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의 변혁을 소망하는 청원문

유정욱 | 기사입력 2020/07/27 [23:28]

총신대의 변혁을 소망하는 청원문

유정욱 | 입력 : 2020/07/27 [23:28]

 

  ©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와 산하 교회 및 성도님, 그리고 총신 공동체에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1901년 시작된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창립된 우리 교단의 뿌리가 120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 최대의 공교단으로서 1세기가 흐르는 동안 명실공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유정욱 교수  © 리폼드뉴스

 이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힘입어 한국 교회의 성장으로 나타났으며 믿음의 공동체가 이루어 낸 큰 결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성장은, 복음을 전할 리더의 꾸준한 배출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처럼, 황무지였던 이 민족의 복음화를 사명으로 하는 목회자의 양성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이는 총신에게 주어진 크나큰 사명이었으며, 총신은 이를 잘 감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바삐 달려온 탓에 지금의 총신은 잔병치레를 하고 있습니다.

 

피곤에 지친 안타까운 총신을 향해 필자는 「변혁의 시대, 역행하는 총신!」이라는 글을 통해 각종 문제점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지적하였습니다. 이는 어느 학우의 표현처럼 총신에 대한 필자의 사랑앓이로 여겨주었으면 합니다.

 

이 기고문은 총신의 빠른 회복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제2 복음화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총회와 산하 교회 및 성도, 그리고 총신 공동체가 아낌없는 협력을 해주시기를 호소하기 위한 청원의 글이오니 혜량해 주십시오.

 

오늘날 총신은 신앙의 선배 목회자, 선배 교·직원, 선배 학우들이 추구하던 신앙적 가치를 잇고 있는지를 먼저 헤아려 봐야 한다. 필자는 앞 기고문에서 총신의 문제점을 장황하게나마 다섯 가지로 지적했지만, 이는 총신의 정체성 재확립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한 가지만으로 귀결된다.

 

위와 같은 문제 제기는 1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총신이 혹 세속에 휩쓸려 본질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혹은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는 핑계로 그 본질을 훼손시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총신의 정체성이 상실되거나 변질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련의 총신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듯 방향성 없이 빚어지는 혼란을 보며, 이 모든 원인이 정체성의 상실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따라서 앞 기고문에 공감하지 못한 독자이거나 또는 필자에게 대단한 해법을 기대한 구성원이라면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고, 이 청원을 더는 읽어 나가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는 지난 6월 25일 「ReStart-Up Chongshin」 발표의 노고가 있었기에 넓은 시각에서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겠다 하였다. 이는 문제해결의 주체가 총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이라 하여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게 할 수는 없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에 문제해결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대제를 제시하오니 총신 공동체가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아갔으면 한다.

 

첫째,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총신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인 아둔함으로 인해 이해하지 못함도 있겠지만 최근 10여 년에 걸쳐서 임용된 교·직원들을 중심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져, 총신 정체성의 주축이 될 신앙적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고 빚어내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조직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조직체이든 가치를 중심으로 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비록 총신이 신앙 공동체일지라도 이는 필수적이다. 비전이라는 푯대가 우뚝 세워져 있다면 흩어진 구성원 일지라도 그 아래로 찾아들기 마련이다. 공동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헌신할 수가 있겠는가? 이는 구성원을 무능함으로 낙인찍는 지름길이다. 그 이전에 구성원에게 헌신의 기회를 박탈하고 방황케 하는 것은 죄악이기도 하다.

 

필자가 반복적으로 조직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정체성 자체가 바로 총신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변형된 조직은 본디 그 조직이 아니라 다른 조직에 불과하다. 위장된 조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은 모호한 정체성을 추구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둘러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총신이 이상하다고 여겨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면 이는 총신이 정체성과 다른 길을 가고 있거나 당신 스스로가 총신의 정체성에 어긋난 위치에 있다는 증거이다. 필자처럼 자신의 오판을 깨닫지 못하면 푯대를 영원히 잃게 된다. 냉철한 이성으로 시급히 푯대를 찾아 그 깃발 아래에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정체성의 확립은 이처럼 문제해결을 간단명료하게 해준다.

 

둘째, 총신이 추구하는 신학적 정체성은 개혁주의 교리이다.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자꾸 문제 삼는 이유는 공동체 내에서 그 향기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캠퍼스 울타리 밖에서는 우수한 역량을 드러내는 교직원 일지라도 공동체 안에서는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이는 공동체에 마음을 붙잡아 두지 못하는 조직문화의 특성 때문에 발현하는 문제이다.

 

특별히 개혁주의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선지동산인 총신은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 공의와 정의가 넘쳐나야 한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마저 찾기가 어렵다. 오늘날 총신의 갈등 요인이 여기에 있다. 직군 간에, 직급 간에 서로 이해가 달라 갈등하고, 반목하며 서로를 가르는 선을 그어 놓는 행태는 후진 세대가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철옹성을 만들 뿐이다.

 

하지만 최근의 급변하는 교내·외적 환경 요인으로 인해 각기 어렵게 마련한 그 토대마저 1~2년 내로 지켜내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이를 알고도 공동체가 아랑곳하지 않는 인식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철저한 내부적 혁신은 뒤로하고 돌파구가 오직 모금이다. 전혀 길이 아니다. 잘못된 길을 가다 보면 되돌아가야 한다. 자동차의 후진은 짧을수록 좋다.

 

총신의 미래는 공동체 내에 사랑과 긍휼, 공의와 정의가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름다워야 할 선지동산에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총신의 역사를 이끌어 온 오랜 재직 선배들이여, 그간의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총신의 미래를 위해 먼 길을 가야 할 후배들을 사랑으로 긍휼히 여겨보자. 이른 아침에 나온 품꾼이라 하여 오후 다섯시 품꾼에게 동등한 삯을 주는 주인을 탓하는 못난 선배는 되지 말자.

 

오히려 지금의 것을 조금 내려놓는 믿음의 자녀가 되는 本을 보여보자. 그 작은 희생으로 오늘날 혼란스러운 총신의 횃불이 되어보자. 후배들이여! 총신에서 보람되게 일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된다면 그것도 만족 아니겠는가? 그간 교수가 최고인 줄 알고 살았더니 本이 되지 못하는 교수, 그것도 별것 아니더이다.

셋째, 총신의 지속 가능한 소명 이행은 철저한 자기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0여 년 전 교회의 지속적 성장과 함께 누려온 그 풍요의 울타리에서 빨리 벗어나자. 그 길만이 살길이다. 이제는 총신의 철저한 자기혁신만이 답이다. 4년 후까지 허공에 증발될 학부 200여 명의 재학생(편제 정원의 17% 강제 감축), 신학과 학제 개편(안)에 따를 실제 재학생의 감소, 신대원 지원율 감소 등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는 경영의 결과를 예측이나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학생의 등록금 수입에 우선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학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이 어디 있을까? 향후 3년간의 수입 지출에 대한 산출(안)이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답이 있다. 긴축 경영인가? 확장 경영인가? 이 산출 근거를 토대로 그간 구성원이 희생하여 어렵게 적립한 350억 원에 이르는 기금 활용 여부는 공동체가 진지한 토의를 통해 정할 일이다. 김영우 목사의 이사장과 총장 재직시절까지 적립된 이 기금은 향후 구성원이 함께 짊어져야 할 절대적 멍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용하기 어려울 만한 대안을, 사랑하는 옛 동료들에게 진심을 담아 늦게나마 제안하오니 철저한 논의를 통해 총신의 미래, 여러분의 미래를 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제안이 터무니없는 엉터리라 여겨지거든 눈을 씻고 e-휴지통에 버리면 된다. 물론 필자를 심히 꾸짖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도 필자의 이런 무례와 무모함 때문에 공동체가 멀리한 것은 되돌아볼수록 현명한 선택이었다.

 

앞의 기고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라 지칭한 것은 존중하는 동료 개개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잘못 형성될지도 모를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염려의 표현이었다. 이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총신의 총 재학생은 이전과 비교해 줄고 있지만, 교·직원의 숫자는 오히려 비대해졌다. 수입대비 지출 요소가 많아진 것이다.

 

이는 교직원의 열악한 복지환경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불행하게도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마저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 어렵게 흑자를 지속해 왔지만 2019년에는 그 규모가 수억 원에 그쳤고, 2020년에는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는 자칫 적자 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때에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펼쳐지는 인사행정은 조만간 독소가 될 것이기에, 아무리 조급해도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헤아려 보았으면 한다.

 

그간 조직의 안정을 위해 마련된 안전장치가 비록 형평성을 잃었다 할지라도 나름의 역할이 있었음에도,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작은 이익에 몰두한 나머지 무모하게 무장 해제 해버리는 행태를 최근 1년여간 지속적으로 자행하였는데, 그 후유증에 대해서 제대로 헤아려 보았는지 의문이다.

 

총신의 지금 상황은 여러모로 살펴보아도 뼈를 깎아내는 아픔과 같은 혁신을 추구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 당장에 강제적 퇴출을 도모하라는 것이 아니다. 순리에 따른 자연 감축을 활용하며 서로가 고통을 분담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서로가 잘 아는 것이지만 총신 공동체에 속한 누군가는 총신의 本質 회복을 향한 예레미야의 부르짖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총신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침묵은 부당함에 대한 방조이자 절대적 협력이다. 그렇기에 누굴 탓해선 안 된다. 이미 십여 년간 경험하지 않았는가? 뒤늦게 아무리 탓해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그 피해는 결국 공동체에 또 자신에게 고스란히 안겨졌다는 사실을.

 

넷째, 총회와 산하 교회 및 성도는 총신이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할 책무가 있다.


우리 민족은 가난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정신이 목회자 양성의 토대가 되어 한국 교회 성장의 역사가 되었으며, 총신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더불어 총회와 산하 교회 및 성도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후원이 뒷받침되었기에 오늘의 총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총신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시들어지고 있다. 이는 총신이 방향감을 상실하여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탓이다.

 

멀어져간 사랑에 목말라하는 총신은 침체와 회복의 기로에 놓여 있다. 침체가 아닌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총신이라면 필자는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고 싶다. 그간 안타까운 총신을 바라보며 사랑앓이를 해 온 총회와 산하 교회 및 성도님 총신이 비록 미워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간에 총신이 그러했듯이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지난 세월 총신에 베풀어 주신 사랑을 점진적으로 늘려 이전의 70%까지만 회복시켜 주십시오. 혹 아니다 싶으면 회초리를 과감히 들어 주십시오.

 

제105회기 총회 총대님, 총회장님, 부총회장님. 제89회 총회에서 “총회세례교인헌금” 중 총회신학원인 총신에 적극 지원하기로 결의한 것을 이제는 실행하여 주십시오. 총회의 결의 미이행이 다툼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여 꼬투리가 되었기에 이제는 이를 바로 잡는 용단을 내려 주십시오. 이는 총회가 총신을 설립한 주체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총신에서 총회는 중심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총신의 혼란은 최종적으로 총회의 잘못입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여야 합니다. 105회기 총회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필자는 총신 사태를 겪으면서, 이를 출애굽 사건과 같다고 보았기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자 스스로 아론의 역할을 설정하여 노력하였다. 이런 연유로 총신을 떠난 것도 여로보암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사자처럼 늙은 선지자에게 현혹되어 사나운 사자에게 찢기는 죽음을 겪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총신에 대한 변함없는 짝사랑이 있었기에 이렇게나마 애정을 쏟아왔다.

 

이제 총신의 미래는 여러분의 몫이다. 총신의 미래가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기에 중후하고 세련된 멋진 인생이기를 기원한다. Goodbye.


유정욱 시인 / 前 총신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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