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하기수양회] 최남수 목사의 "낮아짐의 기도영성"

낮아지는 영성의 순수성을 회복하라, 그리고 실천하는 기도자가 되라.

소재열 | 기사입력 2016/07/04 [21:12]

[교역자하기수양회] 최남수 목사의 "낮아짐의 기도영성"

낮아지는 영성의 순수성을 회복하라, 그리고 실천하는 기도자가 되라.

소재열 | 입력 : 2016/07/04 [21:12]
▲첫째날 저녁집회에서 최남수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주여! 조국교회의 영적 순수성을 간직하고 이어가는 성령이 충만한 기도영성 지도자들로 삼아 주옵소서."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회장 박무용 목사) 교육부(부장 이영민 목사) 주최로 진행된 제100회기(2016년) 제47회 전국교역자 하기수양회(국내)가 7월 4일~6일까지 진행된 가운데 첫째날 저녁집회 강사로 최남수 목사(의정부 광명교회)가 "영적 순수성을 회복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최남수 목사는 누가복음 18:9~14절 말씀을 터잡아 영적 각성운동을 위한 영적 순수성 회복에 관한 말씀으로 전국에서 여수에 모인 목회자 부부 참석자들에게 첫번째 화두로 "낮아짐의 기도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일성을 외쳤다.
 
최 목사는 낮아짐의 기도영성을 위한 지도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지도자들이 성경을 많이 가르치고 있지만 성경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목사의 강의는 계속된다.
 
성경 속에 내가 살아가는 열쇠가 있고 교회의 부흥의 열쇠가 있는데 그 열쇠를 갖고 있는가? 성경에서 말씀한 낮아짐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는가? 쉽기도 하면서 참으로 어렵다.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 
 
낮아짐과 기도영성의 관계를 기도를 통해서 낮아짐으로  영적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성경에 등장한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할 때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도를 한 사람이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이며, 자기가 바닥까지 낮아진 기도, 겸손한 기도, 자신을 낮추는 기도이다.

▲참석한 목회자들이 무릎을 끓고 기도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우리 목회자들은 이런 기도의 영성으로 충만해야 하며, 교회 교인들을 그러한 영성의 기도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기도의 용광로로 집어 넣어 나를 훈련시키심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 속에 낮아짐의 영성기도보다 교만의 기도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높이는 자와 낮추는 자는 다르다. 순수한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낮아짐의 영성이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능력 중에 가장 큰 능력이다. 이는 기독교 진리의 역설이다. 낮아질 때 영성이 충만해진다. 반대로 영성이 충만할 때 자신을 낮추게 된다. 예수님처럼 낮아짐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 버림을 받지 않고 충만한 영성을 유지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 사명은 낮아짐의 영성을 통해 기도하며 실천하는 삶이다.
 
▲참석자들이 설교를 듣고 있다.     © 리폼드뉴스
 
# 낮아져야만 쓰신다
 
낮아짐의 영성은 주님을 높이는 영성이다. 주님이 하신다. 주님이 하실 것이다. 주님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실 것이다. 주님이 세계선교를 이끄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다. 나의 사전에서 없애야 하는 것은 "내가"라는 단어이다. 나의 입에서 내가 라는 말이 나온다면 이는 바리새인의 기도일 것이다.
 
낮아져야만 쓰신다. 교만한 자를 안쓰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땅바닥까지 낮아진 사람이다. 사울을 변화시켜 바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바울을 겸손하게 하셨다. 사울은 스스로 낮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그를 강제적으로 낮아지게 하셨다. 주님은 겸손을 통해, 낮아짐을 통해 일하시며, 역사하신다. 때묻은 영성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라면 순수한 영성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스올의 깊은 곳까지 낮아져야만 하나님께서 쓰신다. 요나를 통해서 입증된다. 요나 선지자는 스올의 뱃속까지 낮아졌다. 바다속 깊은 곳까지 낮아졌다.
 
잿더미까지 낮아져야만 하나님께 쓰신다. 욥을 통해서 입증된다. 욥은 욥기 42:6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고 했다.  욥은 잿더미까지 낮아졌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낮아졌다.
 
사울이나 요나, 욥은 한결같이 낮아지게 하여 겸손을 배우게 하셨다. 사용하시기 위해서이다. 비참한 현장을 경험하게 하여 나로 하여금 나를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바로 낮아짐의 영성이다.

▲참석자들이 최남수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     © 리폼드뉴스

# 낮아져야만 쓰시는 이유가 있다.
 
내가 낮아질 때 예수님이 눈에 보인다. 마가복음 9:27절에서 시각장애인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다. 가나안 여인의 기도 역시 마태복음 15:22절에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다.
 
내가 낮아질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다. 예수님의 은혜를 부어주신다. 예수님의 기적이 나타난다. 신유의 기적이 나타난다. 기도응답의 기적, 교회부흥의 기적이 임한다. 높아지시고 영광받으신 예수님을 높일 때, 영광을 돌릴 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난다.
 
내가 낮아질 때 마음에 천국이 임한다. 빌립보서 1:20절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씀했다. 내가 낮아질 때 마음이 평안하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거하신다. 내 안에서 예수님이 주인되신다. 마귀가 떠난다.
 
내가 낮아질 때 영혼이 보인다. 신학적인 설교를 하니 졸던 성도들이 내가 앞드리니 은혜를 받는다. 옆에서 함께 엎드린다. 그리고 눈물의 기도를 한다. 내가 낮아질 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다. 내가 낮아질 때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신다.
 
▲ 손을 들어 함께 기도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 사역을 마칠 때까지 계속 낮아질 수 있을까?
 
스스로 낮아져라. 내가 낮아져야 성도가 은혜를 받는다.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한데 어떻게 교인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 보좌 앞에 엎드리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엎드리는 자는 교만하지 않는다. 엎드리는 자는 겸손의 능력을 받는다. 엎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한다. 앞드라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엎드리는 자는 실패에서도 제기한다.  엎드리는 자의 기도는 민족의 재앙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는 힘이다.  엎드리는 자에게 능력으로 덮어주신다.  엎드리는 자에게 하늘 보좌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엎드리는 자는 질병의 치유를 받는다.  엎드리는 자에게 성령의 불을 내려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화목 대사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낮아진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신다. 다윗이 낮아졌을 때 왕으로 세우신다. 모세가 낮아졌을 때 지도자로 세우신다. 욥이 낮아졌을 때 동방의 거부로 세워주셨다. 요셉이 낮아졌을 때 세계적인 지도자로 세워주셨다.
 
▲"주여! 낮아짐의 기도영성 지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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