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연재3] 격려와 칭찬은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힘이 된다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다윗과 미갈의 대화는?

소재열 | 기사입력 2015/06/07 [22:48]

[행복연재3] 격려와 칭찬은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힘이 된다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다윗과 미갈의 대화는?

소재열 | 입력 : 2015/06/07 [22:48]
▲     © 리폼드뉴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하여 세우실 때 심판과 회초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고 축복과 사랑과 자비를 위하여 사용된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와 심판의 도구 사용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과 자비를 위해 쓰임 받고 있습니까?”
 
이런 설교는 우리들을 긴장하게 한다. 설교는 이어진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목적대로 지으셨습니다. 악인은 재앙의 날을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잠언 16: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경고와 경각심을 주기 위해 주신 말씀들도 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사울과 가룟유다처럼 버림으로 쓰임을 받는 경우가 있는 반면 다윗과 바울처럼 쓰임받는 경우도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교회 직분을 받으면서 그 직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의 직분인지를 잘 묵상해 보자. 행복이란 내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을 때이다. 귀하게 쓰임받는 것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 세워진 왕은 악한 왕
 
이스라엘은 적들과의 전쟁에서 자꾸 패배했다. 패배의 분석결과 적들은 왕이 있고 자신들에게 왕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왕이 없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믿는 그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했다. 그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결과라고 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왕 되심을 거부한 요구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나님들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왕을 세워 준 것은 그 왕으로 인하여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그 심판은 그들 스스로가 왕을 구한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섭리였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는 세워진 왕은 악한 왕으로 등장해야 한다. 그게 바로 사울 왕이었다. 그래서 사울 왕은 하는 짓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안들게 되어 있다. 사울은 하나님 하는 짓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왕은 다윗이며, 사울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하게 되었다. 이는 다윗의 승리가 아닌 하나님의 승리였다. 이런 승리는 백성들의 여론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울은 언제나 다윗을 견제하기에 이른다.
 
사울이 다윗을 견제하면서 생각해 낸 것은 전쟁터로 보내어 죽게 한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더라도 전쟁터에 나가게 하여 블레셋에게 죽게 하면 된다. 그래서 사울이 고안해 낸 것은 다윗에게 내 큰딸 메랍을 아내로 줄 터이니 전쟁에서 싸워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한다.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는 사이 사울은 다윗에게 약속한 메랍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 버린다.
 
그러나 둘째 날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사울은 미갈을 이용해서 다윗을 전쟁터에 보내어 죽게 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다윗은 자신과 같은 가난한 사람이 사울왕의 사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쟁터에 나가 200명의 적들을 처단했다. 그리하여 사울왕의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삼상 18:27). 사울은 이런 다윗을 두려워했다. 평생토록 원수가 되었다.
 
사울은 언젠가는 왕위를 빼앗길까봐 죽이려고 했다. 하루는 사울이 자신의 사위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지만 다윗은 피해 도망을 갔다. 집에 있던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들이 집을 포위했다. 그때 아내 미갈은 다윗을 창문으로 도망가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자객을 속이기 위해 우상을 머리털과 옷을 입힌 후 침대를 다윗의 침대에 눕혀 놓았다. 이렇게 하여 아내 미갈은 다윗을 도망가게 했다.
 
다윗이 도망 다닌 중에 사울은 미갈을 갈림 사람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아내로 주었다(삼상 25:44). 보통 남편 가운데 이런 경우 그 여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터인데 다윗은 왕위에 오르자 미갈을 자신의 왕비로 다시 맞았다.
 
다윗에게는 미갈 외에 아스르엘 사람 아히노암, 아비가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라는 아내가 있었다.

▲다윗의 기쁨    ©그림- 쉬운 성경에서

다윗의 아내 미갈의 빈정거리는 말투-결국 행복은 끝나다

다윗은 왕위에 오른 후 먼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 그 과정에서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었다. 미갈은 가시에 찬 빈정거림으로 다윗을 맞았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삼하 6:20).
 
설령 미갈의 눈에 비친 남편의 행동이 옳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토록 남편이 하나님의 법궤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그녀가 내뱉었던 생각없는 험담은 마치 거센 광풍과도 같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미갈의 비판에 다윗 역시 응수한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 6:21)
 
다윗은 미갈에게 가장 아픈 말, 즉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녀의 아버지, 또한 그녀의 집안 세 오빠들의 버림받아 죽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공격하였다. 이런 일이 있는 후 성경은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삼하 6:23)고 한다. 이 말씀의 암시는 다윗과 미갈의 애정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 내용이다.
 
왜 혀를 화살에 비유하는가?

온화한 말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와 같다. 하지만 혀밑의 독스러운 잔인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상대방을 아프게 한다. 잠언 15:4절에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유태인들은 혀를 화살에 비유한다. 왜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하는가? 그것은 상대를 죽이려고 칼을 뽑았다가 용서를 빌면 화가 누그러져 칼을 도로 집어넣을 수 있으나 화살은 한번 쏜 화살은 아무리 나중에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초래할 수 있다.

이해인의 "말을 위한 기도"에서 시인은 이렇게 그의 시를 시작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내가 내 입에서 함부로 내보냈던 숱한 많은 언어들, 그 언어들이 그 어느 누구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을 수도 있고 나뿐 악영형을 끼쳤울 수도 있다. 많은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다. 내가 뿌린 말의 씨들은 내 입에서 떠나면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름 사람의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한을 갖게 한다.
 
에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는데 한 아기의 어머니는 안기를 등에 업고 있다. 남편과 심각하게 싸우고 있다. 30대로 보이는 부부로 보였다.
"오늘 집에 들어오지 말고 나가."
아내는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남편을 향하여 할말 못할 말 쏫아낸다.
엄마 등에 있던 아기는 울기시작한다.
 
"애기가 울잖아. 좀 조용히 해."
"그렇게 애기 걱정한 사람이 그래."
남편이 아내에게 무언가 큰 잘못을 했나 보다. 옆에서 지켜본 내 자신이 너무나도 민망했고 난처했다. 참으로 불행했다. 물론 언젠가는 다시 화해를 하겠지만 그래도 싸움과 분노는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제아무리 분노가 치밀어 와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다윗의 아내 미갈과의 대화는 잔혹한 말싸움이었다. 그 말 싸움은 잔혹하며 상대방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은 아픔이 있다. 부부사이에 서로 칭찬해 보자. 칭찬거리를 찾아보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주변의 정서적 지지, 긍정적인 칭찬도 자아 효능감 증대에 매우 중요한다.
 
▲ 격려   ©그림 - 쉬운 성경 중에서

아내는 정식 학교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늘 한이 되었다. 사모의 험난한 길을 가면서 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고민하기도 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 딸은 중학교 2학년이다. 큰애와 무려 14년 차이가 난다. 남편 뒤바라지 하고 자식들 뒤바라지 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당신이 학교를 다닌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한을 갖고 살다가 끝낼 인생이라면 얼마나 불행하겠노."
"그럭저럭 살지 뭐."
"그러지 말고 학교 공부를 하면 어떨까?"
"이제 이 나이에 무슨 공부."
그러나 아내에게 무언가 희망을 갖고 살기를 바랬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검정고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과정 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11개월만에 검정고시를 다 마쳤으니 그 집념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왕 힘들게 공부를 했으니 대학교도 도전해 봐."
"이제 와서 대학교는 무슨 대학교."
"이제 와서 대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졸업장을 갖는다고 해서 뭐 특별한 일이 없을지라도 인생은 무한한 도전이 아닌가?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아내는 한동안 고민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대 딸을 뒤바라지 하면서 대학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여 상담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그 힘든 4년의 과정을 마쳤다. 나이 50세을 넘어서 대학교를 마친다는 것은 보통 의지가 아니면 오를 수 없는 고지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제 아내는 사역을 위해 마지막 과정의 학교로서 신학교에 다니고 있다. 헬라어 히브리어를 공부하면서 성경을 통해 전해진 풍부한 진리에 맛을 본 모양이다.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의 세계를 교수님들로 부터 접하면서 생각의 세계가 달라진 모양이다. 내 인생의 목표를 정해놓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만인드를 갖고 노력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개척자의 정신이 아닐까?
 
부부간의 격려와 희망과 긍정적인 언어들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는 어떤 한계지점을 정해 놓고 내 능력이 한계라는 이유로 그 근처에 가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 한계를 평생 넘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 한계를 넘을 때에 내가 정해 놓은 한계지점은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격려와 위로와 긍정적인 말들은 결국 한계라고 생각된 고지를 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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