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제11강 / 라오디게아 교회

세 가지를 사서 회복하라

이석봉 | 기사입력 2015/08/01 [07:35]

요한계시록 제11강 / 라오디게아 교회

세 가지를 사서 회복하라

이석봉 | 입력 : 2015/08/01 [07:35]

▲     ©리폼드뉴스

제11강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3:14-22)
세 가지를 사서 회복하라

1. 라오디게아(λαοδικεία, 백성의 공의)의 배경

1) 라오디게아의 어원이 무엇인가? 
라오디게아의 헬라어 ‘라오디케이아(λαοδικεία)’는 ‘라오스(λαός 백성)’ + ‘디케(δίκη 정의, 공의)’의 합성어로 ‘백성의 공의’, ‘백성의 옳은 판단’을 뜻한다. 에베소 교회의 니골라당(νικόλαος)이 ‘백성을 주관하다, 다스리다’의 뜻이고, 버가모 교회의 발람(בלעם)이 ‘백성을 통치하다’는 뜻의 반대어로 주권이 백성에게 있음을 말한다. 

2) 라이디게아의 위치와 상황이 무엇인가?
라오디게아 교회는 빌라델비아로부터 남동쪽으로 45마일이 떨어져 있으며 빌리델비아에서 버가모와 두아디라, 사데를 통하여 연결되는 우편 통신으로의 주요도시 중 하나에 속한 교회이다. 라오디게아는 기원전 253년에 셀루시드의(Seleucid Empire)왕 안디오쿠스(Antiochus) 2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주변 도시와 함께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라오디게아는 인구가 많은 상업도시로서 일찍부터 금융업이 발달하였다. A.D 17년에 소아시아 일원을 강타한 큰 지진이 났을 때, 대다수 도시들이 로마제국의 지원으로 재건사업을 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는 그 지원을 거절할 정도로 돈이 많았다. 라오디게아는 안약 제조로 유명했고,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다. 
 
이 도시는 생활용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북쪽 9km 정도 떨어진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와 골로새에서 물을 끌어다 사용했다. 히에라폴리스는 온천도시라서 더운 물을 가져왔고, 식수는 차가운 물로 정평이 나 있던 골로새(Colosse)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군사적 침략에 상당한 취약점이 되었다. 
 
3) 라오디게아의 종교성이 무엇인가?
이들의 종교적 생활은 지역의 신들과 로마의 신들이 조화된 혼합주이로 주로 숭배했던 신은 ‘제우스’였다. 이러한 라오디게아의 혼합적 종교는 이 도시와 근접해 있는 골로새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던 이교적 가르침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4)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원이 무엇인가?
골 4:13에서 “그(에바브라, Epaphras)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에바브라(Ἐπαφρᾶς)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수고를 하는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에바브라가 라오디게아 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2.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내용(3:1-6절)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않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1) 라오디게아 교회에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계 3:14)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쓰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이같이 말씀하신다)”

① 아멘이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아멘이시다‘라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사 65:16)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는 진실무망하시다’는 찬양조의 호칭이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란 아멘을 설명하는 강화법이다. 

②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충성되고 참되다(πιστὸς καὶ ἀληιθνός)’가 ‘증인(μάρτυς)’과 합쳐질 때 그것은 고난으로 이어지며 마침내는 순교를 당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과정의 전형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5:6)이시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 걸어갈 것을 요구받는다(참조 11:1-13). 라오디게아 교회는 정반대의 상황에 있어서 아멘이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주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③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ἡ ἀρχὴ τῆς κτίσεως τοῦ θεοῦ)’에서 ‘아르케(ἡ ἀρχὴ )’는 예수님이 창조주로서 만물 창조의 근원이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함께 모든 창조에 동역하셨고, 만물 전에 계신 분이시다(요 1:1, 2) 그러므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시는 분으로 소개하였다(계 1:4, 8, 17; 2:8; 21:6; 22:13).

2)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무엇을 책망하는가?(15절)

1)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하셨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이러한 비유는 라오디게아 북쪽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온천수(사용수)와 라오디게아 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골로새에서 끌어올리는 차가운 식수에서 착안한 것이다.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버리리라(계 3:16)” 

15절에 이어 이렇게 책망이 이어서 나온 것도 당시 라오디게아 도시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히에라폴리스 ‘데니즐리’에서 뜨거운 온천물을 수로를 통해 11km 정도 떨어진 라오디게아까지 끌어오면, 도착한 물의 온도는 당연히 낮아져 석회질이 섞인 미지근한 물로 바뀐다. 구토증이 나와서 먹을 수 없는 미지근한 물이다. 이것은 라오디게아의 일상에 빗대어 그들의 영적 상태를 예리하게 진단하고 책망하고 있다. 

2) 종교적 혼합주의를 책망하셨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라오디게아 도시는 다른 소아시아 도시들에 비해 부유했다.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부요하지만 영적으로는 무지하여 착각 속에 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영적 풍요는 결코 치환(置換)되거나 혼동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 부요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는 심각한 궁핍함에 직면해 있었다.

(1) 로마 황제 숭배와 관련된 경제 문제가 있었다.
로마에는 로마 시민과 식민지 시민이 있었다. 로마가 통치하는 모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황제와 계약을 맺는다. 황제는 시민들에게 평화를 주고 풍요를 준다는 것이다. 대신에 시민들은 황제에게 절대적인 순복, 통치 이념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에 동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실제로 Pax Roma이다. 이것을 공동묘지의 평화라고 하는 것으로 황제는 시민에게 복종 속에 고요한 평화를 주는 대신에 시민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해야 했다. 황제를 신적인 존재로 절대 권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통치 이념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난하고 궁핍할 수박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상당한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택했다.
로마 제국의 통치 이념을 거부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를 절대 권력자로도 신으로도 인정하지 않았고 온 우주의 통치자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신앙을 지켰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기록 목적으로 “황제 숭배를 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가 모든 본문에 들어가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황제 숭배를 타협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통찰하셨다. 충성되지 않은 자들에게 충성된 참된 증인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3) 라오데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권면이 무엇인가?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3:18)”

첫째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연단한 금’은 “불로 단련된 금”(χρυσίον πεπυρωμένον ἐκ πυρὸς)으로 성경적 용어로 죄를 씻음으로 자신의 삶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참조 욥 23:10; 잠 27:21; 말3:2-3). 더 나아가서 이 표현은 환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슥13:9; 벧전 1:6-9). ‘연단한 금’을 사도록 권면하는 것은 금이 제련을 통해서 순금이 되듯이 신앙의 연단을 통해서 온전한 신앙을 회복하라는 촉구이다. 
 
둘째로 ‘흰옷(ἱμάτια λευκά)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이는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사데 교회의 성도들에게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에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3:4-5)’ 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인 의미로 예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성립을 의미한다. 옷이 염색과 세탁 과정을 통해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듯이 신앙의 정절을 지켜 행위가 순전해지라는 것이다. 

셋째로 ‘안약(κολλούριο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라’
이 요청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영적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라오디게아는 의과대학이 있었고 의술이 발달하여 안약의 원료 생산지로 눈 치료가 발달한 곳이다. 육신의 눈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것은 발달해 있으나 영안을 치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상숭배에 연루되고 영적 무감각에 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권면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동참하는 우상숭배의 배후에는 사탄적 실체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서’라는 말이 3곳 모두에 사용되었다. 헬라어로는 ‘아고라조(ἀγοράζω)’로 ‘사다’, ‘속량하다’라는 뜻이다. 위의 연단한 믿음도 깨끗한 행함도 그리고 흐려진 영안도 예수님의 구원의 피로 속량함을 받아야 한다. 

4)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과 징계가 무엇인가?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훈련)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9)”

‘사랑하는 자를(φιλῶ)’, ’책망하여(ἐλέγχω)‘, ‘징계하노니(παιδεύω)’가 모두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인 것은 택한 자를 사랑하시되 어떤 형편에 있든지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한없이 자비로우신 면모와 죄범한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시되 죄인이 열심을 내어 회개하기까지 중단치 않으시는 택한 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철저한 관심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징계’(παιδεία)라는 말은 ‘훈련(discipline)’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히브리서 12: 5-12에서도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언제나 바르게 서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또한 ‘징계’(παιδεύω 파이듀오)라는 말은 어린이를 뜻하는 ‘파이디온(παιδίον)’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어서 ‘아들을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여 신앙생활을 하나님 중심으로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5)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권면이 무엇인가? (계 3:20)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20)” 

주님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구원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알 것은 구원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개입하시는 사건이다. 그러면 왜 문을 두드리시는가? 우리가 문을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과 한 식탁에 앉는 것을 거부하고 문을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식탁은 가족관계를 말하며 식탁의 초청은 영광의 초청이다. 다윗은 주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식탁)을 베푸신다고 했다(시 23:5).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고 대우하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창기와 세리와 식사를 같이 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가족으로 맞이하시는 복음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주님의 모습은 아 5:2에서 신부의 방을 두드리는 신랑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애정이 얼마나 진하게 묻어 있는가를 보여 준다. ‘문을 열면(주님을 맞이하면)’ 식사를 같이 한다는 의미는 성만찬과 더불어 현재적 화해와 종말론적 혼인 잔치를 연상케 한다. 

6) 이기는 자에게 주는 종말론적 약속이 무엇인가? (계 3:21-22절)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마태복음에서는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다‘고 하셨다(마 19;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보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요 불멸의 권세로서 계 2:26-28에서 두아디라 교회 공동체의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철장 권세’나 ’새벽 별‘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주신다.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1) 귀 있는 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귀(우스, οὖς)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귀가 있는 자는 많지 않다. 더구나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어져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딤후 4:3-4) 예언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13:19, 13:43, 막 4:9, 4:23; 눅 8:8, 14:35)라고 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7교회에 보낸 편지의 결구(結句)로 반복되었다(계 2:7, 11, 17, 29, 3:6, 13, 22, 13:9) 성령으로 할례 받은 자의 귀 만이 들을 수 있다(행 7:51).

결론(적용)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늬만 기독교인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삶을 나누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인 모든 것이 치유된 후 한 식탁에서 가족 간의 관계를 누리도록 초청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치유가 선재된다. 믿음과 행함과 영안이 치유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주님을 우리의 사랑의 식탁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물질적 부요를 영적 부요로 착각하고 허세로 문을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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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에 대한 결산

1. 일곱 교회에 주어진 이기는 자의 복과 이겨야 할 제목

 * 계 2-3장의 성경적 의미

1) 계 2-3장은 편지가 아니다.
(1) 편지가 아닌 결정적 이유는 편지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2) 편지의 형식에는 ‘쓰라(γράψον)’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데 2-3장의 본문에는 이 동사가 사용된다. 

2) 계 2-3장은 선지적 메시지이다(선지적 메시지 형식).


교회

이기는 자

의미

이겨야 할 것

에베소 교회

하나님 낙원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계 2:7)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 회복으로 생명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의 지속적인 체험을 한다

첫 사람을 회복하는 것이다(계 2:4-5)

서머나 교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계 2:11)

영원한 불 못의 면제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계 2:10)

버가모 교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계 2:17)

예수 안에서 안식을 주신다

니골라당에 속한 것 회개하라이다(계 2:15-16)

두아디라 교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2:26)

메시아적 통치 권세

너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아라(계 2:25)

사데 교회

흰 옷을 주며 생명책에 기록하겠다(계3:5)

칭의와 구원의 확고한 보증 약속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계 3:3)

빌라델비아 교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계 3:12)

승리자의 예루살렘 시민권(신부) 획득

금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계 3:11)

라오디게아 교회

하나님 보좌에 앉게 하겠다(계 3:21)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를 주겠다

금 사서 부요하게, 흰 옷으로 수치 가리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 일곱 메시지는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 선포의 서두와 동일한 형식이다.
*“교회의 사자에게 써라” : 선지적 말씀 선포의 서두의 성격(호 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르시되”(τάδε λέγει...) (‘...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번역해야 함)
= 구약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코 아마르 아도나이’(כה אמר יהוה)와 동일한 표현(참조. 암 1:6; 5:4)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할 때 썼던 그 도입부분의 문구를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한다. 그것은 이것이 선지적 메시지라는 뜻이다. 

정리하면 2-3장은 편지가 아니다. 편지라 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 된다. 왜냐면 요한계시록 전체가 편지다. 1:4에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에서 ‘편지하노니’는 원문에 없다. 그래서 작은 글씨로 처리했었다. 편지한다고 할 때는 그 단어를 쓰지 않는다. 1:11절에는 “책에 써서 보내라”(γράψον εἰς βιβλίον καὶ πέμψον)라고 하였다. 2-3장의 각 교회에게만 ‘γράψον’을 썼는데 원래 편지는 편지하노니 라고 쓰지 않는다. 

계 2-3장은 편지가 아니다. 편지라 할 때 동봉한 편지가 되어버린다. 요한계시록 전체가 편지인데 2-3장만 다른 편지라고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을 두 편의 편지로 보고 그것은 요한이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누가 쓴 것을 덧붙였다고 주장한다. 

2. 계 2-3장과 요한계시록 전체의 통일성 약속과 성취
 

계 2-3장의 약속

 

계 21-22장의 성취

 

 

계 2:7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

계 22:2

계 22:14

강 좌우에 생명나무와 열두 가지 실과 /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간다

계 2:11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

계 20:6

계 21:4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 다시 사망이 없다.

계 2:17

새 이름

계 19:12

계 22:4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8

새벽 별

계 22:16

광명한 새벽 별

계 3:5

흰 옷

계 22:14

그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계 3:12

하나님 성전에 기둥

계 21:22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다

계 3:12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

계 21:2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 내려오니; 열두 기초석 위에 어린양의 12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다(21:14)

계 3:21

내 보좌에 함께 앉게

계 22:3

그 어린양의 보자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계 2-3장의 약속과 계 21-22장의 성취

3. 계 2-3장의 성경적 의미
일곱 별에 의해 상징되는 일곱 교회의 사자(ἄγγελος)들은 배도자가 아니다.

(1) ‘사자(ἄγγελος)’라는 단어의 의미는 ‘천사’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2) 천사는 천상적 존재로서(일곱 교회의 천상적 대응체)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2장 3장은 선지적 메시지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한계시록 전체가 일곱 교회에게 공통된 내용을 전한 것이라면 2장과 3장은 각 교회마다 개별적인 내용을 터치하고 있다. 

(4) 계 2-3장은 몇 교회를 제외하고는(빌, 라) 칭찬을 책망과 경고보다 먼저 언급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일곱 교회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왜 일곱 교회 성도 아닌 일곱 교회 사자에게 선포했는가? 그것은 천사(ἄγγελος)는 일곱 교회의 천상적 대응체이기 때문이다. 일곱 교회는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인 동시에 하늘에 거하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5) 엡 2:5-7 성도는 천상적 교회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5-7)

실제로는 일곱 교회에 보내지만 그것을 천사가 받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하늘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은 내 오른 손이 일곱 별의 비밀과 도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이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

예수님이 일곱 별을 오른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일곱 별이 일곱 교회의 천사라는 것이다. 별을 사자로, 촛대를 교회로, 상징적 이미지를 풀어 쓴다. 천사는 수호천사가 아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ἄγγελος)에게 편지하라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계 2:1)

실제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사자(앙겔로스)를 등장시킴으로서 에베소교회가 천상적 공동체라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6) 쿰란 공동체(천상적 공동체)

사해지역에 존재했던 쿰란 공동체는 계시록 보다 100-200년 전에 존재했다. 이들은 자기들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사와 함께 있다고 그들 문서 속에 기록했다.

 일곱 교회 특징
 (최종 약속의 복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다)

 

교회 명칭

예수님의

모습

칭찬

책망

권면

약속(ΙΧ)

에베소(인내)

(Ἔφεσος)

계 2:1-7

 

사랑이 없는 교회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

(교회 통치)

믿음의 행위, 사랑의수고, 소망의 인내, 악을 용납지 않음, 거짓을 드러냄, 참고 게으르지 않음, 니콜라파(영지주의)를 미워함

처음 사랑을 버렸다.(사랑이 없는 교회)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겠다.

이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주억 먹게하겠다.(생명으로 충만한 하나님 임제 체험)

서머나(몰약)

(Σμύρνα)

계 2:8-11

 

환난을 이긴 교회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 부요함. 자칭 유대인의 훼방을 이김

없음

장차 받을 10일 환난을 두려워 말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빛나는 생명)을 네게 주리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영원한 불못)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

버가모

(이중결혼)

(Πέργαμος)

계 2:12-17

 

변질된 교회

좌우에 날카로운 검을 기진 분 (힘과 정의의 칼 생산지 버가모)

사탄의 위(하드리아누스 권좌)가 있는데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음. 순교자 안디바가 있음.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

바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우상의 재물가 음행이 있다. 니콜라파 교훈(영지주의)을 지키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속히 임하여 싸우겠다.

이기는 자는 감추었던 만나, 흰 돌(입장권), 새 이름(혼인잔치 참여 신부)을 주겠다.

두아디라(회생, 계속적인 제사)

(θυάτειρα)

계 2:18-29

 

세속화된 교회

눈이 불꽃 같고,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우주적 심판) 하나님의 아들(제우스의 아들 아폴로 물질의신섬김과 비교)

사랑, 믿믐, 섬김, 인내,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많음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함. 행음과 우상의 제물을 먹음. 회개를 거절함.

끝까지 회개를 거불하면 침상에(질병), 큰 환난에 던지고 자녀를 죽이겠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메시아적 통치)을 주겠다.

 

사데(남은자)

(Σάρδεις)

계 3:1-6)

 

생명이 없는 교회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분

(성령과 교회의 밀접한 관계 묘사)

없음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 행위가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함

(활기찬 명성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

받고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이기는 자는 흰 옷(의로움)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구원의 보증)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빌라델아

(형제우애)

(Φιλαδέλφεια)

계 3:7-13

 

선교의 문이 열린 교회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신적 권세, 종말론적인 주권자)

적은 능력으로도 믿음을 지켰다.

없음
이석봉 목사
한국 최초 신구약성경주석을 집필한 경건한 주경신학자 박윤선 박사의 문하생이요, 13개국 언어에 능통한 구약원어신학자 최의원 박사의 문하생이다. 목사요 박사로 총회신학교와 총회연합신학교에서 학장으로 섬겼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신 총회신학교(학장 / 전 국회부의장 황성수 박사)에서 5년, 샌프란시스코 크리스천 유니버시티 하와이 브랜치(학장 / Timothy I Han 박사)에서 13년, 수원신학교(학장 / 이근구 박사)에서 10년간 성경원어교수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쳤다. 예장 합동 인터넷신문 리폼드뉴스(www.reformednews.co.kr)의 논설위원이며 칼럼리스트이다(이석봉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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