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교단총회의 정체성 보수ㆍ계승한 지도자 공적 연구 발표

해방 후 폐쇄된 총회 복구와 교회, 신학, 신앙 재건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들

소재열 | 기사입력 2021/04/17 [08:11]

예장합동, 교단총회의 정체성 보수ㆍ계승한 지도자 공적 연구 발표

해방 후 폐쇄된 총회 복구와 교회, 신학, 신앙 재건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들

소재열 | 입력 : 2021/04/17 [08:11]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1959년 제44차 총회에서 WCC 문제로 분리의 아픔을 겪고 황무지 같은 허허벌판으로 나와서 총신을 세우고 총회회관을 세우는 등 오늘의 세계적인 총신과 한국교회 장자 총회를 세우는 데 헌신한 공로자들의 희생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선교의 전래 137년 주년, 총회설립 109년을 맞이하여 오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가 있기까지 교단총회를 위해 헌신한 지도자, 단체, 교회 등을 조명하고 공적을 기리며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공적 연구 세미나를 개최했다.

 

105회 총회가 결정하여 시행한 이번 총회장 훈장 추서를 위한 인사들에 대한 공적(功績) 연구 발표 세미나가 16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에서 열렸으며 유튜브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이번 연구 논문 발표회는 제105회 특별위원회인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총회훈장상훈위원회, 위원장 박창식 목사)와 총회 상설기관인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 신종철 목사)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날 13명의 지도자와 1개 단체, 2개 교회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날 논문 발표자는 이상웅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김호욱 교수(광신대 역사신학), 정성구 박사(총신대 명예교수), 신종철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 역사신학), 김병희 교수(대신대 역사신학), 박성규 목사(총신대 초빙교수, 부산 부전교회 담임목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장영학 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한기승 목사(광신대 강의전담 교수, 광주중앙교회 담임목사), 소재열 박사(한국교회법연구소장), 박창식 목사(대신대 객원교수) 등이었다.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총회훈장상훈위원회, 위원장 박창식 목사)  © 리폼드뉴스


논문 발표 대상은 죽산 박형룡과 예장총회 해원 정규오 목사의 공적 연구 목은 명신홍 박사와 총회의 전통 김윤찬 목사와 교단의 발전 이영수 목사와 예장총회 백남조 장로와 총신의 발전 박종삼 목사의 생애와 51인 신앙동지회

 

정암 박윤선 박사와 총신 청암 이환수 목사의 생애와 사역 이대영 목사의 생애와 복음사역 박찬목 목사의 생애와 총회 사역 차남진 박사의 교수사역과 눈물의 전도자 임승원 목사와 총회의 교육 51인 신앙동지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성격 실업인 신앙동지회의 헌신 승동교회의 장로회 정통성 계승 고찰 등 각 주제였다.

 

발제자들의 발표 전에 드려진 예배설교에서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토인비는 한 민족이나 국가를 망하게 하려면 역사를 지워버리면 된다고 했다. 고난과 수치를 망각한 민족은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의 수치의 역사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면서 우리 교단도 목사와 장로들이 교단의 역사를 모르면 결국 교조적인 교단이 될 수밖에 없다. 교단의 역사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소 총회장은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WCC 문제로 분리의 아픔을 겪고 황무지 같은 허허벌판으로 나와서 총신을 세우고 총회회관을 세우는 등 오늘의 세계적인 총신과 한국교회 장자 총회를 세우는 데 헌신한 공로자들의 희생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 교단총회발전을 위해 선정된 지도자들은 1945년 해방 이후 1942년을 끝으로 폐쇄된 총회가 1946년 남부총회를 제32회 총회로 복구한 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학적 정통성을 보수하고 계승했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그 대상이 결정되었다.

 

▲ 정성구 박사가 박윤선 박사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일제가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적 정체성과 정통성, 정치원리를 파괴한 후 이를 재건한 과정에서 1950년 대 교단총회를 지켰던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와 그와 함께한 교권의 중앙에 서 있었던 지도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한국에서 활동한 모든 선교사들이 강제 출구당했다. 평양장로회신학교는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에 항의하여 폐쇄됐고 그들은 모두 한국을 떠났다. 다시 복구하지 못한 가운데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선교사들이 전원 출국한 상태에서 선교사들의 주도가 아닌 한국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에 의해 한국교회와 총회를 주도하면서 후평양신학교, 조선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김재준 목사 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이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남부총회에서 직영신학교로 승인된 조선신학교는 선교사들이 전래한 정통보수신학을 거부하며 한국적 토착신학, 자유주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주도신학으로 삼으려고 했다.

 

이때 조선신학교 내 정통을 사랑하는 학생들이 만주 봉천신학교에서 강의한 박형룡 박사를 돌아오도록 간청하였으며, 부산고려신학교에서 박윤선 박사, 남산 장로회신학교에서 박형룡 박사가 김재준 자유주의 신학과 맞섰다.

 

이때 박형룡 박사로 하여금 교단총회의 정통신학 보수와 계승을 위해 교권으로 뒷받침한 세력이 바로 정규오 목사와 함께한 51인 신앙동지회였다. 51인 신앙동지회의 정체성은 곧 오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의 신학적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해방 후 박형룡 박사와 교단총회의 신학을 지킨 지도자들이 바로 이번에 발표된 박형룡 박사, 정규오 목사, 이환수 목사, 박찬목 목사, 박종삼, 차남진 박사, 51인 신앙동지회 등이다.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통합측의 분열로 인한 총회정상화와 그 총회의 직영신학교인 총신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인 백남조 장로, 실업인동지회, 승동교회 등이 포함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50년대를 지나 1960년 대 중반부터 교단총회의 정체성을 이끌었던 중심부에 있었던 박형룡 박사, 정규오 목사의 교권이 이영수 목사 김윤찬 목사에 의해 침식당하기 시작하여 결국 교권의 중심부의 변화가 있었다.

 

 총회 관계자들 © 리폼드뉴스


1960년 대 후반부터 1970년에 이르러 교단총회를 지켰던 이영수 목사, 김윤찬 목사 등이 이번 제105회 총회 공로자의 공적 연구 대상자가 됐다.

 

또한 1980년에 들어와 이영수 목사의 타도를 외쳤던 일부 학생들과 교수들이 이탈하여 합신을 설립할 때 1960년 고신측과 합병할 때 합류했던 박윤선 박사 역시 총회와 총신을 떠났다. 이번 교단총회 공로자 연구 대상자로 선정되어 정성수 교수가 발제했다.

 

박형룡 박사의 개인적인 공적을 떠나 그가 교단총회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해 앞장섰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일은 박형룡 박사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해방 이후 장로회 총회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박형룡 박사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정규오 목사와 신앙동지회, 그리고 황해도 교권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가 존재했으며, 신학적 정체성이 가능했겠는가 라는 점이다.

 

이번 교단총회 발전에 헌신한 그들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위대했느냐를 드러내는데 이번 행사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의 오늘이 있기까지 사도적 정 신학과 교단총회를 위해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업적을 기려 총회의 위상과 반면교사를 삼기 위해서이다.

 

총회의 신학적 입장과 정체성은 교단총회가 보수하고 계승한다고 볼 때 교단총회의 교권이 죽으면 이 모든 신학도 정체성도 계승되지 못한다. 교단총회의 정체성 보수와 계승에 무관심하고 교권이 사라진다면 향후 10년이 내에 교단총회는 무너진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교단이란 일본기독교교단의 약칭이 아니라 종교단체의 약칭이다. 이번 발표회에서 교단에 대한 오해도 있었으며, 발제자들의 논문들 사이에 사실관계가 서로 상이한 부분들도 있었다. 이는 참고 한 자료가 원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된 현상이었다. 특히 광주신학교는 정규오 목사가 설립했다거나 킬빈신학교는 김윤찬 박사가 설립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역사 기록은 수정되어야 한다.

 

특히 역대 총신 기수가 제47회 총회(1962)에 총신재단법인이 역대 총신 기수 조정을 보고하여 승인받았다. 이후 1948년(장신 1회)에서 1951년(장신 4회)까지 남산 장로회 신학교 졸업생들을 역대 총신 기수에서 배제시켜 현재까지 정리한 것으로 내부자료에서 확인됐다. 심각한 문제이다. 이 부분을 확인하여 새로 조직된 총신대 학교법인 이사들은 관심을 가져 정통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1959년 통합측과 분열의 원인, 그리고 후에 51인 신앙동지회에 가담하여 52인 신앙동지회의 주역인 조동진 박사의 박형룡 박사의 3천만 환 사건에 대한 본 교단 중심의 중요한 논문과 김의환 박사 등의 여러 교수들의 논문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10년 전에 총회출판부에서 거부됐다는 이야기를 필자의 발제 시간에 발언했다.

 

그러자 총회장인 소강석 목사가 출판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교단총회의 역사를 소중히 여긴 소강석 총회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래서 교권이 있어야 교단신학도 그 정체성도 유지되고 계승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교단의 힘이 없으면, 교단총회는 무너진다. 그 힘은 정도에서 벗어난 거짓된 위장된 교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교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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