 서문강 목사, 송준인 목사 등이 맡았고, 문병호 교수 강의에 대한 논찬자는 김성천 목사, 호용한 목사 등이 각각 맡아 진행됐다.

문 교수는 칼빈이 자신의 대작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 젊은 칼빈은 “교회의 순수성의 지표를 설교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인용하면서 칼빈이 비난한 내용을 언급한다. “중세의 교회는 말씀을 전하지 않은 벙어리였거나 아니면 왜곡된 말씀으로 치부한 삯꾼 노릇을 단지 수행했을 뿐이다.” 칼빈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거나 말을 해도 자신의 말을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음성이 마땅히 그들에게 떨어진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인용하면서 목회자들의 말씀에서 떠난 설교의 피폐성을 강조했다.

문교수는 칼빈은 “칼빈은 말씀의 교사(doctor)요, 해석자(interpres)요, 수호자(custos)”였으며, “말씀의 해석자로서 칼빈은 말씀을 구절대로 주석하기에 일생을 헌신”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말씀의 교사로서 칼빈은 말씀을 선포하여 성도들이 계시의 진리를 고백하기에 이르도록 가르치기를 힘썼다”고 했다. 그리고 “말씀의 수호자로서 칼빈은 참 신학을 수립하고 변호하여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의에 합한 바가 되도록 감화”를 끼쳤으며, 이러한 칼빈의 직무는 “그의 신학의 성격을 결정지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대언자인 목사의 설교는 참 교회의 표지로서 인식”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감화된 심령에 친히 말씀하심, 즉 성령으로 영감된 말씀이 성령의 조명으로 감화된 심령에 친히 말씀됨이 설교로서 그리고 설교자는 그 도구”로서 여겨졌다. “설교가 계시 자체”는 아니며, “설교는 그 차제로 계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유는 “계시는 스스로 계시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계시의 드러냄이 아니라 다만 그 드러냄을 증거할 뿐”이며, “설교는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를 증거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문 교수가 밝힌 칼빈의 설교사역은 다음과 같다.

▲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영성목회 총재인 길자연 목사     © 리폼드뉴스
“칼빈의 설교 사역은 제 1차 제네바의 체류(1536-1538) 이후 약 삼 년에 걸친 스트라스부우르(Strasbourg) 망명 생활(1538-1541) 동안에 본격화되었다. 이후 다시 제네바에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1541-1564) 칼빈은 일 년에 평균 200회 설교하였으며 200회 강연하였다. 그는 주일에 두 번 설교를 하였으며 격주로 매일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는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으며 원고나 메모가 없이 행해졌다. 그는 가장 위대한 강해 설교자였다. 그의 설교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데 특히 신명기 설교는 200편, 에스겔 설교는 174편, 사도행전 설교는 189편에 이른다. 그는 1549년에서부터 1564년 까지 시편,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미가, 스바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다니엘, 에스겔,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디모데 전서와 후서, 디도서, 고린도 전서와 후서, 욥기, 신명기, 이사야,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사도행전, 창세기, 사사기, 사무엘 상과 하, 열왕기 상과 하를 설교했다. 이들 중에 구약은 주중 아침에 신약은 주일 오전과 오후에 설교되었다. 간혹 시편이 주일 오후에 설교되었다. 칼빈의 설교는 그의 생전과 사후 오래지 않아서 영어, 독일어, 불어, 화란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현대 영어로 번역된 거의 대부분의 설교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문 교수는 “칼빈에게 과연 과연 설교학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체로 회의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설교학에서 기본적으로 운위(云謂)되는 제 종류의 설교의 특징들이나 전달 방법론이 그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특정한 설교론이나 설교학을 전개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설교학, 분명, Sola Scriptura scripta의 원리에 기반한 참 설교학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교사로서 사용하신 칼빈이 행한 설교의 의의와 가치를 두루 파악함으로써 그 본원적 의미가 추구될 것”이다라고 한다.

설교의 핵심이 “중보자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과 여전히 중보하심”을 강조하면서 “칼빈은 설교에서 교회의 하나임(unitas)과 연속성(continuitas)을 주장 중보자 그리스도의 한 분이심과 영원하심의 속성”에서 찾으며, “회가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 속한 아브라함의 씨앗들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된다고 한다. 이어서 문 교수는 “성도의 교제도 그리스도의 양성적 중보의 의의로써 다루어진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심은, 그가 그의 지체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위해서 중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통치를 그의 중보하는 은혜에 기초”를 두며, 심지어 “구약을 설교하면서도 칼빈의 이러한 입장은 견지”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설교자는 자신이 먼저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않은 말씀으로 회중을 감화시킬 수 없다”고 했으며, “설교자는 자신이 가장 귀하게 받은 것을 성도들에게 선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설교는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적으로 감화 받은 설교자가 회중에게 전하여 그들의 유기적인 감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며, “설교자는 배우고 확신에 거한 바대로 설교해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국 교회는 현재 강단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고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기를 “그것은 설교자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으로 받은 것을 성도들에게 전하지 않고 오히려 받지 않은 것을 성도들에게 맞추어서, 이성적으로, 세속적으로 전하는데 있다”고 한다. 문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의를 마무리하고 있다.

“칼빈의 설교에는 그리스도의 구원 공로가 성도의 삶에 실재로 전가됨이 줄곧 강조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하여서 그 분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성도의 삶을 강조하기 위해서 칼빈은 설교 가운데 성례신학적인 용어들을 자주 사용하였다. 설교자는 다 이루신 의를 전가해 주시며 지금도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증거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교사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맞추어서 가르쳐 주신다. 주님께서는 화목케 하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구원 과정 전체를 주장하신다. 오직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의 의를 전가 받아서 영생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재자로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시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Matt. 11:28)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는 자리에 기꺼이(libenter) 선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의 나라의 후사로서 마땅한 기업을 누린다(롬 8:17). 이제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니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성도를 향하여 칼빈이 설교한 핵심 메시지였다. 개혁주의 설교자는 이러한 메시지를 피를 토하듯이 전해야 한다.”

문 교수의 강의 내용 원고 중에 “개혁주의 설교자 칼빈”과 “말씀과 설교”편의 원고 전문은 다음과 같다. 참고 각주는 올리지 못함을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 세미나에 참석자들이 열심히 갈의를 듣고 있다     © 리폼드뉴스

 
 
 
 
 
 
 
 
 
 
 
 
 
 
 
 
 
 
 
 
 
 


2. 개혁주의 설교자 칼빈

칼빈은 말씀의 교사(doctor)요, 해석자(interpres)요, 수호자(custos)였다. 말씀의 해석자로서 칼빈은 말씀을 구절대로 주석하기에 일생을 헌신했다. 말씀의 교사로서 칼빈은 말씀을 선포하여 성도들이 계시의 진리를 고백하기에 이르도록 가르치기를 힘썼다. 그리고 말씀의 수호자로서 칼빈은 참 신학을 수립하고 변호하여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의에 합한 바가 되도록 감화를 끼쳤다. 이러한 칼빈의 직무는 그의 신학의 성격을 결정지었다.

우리가 기독교 강요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칼빈의 신학은 교훈적이며 고백적이며 변증적이었다. 교훈적이라 함은 성경의 진리가 그 속에 녹아있음이요, 고백적이라 함은 그것이 성경의 진리를 믿음으로 수납하는 감화(persuasio)와 감동(affectus)의 기록이라는 점이요, 변증적이란 함은 참 신학(theologia vera)에 대한 진정한 항변이 그 속에 채워져 있음이다. 칼빈은 설교를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는 종합 예술과 같이 여겼다. 그는 에베소서 설교에서 설교의 필연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복음이 설교되고 우리가 함께 가르침 받기 위해서 모일 때 이것은 인간이 고안한 정책이거나 질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환상이거나 발명품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수립한 포고(布告)이며 어떤 경우이든 우리가 거역하려고 함이 합당치 않은 영구적인 법(une loy permanente)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으므로 말씀과 들음 사이의 전달의 도구로서의 설교자와 그의 사역으로서 설교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종교 개혁은 예배의 개혁이었다. 이전의 보여지는 예배(cultus visus)가 아니라 들려지는 예배(cultus auditus)가 추구되었다. 중세의 교회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우상을 보거나 만지면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들은 무식한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서 우상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종교 개혁은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 선포하는 교회(ecclesia praedicens)를 강조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측면에서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서로 차별이 없었다.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측면에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모두 제사장들이었다.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고백되었다. 오직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고, 예배 드리고, 말씀 들음이 진리로서 확정되었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백성이 차별 없이 듣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다만 그러하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설교자라는 도구로 사용하심이 부각되었다. 설교자의 직분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바대로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의 사역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서 친히 자신의 입술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설교가 예배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하나님의 대언자인 목사의 설교는 참 교회의 표지로서 인식되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감화된 심령에 친히 말씀하심, 즉 성령으로 영감된 말씀이 성령의 조명으로 감화된 심령에 친히 말씀됨이 설교로서 그리고 설교자는 그 도구로서 여겨졌다. 이러한 참 교회의 표지로부터 성도의 표지(nota fidelium)가 도출된다. 진정한 성도의 가치는 그저 형식적 예배에 참석하고 가시적 윤리적 행위로 공로를 쌓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참 음성을 듣는 심령의 감화와 고백에 있음이 강조되었다.

▲ 논찬자인 김성천 목사     © 리폼드뉴스
개혁교회는 설교가 말씀의 선포로서 말씀의 권능을 갖는 것으로 믿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간 도구를 통해서, 말씀 가운데, 말씀하심을 설교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에게 맞추어 주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사는 하나님이 자신의 음성을 인간을 통해서 들려 주시기 위해서 인간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셔서 인간의 언어에 자신을 맞추셨는데, 그 맞추심(accommodatio)의 정수가 설교에 나타난다. 성소에서 하나님을 찾았듯이,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성도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다.
 
선포된 설교(externa praedicatio)는 가시적 교회가 서 있는 유일한 기초이며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고리(vinculum)가 된다. 설교는 스스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심이다. 설교가 계시 자체는 아니다. 설교는 그 차제로 계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계시는 스스로 계시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계시의 드러냄이 아니라 다만 그 드러냄을 증거할 뿐이다. 설교는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를 증거하는 것이다.

칼빈은 모범적인 설교자였다. 그는 설교 이론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생 계속된 강단에서의 설교를 통해서 설교 시 본문을 어떻게 나눌 것이며, 어떻게 주해할 것이며,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또한 설교의 횟수와 본문 선정에 대한 개혁 교회의 효시(嚆矢)를 제시했다. 나의 심장을 신실하게 그리고 즉시 하나님께 드립니다(Cor meum tibi offero Domine sincere et prompte) 라는 그의 헌신은 생의 마지막까지 계속된 그의 설교에서 극치에 이른다.

칼빈의 설교 사역은 제 1차 제네바의 체류(1536-1538) 이후 약 삼 년에 걸친 스트라스부우르(Strasbourg) 망명 생활(1538-1541) 동안에 본격화되었다. 이후 다시 제네바에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1541-1564) 칼빈은 일 년에 평균 200회 설교하였으며 200회 강연하였다. 그는 주일에 두 번 설교를 하였으며 격주로 매일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는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으며 원고나 메모가 없이 행해졌다. 그는 가장 위대한 강해 설교자였다. 그의 설교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데 특히 신명기 설교는 200편, 에스겔 설교는 174편, 사도행전 설교는 189편에 이른다. 그는 1549년에서부터 1564년 까지 시편,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미가, 스바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다니엘, 에스겔,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디모데 전서와 후서, 디도서, 고린도 전서와 후서, 욥기, 신명기, 이사야,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사도행전, 창세기, 사사기, 사무엘 상과 하, 열왕기 상과 하를 설교했다. 이들 중에 구약은 주중 아침에 신약은 주일 오전과 오후에 설교되었다. 간혹 시편이 주일 오후에 설교되었다. 칼빈의 설교는 그의 생전과 사후 오래지 않아서 영어, 독일어, 불어, 화란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현대 영어로 번역된 거의 대부분의 설교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 논찬자인 호용한     © 리폼드뉴스
칼빈의 설교는 그 문체와 방식에 있어서 일생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칼빈의 설교는 그의 글에서와 같이 문체의 간결성(brevitas)과 유용성(facilitas)이 돋보인다. 칼빈은 핼라어와 히브리어 성경으로부터 그의 설교 본문을 정하여 읽은 후 언제나 간단한 개요와 함께 시작하였다. 종종 본문의 주제를 먼저 개괄하고 한 구절씩 강론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 성경 본문을 충실히 따랐다. 칼빈은 많은 은유들과 비유들을 사용하였으나 대체로 성경에 직접적인 교훈이 되는 긴요한 것들에 한정되었다. 칼빈이 원고 없이 설교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되는 주석과 강의를 통하여서 충분히 신학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교는 본문에 대한 해석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칼빈은 본문의 의의와 가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성도의 삶에 적용하는데 뛰어났다. 이를 그가 일찍이 법학을 공부하면서 익힌 텍스트 안에서의 텍스트 읽기와 콘텍스트 안에서의 텍스트 읽기 방식이 일정 영향을 미쳤다고 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칼빈은 설교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에 의지하였기 때문에 원고가 없는 설교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원고 없는 설교지만 그의 설교가 어느 누구의 설교보다 조직적이고 정치(精緻)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칼빈의 설교는 문체의 화려함과 수사의 다양함이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고 유용한 것은 그가 본문의 문자적, 역사적, 신학적 의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그것들을 충분히 종합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칼빈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주석적이며 신학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매우 적용적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삶에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마땅히 설교가 그러해야 할 특성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칼빈이 행한 설교의 행태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며 그가 선포한 설교 자체를 분석하고 종합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가 자주 표현하듯이 설교를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의 학교(l'escole de Dieu) 혹은 그리스도의 학교(l'escole de Christ)에서 배울 바를 찾아야 한다. 이는 그의 설교들을 통해서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vox Dei)이 반향(反響)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들을 통하여서 말씀하신다는 소위 두 음성 이론으로써 우리는 성경의 축자적(verbatim) 문자적(litteratim) 영감에 기반한 칼빈 설교학의 정수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우리는 칼빈의 설교에 나타난 신학적 교의들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강의자와 논찬자     © 리폼드뉴스

 
 
 
 
 
 
 
 
 
 
 
 
 
 
 
 
 

3. 말씀과 설교

칼빈에게 과연 과연 설교학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회의적일 것이다. 오늘날 설교학에서 기본적으로 운위(云謂)되는 제 종류의 설교의 특징들이나 전달 방법론이 그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는 특정한 설교론이나 설교학을 전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개혁주의 설교학, 분명, Sola Scriptura scripta의 원리에 기반한 참 설교학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교사로서 사용하신 칼빈이 행한 설교의 의의와 가치를 두루 파악함으로써 그 본원적 의미가 추구될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설교를 들은 회중들은 대체로 카톨릭의 영세를 받은 중세의 성도들이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을 바로 가르치는 직분이 있는 것으로서 여겨졌다. 설교자는 교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교육해야 했다. 칼빈은 욥기를 설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강단에 오를 때 그것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몸을 도사리고 그 강단으로부터 물러선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교사가 되어야 하며 저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은 여러분과 함께 제 자신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에게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교회의 유일하신 한 분 교사이시므로 설교자들은 마치 그 분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전하듯이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일하신 지혜요 진리며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영원하신 말씀이신 주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구원의 의를 다 이루시고 보좌 우편에 계셔서 자신의 영을 자신과 함께 자녀 된 백성에게 부어주신다. 오직 이 영을 받은 사람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라는 음성을 새겨야 한다.
 
그리고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벧전 4:11) 라는 전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경의 학교, 성령의 학교,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먼저 배워야 한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그 말씀에 감화되어야 한다. 딤후 3:16의 성경의 성령 영감성을 설교하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저는 성경을 설명할 때마다 항상 다음을 저의 원칙으로 삼습니다. 저의 말씀을 듣는 사람마다 제가 제시한 가르침으로 유익을 얻고 구원에 이르는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그러한 감동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저는 저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위하여 덕을 세우는데 실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한 불경스러운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의 감화는 저자를 감동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성도들을 심령을 조명시키고 감화시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심에 있다. 설교는 설교자의 주관적 사변이나 체험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말씀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동일한 진리가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서 유기적으로 영감되어 기록되었듯이, 동일한 진리가 다양한 설교자들에 의해서 선포되어 성도들에게 유기적으로 감화된다. 그러므로 설교 가운데 이미 존재하는 진리가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이 내린다. 진리의 양식이 만나와 같이 내린다. 
 
▲ 세미나에 참석한 김근수 교수(칼빈대학교)     © 리폼드뉴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 . 라는 구절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성경 기록자의 메시지와 설교자의 메시지가 다르지 않음과 동일한 성령의 역사로 양자가 공히 같은 진리로 작용함을 강조한다. 복음 설교 가운데 성령이 작용하여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칼빈은 분명히 천명한다. 그리고 설교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성도들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삼은 은혜를 누리게 된다고 역설한다.

선택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한다면, 말씀은 지극한 능력으로 역사하여 진정한 자기-지식에 깨어져서 겸손하게 된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속으로 도망치게 한다. 말씀이 그들의 심령의 깊은 곳으로 스며들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설교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의 은혜를 선포함에 그 궁극적이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여전히 중보하심으로써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신다. 설교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그 분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매체(medium)이다. 목회자들이 열쇠들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마 18:18; 요 20:22-23) 오직 복음 설교와 관계해서이다. 칼빈은 이 사실을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부터 줄곧 역설했다.

결론적으로, 열쇠들의 권한은 단순히 복음의 선포를 의미한다. 사람들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사역자들의 권한에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한을 사람들이 아니라 그 분께서 그들을 말씀의 사역자들로 삼으신 바 그 말씀에 주셨기 때문이다.

사역자의 권한(potestas ministeris)은 성도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 분의 중보 사역을 위하여 일꾼으로 사용됨에 있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중보의 은혜를 선포해야 하며 그 자리로 성도들을 인도하도록 가르치고 증거해야 한다. 설교는 기복적인 의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는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음과 그 다 이루신 의가 지금 역사하고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칼빈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중보를 자신의 설교의 중심 메시지로 삼았다.
문병호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