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매일 십자가 묵상"

고난주간에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실천하며 살자

송삼용 | 기사입력 2010/03/26 [17:51]

고난주간, "매일 십자가 묵상"

고난주간에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실천하며 살자

송삼용 | 입력 : 2010/03/26 [17:51]
월요일 : 성경은 십자가의 책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

기독교의 십자가 중심성은 구약에서부터 시작된다. 죄로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창세기부터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려는 위대한 구속 드라마의 각본을 수 천년 전에 미리 준비하신 것이다. 성경은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서이다.
 
구약에서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신약에서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증거한다. 성경 어느 곳을 봐도 십자가가 없는 곳이 없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율법서과 선지서, 그리고 신약 곳곳에 십자가가 가득차 있다. 성경은 십자가의 책이요,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강해설교의 왕자라고 일컫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캠벨 몰간이 한번은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갈등에 빠졌다. 당시 만연된 지성주의와 과학주의의 위협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설교 약속을 취소하고, 즐겨 읽던 모든 책들을 벽장에 내던져놓고 문을 잠궈버렸다.
 
그리고나서 성경책을 새로 구입해서 밤낮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경에서 보화를 발견했다. 그 순간 몰간은 소리쳤다. “아~~~! 드디어 찾았다. 위대한 보화를!” 그는 성경에서 갈보리 십자가를 본 것이다. 1883년 십자가 체험을 한 후 몰간은 50년 동안 웨스트민스터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영국 교회의 부흥을 주도했다. 
 
성경을 짜면 피가 나온다. 구약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인 짐승의 피가 흐르고, 신약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른다. - 루터 -


화요일 :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십자자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갈보리 십자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사람을 살려내는 공장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보혈은 영혼을 소생시켜 주는 원기요,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생수다. 개인이든 국가든, 교회든 가정이든 십자가가 세워지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생명의 싹이 움터올랐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다. 인류 문화와 문명을 주도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로 변화된 사람들이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십자가는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해 주는 씨앗이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생명이 약동했다. 십자가에는 원자 폭탄같은 능력이 있다.

경기도 벽제의 윤승근은 불량배요, 싸움꾼이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을 속이기 일수였고, 여기저기에서 싸움질을 밥먹듯 하고 다녔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닭이나 쌀 등도 훔쳐내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윗 동네 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처음엔 술에 취한 채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찾아갔으나, 매일 밤마다 윤승근의 발걸음은 교회로 향했다. 그러다 십자가의 사랑에 마음이 녹아졌다. 그때부터 윤승근은 말씀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불량배로 살아온 자신을 받아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통곡하면서 회개했다. 그리고나서 옛생활을 청산한 후 새사람이 되어 각지에 다니면서 전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십자가가 없는 종교는 생명력이 전무(全無)하다. - 도두손 -


수요일 : 십자가, 죄의 치료제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너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예수님의 피는 죄와 무관한 깨끗한 피다. 십자가의 보혈은 정결하고 거룩한 피요, 깨끗한 피다. 그 피만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릴 수 있다. 십자가의 피 외에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할 수 있는 근거다. 십자가는 죄를 없애는 지우개이다.
 
십자가의 보혈이 뿌려진 곳에는 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보혈은 죄의 뿌리는 말리는 제초제이다. 십자가의 피가 뿌려진 곳에는 죄의 싹이 자라지 못한다. 당신의 영혼에 죄의 치료제를 바르라. 십자가의 보혈은 죄의 질병을 치료하는 신비로운 치료제이다.

1872년 루이스 하트소우 목사는 전도자였자만 십자가의 감격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오아 주 에프워쓰에서 전도 집회를 인도하다가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다. 그는 십자가 없이 살아온 죄를 회개하면서 십자가 보혈의 감격을 이렇게 읊었다.
 
“갈보리에서 흐르는 고귀한 보혈로 죄를 씻으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 약하고 추하지만 주께서 내게 힘을 보증하시고 내 추함을 씻으시어 흠없고 순전하게 하십니다.” 후일에 이 시는 찬송시가 되어 「내 주의 보혈은」이 되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주 날 오라 하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십자가는 죄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책이다. - 톰 라이트 -

 
목요일 : 십자가, 복음의 진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초대 교회 사도들과 바울의 메시지는 언제나 십자가 중심이었다. 그들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삶이나 교훈, 그리고 기적이나 비유 등을 주제로 가르치지 않았다. 물론 바울도 성도들이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야할 것을 가르치기도 했다. 예수님을 본받고, 자신처럼 살아야할 것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가장 중요시했던 가르침은 십자가였다. 바울에게 가장 시급한 멧세지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피였다.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삼천층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님 이야기, 광야에서 경험했던 은혜 등을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십자가만을 증거했다. 십자가만이 복음의 진수였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가 수도사들과 함께 성 계단성당(Scala Santa) 내부에 있는 ‘빌라도의 계단’이라 칭하는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 고행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조건인줄로 생각한 것이다. 그 계단을 기어오르면서 루터는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행위를 기뻐하실까?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인가? ---’
 
그러다가 갑자기 말씀 한구절이 그의 영혼에 비춰왔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그 순간 루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후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종교 개혁의 초석이 되었다. 

십자가와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복음이다. -존 스토트 -


금요일 : 십자가, 그 잔혹한 참상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받기 직전에 벌써 39대의 채찍질을 받으셨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태장을 때릴 때 40대를 맞으면 죽기도 하기 때문에 한번을 감해서 때렸던 것이다. 당시의 태형은 주로 로마의 군병들이 때렸지만, 때로는 가장 포악한 이집트의 노예들을 뽑아서 때리기도 했다. 6명쯤 선발된 노예들은 서럽게 살아온 울분을 마음껏 채찍으로 풀게한 것이다.
 
가죽 채찍에는 끝에 동물 뼈나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그 채찍으로 맞으면 죄수의 몸에서 살점이 찢어지고, 피가 튀겼다. 그렇게 심한 채찍질을 당하신 주님도 몹시 피를 흘리셨다. 그 연약한 몸으로 60여kg나 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형장으로 가셨다.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신 후 십자가 달려서 고통 당하시다가 결국 심장이 파열되어 죽으셨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불려진 요한은 십자가 사건 후 평생 동안 목숨을 바쳐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다. 그는 서머나, 버가모,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와 두아디라 교회를 세운 탁월한 목회자였다. 생의 말기에는 그 교회들을 향해서 요한계시록을 쓰기도 했다. 에베소에 있을 때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로마로 보내져서 끓는 기름 가마솥에 던져졌다.
 
그런 죽음의 순간에도 요한은 당당하게 십자가의 복음을 외쳤다. 그때 펄펄 끓는 기름 조차도 그를 해하지 못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요한이 가마 솥에서 살아나온 것이다! 결국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그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A.D. 73년 밧모섬으로 유배시켰다. 그는 밧모섬의 광산에서 노동의 형벌을 받으면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다. 

십자가형은 가장 극단적인 징벌이요,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다. - 키케로 -


토요일 : 십자가로 돌아가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십자가가 없는 믿음은 일종의 사상에 불과하다. 십자가가 없는 말씀은 도덕적인 교훈과 역사의 기록일 뿐이다. 십자가로 돌아가지 않으면 신앙의 성장도, 성숙도 없다. 당신의 신앙 한 중심에 피묻은 십자가를 세우라! 당신이 추구한 신학 위에 생명의 십자가를 꽂으라! 당신의 심장에 십자가의 보혈을 뿌리라! 교회에 피묻은 십자가를 다시 세우고, 강단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라!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 중심의 신앙이다. 당신의 삶을 십자가 위에 세우라. 십자가가 당신 삶의 모든 것이 되게 하라. 날마다 십자가 보혈의 강수에 깊숙이 젖어들어라. 날마다 피묻은 십자가를 묵상하고, 보혈의 샘에 그대의 영혼을 담그라!  

설교의 황태가 챨스 스펄전이 청년 시절 죄문제로 무척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평신도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 평신도는 깡 마른 체구에 좀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고 원고를 조용하게 읽어나갔다. “나를 바라보라! 내가 핏방울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죽었고, 묻혔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일어났노라. 나를 바라보라.” 이 말씀이 설교의 황태자를 낳게 했다. 그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만난 후 스펄전은 평생 동안 십자가 중심의 신앙과 삶을 살았다. 그가 이루었던 19세기의 부흥의 출발선은 십자가였다. 스펄전의 사역에서 십자가는 부흥의 불 댕기는 휘발유였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 - 윌리엄 펜 -

송삼용 목사(하늘양식교회 담임목사)
십자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