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연재4] 자기 일에 의미부여로 지혜롭게 사는 것이 행복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15/06/13 [22:49]

[행복연재4] 자기 일에 의미부여로 지혜롭게 사는 것이 행복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다

소재열 | 입력 : 2015/06/13 [22:49]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다(약 1:5).     ©리폼드뉴스

어떤 세 사람의 석공이 바위산에서 돌을 캐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세 사람에게 각각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첫 번째 석공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 돌을 캐고 있는 것이 안보입니까? 오늘 작업량을 채워야 집에 가야 합니다. 말 걸지 말고 비끼세요.”
석공은 귀찮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그네는 건너편에서 일하는 석공에게로 갔다.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체념하는 듯한 대답을 했다.
“지금 바위 돌을 캐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세 번째 석공에게 가서 역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내 사업을 하는 중입니다. 이 마을에 처음으로 성당이 생기게 됐는데, 그곳에 쓸 돌을 캐고 있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무너지지 않는 성당을 짓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첫 번째 석공은 죽지 못해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두 번째 석공은 일을 자신들의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 번째 석공은 자신의 일 자체를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행복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첫 번째는 여전히 석공으로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으며, 두 번째 석공은 오로지 자신이 희생해야 가족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의무감으로 여전히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석공은 유명한 건축가가 되어 전국으로 자기사업을 위해 분주하게 생활하고 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직접 뽑아 훈련을 시켰다. 제자의 자격조건은 일류대학 출신도 아니었으며, 좋은 가문출신도 아니었다. 특히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사람은 제외했다. 어떤 사람은 집에 가서 장사 지내고 오겠다고 하자 죽은 자는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자는 내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나는 머리둘 곳도 없다고 하시면서 외면했다.
 
예수님은 철저히 지혜 있는 자, 하늘나라의 사역자로 훈련시키셨다. 그 훈련은 지혜로운 자로 훈련시키셨다. 성경 잠언은 우리들에게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 지혜의 근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는데 그 나타난 영광을 내 심령 속에서, 삶 속에서 임재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체험하면서 산다는 것이 지혜이다. 이 지혜를 우리들의 기도의 대상이다. 지혜가 기도의 대상이라는 것은 그 지혜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때 우리가 얻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다(약 1:5).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관계속에서 기도를 통해서 영력을 얻고 참 지혜를 얻는다. 그 지혜를 얻는 것이 당장 금은보화를 얻는 것보다 더 낫다.
 
잠언 17장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쉬운 성경). 
“새끼들을 빼앗긴 암곰을 만나는 것보다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를 만나는 것이 더 두렵다.”
 
개역개정판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한다.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흔히 여우같은 여자와 살 수는 있어도 곰 같은 여자하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다. 여우같은 여자는 센스가 있지만 곰 같은 여자는 센수가 없다, 여우같은 여자는 눈치가 빠르지만 곰같은 여자는 눈치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성경의 잠언은 새끼를 빼앗겨서 사나운 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 지혜운 사람, 지혜롭게 행동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 역시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한다. 미련한 사람, 미련한 행동이 습관화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 역시 미련한 사람으로 변해 버린다. 그런 습관으로 고정되어 보린다.
 
지혜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꿈을 말하고 희망을 논할 때 그 행복의 세계를 한번 생각해 보다. 그런 행복의 세계를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습관화 되어 질 때 그대로 되는 축복이 임한다. 외적 환경과 조건이 꿈꾸는 행복을 막을 수 없다.
 
꿈을 갖는 지혜로운 자는 무의식적으로, 체념적으로 살지 않는다. 다람쥐 체 바퀴 돌아가는 식의 반복된 습관적인 삶에 안주하여 마지못해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목표를 정한다. 정해진 목표를 위해 준비한다. 그 준비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준비가 아니다. 철저하다. 준비하는 것만큼, 실천한 것만큼 이루어진다. 바라는 것들이 내 앞에 실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응답된 것처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상태는 행복이다. 그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할 때 무슨 일이들 못하겠는가?
 
지금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을 다르려 보자. 성경 잠은 이렇게 교훈한다(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개역개정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성을 정복하는 자보다 낫다.”(쉬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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